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병은님.
님은 고린도후서 3장 1-10절을 읽으셨습니다.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님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6-10절 부분에 있는 < >안의 직분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각각 말해지고 있으면서 그 영광을 말씀하시고 있기에 이 직분이 어떠한 직분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어떠한 영광을 말하는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질문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앞서의 1절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전서와 함께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러니까 고린도교회에 당시 거짓 선생들로 인하여서 그들 사이에 생긴 심각한 신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권면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한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을 언급하기를, 자기 선전을 길게 써서 늘어놓는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자신은 누구의 천거서(추천장)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자신에게서 고린도교회가 곧 천거서이며, 그리고 그 고린도교회는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이 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과 달리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하여 자신들이 맡은 주의 일을 맡고 있으며, 따라서 그 일을 수행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새언약을 전할 수 있도록 사도의 직분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하면서, 이런 까닭에 자신은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의문'이란 구약 시대에 돌에 써서 주신 모세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여 죽음의 심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의문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약 시대에 주어진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정죄를 받고 죄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심판으로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영'은 신약 시대가 열어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으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영은 살리는 일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은 신약 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지금 신약 시대의 일군인 사도인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일군인 자가 새언약을 전할 때에 이를 듣게 하여 살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바울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돌에 쓴 죽음을 가져다 주는 율법도 그것을 처음 받았을 때의 모세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는 광채가 있어 사람들이 감히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모세의 얼굴도 잠시 동안이나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돌에 쓴 죽음을 가져다주는 율법의 사역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주는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구약 시대라고 하는 한시적이나마 영광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는 말씀은 비록 구약 시대라고 하는 한시적이나마 잠시 동안의 의문의 직분도 영광되었었는데, 이제 성령님께서 새언약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하시는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는 더욱더 찬란한 영광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의문의 직분이 갖는 영광과 영의 직분이 갖는 영광을 대조하여 말함으로써 지금 자신이 맡고 있는 새언약인 복음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9-10절에서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음을 가져다 주는 율법도 영광스러웠다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인도하는 일인 '의인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스럽다면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 빛나던 영광은 새언약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설명에서 사도 바울은 새언약인 신약 시대에 주어진 복음을 맡아 이를 전하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영광된 것인지를 구약 시대에 주신 모세의 율법과의 대조를 통해서 말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상으로 고린도후서 3장 1-10절에서의 의문<정죄>의 직분과 그 영광, 영의 직분과 그 영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를 말하는 해석적 의미를 설명드림으로써 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글이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님은 고린도후서 3장 1-10절을 읽으셨습니다.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님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6-10절 부분에 있는 < >안의 직분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각각 말해지고 있으면서 그 영광을 말씀하시고 있기에 이 직분이 어떠한 직분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어떠한 영광을 말하는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질문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앞서의 1절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전서와 함께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러니까 고린도교회에 당시 거짓 선생들로 인하여서 그들 사이에 생긴 심각한 신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권면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한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을 언급하기를, 자기 선전을 길게 써서 늘어놓는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자신은 누구의 천거서(추천장)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자신에게서 고린도교회가 곧 천거서이며, 그리고 그 고린도교회는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이 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과 달리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하여 자신들이 맡은 주의 일을 맡고 있으며, 따라서 그 일을 수행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새언약을 전할 수 있도록 사도의 직분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하면서, 이런 까닭에 자신은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의문'이란 구약 시대에 돌에 써서 주신 모세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여 죽음의 심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의문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약 시대에 주어진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정죄를 받고 죄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심판으로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영'은 신약 시대가 열어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으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영은 살리는 일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은 신약 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지금 신약 시대의 일군인 사도인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일군인 자가 새언약을 전할 때에 이를 듣게 하여 살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바울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돌에 쓴 죽음을 가져다 주는 율법도 그것을 처음 받았을 때의 모세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는 광채가 있어 사람들이 감히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모세의 얼굴도 잠시 동안이나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돌에 쓴 죽음을 가져다주는 율법의 사역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주는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구약 시대라고 하는 한시적이나마 영광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는 말씀은 비록 구약 시대라고 하는 한시적이나마 잠시 동안의 의문의 직분도 영광되었었는데, 이제 성령님께서 새언약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하시는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는 더욱더 찬란한 영광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의문의 직분이 갖는 영광과 영의 직분이 갖는 영광을 대조하여 말함으로써 지금 자신이 맡고 있는 새언약인 복음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9-10절에서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음을 가져다 주는 율법도 영광스러웠다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인도하는 일인 '의인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스럽다면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 빛나던 영광은 새언약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설명에서 사도 바울은 새언약인 신약 시대에 주어진 복음을 맡아 이를 전하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영광된 것인지를 구약 시대에 주신 모세의 율법과의 대조를 통해서 말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상으로 고린도후서 3장 1-10절에서의 의문<정죄>의 직분과 그 영광, 영의 직분과 그 영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를 말하는 해석적 의미를 설명드림으로써 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글이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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