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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루터교와 신학에 대하여 알고 싶어요'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4.12.08|조회수768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나누미님.

일전에 통화하고 난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만 이렇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 님을 대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루터교[루터파 교회;루터교회]와 이 교회의 신학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였는데, 제목과 관련해서 님의 질문을 보면 크게 세 가지를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루터교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루터교의 신학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루터교의 신학교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님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루터교에 있어서 루터와 그의 종교개혁 운동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입니다. 둘째는 루터교의 신학에 대해서 입니다. 셋째는 루터교회의 특징과 루터교의 한국 선교 활동 및 루터교의 신학교에 대해서 입니다.


먼저 루터교[루터파 교회 ; 루터교회]에 있어서 루터와 그의 종교개혁 운동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루터교를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간략하나마 루터와 그에게서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의 지도적 역할을 한 분이며 또한 신학자이기도 합니다.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출생한 그는 본래 농부 출신이나 광산업에서 일한 아버지에 의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루터는 5세 때 만스펠트 시(市)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문법, 수사학, 논리를 배웠으며, 마그데부르크 시(時)에 있는 교회학교에서 만 1년을 성경과 경건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이제나흐 시(市)로 가서 그곳에 있는 레르푸르트 대학에서 인문주의학을 배웠는데 여기에는 베젤(John Wessel)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 그는 다시 동대학의 법학부에 진학하여 법학을 배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곳에서의 학업과 생활에서 철학과 신학과 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친구들로부터 '음악박사'이니 '철학박사'라고 불려진 것은 결코 장난기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가 종교개혁자로서 등장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에서 찾아집니다. 그 하나는 그의 급격한 생의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는 종교적 번민이 있었습니다. 1505년에 그는 친구와 함께 만스펠트 시에서 에르푸르트 시로 오는 도중에 비를 만나게 되어서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 밑에 있었는데 이때 친구가 벼락을 맞아 즉사하였고 그 또한 성 안나(St. Ann)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쓰러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루터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그가 에르푸르트 시로 돌아온 직후에 바로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스타우핏츠(Johann Von Staupits) 감독이 원장으로 있는 어거스틴파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에서 그가 얼마나 큰 종교적 번민을 하였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에서 그는 죄와 심판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 고행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고 주야(晝夜)로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절망감에 부딪쳤으며 자신 스스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진리에 점차 다가갔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는 1507년에 신부 안수를 받고 정식으로 수도사가 되었으며 1511년에 로마를 다녀온 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서 그 다음해에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종신직 교수로 임명받아 성경을 강의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513-1517년까지 한 구약의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강의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사역에 의한 속죄를 통해서 있게 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을 깨닫고 여기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깨달음은 수년 전에 로마 여행을 가졌을 때 그곳에서 당시 교황 레오Ⅹ가 100년 동안 끌어온 베드로 성당(St. Peter's)의 완공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서 면죄부[속죄권] 판매를 강권하면서 그 수입의 반을 지방 감독이 차지하고 판매 책임자가 판매량에 따라 보상을 받고 나머지는 교황청으로 보내는 부패의 실태를 직접 피부로 느끼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본 그에게 바른 신앙에 눈을 뜨며 종교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는 루터가 종교개혁자로 등장하게 되는 또 하나인 직접적인 요인인 종교개혁 운동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1517년에 있은 그 유명한 '95개조의 항의문'[95개조 논제] 사건으로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이에 항의를 하는 것으로 비텐베르그 대학 내에 있는 교회문에 95개 조항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급작스럽게 순간적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잘못된 연옥 교리를 내걸고 신자의 공덕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대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는 것으로서였습니다. 그는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미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항의하는 행동을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해 있던 작센주의 영주인 프리드리히 현공이 매년 만성절(萬聖節):11월 1일) 전야에 면죄부를 발행할 수 있는 특권을 행하사고 있는 것에 2차례에 걸쳐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언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말하며 면죄부 판매를 촉구하는 도미닉교단 수도사 텟젤(Johnn Tetzel, 1465-1519)가 오는 것을 막고 설교에서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단호한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루터의 95개 조항의 항의문은 이런 가운데서 비텐베르그 대학 내 교회에 내걸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의문은 단지 한 교수의 양심 선언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로마 카톨리 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것으로서였습니다.

"면죄부는 죄를 속할 수 없다. 면죄부는 죄의 벌을 면케 할 수 없다. 면죄부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결코 구할 수 없다. 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를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루터의 95개 조항의 항의문은 교회 개혁의 깃발을 세우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종교개혁 운동사가 전개되어집니다. 그렇지만 종교개혁 운동은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은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서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운동은 면죄부와 연옥 교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이후 폭넓은 신학적 견해가 다루어지고 칼빈에 이르러서는 종교개혁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학의 정립이 되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종교개혁 운동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한 신부[사제]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개혁운동을 허락하지를 않고 파문 출교함으로써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서 개신교 운동을 갖게 되는 것으로 종교개혁 운동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루터교의 신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루터교의 신학은 곧 루터의 신학 사상을 이해하는 것에서 말해집니다. 루터의 신학 사상은 그가 남겨 놓은 성경 강의와 저서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종교개혁의 모든 프로그램을 제시했던 그리스도교인의 신분개선에 관한 독일의 그리스도교 귀족에게(1520), 가톨릭교회의 성사(聖事)에 대하여 비판한 《교회의 바빌론 포로(捕虜, 1520), 신앙과 사랑 위에 선 자유로운 인간의 본질을 논한 《그리스도교인의 자유(1520)》가 있으며, 또 D. 에라스무스와의 논쟁에서 신의 은혜의 절대성을 역설한 《노예의지론(1525)》과, 황제에 대한 저항권을 설명한 《사랑하는 독일국민에게 권고함(1531)》, 교리를 쉽게 쓴 《대교리문답서(1529)》, 신앙에서 형성되는 윤리를 설명한 《선행에 관해서(1520)》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경 강의는 초기의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 이어 완성기에 들어가면 <갈라디아서>와 <창세기>의 강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로마서> 강의는 종교개혁적 사상이 완전히 결실되고 있는 신앙의인론(信仰義認論;이신득의, 또는 이신칭의 사상)이 확립되고 있습니다(참조, daum 백과사전).

이 모든 것의 글에서 집약되는 루터의 신학 사상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인데 이것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sola gratia)에 따른 것인데 이 'Three Solas'는 개혁의 3대 원리로 대변됩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밑바닥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교황의 권위를 성경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이 율법의 의를 쌓는데 필요하고 동원되는 것으로 여기며, 선행하는 믿음을 구원 얻는 의의 개념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하여 루터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그리스도 외에 달리 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는 자명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신자는 오직 이 성경의 권위를 의지할 것을 말하였으며,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을 보시는 호의’로서 대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 절대성과 그 충족성을 주장하였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단번에 모든 율법을 성취하며 인간을 의롭게 한다고 하면서 이 위에 교회가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고 그 중요성을 말하였습니다.

이제 끝으로 루터교회[루터파 교회;루터교]의 특징과 루터교의 한국 선교 활동 및 루터교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루터교는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시대의 교회가 성경적 신앙에서 벗어나 있을 때 1517년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들고 일어났던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 개혁 운동의 영향을 받아 루터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자들이 세운 개혁교회의 한 파(派)입니다. 개혁교회는 크게 루터파 교회와 칼빈파 교회로 분류가 됩니다만 그 명칭은 각각 루터교회(Lutheran Church)와 개혁교회(Reformed Church)로 서로 다르게 불려집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불려지는 것은 각각의 교회는 동일한 개혁교회이면서도 그러나 서로 다른 특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 생활에 있어서 성례와 예배 의식에 대한 차이 때문인데, 루터파 교회는 "루터교는 온 세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임을 믿습니다. 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나의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복음이 순수하게 설교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회중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참 일치를 위해서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전통, 곧 인간이 만든 의식이나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 4:5, 6)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조)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나 성례에 대한 교리와 예배 의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도를 수용하고 있는 반면에 칼빈파 교회는 그 모두를 개혁으로 삼은 데서 있게 된 것입니다.

루터교회는 개혁교회와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 규범(Norma Normans)으로 믿으며 세계 보편신조인 사도신조, 니케아신조, 아타나시우스신조를 제2의 신행 규범(Norma Normata)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하여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 및 루터의 소교리 문답서를 기독교의 대표적 교리로 보고 있습니다.

이 루터교회(Lutheran Church)에서 영문인 '루터란'(Lutheran)이란 말은 '루터를 따르는 놈(사람)들'이라는 말로서 카톨릭 교도들이 비아냥거리며 멸시조로 붙여준 것입니다만 역사는 이것을 교회의 이름이 되게 하였습니다. 루터교회의 시작과 발전의 역사를 보면, 루터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세워진 교회로서 개혁자 루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루터 자신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루터 자신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한 말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더이상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우리들을 루터교인이라 부르지 말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달라고 하였다. 루터가 무엇인가? 내 교리는 확실히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자기들을 바울파 혹은 베드로파라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도대체 이 약하고 추한 시체 같은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녀들에게 나의 쓸모없는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을 붙이겠는가? 아니, 안 된다. 나의 친구들이여, 모든 파당의 이름을 제해 버리고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교리를 가지고 있는 그 분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주시오." 그러나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을 중심으로 루터교회는 점차 퍼져나갔는데, 이 루터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합법적 종교로 인정을 받은 때는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회의에서입니다. 이 회의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교회는 유럽의 합법적 종교로 인정이 된 것입니다. 즉 루터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등한 법적 권한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종교가 루터교회 신자인가, 또는 로마 카톨릭 교회 신자인가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가 결정되는 지역별 종교의 자유 (cuius regio, eius religio)의 원칙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로써 루터교회는 지역교회 단위의 개혁으로 세워져갔습니다.

우리 나라에 루터교회가 들어온 때는 다른 개신교회보다 70여년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정식 선교가 이루어지기 전이지만 루터교인들의 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가 루터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독일 루터 교인으로 자유 선교사였던 칼 귀츨라프(1803-1851)가 1832년 7월 한반도의 서해안에 들러 1개월간 한자어로 된 전도지를 돌린 데서 처음 시작됩니다. 그 이후에도 이름 없는 루터란들의 활동들이 있어왔는데 한국전쟁 때에는 70명의 미 군목들이 종군하였고, 기독교 세계봉사회를 통해 적극적인 구호 사업을 펼쳤으며, 스칸디나비아 루터교인들의 헌신적인 의료 봉사는 지금 국립의료원인 메디컬센터로까지 이어진다. 또 국제루터란아워는 많은 음반을 KBS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모태가 된 기반에서 1958년 루터교회 한국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미조리 의회(LCMS)가 파송한 세 명의 선교사(L.B. Bartling, M.W. Dorrow, K.E. Voss)는 1958년 1월13일 서울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하였고, 9개월 뒤에는 지원용이 귀국하여 선교팀(KLM)에 합류하면서 점차 루터교회는 확장되어갔습니다.

그러면 이제 루터 신학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한국루터회에 의하면, 루터 신학교는 범교단적 기독교지도자의 양성과 기독교한국루터회의 교회 개척 10개년 계획이 시행됨에 따라 더 많은 목회자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서 1981년에 설립이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루터신학원(LTA)이 목회자 양성의 임무를 연세대학교에서의 연계 교육과정을 통하여 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현 4년제의 대학교로서인 루터대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현재 4년제 학부(초교파적 신학과 및 사회복지학과)와 3년제의 신학대학원(M.Div과정 및 사회복지학과)과정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루터대학교를 졸업하면 타 대학원으로 진학 및 본교 신학원에 진학 할 수 있으며 미국의 Concordia Seminary에 유학할 수 있으며 신학원(M. Div)과정을 졸업한 후 미국 Concordia Seminary의 M. Div 마지막 학기과정에 편입 또는 STM과정에 진학할 수 있고, 세계의 유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학교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군 신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본 답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기독교한국루터회에 문의해 보시거나 상담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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