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 들립니다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을 대함에
기쁨을 가지며
반가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님은 ‘선지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 선지자" 하는 일과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말이죠. 이 문제를 분명히 하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가 있고, ‘신약 시대의 선지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요즘(신약시대)에 자신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칭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라고 단정하여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님이 알고 싶어 하는 선지자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신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선지자란 말 대신에 영어로 사용되고 있는 prophet에 따른 ‘예언자’로 말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굳이 ‘선지자’ 용어로 사용하기를 고집합니다. 그것은 우선 이 용어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의미의 이해와 전달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한에는, 굳이 다른 말로 사용할 이유가 없지요.
선지자란 우선 구약성경의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구약 시대에 활동하던 분들입니다. 선지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단어가 몇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히브리어 ‘나비’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약 300회가 사용될 만큼 자주 쓰여졌습니다.
선지자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서, 즉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 왕은 선지자들을 가리켜 ‘선견자들’(Seers)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지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9:9),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처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여기 선견자가 있느냐”(삼상9:11). 사울 왕이 선지자를 선견자(先見者)라고 부르면서 찾은 것은 어떤 답답한 일이 있어 이에 관하여 하나님께 물어 알고자 하는 것을 선견자를 통해서 알고자 해서입니다.
사울 왕 당시에 선지자들을 선견자들로 부르기도 하였던 것은 선견자란 호칭(Seers)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적으로는 ‘보는 자들’이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런데 선견자가 아닌 선지자라는 용어로 불려지는 선지자직을 구약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이들이 ‘본 것’을 말하는 것이 사사로이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민수기 24장 3-4절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이상을 훤히 들여다보는 자라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예언하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예언이란 것이 참으로 가당치 않은 것은 신자들을 놓고 머리에 안수하면서 하는 예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을 인용하여 예언기도 받는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당신은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라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당신 인생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 험난한 세월을 살 것입니다.”라고 하거나, 송구영신 또는 신년기도회 등에서는 소원 기도 등을 써내게 하고서는 거기에 맞는 예언 기도를 해주거나, 성경의 구절에서 소위 복과 관련된 좋은 구절들을 따와서 그것으로 기도하며 이 예언대로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하는 예언 기도가 참으로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모두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 아니며, 따라서 선지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이 아닙니다.
선자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맡은 것이며, 그는 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아가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대로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선지자가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맡은 말씀인 ‘예언’(預言)이며, 그는 이 예언의 내용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장차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와 그분이 하실 일에 관한 예언이기에 ‘예언’(豫言)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예언 사역의 활동은 어느 사람에 관한 것이거나, 또는 어떤 현상에 관한 것이거나, 이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말하는 용어인 ‘나비’의 근본적인 의미를 알면 더욱 분명합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구절은 출애굽기 7장 1-2절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의 입, 곧 대언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代言者)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모세의 대변인의 입, 곧 대언자를 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한 바를 모세의 입을 대신하여 말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하여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고자 하실 때 모세가 자신이 하는 말이 서툴다며 감히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먼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입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세로 하여금 말에 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계속해서 애굽 왕 바로에게 가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하나님은 모세의 형인 아론을 내세워 그가 모세를 대신해서 말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 그에 따라서 모세와 아론 사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대언자의 관계가 존재하게 됐는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입’으로써의 특징을 지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7장1절에서 그런 아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가 모세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그가 모세의 ‘나비’, 곧 모세의 ‘대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그러므로 선지자를 말하는 ‘나비’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전하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역할인 대언자로 사용된 ‘나비’는 신명기 18장 18절에서는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해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라는 것에서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나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의 입에 둔 것에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전하는 일을 할 것으로서의 ‘나비’입니다. 이 ‘나비’로서의 선지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으키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한 선지자’가 있게 되는데 이 선지자를 향하여 다른 모든 선지자들이 있어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예언하는 일을 해오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7장 14-15절에서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라고 말하였는데,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예언하게 하신데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막음으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가서 예언하도록 하기 위해 벧엘로 보내셨다고 반박하는 것에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가 벧엘에서 예언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전하게 하신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자신에게 맡기신 말씀을 전함으로써, 곧 예언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는 말입니다. 그들이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에서 언급하였습니다만, 구약 성경에서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예언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져서 그들의 패역함을 책망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원인 메시야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들이 예언한 메시야(헬라어로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선지자의 역할은 마쳐져 끝납니다. 신약 성경에서 선지자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일시적으로 언급이 되는 곳이 나온 것은 그들이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더 이상 선지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모든 선지자들이 말해 온 그 선지자가 오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선지자가 그동안 선지자가 말해온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서 어떤 자들이 자신을 선지자로 지칭한다면, 그는 선지자를 가장한 거짓 선지자입니다.
님은, 우리네 교회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요즘, 신약시대에는 스스로 ‘선지자’라 칭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 라고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긴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사역자’, ‘영성 훈련을 통한 예언하기’, ‘예언 코스별 훈련’, ‘예언선지자, ’예언전도, ‘예언기도 매일 해드립니다’ ” 등 등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님이 예를 든 이 모두는 선지자와 예언을 이용하여서 돈벌이를 하는 자들의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 모두의 어떤 것에도 미혹 받고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님은 이 모두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한 것에,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이 이러한 훈련까지도 받고 있는 사실에 일말의 혼란을 갖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매우 우려가 됩니다. 왜냐하면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한 것에 자신 또한 인정하는 것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성경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라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게 됩니다.
님은 또한 “어느 곳을 온라인 방문하니. 정말 많은 사람이 이러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면서 그 내용적인 글귀도 소개하였습니다.
“선지자 학교는 누구나 참석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환상이 열려 예언사역자로 훈련받고 싶은 분들이나
훈련받는 분들의 예언을 받고 싶으신 분이나,
공개 예언기도를 받고 싶으신 분들은
기대를 가지고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다른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도
예언사역에 대한 사모함과 관심이 있으시면
마음껏 참석하십시오.
그리고 은혜 많이 받으시고 본 교회에 가셔서 충성하십시오“
님이여,
예언사역자를 훈련을 통해 양성하다니요!. 그래서 예언사역을 실습을 통해 익혀 나가며 그 기술을 습득하다니요!. 만일 예언사역을 실습하어서 얼마든지 익혀나갈 수 있으며, 그 기술을 습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에언이 아닙니다. 예언사역자를 양성하는 곳에서의 예언인 그들 식의 예언인 것이죠. 이런 예언은 그야말로 그들이 말한 대로 훈련을 통해서, 그래서 실습을 통해 배워 익히고 습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예언하는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그들이 한 예언은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외면당하여 무시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입니다.
예언사역자의 훈련을 통한 예언하는 일은 악한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예언하는 일까지도 이용하여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떠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는 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구원받은 백성들이 아닌 처음부터 영원히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예언하는 일까지도 이용하여서 미혹케 하는 일을 통해 사단과 함께 영원히 멸망할 자들을 모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가 되셔서 사단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살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더욱더 주님의 복음에 바르게 서서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님에게 하나님의 이 은혜가 있기를 구합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하늘에서 뽀송한 하얀 눈이
함박스럽게
폴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과 차가운 눈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이런 눈이 많이 내린다면
왠지 말이죠.
겨울이 추워보이지를 않고
따스하게만 여겨집니다.
이런 겨울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강원도의 산간에는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하던데....
내가 사는 이곳에는 내리지 않으려는지.....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을 대함에
기쁨을 가지며
반가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님은 ‘선지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 선지자" 하는 일과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말이죠. 이 문제를 분명히 하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가 있고, ‘신약 시대의 선지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요즘(신약시대)에 자신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칭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라고 단정하여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님이 알고 싶어 하는 선지자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신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선지자란 말 대신에 영어로 사용되고 있는 prophet에 따른 ‘예언자’로 말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굳이 ‘선지자’ 용어로 사용하기를 고집합니다. 그것은 우선 이 용어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의미의 이해와 전달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한에는, 굳이 다른 말로 사용할 이유가 없지요.
선지자란 우선 구약성경의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구약 시대에 활동하던 분들입니다. 선지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단어가 몇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히브리어 ‘나비’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약 300회가 사용될 만큼 자주 쓰여졌습니다.
선지자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서, 즉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 왕은 선지자들을 가리켜 ‘선견자들’(Seers)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지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9:9),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처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여기 선견자가 있느냐”(삼상9:11). 사울 왕이 선지자를 선견자(先見者)라고 부르면서 찾은 것은 어떤 답답한 일이 있어 이에 관하여 하나님께 물어 알고자 하는 것을 선견자를 통해서 알고자 해서입니다.
사울 왕 당시에 선지자들을 선견자들로 부르기도 하였던 것은 선견자란 호칭(Seers)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적으로는 ‘보는 자들’이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런데 선견자가 아닌 선지자라는 용어로 불려지는 선지자직을 구약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이들이 ‘본 것’을 말하는 것이 사사로이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민수기 24장 3-4절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이상을 훤히 들여다보는 자라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예언하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예언이란 것이 참으로 가당치 않은 것은 신자들을 놓고 머리에 안수하면서 하는 예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을 인용하여 예언기도 받는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당신은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라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당신 인생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 험난한 세월을 살 것입니다.”라고 하거나, 송구영신 또는 신년기도회 등에서는 소원 기도 등을 써내게 하고서는 거기에 맞는 예언 기도를 해주거나, 성경의 구절에서 소위 복과 관련된 좋은 구절들을 따와서 그것으로 기도하며 이 예언대로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하는 예언 기도가 참으로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모두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 아니며, 따라서 선지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이 아닙니다.
선자자가 말하여 전하는 ‘본 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맡은 것이며, 그는 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아가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대로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선지자가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맡은 말씀인 ‘예언’(預言)이며, 그는 이 예언의 내용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장차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와 그분이 하실 일에 관한 예언이기에 ‘예언’(豫言)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예언 사역의 활동은 어느 사람에 관한 것이거나, 또는 어떤 현상에 관한 것이거나, 이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말하는 용어인 ‘나비’의 근본적인 의미를 알면 더욱 분명합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구절은 출애굽기 7장 1-2절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의 입, 곧 대언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代言者)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모세의 대변인의 입, 곧 대언자를 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한 바를 모세의 입을 대신하여 말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하여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고자 하실 때 모세가 자신이 하는 말이 서툴다며 감히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먼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입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세로 하여금 말에 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계속해서 애굽 왕 바로에게 가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하나님은 모세의 형인 아론을 내세워 그가 모세를 대신해서 말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 그에 따라서 모세와 아론 사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대언자의 관계가 존재하게 됐는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입’으로써의 특징을 지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7장1절에서 그런 아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가 모세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그가 모세의 ‘나비’, 곧 모세의 ‘대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그러므로 선지자를 말하는 ‘나비’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전하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역할인 대언자로 사용된 ‘나비’는 신명기 18장 18절에서는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해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라는 것에서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나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의 입에 둔 것에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전하는 일을 할 것으로서의 ‘나비’입니다. 이 ‘나비’로서의 선지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으키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한 선지자’가 있게 되는데 이 선지자를 향하여 다른 모든 선지자들이 있어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예언하는 일을 해오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7장 14-15절에서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라고 말하였는데,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예언하게 하신데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막음으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가서 예언하도록 하기 위해 벧엘로 보내셨다고 반박하는 것에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가 벧엘에서 예언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전하게 하신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자신에게 맡기신 말씀을 전함으로써, 곧 예언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는 말입니다. 그들이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에서 언급하였습니다만, 구약 성경에서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예언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져서 그들의 패역함을 책망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원인 메시야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들이 예언한 메시야(헬라어로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선지자의 역할은 마쳐져 끝납니다. 신약 성경에서 선지자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일시적으로 언급이 되는 곳이 나온 것은 그들이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더 이상 선지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모든 선지자들이 말해 온 그 선지자가 오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선지자가 그동안 선지자가 말해온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서 어떤 자들이 자신을 선지자로 지칭한다면, 그는 선지자를 가장한 거짓 선지자입니다.
님은, 우리네 교회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요즘, 신약시대에는 스스로 ‘선지자’라 칭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 라고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긴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사역자’, ‘영성 훈련을 통한 예언하기’, ‘예언 코스별 훈련’, ‘예언선지자, ’예언전도, ‘예언기도 매일 해드립니다’ ” 등 등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님이 예를 든 이 모두는 선지자와 예언을 이용하여서 돈벌이를 하는 자들의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 모두의 어떤 것에도 미혹 받고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님은 이 모두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한 것에,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이 이러한 훈련까지도 받고 있는 사실에 일말의 혼란을 갖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매우 우려가 됩니다. 왜냐하면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 한 것에 자신 또한 인정하는 것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성경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라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게 됩니다.
님은 또한 “어느 곳을 온라인 방문하니. 정말 많은 사람이 이러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면서 그 내용적인 글귀도 소개하였습니다.
“선지자 학교는 누구나 참석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환상이 열려 예언사역자로 훈련받고 싶은 분들이나
훈련받는 분들의 예언을 받고 싶으신 분이나,
공개 예언기도를 받고 싶으신 분들은
기대를 가지고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다른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도
예언사역에 대한 사모함과 관심이 있으시면
마음껏 참석하십시오.
그리고 은혜 많이 받으시고 본 교회에 가셔서 충성하십시오“
님이여,
예언사역자를 훈련을 통해 양성하다니요!. 그래서 예언사역을 실습을 통해 익혀 나가며 그 기술을 습득하다니요!. 만일 예언사역을 실습하어서 얼마든지 익혀나갈 수 있으며, 그 기술을 습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에언이 아닙니다. 예언사역자를 양성하는 곳에서의 예언인 그들 식의 예언인 것이죠. 이런 예언은 그야말로 그들이 말한 대로 훈련을 통해서, 그래서 실습을 통해 배워 익히고 습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예언하는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그들이 한 예언은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외면당하여 무시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입니다.
예언사역자의 훈련을 통한 예언하는 일은 악한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예언하는 일까지도 이용하여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떠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는 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구원받은 백성들이 아닌 처음부터 영원히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예언하는 일까지도 이용하여서 미혹케 하는 일을 통해 사단과 함께 영원히 멸망할 자들을 모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주가 되셔서 사단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살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더욱더 주님의 복음에 바르게 서서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님에게 하나님의 이 은혜가 있기를 구합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하늘에서 뽀송한 하얀 눈이
함박스럽게
폴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과 차가운 눈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이런 눈이 많이 내린다면
왠지 말이죠.
겨울이 추워보이지를 않고
따스하게만 여겨집니다.
이런 겨울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강원도의 산간에는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하던데....
내가 사는 이곳에는 내리지 않으려는지.....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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