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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삶'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7.09.07|조회수452 목록 댓글 10
안녕하세요 ‘잘 들립니다’님

복음이란
들어도 듣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며
그 마음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고 강팎한 까닭이죠.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보내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복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님의 닉네임이
'잘 들립니다' 인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기쁜지요.

님이 이러한 닉네임을 쓸 때는
주께서 주신 복음을 듣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잘 들리는 그 복음을
더욱 가까이하시며
배움에 힘써
주께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시길 바랍니다.

님은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삶에 대하여
궁금해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님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님이 기다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주의 공중 재림이었으며,
이로 인해서 님은 ‘들림’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님은
이 기다림에 대한 아주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님은 요즘 교회를 가면 어디를 가더라도 예수님 오실 때가 다 되었다는, 그래서 깨어 기도하라는 설교는 듣기 힘들고 대신에 축복 또는 교회 성장이라든가 문화 강좌 및 세미나 찬양 사역과 행사 친교와 교제, 봉사 등으로만 되어 있는 것에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친한 분과의 사귐에서 그 친구는 전도이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 믿게 할 수 있을까?”에 있으나, 님의 관심은 항상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님은 “예수님은 언제 오실까?“하며 구름을 보고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아마도 요한계시록 1장 7절의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의 말씀에 대한 소망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님의 질문을 대하면서 님이 궁금해 하는 핵심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기에 여기에 맞춰서 답변을 드리고자 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신학적 이해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속주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성으로 계시되고 있으나,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십니다(요일5:20).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는 고난을 받으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신 것으로서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다는 것은 죽음과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모시고 섬기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곧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생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것에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신앙)을 생활해 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려고 하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고, 기도를 하려고 하고, 헌금을 하려고 하고, 찬송을 하려고 하고, 봉사를 하려고 하고, 전도를 하려고 하고..... 이렇게 이런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찬송을 하는 것, 헌금을 하는 것, 전도를 하는 것 등등을 믿음으로 여기며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것을 믿음 생활이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 모두에 대단한 열심을 보일지라도, 그 모두는 바리새인의 의를 이루는 것에 불과하며, 결코 이것은 하나님과 그 나라의 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영생, 구원, 천국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믿음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을 행하는 것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생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고, 천국을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7-20). 바리새인에게서 보는 그런 의로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의가 되어 있는 한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의는 예수님이시며,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들어와 그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의를 이룸으로써 그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의 믿음의 삶이란 기독교로 말해지는 종교의 행위를 갖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오해해선 안 됩니다. 이 말을 종교의 행위를 가져봐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서 어떤 종교의 행위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는 말의 취지는 그 모든 행위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설사 그 모두를 금지해도 자기 임의로라도 해나가는 존재입니다. 또한 인간은 설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서 종교의 행위를 선히 잘 가져나갔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기 의’를 이룰지언정 ‘천국의 의’는 이루지 못합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한, 그래서 천국의 의 속에 들어오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의 행위를 가져야 한다거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에 논점이 있지 않습니다. 말하고자 한 것은, 그 모든 것으로 자기 의를 이룰지라도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의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의 믿음의 삶이란 무엇인지는 바울의 말에서 보게 됩니다.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말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또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필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그것은 그가 먹고 마시며 또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에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에,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로 계신 것에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님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님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신앙의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에 있어야 하긴 하지만, 이것이 님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저의 말에 오해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9-10절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믿는 자들에게서 참으로 중요한 소망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신자들은 바울과 그 일행이 주의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전했을 때의 일을 회상하면, 그들은 바울 일행을 아주 열렬히 환영했으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겼으며, 그러한 믿음에 있게 된 것을 오히려 사도들에게 전해줄 정도였으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다시 오실 날을 열망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그 기다림으로 있는 것은 그분을 믿는 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러니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의 소망 속에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그럼에도 그것이 믿음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땅 속에 큰 뿌리를 두고 있는 나무 둥치가 있으며, 이 나무 둥치에서 많은 가지가 나 무성한 잎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나무 둥치와 여기에서 뻗어져 나온 많은 가지는 사실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 가지는 다 같이 나무 둥치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믿는 믿음은 나무 둥치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죠. 이 나무 둥치와 결합되어 있어 그의 나무 가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에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말이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통해서 전하시는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모시고 섬기는 것에서 우리의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믿음은 그가 일상에서 갖는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데, 님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다림 속에 있으며, 님의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예수님의 전함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하며, 또한 이런 저런 일도 있는 있게 되는데, 그 모든 것에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이심을 드러내며, 그분을 바라보는 것에서 믿음이 말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무 둥치인 예수님에게 결합되어 있는 그의 가지인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님이여,

님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소망에 있는 것은 참으로 존귀하며, 이는 아름답습니다. 그러한 님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님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간에 자기가 처한 그 현실 속에서 님이 그렇게 기다리는 예수님을 주로 섬겨야 합니다. 님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교회에서 이 설교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영생으로 님의 주이신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님은 님의 친구 분과 참으로 친하며, 서로 자신이 주께 가지고 있는 믿음을 서로 이야기 할 만큼 가깝습니다. 그런 님의 친구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전하여 그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존귀하며, 그 또한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굳이 이 사실을 주께로부터 위임받은 계대적 명령으로, 그래서 그에 따른 사명감과 연결시키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서 그의 믿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말입니다. 님의 친구 분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간에 자기가 처한 그 현실 속에서 그가 그렇게 말하여 전하고자 한 예수님을 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소망 속에 있든, 또는 예수님을 전하여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려는 전도의 열심 속에 있든, 또는 다른 여타의 삶 속에 있든, 그러한 님들의 삶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활을 하는 것에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님들의 삶은 말이죠. 각자가 각각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처지에서 자신이 믿고 섬기는 예수님이 주로 계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님(들)이 어떤 상태로 있으며,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을 하면서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든지 간에 지금 자신이 처하고 있는 형편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는 고난을 받으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또한 님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그 권능의 행사를 바라보는 믿음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님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에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이 님에게 생명의 주로 계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말을 바꾸면, 예수님이 님에게서 생명의 주로 계신가 하는 문제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대단한 종교적인 일을 해내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건, 또는 예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전도를 하건, 또는 이런 저런 교회의 일을 하건, 그 모두가 가져지는 삶이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서 싫어 버린바 되는, 그래서 미움을 받고, 그래서 거부되고, 그래서 배척되고 하는 그 처지에서 당당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며, 영생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주가 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진자는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여 말하였습니다.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8). 여기서 ‘없을지라도’라는 강한 부정은 ‘있을지라도’란 강한 긍정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사용은 사실 그 둘 다의 어떤 형편 속에서도 그것이 기쁨에 어떤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기쁨은 ‘가 없을지라도’이거나 ‘가 있을지라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이신 사실에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라고 말하였습니다.

님이여,

님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간에, 그래서 어떠한 형편에서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 믿음에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망 속에서 님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하늘의 구름만 봐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에 벅차 있습니까?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일까? 하면서 그 삶을 찾고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여기에 합당한 어떤 일이 주어졌다고 생각되면 “그래,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하여 마치 그 일을 하는 것에 자기 믿음이 있는 것처럼 알고, 그래서 그 일을 하는 것에서 마치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 나가는 것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님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지금 님이 있는 처지에서 그 심정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게 하여 그 기다림 속에 있게 하신 주(主)를 바라보는 믿음에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에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구속의 피와 생명의 부활의 권능을 입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님에게 원하시는 믿음이란 단지 이것뿐입니다. 주님은 이것 외에 다른 그 어떤 것으로 님에게 믿음을 제시하시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얼마나 고귀하며 아름다운지요!.

그러한 님에게서 주께서 주신 믿음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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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잘 들립니다 | 작성시간 07.09.09 [동문서답을 용서바랍니다.] 목사님 .!!..~~ 겨자씨 (있는지 없는지 도통확인 불가) 보다 훨씬 작은 진짜진짜 믿음을 간직하고 지켜 나갈수 있다면 ( 진짜믿음= 불순물없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성경에서 말하는= 주만 바라보는= ) 좋겠습니다. 이제 믿음이 뭔지 감이 잡힙니다. 그런데요. 믿음을 원하시는 주님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놓을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뭔가의 행위 또는 액션을 취해야지 속이 후련하고 당당해진다는것입니다.그렇다고 안할수도 없습니다. 안하면 휩쓸려 내려갑니다. 세상의 흐름에 ....
  • 작성자잘 들립니다 | 작성시간 07.09.09 내일은 즐거운 종교 행사가 있는 주일입니다.( 깊은 표현입니다.) 별로 교회에서 하는일 없지만 ... 두발 땅에 딛고 있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는 ( 제각각 진짜 믿음임을 주장하는믿음들의 ) 박치기 충돌사고를 내며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무도 보고 숲도 본다'는 조금 희미하게 보이는것이 있습니다. 목사님 글 읽어면서솔직히 " 우하~~진짜 섬세하고 차갑게 쓰신다...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어디 뜨건뜨건 한데 없나하고 찾아다니는편이거든요. 열대 물고기가 갑자기 만난 냉대기후에 적응못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잘 들립니다 | 작성시간 07.09.09 목사님~!! 저는 답변글을 힘차게 밀어주는글이될것이다 !!라고 오해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본질적인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알수도 없고 가늠할수 없는 내안에서 [마음속] 형성되어지는 믿음을 말해 주고 계십니다. 믿음이 뭔지를 먼지 알아야 겠습니다. 나무를 자세히 봐야 되고 걸어다니며 숲모양만 봐야 되고... 시간이 좀 걸릴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힘차게 전진 할랍니다.또한 자세히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ㅋㅋ 목사님께 뭔말을 못하겠습니다.ㅋㅋ 우하 ~~ 와장창 (뭐 깨지는소리 안들립니까? ㅋㅋ ㅠㅠ 감사합니다.)할렐루야..~ 아멘..
  • 작성자잘 들립니다 | 작성시간 07.09.19 시간이 흐를수록 ~ 변화가 찾아 옵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최병은 | 작성시간 07.09.20 들을 귀 있는 자와 보는 눈이 있는 자가 복되다 생각합니다. 또한 잘 생각하고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가 진정 복받은자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식만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자가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본 카페를 통하여 많은것을 저도 배우네요~ 성령을 좇아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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