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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세례에 관하여 질문드립니다.'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5.12.30|조회수872 목록 댓글 4
안녕하세요. eden님.

님께서 본 까페에 회원 가입하심을 주 안에서 기뻐하였었는데,
이렇게 질문을 대하고 이를 답하는 것에서
복음 진리의 바른 이해를 위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교제를 가져나갈 수 있기에
그 기쁨은 더해져 나갑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리를 같이 하고
주께서 주신 복음을 가지고
꼼박 날이 새도록 주고 받는 대화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실 이것 외에 더 큰 기쁨이 있을런지요!.

제가 섬기는 교회는 성탄절을 따로이 지키지 않습니다.
이미 매주일에
언약자로서 성취해 오신
주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소망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을 통하여
그분의 몸된 교회는
그분 안에서 구약에서 제사와 성전과 함께 주어졌던
모든 절기의 완성이 갖는 언약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서 또한 성탄절을 비롯하여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갖가지 교회적 절기를 만들어내어서
이를 신약적 개념으로 지켜가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모형적으로서 한시적으로 주어졌던 절기의 개념을
주님의 이름이란 방법으로 새로운 형태로 여전히 가져나가려는 것으로
주님의 몸을 더럽히는 악한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해서, 참된 교회를 지향하여 나가는 교회라고 하면
모르고 있다면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바르게 알 수 있기를 위해서 은혜를 구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미 잘 알고 있다면
마땅히 성탄절을 비롯하여서 부활절 등 등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갖가지 교회적 절기를 버리고
매 주일을 주 안에서 주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주님을 기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님이 속한 교회에도 이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참된 신앙으로 참된 교회를 지향하여 나가고자 하는 님이
그 교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님이 궁금해 하며 알고자 하는 질문의 내용에 대해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질문을 볼 때 님이 속한 교회에서는 이번 12월 25일에도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지키면서 성례전을 행하였습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입니다. 님이 말한 대로 교회에서는 대개 성탄절이라든지 부활절 등에서 세례와 함께 성찬의 성례를 가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세례의 예식이 행해진 것과 관련해서 한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의구심으로 말입니다. 그 의구심은 세례의 정의와 그에 따른 의미라든가 세례의 방식이라든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세례의식을 행할 때에 늘 선언하는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는 '세례 선언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하는 이 세례 선언에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하는 강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내가' '아무개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에 님이 속한 교회에서의 세례식에서는 연세가 90세가 되시는 분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 세례의 집례자는 젊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때 젊은 목사님이 '내가' '아무게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한 선언에서 보듯이 연세 높으신 분에게 자신을 경어가 아닌 아랫사람에게 말하듯이 하는 표현의 용어인 '내가', '그리고 ∼주노라'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대언자적인 입장에서 신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님이 갖는 의문은 과연 이같은 현상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님은 교회사에서 그런 유래가 어떻게 비롯되었으며 목사는 과연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는가? 또는 교회사에서 사도적 권위로 인정을 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하면서 의구심의 핵심은 "세례를 주는 것" 이 아닌 그런 멘트가 성경적으로 타당한가를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님이 알고자 하는 이 부분에 관해서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 하는 세례 선언의 유래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는 교회사에서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알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님에게 답글을 쓰는 제가 모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교회사에서 교회가 언제부터 세례를 베풀 때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선언을 하여왔는지를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교회사에서 그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있을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 소유하고 있는 서적으로서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사에서 세례 선언문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 혹, 이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자료가 있으시거나, 그래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례 선언의 표현 양식에 관하여 정확히 아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에서 느껴지는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적인 입장에서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는가? 그리고 이것은 교회사에서 사도적 권위로 인정을 하였는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참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적인 입장에서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목사는 설교하는 자로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로서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말하며, 여기에 있어서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 부분은 목사가 상당히 권위 있는 자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래서 무게 있어 보이는 듯이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서 오늘날 교회는 교회 직분에 있어서 계급적, 또는 차등적 인식을 갖습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기타 이런 저런 명칭으로 존재하는 교회 직분간에 있어서 목사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분이요, 그 다음은 장로요, 그 다음은 안수집사요, 그 다음은.....하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 제도적인 구조를 보는 듯 합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간에는 분명한 계급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그들 존재 사이에는 차등이 있지요. 그와 같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 간에도, 게다가 국무위원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공무원들에게서 말단직에 근무하는 분들에게서는 상관의 계급이 커 보이고 그 권위가 무서울 수 밖에요.

하지만, 교회 직분에는 계급적이고도 차등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그리고 기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임시 직분이라 할지라도, 그 직분들은 '사역분야의 독립성'과 함께 '협력적 사역자'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각각 섬겨 봉사하는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회 직분자들은 각각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다스림을 받는 자로 있는 것이지 다른 직분자들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원리는 각 교회 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와 교회는 서로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각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만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A라는 교회가 B, C라는 교회를 지시하고 명령하고 마음대로 움직여 나갈 수가 없습니다. 단지 참된 교회로 서 나갈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여 돕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원리가 무너져 있는 것이 교단이며, 또한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각 교회인 실정이어서 교회 안에 직분자들 사이에서 잘못된 권위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자신을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말하며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말하고 또한 그에 따라서 성도는 목사를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사실 목사를 비롯하여서 장로와 집사 모두는 다 똑같이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항존직(恒存職; 교회와 더불어서 항시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의미임)인 목사와 장로와 (안수)집사를 설명하고 있는 박윤선의 헌법 주석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을 세워서 복음 사역을 하게 하신다. 그들은 사도적 이적은 행하지 못하는 평범한 자들이다. 교회의 삼직(목사, 장로 안수집사)이 성격상 평범한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신자들의 심령을 구원하여 새롭게 하는 데 수종든다."고 하였으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을 말하는 곳에서는 "그(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수종해야 된다. 이렇게 되어야 성직자 자신의 권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권위가 실현된다. 성직자 자신에게는 권위가 없으니, 그 자신은 겸손과 온유로 일관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직분인 목사, 장로, 집사직을 맡아 봉사하여 섬기는 자들은 이 직분을 수행함으로 말미암아서 무슨 대단한 권위를 부여받아서 대단한 위치에 있으면서 그 세도를 부리는 대단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모두가 주님께서 맡기신 각각의 독립된 사역을 협력적으로 수행하는 동등한 자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사랑과 존경의 관계성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네 한국 교회의 현실은 목사를 하나님의 대언자 라고 하거나 또는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라고 하는 말을 내세워서 이 말이 지닌 본래의 진정한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도(道)를 성경이란 계시의 방편을 통해서 세상에 전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이 성경은 선지자와 사도에 의해서 기록을 맡기셨기 때문에 '선지자와 사도의 글'이란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에 의해서만 구원의 도를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선지자와 사도의 글을 통해서 멸망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에게는 결코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하도록 완악한 고집에 있게 하십니다. 선지자와 사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는 자로서 또한 이를 전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는 예언자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는 사람의 장래의 일과 관련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메시야(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실 일을 전하는 것에서입니다. 그런 면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불려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도를 온 세상에 전하여 알게 하시는데 있어서 사람인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을 맡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과 동일하며 따라서 말씀에 있어서 동등한 권위를 갖습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하는 말은 신적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가지며 이해해야 할 것은 선지자란 직분이 신적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란 직분을 맡은 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적 권위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선지자가 하나님이 전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임의로 말한다고 하면 그가 하는 말은 결코 전혀 신적 권위를 갖지 못합니다. 즉 신적 권위가 없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선지자가 하는 말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신적 권위를 지니겠습니까?

사도 시대에 사도가 가르쳐 전하는 말을 교회가 권위 있게 받아들인 것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자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사도성의 확인과 검증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에 우리네 교회에서 목사를 하나님의 대언자이며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럴 때 이 말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그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맡은 자로서 이를 순전함으로 전한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그대로 순전하게 전하는데서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그 권위를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전하지 않는다고 하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그대로 진실하게 바르게 전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가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아무런 신적 권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권위를 행사하시는 것이 없는데 무슨 신적 권위 운운합니까? 사람이 자기 육에서 나오는 정욕에 이끌려서 자기 생각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말인데 신적 권위 운운하다니요? 특히나, 우리네 교회 현실적 상황에서 목사를 하나님의 대언자이니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느니 하는 것은 모두가 '목사 높이 띄우기'로 하는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대개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지극히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고 이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완성되어 종결된 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대언자'라거나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라고 하는 특별한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 전하여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다 하나님의 대언자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입은 영광을 나타내 그에게 품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신적 권위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대언자, 그리고 신적 권위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다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두드러지게 발휘하는 까닭에 목사의 직분을 받아서 그 은사로 사역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봉사의 직무는(도) 언제나 대언적이고 수종적입니다. 목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종해야 합니다.

따라서, 님이 궁금해 하는 목사가 세례를 베풀면서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선언하는 말에서 '내가 ∼주노라'는 목사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대언자로 그리고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격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결코 그럴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그리스도이신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위하여 사도로 삼으신 열 두 제자에게 하게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계대적(繼代的) 성격을 띠는 것으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모든 족속(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베푼 데 따라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분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베푸는 일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죠. 따라서 세례를 베푸는 일은 목사가 하나님의 대언자이며 또한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대언자이니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이니 하는 말을 목사에게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이 의식을 집례하여 행하는 일은 목사만이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문제를 님의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하고자 합니다. 먼저, 장로교회가 신도의 지침서로 삼고 있는, 곧 신앙의 표준문서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7장 성례와 제28장 세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28장 세례에 대해서 1항에 보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서, 세례 받은 당사자를 유형 교회에 엄숙하게 가입시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당사자에게는 은혜 언약의 표호와 인호가 되며,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하고 죄를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호요 인호이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명하신 것이기에 세상 끝 날까지 그의 교회 안에서 계속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세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세례를 받아 교회에 가입하도록, 그리고 세례는 세상 끝날까지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집행되어야 할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2항에서는 "이 성례에 사용되어야 하는 외형적인 요소는 물이며, 이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되, 합법적으로 부르심을 입은 복음의 사역자인 목사에 의해서 집례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27장 성례에 대해서 4항에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복음서에 제정해 놓으신 성례는 두 가지뿐이니, 세례와 성찬이다. 이 중에 어느 것도 합법적으로 안수를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 이외는 아무도 집행 할 수가 없다."고 말하여 목사만이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것으로 분명히 하여 못박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주 자유개혁교회 질서에서 가르치는 말씀 사역자들의 직분(제16항)에서 "말씀 사역자 직분의 특별한 책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중에게 철저하면서도 신실하게 선포하며, 성례들을 집행하며,....."라고 세례와 성찬으로 되어 있는 성례를 말씀 사역자 직분인 목사의 직무로 다루었으며, 캐나다 자유개혁교회 질서에서 가르치는 성례 집행에서는 "성례들은 오직 당회의 권위 하에서, 공적인 예배 시에, 말씀의 사역자에 의해서, 채택된 예식서를 사용하여 집례되어야 할 것이다."(제56항)라고 성찬과 함께 성례의 하나인 세례를 말씀의 사역자에 의해서 집례되어야 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로교회 헌법의 예배모범에서도 "세례는 공연히 지체할 것도 아니요, 어떠한 형편을 물론하고 평신도가 베풀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목사가 베푼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모두 성찬과 함께 세례를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가 집례하여서 베풀 것으로 가르칩니다. 칼빈은 교회론을 다루는 기독교강요 제4권 15장의 '세례'에서 20항의 급박한 비상시에 행하는 세례에 대한 견해를 말할 때 "세례와 성찬을 관장하는 것은 교회의 공식의 직무에 속하는 일로서 그리스도는 어느 개인으로서의 여자 혹은 남자에 세례를 집행할 권한을 주신 것은 아니며, 사도로 임명된 자들에게 이를 행하도록 명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성만찬의 집행을 제자들에게 명하셨을 때에도 그들이 본 바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세례의 집행을 아무나 할 수 없고 사역자가 행하여야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사역자의 직무의 한 부분으로 다루면서 사사로운 개인에 의해 세례가 베풀어질 수 없는 것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상시에 급박한 상태에서 부득이하게 사역자에 의해서가 아닌 한 개인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세례에 대해서는 교부들에 의해서 교회가 행해온 관습과 어거스틴의 경우를 들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를 그럼에도 이것이 반복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경건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지 알수 없으나, 불가피하게 필요해서 행하였을 경우는 죄가 되지 않으며 죄가 된다고 하여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라는 입장을 취하여서 예외적인 경우까지도 목사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칼빈을 비롯해서 교회의 신앙고백서와 교회 질서에서 그리고 교회 헌법에서는 모두 성찬과 함께 세례를 목사가 집례하여 집행할 수 있는 것으로 다룹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세례는 과연 반드시 목사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인가?

교회가 세례 베품을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인 목사에게 한정한 것은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주님의 분부가 사도인 열 두 제자에게 주어진데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초석(礎石)의 역할을 한 이들 제자에 의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인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주어진 분부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의 분부는 신자 어느 한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믿는 자 모두에게 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는 사도가 행해온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맡은 은사에 있는 사역자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는 교회 질서의 문제가 됩니다. 모두가 다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중에서 이 은사에 있는 자가 말씀을 가르칩니다. 혹, 회중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세움을 입지 않았을 경우, 그래서 모인 믿는 자들 중에 누군가가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게 되는데 이때 또 다른 사람이 주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일이 있으면 그는 무질서하게 나서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서(순서)에 따라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맡은 자가 있어 이를 교회가 사역자(목사)로 택하여 세웠다고 하면 온 회중은 그를 통해서 말씀을 가르침을 받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성찬과 함께 세례를 베품에 있어서도 그 사역자가 집례를 맡아서 집행하여 나가게 하는 것은 사역자와 신자간에 갖는 관계성에 의한 질서에 속한 문제입니다. 누구나 다 세례를 베푸는 자이겠습니까? 하는 문제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다 세례를 베푸는 은사를 받고 있는 것이겠는가 하는 것이죠. 만일 그렇게 되면 얼마나 어지럽겠습니까?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교회가 각 지역에 세워지고 여기에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인 목사를 세우고 그에게 성찬과 세례의 직무를 함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사에서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교회가 함께 신앙으로 고백하며 지켜가야 할 내용으로 있게 되고, 개혁교회의 질서로 삼게 되고, 또한 장로교회 헌법에서 예배 모범 규례로 정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세례의 베품은 목사만이 집례하여 행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신자는 응당 목사만이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것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님에게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곧 질문의 진의는 목사만이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님이 알고자 하는 문제를 설명해 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님이 알고자 하는 질문 내용의 본론으로 들어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님은 " 저의 의구심의 핵심은 "세례를 주는 것" 이 아닌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는 그런 멘트가 성경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에서 '내가 ∼주노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가 하는 것이죠.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는 세례 선언문인데, 이는 교회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교회에서 대개는 이런 선언문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게 된 때는 2C 후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도행전에서 2장 38절, 8장 16절, 10장 48절, 19장 5절, 22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2C까지는 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졌다는 것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2C 후라고 하는 견해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2C까지 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졌을지라도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진 것과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이신 성령께서 베푸시는 세례에 대한 이해를 가진데서 행하여진 것이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에서의 세례 베품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록되고, 또한 설사 2C까지는 이 표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행해졌을지라도 이것은 그분이 갖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대한 개념에서 충분히 납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네 교회가 세례를 베풀 때 선언하고 있는 양식을 보면 공통적으로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세례 선언문마다 모두가 똑같이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되어 있고, 그래서 이렇게만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례 선언문에서 반드시 '내가'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예식서 제정위원회(1982, 위원장 박정덕 목사)에서 발행한 표준예식서에는 '내가'라는 표현의 용어가 세례를 베풀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아무개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하고 들어가 있지만 이를 교회에 공포할 때는 "이들은 오늘 거룩한 세례를 받아 00교회 세례 교인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아멘"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식서에서 세례 선언문에는 대개가 이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앙문화사에서 발행한 장로교 예식서(1985, 백동섭 편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아무개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하고 있으며, 이를 교회에 공포할 때도 "000 이상 여러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00교회 세례교인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아멘"이라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라는 말은 세례를 베풀 때에도 이를 교회에 공포할 때에도 다 빠져 있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내가'라는 말을 세례 선언문에 넣지 않은 것은 '내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뺀 것이라기 보다는 생략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무엇을 의도하는가 하면 '내가'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례 선언에 자구적(字句的) 문구의 문제를 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말입니다.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에서 '내가 ∼주노라'고 하는 표현은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그와 같이 '내가'라는 말이 없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만 한다고 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내가'를 사용하는 것은 목사인 그만이 하나님의 종된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하는 의식(意識)에 의해서, 그리고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권위(권세) 있는 자라고 하는 권위 의식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금 세례 의식을 맡은 집례자가 수세자에게 세례 의식을 행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또는 성령 안에서)세례를 베풀었다는 선언을 하는 표현 양식(樣式)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수세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을 세례 의식을 맡은 집례자가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세례 집례자를 사용하여서 수세자에게 세례를 베푸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세례 집례자가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수세자에게서 세례를 베푼 집례자의 이름이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집례자의 제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세례를 통해서 교회의 한 일원으로 연합하게 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세례를 앞세워 누구의 제자로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극히 경계를 시켰습니다.

세례는 말입니다. 집례하는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은 사람에게서 그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그것을 집례하는 사람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말이죠. 세례를 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고 또한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할지라도 세례는 유효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신성 모독에 참가하도록 수세자에게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성령님께서 세례를 준 것이므로, 거기에는 확실히 죄를 사하고 육을 죽이며 영으로 다시 살리고 그리스도께 연합하게 하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칼빈, 기독교강요 제4권 15장 16항). 그런데 '내가 ∼주노라'에서 '내가'의 세례 집례자가 세례에 두각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지금 이 은혜로운 일을 맡는 은사를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목사에게서 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하는 세례를 베푸는 일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또는 성령의 이름으로) 되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며 그 일에 자신은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례를 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사람인 것입니다. 온 회중과 더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이를 공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세례 받은 사람을 교회에 가입시켜 그가 온 회중과 더불어서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해서, 세례를 베푸는 일에 있어서 '내가'에 부정적인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을 듣는 것 자체가 껄끄럽고 거북하고 해서 마음에 거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례를 통해서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받아들임으로써 자신과 함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룬 것에 감격스럽고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기쁨이 충만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가 하는 표현이 과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고 하면, 제가 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표현에 대한 어떤 문구도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고 그래서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을 만나신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에 따라서 사도와 그리고 지금까지 이 초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오늘날에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받아들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서 지속되어 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있어서 세례를 집례한 자가 이를 선언하는 표현 양식인 "(내가) 0 0 0 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는 어떤 것으로 사용하여도 이를 문제삼을 것이 아닙니다.

정말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말이죠, 세례를 집례하는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서 행하는 설교가 주께서 주신 복음의 순전함에 있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서 한 믿음의 형제가 함께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에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부디, 님이 의구심을 갖고 궁금해 하면서 알고자 하신 질문의 의도를 충족시킨 답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의 바람일 뿐, 혹 설명이 미진하여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보다 온전히 이해하실 수 있는 깨달음에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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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로데 | 작성시간 05.12.29 목사님이 많이 바쁘셨나봐요...
  • 작성자eden | 작성시간 05.12.30 목사님을 신뢰하기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중 입니다. 조금 까다로운 질문이었다면 양해를 바라오며,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작성자주은 | 작성시간 06.02.18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ljw153 | 작성시간 06.03.07 좋은글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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