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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요한복음의 심판과 요한계시록의 심판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9.08.10|조회수2,003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포커스님

 

주 안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잘 지내시는지요.

 

님은,

 

요한복음 3장 17-18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질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등등의 구절에서 '주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을 보나,

 

계시록 20장 13절 에서는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게 되듯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요한복음의 심판과 게시록의 심판에 대해 궁금해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요한복음 3장 17-18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와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에서 하시고 있는 것인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24절은 주이신 예수께서 전하는 말을 듣고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그는 결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니 그는 이미 사망[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생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각각 ‘심판을 받지 않는다’,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지 않는다’와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판’이란 말이 무엇에서 하시고 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하시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말 한글 개역성경은 ‘심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만, 요한복음 3장 17-18절에서 이 단어는 세상 끝 날에 있을 마지막 심판으로 행해지는 것에서의 ‘심판’이라고 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은 ‘정죄’라고 하는 의미에서 쓰여졌습니다. ‘정죄’(定罪)란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유죄 판결을 뜻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정죄]를 받지 않으나,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요한복음 3장 17-18절에서의 ‘심판’을 개역 및 개역개정 성경, 표준새번역 성경은 ‘심판’으로 번역하였으나 그 외의 다른 번역 성경들은 ‘정죄’ 또는 ‘유죄’로 번역하였습니다. 공동번역, 현대어성경은 심판을 ‘정죄’, , ‘단죄’, ‘유죄’의 뜻으로 ‘죄인으로 판결(판단) 받았다’라고 하였으며, 쉬운 성경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어 성경에서도 동일합니다. NIV, KJV은 유죄를 선고 받은 뜻에서 ‘condemned’로, NASB는 죄가 있는 것에 대하여 판결을 내린 뜻에서 ‘judged’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도 보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기서는 주이신 예수께서 전하는 말을 듣고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그는 결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니 그는 이미 사망[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생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여기에서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에서의 ‘심판’도 요한복음 3장 17-18절에서 ‘정죄’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심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전하는 말을 듣고 자신을 보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니 그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며 이미 사망[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영원한 세계]으로 들어섰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 보게 되는 ‘심판’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여기에서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사용된 단어도 요한복음 3장 17-18절과 5장 24절에서 쓰여지고 있는 단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는 요한복음 17-18절과 5장 24절에서 쓰여지고 있는 뜻인 ‘정죄’의 개념과는 다르게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 20장 전체의 문맥적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주의 계시에 의하여 요한이 ‘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의 기록인 16장 12-21절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대접 재앙(심판)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바벨론의 멸망은 17-20장에서 바벨론(17-18장), 짐승과 거짓 선지자(19:19-20)와 함께, 용, 곧 마귀(20:10)의 순서로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이 세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요한은 하나 하나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룹니다. 그 첫 번째의 것은 1-3절로서 천 년 동안 있는 일을 보았습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여기서 ‘무저갱’은 아비소스 라는 밑 없는 지옥 구덩이를 이르는 말이다. 요한은 아비소스 라는 끝이 없이 밑 없는 지옥 구덩이의 열쇠와 굵은 사실을 손에 든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늙은 뱀, 곧 마귀요 사단인 그 용을 붙잡아 사슬로 결박하여 천년 동안 갇혀 있을 아비소스, 곧 밑 없는 지옥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잠가버립니다. 그에 따라서 용은 정해진 천년이 지나기까지는 세계의 나라들을 현혹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나면 잠시 동안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자기가 본 두 번째 것을 4절에서 말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1-3절의 상태 속에서 요한은 하늘 보좌에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것 때문에 목이 잘린 사람의 영혼과 그 악한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 받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입니다. 여기서 천년동안의 기간은 마귀가 천년 동안 갇힌 동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일로 인하여, 그래서 하나님께 가진 순결한 믿음을 인하여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는 기간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요한은 이어서 5-6절에서 자신이 본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여기서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인 1-4절의 내용이 ‘첫 번째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지나갈 때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이들에게는 다시 살아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즉, 첫 번째 부활의 개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밖에서 죽은 자들은 죽음의 해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첫 번째 부활에 든 사람들은 복이 있으며 거룩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11-15절에서 이 두 번째 사망에 대하여 언급을 합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은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는데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많은 책들과 생명책이 펼쳐져 있는 앞에서 그 책들 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각각 행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다가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토해 냈고, 사망(죽음)과 음부(‘하데스’ 라고 하는 지옥을 뜻하며, 죽은 상태 또는 죽은 영혼의 거처의 개념으로 쓰이는 단어인데 죽음에 갇혀 있는 의미적인 표현으로서 죽은 자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는 '하데스'라고 하는 지옥이 죽음과 함께 병행적으로 쓰여졌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다 토해 냈습니다. 그들 역시 각각 자기가 행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졌는데 이 불못이 두 번째 사망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불못에 던져져 두 번째 사망의 해를 영원히 당합니다. 

 

이렇게 두 번째 사망의 해를 주의 계시에 의하여 요한은 불못으로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 사망과 음부가 던져지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다 불못에 던져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과 음부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과 동일한 개념이며, 이들이 불못에 두 번째 사망인 불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두 번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으니 곧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의 해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두 번째 부활의 개념도 없습니다. 두 번째 다시 살아나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요한은 주께로부터 받은 계시인 ‘첫 번째 사망(죽음)’과 ‘첫 번째 부활’을, 그리고 ‘두 번째 사망(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는 사망(죽음)의 해를 당하는 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거를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에서 그리스도인은 첫 번째 사망의 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첫 번째 사망의 해는 첫 사람 아담 안에서 겪는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첫 번째 부활을 한 자들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구원의 약속으로 주어진 ‘여자의 후손’에 의한 성취로 사단이 패망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시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그분 안에서 그분의 증거를 인하여 죽음을 당하였으나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첫 번째 부활이며, 이 첫 번째 부활에 있는 자들은 두 번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는 자들입니다. 즉, 영원히 사망의 해를 입는 두 번째 사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 사망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 그들이 추종하는 마귀와 함께(계17-19장에서 바벨론, 짐승, 용의 멸망을 다룸) 다 불못에 던져지는 해를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번째 사망에서 마귀는 악한 짐승, 거짓 선지자와 같이 불못에 던져지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불못에 던져짐으로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 계시 속에서 요한은 자신이 본 천년의 끝에 있을 일에 관한 것을 7-10절에서 말합니다. 이 구절은 ‘천년이 차매’로 인해서 있게 될 마귀라고도 불리우는 사단의 활동과 관련하여 언급합니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여기서 ‘천년이 차매’는 ‘천년이 찰 때’ 또는 ‘천년이 끝나면’으로서, 천년이 끝나면 있을 일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년이 차매’, 곧 ‘천년이 끝나면’이란 표현 때문에 논쟁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사단은 천년 동안 갇혀 있던 감옥(아비소스)에서 잠시 풀려나고 이방 나라와 그 나라의 우두머리들, 곧 곡과 마곡을 현혹시키려고 돌아다니며 함께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 즉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논쟁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것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모으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는 권세가 쓰여지고 있는 것이며, 이때 마귀는 세계의 나라들을 현혹시킬 수 없게 아비소스에 갇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완전히 해소됩니다. 마귀가 천년 동안 아비소스라는 밑 없는 지옥 구덩이에 갇혀 있는 것은, 그래서 천년이 지나기까지 세계의 나라들을 현혹시킬 수 없게 된 것은, 아무리 믿는 자들을 현혹해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신 자들을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의 권세가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마귀가 갇혀 있는 천년의 기간은 장소적 갇힘의 개념이 아니라, 그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즉 마귀의 힘이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천년이 찰 때(천년이 끝나는 시점의 기간) 마귀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사단이 천년이 끝날 때 그 갇혀 있던 감옥에서 잠시 풀려나는 ‘옥에서 놓여’는 실제적으로 감옥에서, 즉 무저갱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활동을 하게 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방 나라와 그의 우두머리를 현혹하여 전쟁을 일으키려 하나 천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그 마지막에 있어서도 세계의 나라들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단 한 사람도 현혹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서 빼앗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사단의 미혹하는 활동은 철저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영원히 불못의 해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13절인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를 볼 때, 여기서 쓰이고 있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의 ‘심판’은 11-12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께서 행하시는 심판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의 일을 행하시는 것에서 하시고 있는 것으로서의 ‘심판’입니다.

 

요한은 주의 계시에 의하여 이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말이죠. 죽은 자들이 각각 자기가 행한 행위에 따라 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사망(죽음)과 음부(‘하데스’라고 하는 지옥)가 그들을 토해내어 둘째 사망인 영영한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심판’은 세상 끝 날에 있을,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의 주로 믿지 않는 악인들을 마귀와 함께 영영한 꺼지지 않는 불못에 내던져 영원히 멸망케 하는 ‘심판’의 의미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7-18절, 5장 24절의 ‘심판’과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의 ‘심판’은 비록 같은 단어가 쓰여지고 있지만, 그 쓰이는 내용에 있어서는 그 의미적인 용도가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올바른 이해에 의해서 이 단어가 각각 쓰이고 있는 문장이 무엇을 말씀해 주고자 하시는지를 보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은 간과하고서 단지 단어만 보고서, 그래서 그 쓰이고 있는 단어를 통해서 말씀해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서, 단지 단어의 뜻만 가지고서 해석하려 들면 마치 성경이 상충되는 말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며 또한 주께서 계시해 주신 본의(本意)와는 다른 전혀 엉뚱한 말을 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여기에서 생긴 궁금증으로 인하여 자세히 살펴 그 의미를 바르게 알아나가려고 하는 님에게 도움이 되며 유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님과 함께 하실 것과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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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포커스 | 작성시간 09.08.23 목사님 감사합니다 바쁘시고 어려우신 중에도 이렇게 답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프린트해서 자세히 읽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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