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nnah님
님은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 나오는 두 비유에 관하여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두 비유를 님은 '망대와 협상의 비유'라는 제목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는,
'망대 건축과 전쟁에 임하는 한 왕의 비유'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비유는 앞에서 말씀되고 있는 내용과 함께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 비유는 비유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앞에서 말씀되고 있는 내용 속에서 보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려는 것으로
두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서
비유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비유를 하나가 아닌 두 가지를 들어서 말씀하심으로써
그만큼 강조하여 다루고자 하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비유가 말해지고 있는 본문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5-35절/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은 앞서에서 하신 말씀과의 연결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앞서 어느 안식일에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파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에게 결혼 잔치에 초대받거든 말석으로 쫓겨나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을 것이므로 상석에 앉지 말라고 하신 후 그들에게 식탁을 차려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사람을 초대하지 말고 초대하여도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소경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여 떡을 먹는 자는 복 되겠습니다”라고 말을 함으로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들어가는 복 있는 자가 될 것인지를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준비가 끝나고 여기에 참여할 것이 초청되었으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방금 밭을 샀기 때문에 가봐야 하므로 못가겠다고 하거나 소 다섯 쌍을 샀기 때문에 그 소들을 부려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거나 방금 결혼을 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들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 잔치의 떡을 먹을 수 없을 것이며, 그 나라는 잔치를 연 주인이 강권하여 불러서 채운 거지,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청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주인이 베푼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도 자기 소유를 더욱더 사랑하는 자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워하는 자는 한 사람도 그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에 배설된 잔치의 청함에 기쁨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사랑할 소유가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 하나님의 나라에 채우시는 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자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동일한 말씀을 자주하셨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여기서는 말이죠. “이런 자들은 능히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으로 하시고 있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하나님의 나라)은 말이죠.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에 가보아 과연 농사짓기에 쓸 만한 적당한 밭을 산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소 다섯 쌍을 샀기 때문에 그 소들을 부려보러 가는 사람의 것도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방금 결혼을 해서 가족을 돌아보는 일에 있는 사람의 것도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입니다. 지금 그런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일 하는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생명이 거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 모든 것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처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자매를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랑은 사실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으로서 아무리 그 사랑에 특별한 마음을 갖고 두드러지게 할지라도 그것은 죄에 속한 것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 반면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죽음에서 나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 있는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모든 것보다, 그것이 자기 부모이든 처이든 자식이든 형제이든 자매이든 그것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목숨보다도 더 커야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할 것인데,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는, 그래서 자기의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하지 못하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영생은 이들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영생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해 주시는 것으로 예수님은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는 사람은 그것을 짓기 전에 먼저 여기에 소비될 비용을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산된 건축비를 기꺼이 들여서라도 망대를 세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고, 망대를 세울 것을 마음에 결정하면 준공하기까지에 들어가야 하는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합니다. 그렇지 않고 망대의 기초만 쌓고 중단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음을 조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을 뒤따르는 자들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미워하지 않으면,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또 하나의 비유인 전쟁에 임하는 한 왕에서도 동일합니다. 어떤 왕이 다른 국가의 왕과 전쟁을 할 때 이에 대비하는 작전 계획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그 왕은 군사 1만 명으로 적군 2만 명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수하의 지휘관들과 의논합니다. 만일에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군사 1만 명을 모두 전쟁에 투입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죽기를 각오하여 싸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뒤따르는 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릴 것을,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하시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그와 같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은 많은 무리의 군중이 따라오자 앞서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고서는,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많은 무리의 군중이 자기 소유의 버림이 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어리석음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영생(하나님의 나라)을 얻을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어서 말씀하신 맛 잃은 소금 비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맛 일은 소금은 흙으로도 쓰지를 못하고 비료로도 슬 수가 없어 다만 밖에 버려질 뿐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말씀에서 사람의 상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설교에서 목사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버리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며, 성도들은 모두 다 수긍하며 인정하는데, 정작 자기 소유를 버리는 사람은 없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러면 그들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그래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에게 에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신 말씀을 충족시키지 못하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며, 따라서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서도 그와 같으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말이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믿음으로 오신 주께서 하십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자기 소유를 버리게 하십니다. 우리 육을 부정케 하시며 주를 인정케 하시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그 모든 것보다 더욱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하는 소유욕에서의 사랑이 악한 죄임을 알게 하시며 그런 우리를 죽이시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것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날마다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있게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에 충족되지 못할 때는, 그래서 주님의 뜻에 따르지 못할 때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우리의 죄악 됨을 예수께서 자신이 지신 십자가로 끌고 가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여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이렇게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일을 온전히 나타내시는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생을 구하는 한 부자 청년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재물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에서 예수께서는 재물이 많은 자는(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자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제자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대답을 주신 것(막10:2-27)에서도 알 수 있듯이, 뿐만 아니라 지금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서의 내용에서 예수님을 뒤따랐던 그 많은 군중들 중에서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은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고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없는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영생을 얻는다고 하면,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그래서 그런 자로 예수님을 좇게 하시는 것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서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제자의 도’, 곧 ‘제자들에게 있어야 할 정신, 그 사상’을 심어주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면 우리가 그 제자의 도를 충실히 따라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입니다. 우리에게 말해주어도 우리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지 못할 것을 아시고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우리란 존재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 죄인 됨을 알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며, 또한 우리란 사람들은 전혀 그분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그런 자들인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에게서 자기 소유를 버리게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주의 나라에 참여하여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잔치의 떡을 먹을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게 해 주심으로써 다만 주만을 바라보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답글이 구원의 주님을,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겨울의 추위도 점차 그 정도가 강해져 갑니다.
한 겨울을 건강하게 잘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며,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님은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 나오는 두 비유에 관하여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두 비유를 님은 '망대와 협상의 비유'라는 제목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는,
'망대 건축과 전쟁에 임하는 한 왕의 비유'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비유는 앞에서 말씀되고 있는 내용과 함께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 비유는 비유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앞에서 말씀되고 있는 내용 속에서 보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려는 것으로
두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서
비유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비유를 하나가 아닌 두 가지를 들어서 말씀하심으로써
그만큼 강조하여 다루고자 하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비유가 말해지고 있는 본문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5-35절/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은 앞서에서 하신 말씀과의 연결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앞서 어느 안식일에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파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에게 결혼 잔치에 초대받거든 말석으로 쫓겨나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을 것이므로 상석에 앉지 말라고 하신 후 그들에게 식탁을 차려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사람을 초대하지 말고 초대하여도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소경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여 떡을 먹는 자는 복 되겠습니다”라고 말을 함으로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들어가는 복 있는 자가 될 것인지를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준비가 끝나고 여기에 참여할 것이 초청되었으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방금 밭을 샀기 때문에 가봐야 하므로 못가겠다고 하거나 소 다섯 쌍을 샀기 때문에 그 소들을 부려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거나 방금 결혼을 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들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 잔치의 떡을 먹을 수 없을 것이며, 그 나라는 잔치를 연 주인이 강권하여 불러서 채운 거지,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청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주인이 베푼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도 자기 소유를 더욱더 사랑하는 자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워하는 자는 한 사람도 그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에 배설된 잔치의 청함에 기쁨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사랑할 소유가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 하나님의 나라에 채우시는 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자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동일한 말씀을 자주하셨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여기서는 말이죠. “이런 자들은 능히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으로 하시고 있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하나님의 나라)은 말이죠.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에 가보아 과연 농사짓기에 쓸 만한 적당한 밭을 산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소 다섯 쌍을 샀기 때문에 그 소들을 부려보러 가는 사람의 것도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방금 결혼을 해서 가족을 돌아보는 일에 있는 사람의 것도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입니다. 지금 그런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일 하는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생명이 거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 모든 것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처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자매를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랑은 사실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으로서 아무리 그 사랑에 특별한 마음을 갖고 두드러지게 할지라도 그것은 죄에 속한 것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 반면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죽음에서 나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 있는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모든 것보다, 그것이 자기 부모이든 처이든 자식이든 형제이든 자매이든 그것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목숨보다도 더 커야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할 것인데,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는, 그래서 자기의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하지 못하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영생은 이들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영생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해 주시는 것으로 예수님은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는 사람은 그것을 짓기 전에 먼저 여기에 소비될 비용을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산된 건축비를 기꺼이 들여서라도 망대를 세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고, 망대를 세울 것을 마음에 결정하면 준공하기까지에 들어가야 하는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합니다. 그렇지 않고 망대의 기초만 쌓고 중단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음을 조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을 뒤따르는 자들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미워하지 않으면,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또 하나의 비유인 전쟁에 임하는 한 왕에서도 동일합니다. 어떤 왕이 다른 국가의 왕과 전쟁을 할 때 이에 대비하는 작전 계획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그 왕은 군사 1만 명으로 적군 2만 명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수하의 지휘관들과 의논합니다. 만일에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군사 1만 명을 모두 전쟁에 투입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죽기를 각오하여 싸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뒤따르는 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릴 것을,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하시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그와 같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은 많은 무리의 군중이 따라오자 앞서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고서는,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많은 무리의 군중이 자기 소유의 버림이 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어리석음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영생(하나님의 나라)을 얻을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어서 말씀하신 맛 잃은 소금 비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맛 일은 소금은 흙으로도 쓰지를 못하고 비료로도 슬 수가 없어 다만 밖에 버려질 뿐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말씀에서 사람의 상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설교에서 목사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버리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며, 성도들은 모두 다 수긍하며 인정하는데, 정작 자기 소유를 버리는 사람은 없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러면 그들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그래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에게 에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신 말씀을 충족시키지 못하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며, 따라서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서도 그와 같으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말이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믿음으로 오신 주께서 하십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자기 소유를 버리게 하십니다. 우리 육을 부정케 하시며 주를 인정케 하시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그 모든 것보다 더욱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하는 소유욕에서의 사랑이 악한 죄임을 알게 하시며 그런 우리를 죽이시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것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날마다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있게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에 충족되지 못할 때는, 그래서 주님의 뜻에 따르지 못할 때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우리의 죄악 됨을 예수께서 자신이 지신 십자가로 끌고 가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여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이렇게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일을 온전히 나타내시는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생을 구하는 한 부자 청년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재물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에서 예수께서는 재물이 많은 자는(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자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제자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대답을 주신 것(막10:2-27)에서도 알 수 있듯이, 뿐만 아니라 지금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서의 내용에서 예수님을 뒤따랐던 그 많은 군중들 중에서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은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고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없는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영생을 얻는다고 하면,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그래서 그런 자로 예수님을 좇게 하시는 것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복음 14장 25-35절에서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제자의 도’, 곧 ‘제자들에게 있어야 할 정신, 그 사상’을 심어주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면 우리가 그 제자의 도를 충실히 따라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입니다. 우리에게 말해주어도 우리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지 못할 것을 아시고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우리란 존재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 죄인 됨을 알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며, 또한 우리란 사람들은 전혀 그분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그런 자들인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에게서 자기 소유를 버리게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주의 나라에 참여하여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잔치의 떡을 먹을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게 해 주심으로써 다만 주만을 바라보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답글이 구원의 주님을,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겨울의 추위도 점차 그 정도가 강해져 갑니다.
한 겨울을 건강하게 잘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며,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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