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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초대교회 때의 말씀 사역자인 목사의 양성과 그 사역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7.01.26|조회수198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에바다님

님이 질문하신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답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또한 이렇게 답글을 통해서 님을 찾아가 대면하고 대화하는 듯하여 기쁩니다.

님은 (1)초대교회 때에는 신학교가 없었는데 어떻게 어떤 자를 목자(목사)를 세웠나요? (2)또 그들이 맡았던 일이 지금의 목사님의 사역과 비슷한가요? 라고 두 가지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해 드립니다.

첫째, 초대교회 때에는 신학교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리고 어떤 자를 목자(목사)를 세웠는가? 를 봅니다. 초대교회 때는 님이 알고 있는 대로 신학교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사도로 삼으신 제자들을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복음 증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에서 사도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맡았습니다. 이것이 사도가 주께로부터 받은 교회를 섬기는 은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도에 의해서 복음의 진리를 받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주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견고하게 선 제자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의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디모데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때 그가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의 직분을 주께로부터 받은 사실을 받아들임과 그 확증으로서, 그리고 그를 사역자로 세우시는 주께 은혜를 구하는 것으로서 '장로의 회'에서 안수하여 임직함으로써 세웠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목사를 세울 때 그가 속한 노회에서 안수식을 갖고 세우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신학교란 것이 없었습니다만, 지금의 신학교가 하는 '제자들을 가르쳐 또한 제자를 삼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명령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님의 제자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제자를 삼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맡아 봉사하여 섬기는 사역을 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일을 증거하게 하기 위하여 사역자(직분자)를 세워나가시는 일을 교회가 그를 임직하는 방식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의 임직은 그리스도께서 사역자를 세워 세상에 자신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을 온 성도에게 공적으로 확인시키시고 이를 확증하며, 주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을 그가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주께서 함께 하실 것을 구함으로써 온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라고 하는 제도가 등장한 것은 사도 시대의 교회라고 불리우는 초대교회 이후입니다. 교회사에서 교부신학(敎父神學, 또는 敎父哲學; Patristic Theology or Patristic philosophy)이 발달한 교부 시대를 거처 스콜라신학(Schola Theology or Schola philosophy)이 발달한 중세시대에 까지는 교회와 수도원과 이 수도원에 부속된 학교로의 점진적 발전 과정에 의해서 목사<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의 기능이 있었으며, 또한 이를 모태로 해서 법학, 신학, 철학의 전문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이 등장하였으며, 이 당시의 학교는 신학을 전공으로 하여 공부하는 신학교의 성격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개신교(개혁교회)에서 보는 개혁주의 신학과 그 사상을 공부하는 신학교는 종교개혁 시대에서 대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제네바에서 그가 품은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하여서 시민의 교육에 많은 힘을 쓰게 되었는데, 그는 학교(신학교;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고 문과와 신학과를 설치하여 베자(Beza)를 학장으로 임명하고 자신도 강의를 맡았습니다. 칼빈이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대학부와 예비부를 합하여 학생이 무려 1,5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유력한 목사들은 이 학교에서 양성되었습니다. 칼빈으로부터 신학을 배우기 위해서 유럽의 각국으로 부터 찾아와서 배우는 사람이 많았는데 5년 간에 1,300명을 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발생을 가져온 종교개혁자인 죤 낙스(John Knox)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배출된 목사는 유럽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칼빈의 신학 사상은 스위스에 국한되지 않고 프랑스, 스코틀랜드, 영국, 화란, 독일로 확산되었으며, 미국과 우리나라에까지 그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회 경우 칼빈주의가 전반적인 신학 사상의 추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모든 나라에서 보는 공통입니다.

이상에서 보면, 님은 (1)초대교회때에는 신학교가 없었는데 어떻게 어떤 자를 목자(목사)를 세웠나요?라고 질문하였는데, 초대교회 때에는 신학교가 없었습니다만, 사도가 활동하던 이 시대에는 교회에서의 사도의 가르침이 신학교가 해온 교수(敎授)의 역할이었으며, 이 가르침을 받은 자들 중에서 믿음과 성령과 권능이 충만한 사람, 곧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여 안수하여 임직케 함으로써 주님이 그에게 맡기신 복음을 전할 자로 삼으셨습니다. 사실 이 시대에서의 목사(牧師)의 직임은 교사(敎師;목사의 일을 돕는 보조자로서의 교사가 아닌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신학교수)의 직임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학교란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생겨지고 여기에 종사하는 교수의 기능이 목사의 직임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목사의 직임과 교수의 직임이 구분이 되고 구별이 되면서 목사를 양성하는 곳이 신학교인 특성을 띱니다만, 사실 신학교는 교회로부터 분리가 아닌 교회에 부속된 기관의 특성을 갖습니다.

목사는 그 양성을 교회에서 받습니다. 비록 오늘날에서는 신학교가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인식됩니다만, 사실 이는 교회로부터 목사의 양성을 신학교가 위탁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네 교회의 실정에서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고자 하는 성도 개인이 신학교, 또는 신학대학교에 입학을 지원하고 공부하여서 졸업 후 자신이 목사후보생으로 가입한 노회를 통해서 목사 임직을 받아 목사로 청빙한 교회에서 시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위탁을 받아 신학교가 학생을 받아 양성하는 교회와 신학교와의 관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관점에서 목사의 양성은 교회와 신학교 모두에게 다같이 있으며, 그 일차적인 책임은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목사의 직무를 필요로 하여 목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를 신학교에 위탁하여 교회가 하여야 할 일을 신학교가 대신 맡아서 가르쳐 양성한 학생을 교회가 목사로 세워 그 직무를 수행할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신학교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신학교란 것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신학교가 해오는 신학<신지식>의 가르침, 곧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도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초대교회 시대에서는 신학교라고 하는 학문적 교육 기관이 교회에 부속되지 않았다는 것일 뿐이지 곧 신학교의 역할과 그 기능을 교회는 포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학교가 교회 내에 있는가? 라거나 교회 밖에 있는가? 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사에서 신학교라는 것은 교회가 신학교였으며,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신학교가 교회에 부속되어 있었으며, 또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신학교가 교회 밖에 독립된 기관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도 신학교는 교회로부터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를 하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 얻은 자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28:19-20). 여기서 복음 증거의 사역을 하는 목사는 신학교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는 다만 교회로부터 위탁받은 학생을 가르쳐 목사 후보생으로 양성할 뿐입니다. 신학교의 교육을 통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할 자로 양성된 목사후보생을 목사로 세우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시는 교회가 합니다. 즉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과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속 사역인 십자가의 복음에 관하여 다 말해서 봉사할 사역자를 세우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인 "또 그들이 맡았던 일이 지금의 목사님의 사역과 비슷한가요?"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님은 "또 그들이 맡았던 일이 지금의 목사님의 사역과 비슷한가요?"라고 질문했는데, 비슷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맡은 목사로 세움을 받은 자가 한 바로 그 일을 지금의 목사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세운 목사의 직무나 오늘날의 시대에서 세우는 목사의 직무나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동일한 직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봉사하는 자가 목사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목사의 직무에서 그 기능이 다양화되고 다종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우려할 일이며 잘못된 일입니다. 가령 음악목사 라거나, 전도목사 라거나, 행정목사 라거나, 교육목사 라거나, 구역목사 라거나 심방목사 라거나 해서 마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 외에도 다른 어떤 일들이 목사의 직무인 것처럼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전파 외에 어느 특정한 전문 분야를 부분별로 맡은, 그러니까 전문목사로 나누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무를 이렇게 다양화시키고 다종화로 만드는 것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이 시대에서 시대적 상황과 그 환경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다분히 인본주의적 발상에서 갖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만약에 교회에서 부득불 그 일을 필요로 한다고 하면, 그래서 꼭 해야 한다고 하면,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일에서 봉사의 일을 하는 목사가 아닌, 성도 중에서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각각 자신이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함으로써 교회를 섬기는 일에 돕는 자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목사로 하여금 설교(說敎)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로서 활동하게 하여서 그런 것으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 가는 사람의 교회가 갖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주께서 이해를 도우실 것과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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