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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세상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6.04.01|조회수273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이철민님.

님에 대한 반가움을 표하며
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님이 궁긍해 하며 알고 싶어한 것은
역사를 세상 역사와 구원 역사의 관계성의 이해에 의해서
하나님이 세상 역사를 어떻게 간섭해 가고 계시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歷史, history)란 시간의 진행 속에서 인간 사회가 갖는 사건이요 또한 그 사건의 기록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인간 사회가 거쳐 온 변천의 모습, 또는 그 기록", "어떤 사물이나 인물·조직 따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취"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느냐에 따라서 역사철학이니 역사과학이니 역사신학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이 역사 이전에 또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인간 사회 속에서 진행되어온 역사 이전부터 역사는 있어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전적 의미의 인간 중심에 의해서 정의되는 역사관은 깨집니다. 왜냐하면, 역사 이전에 신 중심에 의해서 정의되는 역사가 영원 전부터 존재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로 당시 헬라적 개념에 의한 신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가리키고 있는 '태초'라는 말과 함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계신 분, 그래서 태초부터 '선재해 오신 분'이심을 말해주기 위해서 '말씀'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하였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의 존재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말씀이신 것은 그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계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태초부터 선재해 오셨던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말씀이란 용어의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요한의 증거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심에 따라서 역사는 있어왔습니다만 역사는 그 이전인 영원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영원부터 존재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계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가 되셔서 다스리심으로 '세상'이란 모습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창조 받은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별개로서가 아닌 서로 연계되어 있으면서 연속성을 갖는 역사관을 띱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역사는 'history'입니다. hi(he)와 story, 그러니까 '그의 이야기'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그의 이야기'에서의 '그'를 인간에 두고서 인간이 펼쳐나간 이야기를 역사로 다룹니다만, '그'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하나님이 해 나가시는 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역사입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의 의미의 문제는 역사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항상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지고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사관, 그러니까 성경적 역사관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의 범죄로 마치 이분법화 된 듯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역사는 하나님에게서 떠난 죄인된 악한 인간 역사의 기록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세상 나라'란 개념으로만 말하며, 이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역사의 관점에서 다룹니다. 이 역사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해 나가시는 일들이 이야기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의를 입혀주신 자들에 대한 역사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에 대한 기록이 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역사의 전개가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역사의 전개가 있기에 마치 이분법화 된, 그래서 이원론적인 역사관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구분을 세상 역사와 구원 역사, 또는 일반사와 구원사(구속사)란 용어로 사용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두 역사는 서로 단절된 별개의 역사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저들 세상에 살아가는 역사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러나 말입니다. 일반사와 구원사란 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사실 역사의 전체적이고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관계에 의해서 하나의 역사성을 띠고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타락한 인간 역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가지신 영원한 작정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구속의 계획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 4-5절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이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지을 사람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이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일을 정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친히 보시기에 한점 흠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대신 죽게 하여 구속 곧 죄 사하실 것을 작정하셨으며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 계획을 실천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에는 타락한 그들이 하나님이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렇게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방식의 역사가 전개되지만 이 역사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통해서 되어질 일의 역사로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서 이루신 구속사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행하여 가십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세상 역사, 또는 일반사란 하나님의 구속사의 내용 안에서 있는 것이며, 세상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구속사가 세상 역사에 개입하여 들어와 펼쳐질 때는 항상 묵시적(默示的)인 성격을 띠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초자연적이요 초월적으로 일반 역사를 무시하고 깨뜨려서 발휘가 되어 들어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적(기적, 표적)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여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고 그곳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신 것이 그러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로 자기와 하나된 몸인 교회를 이루게 하신 것이나 이 모두에서 있는 갖가지 이적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세상 나라를 멸하시고 악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에 의로운 자들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시키실 것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제, 님이 궁금해 하는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전제를 깔아 놓고는 "그렇다면, 이 세상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간섭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속역사에 있어서 이 세상역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지요.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님이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역사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 세상 역사에 대해서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있을 것이란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기에 님은 여기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떻게 간섭하고 계시는가?'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님이여,

세상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저들의 악함에 의해서 악한대로 사단에 매인 자로 이끌려 다니게 그대로 놔두는 것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죄 아래서 그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 비참함과 그에 따른 불행이 어떠한 것인지는 죄값이 사망이 말해줄 것입니다. 여자가 자식을 낳아 기뻐하며 행복해 하여도 그 해산하는 고통에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저주받은 인간의 불행을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노동하여 먹을 것을 얻은 것에 기쁨을 가지며 즐거워하여도 그 수고하여 흘리는 땀에서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저주받은 인간의 불행을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뱀이 배로 기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지음을 받은 동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모든 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포인 한에는 복이 아니고 저주받은 불행입니다. 그러면 말이죠. 하나님을 떠나 있어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갖게 되는 모든 모습은 행복이란 없습니다. 모두다 불행인 것이죠.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이적 행하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친 그 모두에서 인간이 죄값으로 처한 불행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임함으로 되어지는 일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동안 사단이 지배하던 나라의 쫓겨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어 알게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은 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시며 움직이십니다.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을 홍해를 갈라 마른 땅 걷듯이 하게 하셨으며, 하나님만이 생명이 되시는 참된 신으로서 이스라엘의 주(主)가 되심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 곳곳에 나타내셨는데 아모리의 여러 지역을 점령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모리 연합군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하셨는데 그날에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은 해와 달을 하루종일 멈추게도 하시는 일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도우심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은 해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해를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과 공전하여 돌고 있는 것을 멈추게 한 것이며 또한 해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달을 멈추게 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님은 지구와 달을 다스려 멈추게 하였는데 지구만 보더라도 사실 어떻게 지구가 멈출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즉시 지구에 발을 딛고 있던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온 우주로 빨려 들어가 일시에 흩어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해를 중심으로 해서 돌고 있는 지구를 멈추게 하였으며 또한 천지만물을 안전히 보존하시면서 해가 하루종일 멈추어 떠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에게는 승리를 거두게 하셨고 아모리 연합군은 패전하과 왕들은 사로잡히게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거친 바람이 불며 풍랑이는 바다의 물 위를 걸으시며 그 바다를 잠잠하게도 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 자신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이나 되었는데 다시 살아남을 받으며 또한 이 세상에서 하늘의 세계로 올리움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시며 움직이시는 것에서 있는 것인데 하나같이 이 세상 역사의 파괴로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와 하나님의 구속사를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 나라에 개입하시며 이 세상 역사에 간섭하시는가? 하나님의 주권이 이 세상 역사에 어떻게 그 영향을 끼치는가?에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악함에 있는 그대로 저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놔두십니다. 죄의 정욕에 이끌려서 사단이 원하는 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졸지에 황폐케 되는 것이 저들의 인생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전개하여 가시는 것에서 이 세상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을 하실 때 세상 나라를 사용하여서 하기도 하시며 세상 역사를 파괴하여서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나타내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계시적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 모습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에 구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방법을 이끌어내어 재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의 방법을 사용하여서 같은 이적의 능력을 이끌어 내려고 하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갖는 의미와 목적을 다 이루어서 완성된 모습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주신 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말미인 22장 10-15절에서는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여 간섭하여 가시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통해서 되어지는가 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에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 세상 나라에 행사됩니다. 저들을 죄의 악함에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개되어 가면서 사람들이 죄인됨을 나타내는 것이 세상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 역사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항상 침노하는 모습을 띱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사단이 쫓겨나고 예수님께서 그를 다스리시는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의해서 또한 침노 당하는 모습을 띱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말입니다. 온 세상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 나라의 역사를 다스리고 움직여서 그리스도만이 오직 우리의 주가 되심을 알게 하여 나가시는지를 보면서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사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아는 자의 자세입니다.

이상으로 이 세상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간섭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이 세상 역사와 구속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관계성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역사관에 대한 이해이기에 설명이 쉽게 와 닿기는 쉽지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만 진지하게 잘 음미하면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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