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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주의 일이란 무엇인지와 헌신예배에 대하여'의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9.01.16|조회수1,753 목록 댓글 2
안녕하세요 주님저예요 님.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번 겨울 들어서 처음 보는 많은 눈이었습니다.

이 눈을 맞으며 걷는 기분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눈 맞으며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참, 좋다!”

저는 눈 맞는 것을, 여름에는 비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참 어린 아이 같지요.

그래서 여름에도 우산을 쓰지 않고 마냥 맞으면서 걷고 싶은 충동을 자주 갖습니다.

그러니 겨울의 눈 맞는 것은 저에게는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님이 계신 곳에도 오늘 눈이 왔는지요.

이런 눈이 오는 속에서도 오늘 하루가 님에게서는 주와 더불어서 함께 그 호흡하는 숨을 느끼면서 살아간 것이었기를 바랍니다.


이제 님이 한 질문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교회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주의 일에 열심을 내라는것인데요..

주의 일과 일반 일과 어떻게 구분을 지을 수가 있나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주의 일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헌신예배란 무엇인지요..

저희 교회에서는 헌신예배 날짜를 목사님께서 정해주시는데요..

강권적으로 하셔서 저는 좀 거부감이 드는데요..

그래도 따르는것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는

말씀에 해당되는걸까요..

목사님의 친절한 답변에 용기를 얻어 글 올립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님은 이 글에서 두 가지를 궁금해 하면서 질문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헌신예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일에 대하여

님은 교회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인 주의 일에 열심을 내란 말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님이 교회에서 자주 들은 말인 주의 일에 열심을 내라는 것에서의 주의 일은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일’과는 차이가 있게 말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주의 일’이란 명목으로 사실상 성도들에게 교회가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교우는 주의 일이란 것에 의해서 단지 교회 일꾼 역할 밖에는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주의 일’이란 것에 성도의 믿음을 걸어 놓고서 강요하고 있습니다.

가령 말이죠.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오라고 하는 것도 주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보하는 것도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여전도회 임원을 맡고 사업을 하는 것도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기관 부서를 맡아서 하는 것도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명목을 갖다 붙여서 ‘주의 일’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에 열심을 내고 충성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좋은 믿음이며, 그렇게 하면 큰 상을 받을 것이며, 크게 축복을 받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회의 일을 하는 것으로 주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말입니다. 교회가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은 교회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서 교회 생활을 해 나가는 것으로써 교회에 필요한 일들이 뭔가를 생각하여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여서 해 나가는 ‘교회 일’(교회적인 일반 일)로 교회가 주께로부터 하여야 할 일을 맡아 하는 ‘주의 일’을 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고 그 모두를 다 싸잡아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성도들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인 양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성도들이 교회 모임을 가지면 그 사람들이 모여서는 이런 저런 생각을 끄집어내게 되고 뭔가를 일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는데 그 모든 일은 성도를 섬기는 유익한 일로서가 아니고 사실은 교회에 사람을 모이게 하고, 그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더 사람을 끌어 모을 방법을 강구하여 더 많이 모이게 하려고 하고, 그래서 교회를 보다 크게 부흥시키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이용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여기에 맞추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서 교회 행사이니 사업이니 하는 게 있는가요? 교회 교육, 양육, 훈련 등의 모든 프로그램과 이것을 위한 체계화된 조직은 교회 부흥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은 어떤 것으로든지 간에 이것을 위해서 일꾼 된 자처럼 되어 쓰여 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성경에서의 주의 일이란 오직 하나의 일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생명의 주로 세우시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죽음을 통해서 온 세상에 죄 사함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부활의 생명을 복음으로 전파하여 나가게 하여서 천하 모든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주로 받아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교회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세우셨으며, 그 교회에 자신의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교회에 맡긴 유일한 일은 바로 이것, 곧 복음입니다.

매주 공예배로 회집한 성도들에게 목사가 주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여 전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평강을 좇아 삶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그분을 선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들은 자들이 청종하는 자세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말입니다. 이 주의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또한 교회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긴 일을 해야 합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기 전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라고 말씀하여 자신이 해나가실 일을 세상 끝 날까지의 교회의 계대적 사명으로 주시면서 교회가 이 일을 해나갈 수 있기 위해서 교회와 항상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초석으로서 그 일을 맡은 사도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말씀하시기를 “예수의 (죽음과 함께)부활을 항상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할 것”(행 1:22)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이 이러하오니, 주님의 교회로 있는 님과 님이 속한 교회가 주의 일을 해나가는 것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이 속에서 성도들의 교회 생활도 오직 교회 부흥에 맞춰진 것으로서의 탐욕에 의한 교회 일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로 온전히 서나가는 것으로써 믿음에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사랑을 좇아 서로의 믿음을 권면하고 봉사하는 섬김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헌신예배에 대하여

님은 또한 헌신예배가 무엇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님의 교회에서는 헌신예배 날짜를 목사님께서 정해주시며, 이를 강권적으로 행하게 함으로 좀 거부감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래도 따르는 것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는 말씀에 해당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우선 헌신예배에 대해서 답변을 드립니다. 헌신예배란 로마서 12장 1절인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으로 그 용어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을 바치는(드리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며, 이를 ’헌신예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믿음의 형제를 향하여 한 말인데, 그 가 왜 그러한 말을 했는가 하는 뜻을 그 뒤에 이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12장 1절을 이야기 하게 된 배경이 되는 11장 25-36절을 이야기 하는 것 속에서, 그래서 11장 결론에서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우리 몸은 그분의 능력에 의해서 살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므로 모든 영광을 영원토록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에서 1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일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 받아서 그대로 따라서 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여러분은 생각에 있어서나 또는 행동으로서나 새로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요, 그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해서 12장 3절 이하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이야기 하며 그 몸은 많은 지체로 되어 있는데(많은 믿음의 형제의 연합)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서로를 섬겨 봉사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앞에서의 ‘주의 일에 대하여’에 답변으로 마지막 부분에 설명을 드린 “주님의 몸인 교회로 온전히 서나가는 것으로써 믿음에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사랑을 좇아 서로의 믿음을 권면하고 봉사하는 섬김에 있어야 하겠습니다”를 해 나가게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맡은 일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케 하는(온전히 서나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게 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인 성도의 헌신이란 여기에서 찾아지게 되고, 또한 이런 교회로의 모습에 있는 것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지 '헌신예배‘라고 하는 것을 드리는 것에서 성도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해나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말이죠. ‘헌신예배'란 말은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헌신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이것을 교회에 조직된 각 기관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전도회 헌신예배‘, ’여전도회 헌신예배‘, ’장년부 헌신예배‘ , ’청년회 헌신예배‘, ’주일학교 교사 헌신예배‘, ’성가대 헌신예배‘ 등 등. 하여간 헌신예배를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학생회 헌신예배‘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거론할 수 있는 헌신예배를 이 정도로만 하고 더 거론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외에도 참으로 많은 다양한 명목으로 ’헌신예배‘를 드릴 것을 만들고 또한 요구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헌신예배를 만들어서 드리게 하는 이유는 각 기관의 임원이나 여기에 속한 자들을 활성화시켜서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헌신한 것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하고 힘을 얻어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헌예배를 드리게 해서 성도들에게 헌신할 것을 말하면서 하게 하는 헌신이란 명목이 사실상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게 하는 것에 있는 형편입니다. 만일에 교회의 실정이 성도들이 교회를 돕는 헌금이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에 대하여 알리고 그 돕는 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성도들이 자신을 주께 드림에서 갖는 자원적이고 자발적인 믿음의 분량으로써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지 교회가 필요로 하는 헌금을 성도들에게 헌신예배를 드리게 하는 명목으로 그 시간에 헌금 시간을 갖게 해서 이것이 그들이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는 헌신이란 잘못된 생각과 인식을 갖게 해서 그들이 주께 가진 마음과는 상관없이 단 얼마라도 헌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요 비신앙적인지요. 이러한 이유 외에도 헌신예배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문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헌신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란 ‘공예배’의 성격을 갖습니다. 사회 속에 흩어져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으로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하나의 몸으로 연합하여서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한 몸의 성격을 갖고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예배는 각 기관이 주관하여서 그들의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요. 그들이 헌신예배를 드리는 것에 참여하여서 그들이 어떻게 헌신예배를 드리는지를 보는 정도의 의미 밖에는 지니고 있지를 않습니다. 성도 모두가 교회로 모여 공예배를 드리는 것인데, 그 성도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닌, 헌신예배를 주관하는 기관에 속한 자들이 헌신예배를 실시함으로써 예배의 참여에 한정된 의미를 띠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그러한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속한 기관에서 더 일 잘 할 수 있게 독려하는 역할로써의 참여에 불과한 형편입니다. 이렇게 함께 예배에 참여한 자리에서 어떤 자들은 예배 참여가 되는 자들이고 어떤 자들은 그 예배가 되어지는 것을 보는 자들이고 하는 식으로 구분되고 나누어지는 헌신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결혼식에서 그 결혼식의 주체는 신랑과 신부와 그 부모님들과 가족이요 다른 사람은 그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초대받아 참여한 하객인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의 헌신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헌신예배는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헌신예배를 주관하는 자들이 예배의 주체 세력이요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헌신예배를 통해서 소명 및 사명 의식을 부각시켜서 주의 일군이 되라고 하는 것이니, 그래서 그들을 위하여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경외에 있는 예배(경배)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이 중심된 인위적인 예배요 인본주의적인 예배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헌신예배는 결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예배는 심히 훼손되고 또한 심각하게 변질되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헌신예배만이 아닙니다. 각종 이름으로 붙여진 모든 예배가 그렇습니다. ‘이사 감사예배’, ‘결혼예배’, ‘승진 감사예배’, ‘개업예배’, ‘출판 기념예배’, 심지어는 ‘학위 취득 감사예배’ 등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이름의 예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자기를 위한 예배’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헌신예배이니 또는 각종 이름의 예배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서 떠나 있고 그 정체성을 잃은 모습에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러한 예배를 해 나가는 것에서 교회는 큰 해악에 있으며, 그 영향 또한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것을 통해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 교회의 시도와 노력은 참교회의 모습이 아닌 거짓교회의 모습으로 있는 것으로서 지상에서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속성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예배는 설사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예배 드려지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예배가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예배를 드릴 것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들어서 강압한다고 하면, 그래서 님께서 마음에 원하지 않으면 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이런데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울 왕이 블레셋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 선지자 사무엘이 여기에 맞서서 싸움에 임하는 사울에게 길갈에서 7일 동안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였으나 이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울 왕이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 노릇을 하여서 번제를 드리는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책망으로 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헌신예배에 참여를 강압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적용한다고 하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마땅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님이 원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 헌신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불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만일에 님이 그렇게 할 힘은 발휘하지 못하는 연약함으로 인해서 그 헌신예배에 참석한다고 하면, 그 헌신예배에 참석하여도 님은 그 불의한 헌신예배가 예배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음으로 마음에 받는 고통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헌신예배에 참여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동의하며 따르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 헌신예배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간의 죄악된 악함을 인하여,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되는 인간의 육체 됨을 인하여 받는 고통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그 은혜를 입음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입는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이 땅에서의 교회에서 자신의 택한 백성을 불러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몸으로 생명을 이룬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서 그 생명을 보호하고 살펴 지켜 가시는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그 불의한 세계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구속의 피만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의 속에 두시고서 다른 그 무엇으로 믿음을 꾸며 치장하게 하거나 그런 것으로 믿음의 일인 양 해 나가게 하지 않습니다.

이상으로 답변을을 마칩니다.

이 답글이
님이 바르게 알고서
바른 믿음에 있고자 하는 마음에
도움과 유익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부디,
진리의 영이신 주께서
님을
복음의 선한 일 속에 두시고
그 생명을 지키시며
이끌어 가실 것을 구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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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주님 저예요 | 작성시간 09.01.17 목사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까요~~넘넘 감사합니다.. 이 곳에도 아름다운 눈이 엄청 많이 내렸습니다 ..
  • 작성자가나다라 | 작성시간 09.01.18 진리에 대한 오해를 벗는 분들이 많아지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좋습니다. 이제 잘못된 것들이 드러날만한 때가 다가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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