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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12:1~11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19|조회수17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묵상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본문 해석)
6월 19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12:1~11
1~3절
1절 신령한 것은, 방언과 같은 특정 은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우월한 영적 엘리트로 자부하는 문제를 말한다. 그들은 영적 지식이 충만하다고 확신했지만, 바울은 사실 그들이 영적 세계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2절 그들의 이교도 시절을 상기시킨다. 이방인이었을 때, 그들은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대로 끌려갔다. 당시 헬라 신비 종교 제의는, 이상적 판단이 마비된 때 황홀경에 빠져, 거부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힘에 휩쓸리는 상태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이 섬기던 대상은 아무런 계시도 주지 못하고, 인격적 교제도 불가능한 벙어리 우상에 불과했다.
3절 바울은 참된 영성의 기준은 신비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고백에 있음을 밝힌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저주받은 자였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자였다. 따라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조명 없이는 그 누구도 이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없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로마 황제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의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하고, 삶의 주권을 온전히 예수님께 드리는 결단이다. 성령은 비이성적으로 사람을 이끌어가는 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깨닫게 하고, 인격적인 순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이시다.
4~6절
4절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령은 같다고 한다. 은사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서 등급이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5절 직분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는 같다.
6절 사역은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다.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것은 영적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강하게 반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 안에서 일하신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존귀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신 것은, 교회 내에서 영적인 특권층과 소외층의 구분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은사의 나타남이라는 표현은, 성령의 임재가 주관적인 감동이나 개인적인 신비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섬김과 사역을 통해 공동체 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함을 의미한다. 은사는 감추어진 보물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 형제의 필요를 채우는 실질적인 활동이다. 은사의 목적은 개인의 만족이나 과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이다. 은사는 철저히 남을 세우기 위한 이타적 도구다. 나의 은사가 형제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기적이라고 해도 성령의 목적에서 멀어진 것이다.
8~11절
8절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언급한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철학적인 지식과 수사학적 능력을 과도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지혜와 지식이 인간의 사변이나 철학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공동체를 위한 메시지임을 분명히 한다.
9절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라 13:2절에 등장하는 산을 옮길만한 기적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병 고치는 은사는, 어떤 사람이 치유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구체적인 상황마다 성령께서 그때마다 부여하시는 개별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10절 능력 행함, 예언과 영들 분별함, 방언과 통역을 언급한다. 특히 영들 분별함은 거짓 예언이나 혼란스러운 현상 속에서 성령의 참된 역사를 가려내는 필수 기능이다. 11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은사를 나누어 주는 주체는,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시다. 은사의 분배 기준은, 철저히 성령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만할 수 없고, 타인이 받은 은사를 시기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은사는 주인의 뜻에 따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잠시 맡겨진 청지기의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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