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질문과답

Re:예정론과 관련하여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긴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7.11.01|조회수1,641 목록 댓글 3
안녕하세요. hannah님

주 안에서
평안하시며
잘 지내시는지요?.

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래 참음으로 기다려 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님께서는 가롯 유다에 관하여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과 관련하여 이것이 예정론과 어떤 연계 속에서 있는 것인지를 궁금해 한 것입니다.

과연, 예정론과 관련하여 가룟 유다의 배반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사도로 삼으신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주로 섬기는 예수님을 배반한 사실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일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중에 어떻게 하다 보니 그의 인생이 꼬여서 그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그렇게 해 나가게 된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준비되어온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기까지에 있어서 있었던 일을 볼까요?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에서 마지막 유월절이 될 절기를 이틀 앞두고 이미 여러 차례 예고하셨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다시 예고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신 후 자신이 한 예고에 따라서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보낸 많은 무리들에게 잡혀서 의회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은 후 다시 로마 정부에 넘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예수님의 예고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꾀를 짜내고 있는 시점에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탐심에 이끌려(참조. 요12:6)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줄 것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댓가로 돈을 건네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돈은 단돈 은전 서른 닙으로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서는 불과 30,000원에 불과한 적은 액수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렇게 예수님을 팔아 넘겨주려는 마음을 갖고 이를 실행하기 전에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직접 가르침을 받았었습니다. 그런 그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돌변하여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동안 스승으로 받들었던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요? 우리는 이 일을 단지 인간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의 하나에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결탁하여서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음으로 해서 예수님이 예고하신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실 것은 구체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실행이 됩니다. 예수님의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미리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독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백성들 가운데 보내신 것이며,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실 구속의 죽음에 자신의 몸을 드려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구속 사역을 진행해 나가시는 방법으로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가룟 유다의 배후에 있었던 사단의 미혹케 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하여 가졌던 탐심은 그 배후에 있던 사단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긴 댓가로 받은 돈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은전 삼십 님 정도에 불과한 아주 미미한 적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 적은 돈에 가룟 유다 그렇게 선뜻 결탁하여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기다니요!.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 정도의 적은 돈만으로도 예수님을 팔아넘기고자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렇게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의 배후에는 이러한 가룟 유다의 탐심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음에 처하게 하려는 사악한 마귀의 유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서 예수님을 죽음에 처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역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하는데, 탐심으로 가득찬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대상이요 또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가룟 유다의 탐심에 의한 이 배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역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통해서도 선과 의를 이루시는 분으로서 가룟 유다를 쓰셨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표면적으로는 마귀가 자기가 유혹한대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룟 유다를 이용하여서 쓴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성역을 이루는데 한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치밀하심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나가셨습니다. 이 사실은 앞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당초 유월절을 지키는 절기 기간에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하게 되면 백성들이 동요하여 소동을 일으킬 것이 우려가 되었고, 이에 유월절을 지키는 절기 기간에는 말자고 하였었는데, 가룟 유다가 찾아와서 돈을 요구하면서 기회를 봐서 예수님을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체포할 수 있도록)넘겨 주겠다고 하기에 당초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일을 그만 두려고 하였던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계획을 취소하고 가룟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들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은전 삼십 닙을 약속하고, 후에 가룟 유다의 제보로 예수님께서 체포되어서 유월절 어린양의 헌제사역을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이루신 데서 잘 말해 줍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 53장 4절에서의 예언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면서도 정작 자신은 몇 푼 안 되는 적은 돈까지도 욕심을 품은 제자 가룟 유다에 의해서 버림받음으로써 철저히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여 버림받은 사건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실지라도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 바 되신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죠. 그것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마침내 예고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달려 죽음을 당하셨는데, 그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의 성격을 띤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의 어린양은 구약의 유월절 희생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되는 의식과 함께 시작된 이스라엘의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으로 드리는 헌제사역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의 모형(模型)이었기에 이제 예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고난의 해를 받은 후 죽음을 당하시는 것은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통하여 죄로부터의 구원을 베푸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게 하였던 일체의 제물의 실체이심을 보이시는 것이며, 이것으로써 짐승으로 유월절 제사에 드려져 왔던 속죄 제물은 종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유월절 희생양으로 자신을 제물로 삼으시는 것으로서 그동안 유월절 제사에 드려져 왔던 속죄 제물을 종지(終止)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과 연결하여서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여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지고 다시 로마 정부에 넘겨져서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모습으로 달려 죽으시는 것으로서의 어린양이셔야만 한 까닭은 다름 아닌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우리의 눈이 가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메시야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하실 구속 사역의 성격을 말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疾苦)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懲罰)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는 것인데[온갖 질병을 대신 앓고 우리가 당해야 될 고통을 대신 당함] 사람들은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의 죄악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요 우리가 범죄하였기 때문에 무서운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우리 대신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죄악을 행하고서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이요 그가 우리 대신에 채찍에 맞았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하고서도 몸이 성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메시야가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우리가 목자를 떠난 양들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과 연관시켜서 말씀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제멋대로 행동하여 범죄한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유월절 어린양 삼으셔서 그에게 모두 지워 그를 대신 우리의 속죄양으로 삼으셨다고 말입니다.

이런 까닭에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속죄 제물로 바쳐질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을 가시려고 하시며, 이에 있어서 학대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그 고통을 다 참으실 것이며 또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하고 털 깎는 자 앞에 선 어미 양처럼 입 한번 열지 않고 모든 고난을 다 참으실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예수님은 그 자신이 심히 원하고 원하셔서 하시는 일이며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따라 순종으로 받들어 가시는 일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예수님 배반은 이처럼 예수께서 대속주로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실 구속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에서 그의 부도덕함을 보며, 그의 파렴치함에 분해하며 어찌 그럴 수 있는지를 말하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기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합니다만,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악한 죄까지도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시켜 나가는데 합력하는 것이 되게 하여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실지라도 대속주로 작정하신 데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고, 또한 용서하지 않고 죄인에게 쏟을 진노와 저주를 그에게 다 쏟아 부으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예수님은 자기 동족에게 철저하게 버림을 받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룟인 유다에게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코 주님에게 해가 미치지 않게 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베드로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체포되어서 잡혀가실 때 칼을 뽑아드는 의로운 용기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사실상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는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십니다만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강림하여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도를 교회를 세우시는 기초가 되는 반석으로 삼으셨으며 그에 따라서 온 세상에 주를 신앙고백하여 나가게 하시고 계십니다

가룟 유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열 한 제자들과 함께 사도로 세움을 받은 자였습니다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3년 6개월에 있어서 돈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돈에 가진 욕심으로 제자의 무리에 가담하였고 종종 돈을 훔쳤습니다. 그런 그는 이제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실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마실 고난의 잔을 그도 마실 의도가 추호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시점에서도 돈에 욕심을 가졌으며 단돈 은전 삼십 닙만 주면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예수님을 죽일 기회만 찾는 대제사장들과 결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가룟 유다의 마음은 화인 맞은 양심이요 결과적으로 그는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자인 가룟 유다에 의해서 배반을 당하고 로마 정부에 넘겨져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자신에게 되어지는 이 모든 일의 때를 기다리고 계셨으며, 또한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겨나가심으로, 창세 전에 품으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뜻과 그 계획을 다 이루셔서, 오늘날 온 세상의 만민들에게 복음(福音)이 되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자신 안에 부르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주의 사랑을 받는 님이여!.

예정론과 관련하여 가룟 유다의 배반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의 삶이 그 역할을 위해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궁금해 하셨는데, 답변이 되는 설명이 충분히 되었는지요.

부디,
설명을 잘 살펴 읽으시면서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이죠.
이를 통해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님의 믿음이
더욱 돈독하며
견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annah | 작성시간 07.11.25 바쁘신 가운데에도 이렇게 답하여 주심에 대하여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쉽게 이해는 잘안되는데... 결국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하심 가운데 준비되어온 일인데 , 하나님께서는 가롯 유다의 탐심과 배반 도 사용하시어서 창세전 부터 계획 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 하심바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요, 그 탐심과 배반은 하나님께서 출애굽때 Pharaoh 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아니란 말로 이해를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 한건가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천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2.01 제 답글이 그렇게 이해되던가요? 다시 한번 정독하며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 작성자hannah | 작성시간 07.12.06 죄송합니다 목사님, 정독해서 몇번 읽었습니다. 처음 부분에 이해한것이 마지막 부분에서 혼돈이되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