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주일 묵상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본문 해석)
6월 21일 주일 고린도전서 13:1~13
1~3절
1절 ‘내가~할지라도’ 라는 2인칭 가정법을 사용하여, 아무도 이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소음에 불과하다. 고린도 교인들이 열망하던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천상의 언어를 말한다는 우월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바울은 사랑이 결여된 방언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한다. 여기서 구리는 당시 극장에서 소리를 높이기 위해 설치한 공명 항아리나, 이교 제의에서 신을 부르기 위해 두들기던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다.
2절 바울은 예언, 모든 비밀과 지식, 산을 옮길만한 믿음 등, 당시 고린도 교회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은사들을 나열한다. 이 모든 탁월함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전무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사랑이 빠진 능력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없는 자라고 한다.
3절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먹이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동기가 아니면 아무 유익이 없다. 고린도 교인들은 종교적 열심을 통해, 명예나 하나님의 보상을 획득하려는 계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랑이 결여된 희생은, 자기 의를 드러내는 과시적 행위일 뿐 아무 소득도 기록되지 않는 헛된 수고라고 경고한다.
4~7절
4절 사랑의 본질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 이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으로, 타인의 약점과 공격에 대해 보복하지 않는 인내와 적극적으로 선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은사를 추구하며, 서로 시기하고, 자신의 영적 우월성을 자랑하며, 헛된 지식으로 교만했다.
5절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예배와 은사 사용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질서와 예의가 필수적이다. 특히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태도는,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성도의 표지다.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남을 세워주는 낮아짐과 섬김을 뜻한다. 사랑은 또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잘못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되갚지 않고, 완전히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6절 사랑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이것은 사랑이 맹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하나님의 성품임을 보여준다.
7절 사랑은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며, 하나님 안에서 지체를 신뢰하고, 최종 승리를 소망하며, 시련 속에서도 군인처럼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견딘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나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분열된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지탱하도록, 실천하는 행위이자 삶의 방식이다. 바울에게 참된 사랑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공동체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8~12절
8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한다. 사랑은 종말론적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본질적 통치 원리다. 고린도 교회가 열광하던 예언, 방언, 지식은 폐하여지고 그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시적 도구라서, 목적을 다하면 기능이 없어질 것이다.
9절 예언이나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 중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10절 따라서 온전한 것이 나타나면,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면, 그 가치를 잃게 된다.
11절 은사라는 신비한 현상에 매달려 경쟁하는 태도는, 어린아이의 일이다. 어린아이는 눈에 보이는 장난감에 집착하지만, 어른은 그 너머를 본다. 성숙한 신앙은 장차 올 완전한 실체를 인지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은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은사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정표임을 깨닫는 것이 영적 성숙이다.
12절 고대 청동 거울이 사물을 흐릿하게 비춘 것처럼,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희미하게,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대면할 것이다. 그때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누구보다도 온전히 아시는 것처럼, 나 또한 하나님을 깊고 친밀하게 아는 관계적 앎이 완성된다. 이 앎은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완전히 이해되는 연합의 신비다.
13절
은사의 일시적 성격과 대조되는 영원한 가치는 믿음, 소망, 사랑이다.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마지막 날 기능이 다하여 폐기되지만,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전적인 신뢰(믿음)와 무한한 영광에 대한 기대(소망)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그러나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믿음과 소망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의존하는 방식이지만,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 방식이자 본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거나 소망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분이다. 사랑은 모든 은사를 초월하여, 성도가 영원토록 걸어가야 할 가장 위대한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