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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 사 34:16의 바른 해석과 욥 시대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8.03.12|조회수969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루디아님.

님은 두 가지의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는 이사야 34장 16절의 해석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욥 시대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질문하셨습니다. 이 경우는 아마도, 요즘 일반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관주 해설이거나, 성경 주석을 설명으로 달고 있는 성경을 보고서 가진 의문에 따른 것 같습니다. 님은 “욥의 시대는 저의 성경 옆 주석에서는 아브라함 혹은 그 전후 시대라고 하는데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외에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 있었나요? 그리고 모압의 발락이 발람을 청하는데 발람의 말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거짓선지자 발람에게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귀를 통해서도 경고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요…”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첫 번째의 질문인 이사야 34장 16절의 해석에 대하여 답변들 드리겠습니다.

이사야 34장 1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흔히 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으며, 성경인 구약과 신약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어서 신약은 구약을 통해서 해석하고 구약은 신약을 통해서 해석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인용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이사야 34장의 문맥 속에서의 본 구절과 상관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말 자체에 틀린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사야 34장에서의 본 구절은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시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본 구절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 적용시키면서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참으로 가당치 않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을 자세히 읽어볼 것을 말합니다. 왜 그렇게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하고 있는가 하면,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이 구절의 해석에 따른 이해를 올바르게 알려고 하면 먼저 이 구절이 왜 말씀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선지자 이사야가 본장에서 기록하여 말하고 있는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한 그 땅은 이런 이런 짐승들과 새들의 차지가 될 것으로, 여기에 기록된 짐승 가운데에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며, 그 짝이 빠져 있는 것도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에서 그 읽어볼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사야 34장인 여기에 기록된 짐승들입니다. 그 짐승들이 빠진 것이 하나도 없으며, 그 짝이 빠진 것도 하나도 없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니 그 모두를 찾아내어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에돔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죠.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본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에돔이 멸망당하여 황폐케 된 그 땅을 차지할 짐승들과 새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언급하여 기록된 짐승들 중에서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에돔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 34장은 에돔의 멸망에 대해서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에돔은 도대체 어떤 족속이며, 이들은 왜 이처럼 멸망을 예언받고 있는 것일까요?

에돔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창세기 36장 1-20절에서 보게 됩니다.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받게 된 위험을 피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인 가나안에서 떠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향이요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메소보다미아의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 있은지 20년 후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형 에서와 화해의 상봉을 하고 세겜으로 왔다가 그곳에서 벧엘로 올라오면서 에서와 야곱의 식구가 모두 함께 그곳에서 살기는 땅이 좁았고 에서의 소유와 야곱의 소유인 가축의 수가 매우 많아 모두 함께 먹기에는 물과 풀이 부족하여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어 에서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 세일이라는 산악 지대로 옮겨져 거기서 살았는데, 그 에서는 털이 많고 붉게 보였기 때문에 ‘붉다’ 라는 뜻인 에돔이라고도 불렸습니다(창36:1, 8). 그렇기 때문에 에서는 에돔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36:9). 그에 따라서 에돔 사람의 조상 에서에게서 그 후손인 에돔 족속이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본래 에돔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호리 부족 사람, 곧 호리 족속 세일과 그 아들들인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디손과 에셀과 디산 인데(창36:20), 에서는 시브온의 손녀이자 아나의 딸인 오홀리바마(창36:2, 24-25)와 결혼을 하여 호리 족속과 친족 관계를 이루게 되고, 점차 이 호리 족속이 에서의 후예들과 통혼에 의해 합해져서 나중에 에돔 왕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에서는 비록 야곱과 함께 이삭의 아들이지만,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잇는 자녀,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이을 자가 아니기 때문에 야곱에게서 떨어져 나갑니다. 에서는 야곱과 함께 이삭의 아들이며, 야곱보다 먼저 난 자인 형이지만 이스마엘이 그렇듯이 에서 또한 야곱을 섬길 자로 야곱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여 분리시킵니다. 그러한 그는 아버지 이삭에 의해서 척박한 들에서 칼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고 동생을 섬길 것이 예언되었습니다(창27:39-40). 이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에서도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삭은 이미 야곱에게 뭇 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섬길 것을, 그래서 그의 피붙이들 모두가 그가 하라는 대로 움직일 것이며 무릎을 꿇을 것을 약속으로 주었었습니다(창27:27-29).

이삭의 예언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에서는 칼을 믿고 사는 족속을 이루게 됩니다. 에서는 모두 세 명의 아내를 두는데 그 중에 한 아내는 호리 족속의 딸입니다. 그는 야곱의 가족을 가나안에 남게 하고 그 자신은 모든 가족을 이끌고 세일산에 정착하였으며 후에 에돔 족속의 족장이 되어 에돔 사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에서가 비록 야곱에게서 분리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삭의 아들로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인 ‘큰 민족을 이룰 것’으로, 그래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으로 크게 번성하실 것을 말씀하신 약속을 성취시켜 가시는 것으로서 에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이스마엘의 경우와 함께)에서가 이렇게 에돔 사람의 조상이 되는 것을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인 까닭에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축복에 따라 에서의 후손이 번성하여 되어진 것이라고 설명해 나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가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약속과 ‘자손’의 약속을 주신 것은,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인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시고 또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으로 크게 번성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은 육의 혈통에 의해서 되어지는 자손으로서가 아닌 이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 곧 성령으로 난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참조. 갈4:28-29).

그러면 왜 에서를 에돔 사람의 조상이 되게 하여 나가시는 것일까요? 에서는 비록 그도 이삭의 아들이요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한 족속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아들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아들인 동생을 섬기는 자가 될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약속이 예언을 통해서 주어진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축복이 없으며,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아들인 동생을 섬기는 자가 될 것으로서의 약속이 예언을 통해서 주어진 데 따른 그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은 에서에게서도 에돔 족속을 이룰 수 있게 해 나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에서의 가족이 세일산에 정착하여서 시작되고 형성된 에돔 왕국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 의해서 세우진 이스라엘 왕국보다 훨씬 먼저 세워집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나그네로 지내고 또한 애굽에서 430년간 있으면서 종이 되어 섬기고 있는 동안에 에돔은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하여 번영과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돔 왕국을 세우는 에돔 족속은 가나안에서 떨어져 나가 가나안 밖의 이방민족으로 남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분명하게 목격하는 자로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 된 자로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에돔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을 그들의 머리 꼭대기까지 채워나가 여호와의 칼이 그들의 목에 내려치는 상황에까지 몰고 가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발아래 두시며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에돔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에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진행하여 나갈 때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하므로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 에돔과 이스라엘은 한피붙이인 이스라엘의 후손임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지금의 에돔 경계에 있는 가데스에 와 있으므로 에돔 땅을 통과하게 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거듭한 간청을 완강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군대를 이끌고 나와 이스라엘의 진행이 저희 땅을 통과하지 못하게 막아 나서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민20:14-21, 21:4), 그 후에도 항상 이스라엘과는 적대감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서 전쟁을 치르며 원수 관계로 있어 하나님께 악하였기 때문입니다(삼상14:47; 삼하8:13-14; 왕상11:14; 대하25:11-12; 시137:7). 후에 에돔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할 때에는 적에게 가담하여 유대의 성읍들을 점령하기도 하였습니다(애4:21; 겔35:).

이런 에돔을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들의 멸망을 예언적으로 선언케 하십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에돔을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서 35장에서는 포로된 백성들의 귀환을 통해서 주의 구원하심에 의한 거룩하신 백성들을 말씀하십니다.

에돔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멸망을 받게 되는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에돔을 심판하실 것인데, 에돔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들의 군대는 전멸을 당할 것이며 망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칼이 하늘에서 나타나 에돔으로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한 그들에게 내리꽂혀 피로 범벅되어 물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날이 되고 시온의 호소를 듣고 보응해 주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폐하게 되어 다시는 사람이 돌아다니며 살지 못하는 땅이 됩니다. 에돔 족속이 살던 그곳은 온갖 더러운 짐승들의 차지가 될 것이고 새들이 깃드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에돔이 이와 같이 되는 것은 여기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대로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에돔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으니라.” 그러니까 말입니다. 지금 여기 이사야 34장에 기록된 것은 모두 에돔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면, 여기에 기록된 짐승 가운데에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며, 그 짝이 빠져 있는 것도 하나도 없을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주의 신이 직접 그 짐승들을 불러다 놓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란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시고 있는 대로 여기에 기록된 짐승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반드시 에돔 땅을 차지하여 그들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이 이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여기에 기록된 짐승들이 황폐화된 에돔 땅을 차지하여 나눠 갖고 그 짐승들이 대대로 그곳에 거할 것입니다. 이 모두를 누가 하시는가 하면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따라서 이사야 34장 16절은 에돔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받고 멸망받아 황폐케 되고 그곳이 온갖 짐승들과 새들의 소굴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시고 있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의 질문인 욥 시대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자신이 보는 성경 옆에 주석되어 있는 곳에서는 욥의 시대를 아브라함 혹은 그 전후 시대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하면서 (1)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외에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 있었나요?” (2) 그리고 모압의 발락이 발람을 청하는데 발람의 말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거짓선지자 발람에게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귀를 통해서도 경고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요…”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등장하는 욥기서는 성경의 목록에 의하면 에스더 다음에 나오고 시편 앞에 나옵니다. 구약 성경의 순서로 보면 18번째의 성경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구약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욥은 아브라함과는 한참 떨어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인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아브라함이나 이삭 또는 야곱이 살던 시대인 족장 초기 시대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동시대(同時代)의 사람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서가 기록된 연대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서 포로시기인 B.C. 6C 이전일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욥기서를 기록한 저자는 욥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의 포로시기의 선지자가 기록한 것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저자로 보는 견해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견해일 뿐이지 단정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욥기서의 저자는 미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욥기서의 기록을 모세오경의 기록 시기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욥기서가 고대 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모세가 기록했다는 견해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외에도 솔로몬이라든지 다른 인물을 욥기서의 기록자로 보기도 하며, 또한 욥 자신을 기록자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합니다만, 하나 같이 추측일 뿐이며, 욥기서를 기록한 저자는 ‘미상’으로 돌립니다.

하여간에,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이거나, 아브라함 이 후로 보더라도 적어도 족장 초기 시대의 인물이라고 보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님의 질문의 의도는 욥의 시대를 아브라함 혹은 그 전후 시대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외에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 있었나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외에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는 없었다는 것이죠. 여호와이신 하나님, 곧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원 계시의 방식(또는 하나님의 언약 계시에 의한 구원의 원리)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은혜를 입히신 데 따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은 것도 언약의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의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아브라함이 믿는 믿음의 의)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말이죠. 아브라함을 통한 계시 외에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이방나라에 있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나라도 그들이 종교를 갖고 숭배하는 것에 의하여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믿음에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보게 되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아닌 육의 본능으로 갖게 되는 자연숭배 사상에서 갖는 신(神)의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입니다. 가령, 여호와이신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인식도 없고 믿음도 없는 불신자가 길을 걸어가다 돌부리에 걸리거나, 발이 삐끗하여서 넘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그냥 입에서 튀어 나오는 소리가 “아이구, 하나님!” 하는 소리입니다. 이 경우에 그가 입으로 말한 하나님은 아무런 생각 없이 튀어 나온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이요 무자각적으로 튀어 나온 것입니다. 다만 육의 본능적으로 나온 말입니다. 이 경우에 그가 입으로 한 말인 ‘하나님’은 ‘여호와이신 하나님’으로 ‘살아 계신 참된 신’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육의 본능에서 나오는 종교심에 의한 ‘자의적인 신’ 개념으로 ‘생명 없는 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 없는 돌이나 나무를 조각하여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형상을 본 뜬 우상(偶像)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신앙을 가져나갑니다(롬1:23). 아브라함을 통한 계시 외의 것으로서 이방나라들이 갖는 하나님인 ‘신’ 개념은 이처럼 하나님의 신계시(神啓示)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이신)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한 구원의 원리를 세워나가시는 것으로서 부르신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계시해 주시는 것으로서가 아닌 이방나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계시해 주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믿는 여호와가 참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어도 이를 본 애굽의 왕 바로도(창12:10-20), 가나안의 여러 족속의 왕도(창14:13-24) 아브라함이 믿는 믿음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도 애굽의 왕 바로는 요셉의 꿈 해몽을 통해서 요셉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참된 신이심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요셉으로부터 자신이 꾼 꿈의 해몽을 듣고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 해몽의 신비한 능력을 주시고 그 지혜와 총명이 있게 함으로써 요셉처럼 슬기로운 사람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를 존귀히 여길 뿐입니다. 이는 애굽이나 가나안 족속들에게서만은 아닙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그 후손일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아들이 아닌, 곧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믿음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려 지시는 것은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자신이 부르신 자들의 믿음을 다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님은 “그리고 모압의 발락이 발람을 청하는데 발람의 말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거짓선지자 발람에게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귀를 통해서도 경고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요…”라고 하였습니다.

모압의 발락과 발람은 민수기 2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세워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들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그에게 복 빌어 주는 사람에게 복을 내릴 것이며, 그에게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퍼부을 것”(창12:3)을 약속 하셨었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신 것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삼으신 이스라엘이 약속으로 받은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진행해 나가는 중에 요단강 동편, 여리고 맞은편에 있는 모압 평원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아모리 족속을 어떻게 정복하였으며, 또한 그 수효가 얼마나 많은지 소문을 듣고서는 자신들의 땅에도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하여 위험을 느끼고 메소보타미아 지방의 유브라데 강변 암몬 땅의 브돌에 살고 있는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사자를 보내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빌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혹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이기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가져서입니다. 발락왕은 발람이 복을 빈 사람들은 복을 받고, 저주를 빈 사람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의 청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발락왕의 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빌고자 한 것은 많은 예물을 탐한 때문이었습니다(민22:7, 15-19, 40).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떠나는 발람에게 크게 진노하여 그를 막으려고 그 앞에 나타나셔서 그가 발락의 무리들과 함께 올라가지 못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렸음을 알리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는데, 그러한 발람을 발락왕은 거듭 회유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으나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하심으로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은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발람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복 빌게 하심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발람이 발락 왕의 명을 받아 온 사자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청하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8절) 라고 말한 것에서 님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발람은 거짓 선지자인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거짓선지자 발람에게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발람이 어떤 자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발람에 대하여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말하는데 그의 정체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는 이교의 선지자인데, 메소보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또는 예언가)입니다. 모압 왕 발락의 명을 받은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발람을 찾아갈 때 그들은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7절) 라고 말해주고 있듯이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복술가’입니다. 그는 축복도 할 수 있고 저주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며, 그의 소문은 근동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모압 왕 발락도 들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발람이 축복하고 저주하는 것은 이교의 주술적인 것입니다.

그런 복술가에 지나지 않은 발람이 복술의 예물(복술을 행해 주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품으로 일종의 복채(卜債)의 성격이다)을 가지고 찾아와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청한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을 밤에 머물게 하면서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겠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아브라함을 통해 계시하신 신인식에 의한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발람은 메소보타미아 지방에서 복술가로 활동하는 이교 복술가입니다. 그는 이교의 신앙에 있는 자들이 그렇듯이 당연히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자기 민족의 주신(主神)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족속의 신들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혼합주의 종교가이며, 다원주의 종교가인 셈입니다. 따라서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복술가였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소문을 통해서 그들이 믿는 신인 여호와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진행하면서 벌여온 일들인 가나안 남부 지방에 사는 족속들, 아모리 땅에서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숴 정복한 것(민21장) 등에서 이스라엘의 명성과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입니다. 그런 발람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자기 식으로 이용하려 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든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그는 여호와의 지시를 먼저 듣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고서 그분이 자기에게 말씀해 주시는 대로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알려주겠으니 오늘밤은 여기서 머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이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주술을 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의 이해에 의한 행위인 것이기에 전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하시며 그에게 어떤 지시를 내려 그 지시를 따르게 하십니다. 이것은 복술가로서 거짓 예언자에 불과한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대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을 막으시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는 대로만 행동하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신 말만 할 수 있게 하시는 간섭으로서 입니다. 마치 아브라함 때에 가나안에 기근이 심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부인과 함께 살만한 땅인 애굽으로 가서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부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임으로 인해서 사라가 애굽 왕 바로의 궁의 침소에 들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시며 사라를 보호하시는 일을 하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복술가 발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복을 빌게 하는 일을 해 나가기 위하여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말입니다. 모압 왕 발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청하는 부탁을 받은 발람이 그 대답을 기다리는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라고 말한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주의 말씀을 분별하는
지혜와 지식의 은혜가
항상 님을 덮고 있기를
주께 간구하며,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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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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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루디아 | 작성시간 08.03.23 목사님, 감사합니다. 수고를 끼쳐드려서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1번 질문은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제가 가진 주석의 해설이 조금 불충분한 것 같습니다.) 발람에 대해서도 이제 잘알겠습니다. 그러면 욥은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자녀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욥을 하나님은 인정하고 계신데요. 욥은 동방의 우스 땅에 산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석에 보면 하나님의 명칭인 "샤다이"가 31회나 사용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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