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묵상
<11: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1: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1: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11: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11: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11: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11: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11: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11: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11: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11: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본문 해석)
6월 18일 목요일 고린도전서 11:17~34
17~22절
17절 바울은 그들의 모임이 유익하기 보다는 도리어 해로운 것이 되고 말았기에, 칭찬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책망하고 꾸중하고자 하는 우회적 표현이다.
18절 그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이 모임을 가질 때에 분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19절 ‘파당이 있어야’ 라는 말은, 진실한 사람이 드러나려면, 분파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분열을 통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며 함부로 행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드러난다는 말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20절 그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21절 주의 만찬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식탁으로 모든 성도가 평등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를 개인적인 식사로 전락시켰다. 부유한 주인과 그들의 친구들은 일찍 도착하여, 안쪽 식당에서 편안하게 최상급 음식과 포도주를 즐겼다. 그러나 생업으로 인해 늦게 도착한 노예나 빈곤층 성도들은, 남은 음식이 없는 상태에서 바깥뜰에 머물러야 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십자가의 사랑을 기념해야 할 주님이 만찬을, 수치스러운 현장으로 만들었다.
22절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냐고 책망한다. 이는 공적 예배와 개인적인 식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질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의 계급이 철폐된 새로운 가족 공동체인데, 그들은 세상의 신분 차별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여와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모독했다. 또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 가난한 형제들에게 굴욕감과 소외감을 줌으로써 존엄을 짓밟았다.
23~26절
23절 바울은 자신이 전한 성찬에 대한 가르침이, 주께 받은 것임을 분명히 한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라고 하여, 성만찬의 권위를 강조한다. 여기서 받다와 전하다는, 유대 랍비들의 전승 용어로, 이 예식이 사도의 개인적 가르침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따른 규범임을 강조한다. 잡히시던 밤이라는 표현은, 주님이 자기 자신을 내주는 사랑을, 제자들의 배신과 도망에도 보여 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24절 주님은 떡을 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너희를 위하는’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을 연상시키는 대속적 희생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서 기념은 과거를 회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원 사건을 현재의 공동체 안으로 불러와 그 효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25절 식후에 주님은 잔을 드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선포하신다. 이는 출 24장의 옛 언약과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 예언을 성취하는 결정적 사건이다. 이 언약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수평적으로 이 잔을 마시는 모든 성도를 한 언약 백성으로 묶는다. 그런 주의 만찬에서 가난한 형제를 소외시키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언약을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
26절 성만찬의 목적은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성만찬은 십자가와 재림을 잇는 다리이며, 주님이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종말론적 표지다.
27~32절
27절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에게 경고한다.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 라는 표현은 자격의 유무가 아니라,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가난한 형제를 소외시키며 탐욕스럽게 먹는 잘못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28절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성찬에 참여하여야 한다.
29절 이 살핌의 핵심 기준은 주의 몸을 분별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몸은 성찬의 떡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공동체를 가리킨다. 즉 내 옆에 있는 형제를 존중하지 않거나 차별하면서 떡을 먹는 것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죄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두려운 행위가 된다.
30절 바울은 이 경고가 실제적임을 강조하며, 교회 내의 약한 자와 병든 자, 죽은(잠자는) 자들이 발생한 원인을 거룩한 식탁을 더럽힌 죄에서 찾는다.
31절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32절 현재 주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는 것은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시기 위함이다. 이 징계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매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마지막 날에 세상과 함께 정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3~34절
33절 바울은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라는 것은 환영, 영접하는 뉘앙스를 내포한다. 늦게 오는 가난한 형제들이 도착할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그들을 노예나 하층민이 아닌 동등한 언약 파트너로 인정하고 환대한다는 뜻이다.
34절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으라고 한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성만찬을 육체적 허기를 채우거나 식사 교제로만 혼동하는 것이었다. 배고픔은 집에서 해결하고, 교회에서는 주님을 기념하고, 형제와 연합하는 목적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모임이 심판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바울은 지면의 한계상,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인 차별과 심판의 문제를 우선 다루었고, 세부 절차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방문하여 직접 정리하겠다고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