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병은님.
님께서는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복음주의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시며, 이를 그 차이점과 공통점 의해서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을 '개혁교회'라고 말합니다(성도는 이런 말을 잘 쓰지 않고 그냥 교회라고 말하며, 또 개혁교회를 교회를 제도적으로나 기타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에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개혁교회는 교회가 어떤 성격 속에 있는 것인지를 규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개혁교회'는 '개혁주의 교회', 곧 '개혁주의 신학 사상과 신앙에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를 '개혁신교', 또는 '개혁파 교회'라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명칭으로 교회가 불려지고 있는 것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교회의 개혁 사상과 그에 따른 운동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갖는 신학적 이해의 태도나 경향을 이르는 말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다른 차이를 갖는 것에서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성립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입장에서 신학과 교리를 따르는 자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에서도 개혁주의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교회사에서 역사적 개혁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동일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이며, 따라서 같이 개혁교회라고 부를지라도 사실은 이 두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개혁교회의 포괄적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교회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개혁주의'는 개혁교회가 지닌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여 알고 그 견해 속에서 정신을 잇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서는 소위 '개신교'(개신교란 개혁신교의 준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신교는 본래의 개혁신교와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고 있으며, 통상적으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의 교단 신학을 가진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도 개혁교회 즉 개혁주의 교회로 부르고 있습니다(그러나 필자는 이것으로서의 개신교는 개혁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을 시점으로 해서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은 크게 루터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어져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칼빈의 신학이 영향이 지대합니다만, 사실 칼빈의 신학은 루터의 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루터의 신학을 말하는 것에서 칼빈의 신학이 말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루터 전으로 올라가면 어거스틴의 신학도 있고.........
칼빈의 신학은 이 분들의 신학이 단초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은 '칼빈주의'로 불려지면서 개혁주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칼빈의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을 말하지 않고서는 과연 개혁주의를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세한 일부분의 것이 아닌 총체적인 면에서 칼빈의 신학이 끼친 사상의 영향은 참으로 지대합니다.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16세기 이후로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전 시대에 걸쳐서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사상 체계로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그의 신학 사상은 그가 쓴 기독교강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와 사상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성경의 권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과 주권적 구원 사역, 바른 교회관 등을 내용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신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비롯하여서 칼빈의 설교와 신구약 주석 등 방대한 저술에서 나오는 신학 사상은 칼빈이 했던 것과 같이 개혁교회를 이루어 나가려는 개혁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신학자와 목회자,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칼빈주의자', 그리고 '개혁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개혁주가 갖는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은 곧 칼빈주의로 인식될 만큼 분명 그 영향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개혁주의는 칼빈의 신학 사상을 비롯하여서 그 이전, 또는 그 이후에 존재한 교회가 분명한 신학으로 세워오고 그 사상과 정신의 영향 속에 있게 해 온 모든 개혁주의자들의 사상과 그 정신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에 서 있는 사람은 칼빈의 신학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라 각 시대에서 바른 신학의 계승과 함께 이를 발전적으로 가져나간 모든 개혁주의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칼빈이라는 개혁주의자가 있고, 또 아무개라는 개혁주의자가 있고, 그리고 우리, 또한 나라는 개혁주의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별하고 이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어상 그러한 구별과 구분이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개혁주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복음주의와 구별과 구분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주의자는 곧 복음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개혁주의는 곧 복음주의입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개혁주가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그 중요한 신학 사상적 체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복음주의는 개혁교회가 가져온 '신학적 관점', 또는 '신학적 이해'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가져온 자들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에 따른 것입니다. 세속주의에 의한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있기까지 교회는 이들로부터 교회가 지녀온 신학과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이를 '보수신학', '정통신학' 이란 이름으로 가져왔는데, 이 신학을 일명 '복음주의'라 일컫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복음주의는 '성경적 관점', 또는 '성경적 이해'에 의하여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며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며 설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중요 표지이기도 합니다. 개그맨이 하는 말이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하던데, '교회가 교회다워야 교회이지'하는 말로 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순전함으로 전하는가에서 그 교회다움을 말하게 됩니다. 성경을 주께서 교회에 맡기신 대로 올바르게 전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본의(本意)를 충실히 드러내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의 관점에서 설교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설교는 말이죠.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공허한 이야기거리로 전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여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을 좇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을 좇는 것이 되게 해서는 결코 성경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개혁주의는 곧 복음주의입니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자'가 곧 '복음주의자'가 아닐 수 있으며, 또한 복음주의자가 개혁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를 강조하고 있다.) 신학적 관점과 그 이해에 있어서는 개혁주의에 서 있는데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복음주의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서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와 가르침을 하는데, 그가 가지고서 말하는 신학은 개혁주의자들의 신학 사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견해를 달리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교회의 신학과 신앙은 개혁주의에 서 있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복음주의에 서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칩니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에 대한 이해를 잘 가져나가실 수 있기를
주께 구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님께서는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복음주의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시며, 이를 그 차이점과 공통점 의해서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을 '개혁교회'라고 말합니다(성도는 이런 말을 잘 쓰지 않고 그냥 교회라고 말하며, 또 개혁교회를 교회를 제도적으로나 기타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에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개혁교회는 교회가 어떤 성격 속에 있는 것인지를 규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개혁교회'는 '개혁주의 교회', 곧 '개혁주의 신학 사상과 신앙에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를 '개혁신교', 또는 '개혁파 교회'라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명칭으로 교회가 불려지고 있는 것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교회의 개혁 사상과 그에 따른 운동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갖는 신학적 이해의 태도나 경향을 이르는 말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다른 차이를 갖는 것에서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성립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입장에서 신학과 교리를 따르는 자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에서도 개혁주의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교회사에서 역사적 개혁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동일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이며, 따라서 같이 개혁교회라고 부를지라도 사실은 이 두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개혁교회의 포괄적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교회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개혁주의'는 개혁교회가 지닌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여 알고 그 견해 속에서 정신을 잇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서는 소위 '개신교'(개신교란 개혁신교의 준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신교는 본래의 개혁신교와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고 있으며, 통상적으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의 교단 신학을 가진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도 개혁교회 즉 개혁주의 교회로 부르고 있습니다(그러나 필자는 이것으로서의 개신교는 개혁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을 시점으로 해서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은 크게 루터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어져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칼빈의 신학이 영향이 지대합니다만, 사실 칼빈의 신학은 루터의 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루터의 신학을 말하는 것에서 칼빈의 신학이 말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루터 전으로 올라가면 어거스틴의 신학도 있고.........
칼빈의 신학은 이 분들의 신학이 단초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은 '칼빈주의'로 불려지면서 개혁주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칼빈의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을 말하지 않고서는 과연 개혁주의를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세한 일부분의 것이 아닌 총체적인 면에서 칼빈의 신학이 끼친 사상의 영향은 참으로 지대합니다.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16세기 이후로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전 시대에 걸쳐서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사상 체계로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그의 신학 사상은 그가 쓴 기독교강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와 사상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성경의 권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과 주권적 구원 사역, 바른 교회관 등을 내용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신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비롯하여서 칼빈의 설교와 신구약 주석 등 방대한 저술에서 나오는 신학 사상은 칼빈이 했던 것과 같이 개혁교회를 이루어 나가려는 개혁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신학자와 목회자,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칼빈주의자', 그리고 '개혁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개혁주가 갖는 신학 사상과 그 신앙은 곧 칼빈주의로 인식될 만큼 분명 그 영향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개혁주의는 칼빈의 신학 사상을 비롯하여서 그 이전, 또는 그 이후에 존재한 교회가 분명한 신학으로 세워오고 그 사상과 정신의 영향 속에 있게 해 온 모든 개혁주의자들의 사상과 그 정신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에 서 있는 사람은 칼빈의 신학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라 각 시대에서 바른 신학의 계승과 함께 이를 발전적으로 가져나간 모든 개혁주의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칼빈이라는 개혁주의자가 있고, 또 아무개라는 개혁주의자가 있고, 그리고 우리, 또한 나라는 개혁주의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별하고 이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어상 그러한 구별과 구분이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개혁주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복음주의와 구별과 구분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주의자는 곧 복음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개혁주의는 곧 복음주의입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개혁주가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그 중요한 신학 사상적 체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복음주의는 개혁교회가 가져온 '신학적 관점', 또는 '신학적 이해'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가져온 자들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에 따른 것입니다. 세속주의에 의한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있기까지 교회는 이들로부터 교회가 지녀온 신학과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이를 '보수신학', '정통신학' 이란 이름으로 가져왔는데, 이 신학을 일명 '복음주의'라 일컫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복음주의는 '성경적 관점', 또는 '성경적 이해'에 의하여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며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며 설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중요 표지이기도 합니다. 개그맨이 하는 말이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하던데, '교회가 교회다워야 교회이지'하는 말로 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순전함으로 전하는가에서 그 교회다움을 말하게 됩니다. 성경을 주께서 교회에 맡기신 대로 올바르게 전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본의(本意)를 충실히 드러내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의 관점에서 설교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설교는 말이죠.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공허한 이야기거리로 전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여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을 좇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을 좇는 것이 되게 해서는 결코 성경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개혁주의는 곧 복음주의입니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자'가 곧 '복음주의자'가 아닐 수 있으며, 또한 복음주의자가 개혁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를 강조하고 있다.) 신학적 관점과 그 이해에 있어서는 개혁주의에 서 있는데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복음주의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서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와 가르침을 하는데, 그가 가지고서 말하는 신학은 개혁주의자들의 신학 사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견해를 달리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교회의 신학과 신앙은 개혁주의에 서 있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복음주의에 서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칩니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에 대한 이해를 잘 가져나가실 수 있기를
주께 구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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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데 작성시간 06.09.20 최병은님..요즘 가마솥이 끓네요.보기 좋습니다. 덕분에 저도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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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병은 작성시간 06.09.20 로데님은 제가 아는 분이죠? (너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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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병은 작성시간 06.09.20 이천우 목사님~ '교회사'와 '교회론(관)' 그리고 복음에 대한 자료나 정보를 부탁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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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천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9.21 교회사는 기독교서점에서 구입해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 종류의 교회사가 있는데 평이한 것은 김의환이 쓴 교회사가 있습니다. 좀 두껍습니다만, 읽기에는 쉬울 것입니다. 보다 자세하고 전문적인 교회사는 이 책을 먼저 읽은 다음에 선택하여서 공부하시지요. 교회론은 이곳 까페 단계별학습에 가면 20강 정도가 올려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론을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시려면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4권을 읽으시고, 조직신학자들이 쓴 교회론들도 있습니다. 루이스 벌콥, 안토니 A. 후크마, 밀라드. J 에릭슨, 존 머레이, 조석만 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