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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자유의지 - 창조 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 후의 인간의 자유의지' - 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0.07.13|조회수591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김민구님

 

정말 오랜 만이신데,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은

창조 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한 이후의 자유의지에 관해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님이 질문한 내용에 답변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태, 곧 창조 시의 인간의 상태와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상태에 의해서 알아야 하겠습니다.

 

창조 시의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의 창조와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대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더라”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에 대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품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이루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안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것으로 있는 것이 창조한 사람, 곧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통한 하나님의 금령법을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하나님의 금령법을 따르지 못한 불순종에 있음으로 범죄한, 그리고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처음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가 다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님이 질문한 창조 시의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가 건드려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조 받은 처음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태는 어떤 것이었겠는지요 인간, 곧 아담과 하와는 자기의 의지대로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거나 자유롭게 그 의지를 행할 수 있는 것이었겠는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에덴동산 중앙에 두시고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창조 받은 처음 인간의 상태는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받들어 순종해 나가는 것에 결코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창조 시의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따름으로써 선에 이른 자로 있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자유의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 것을 금하신 명령에서 약속하시고 있는 ‘죽음’의 성취에 있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나왔으며, 그가 나온 흙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흙에서 나온 육에서는 그 육에서 나오는 본능과 본성에 의한 욕망을 좇아 살 것인데, 이는 영이신 하나님의 뜻을 항상 거스릅니다. 이러한 존재가 인간임을 나타내신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통한 인간의 불순종하는 죄이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대로 죽음은 죄값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창조 시의 인간에게서 보게 되는 자유의지는 그 한 개인의 마음과 생각, 여기에 따른 의지가 어떻게 자유로운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실과 외의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으며 또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있게 되는 먹지 않을 수 있는 것에 그의 의지가 자유한 그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욕망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이었으며, 그래서 그 욕망에 이끌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인 아담 한 사람을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며,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는 땅에서 나온 육에서 발휘되는 자유의지란 것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거스리는지를,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에 있음을 또한 알게 해 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룰 일을 정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곧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실 것에 따른 것입니다.

 

님은 창조 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함께 또 하나인 타락 후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였습니다.

 

님의 이 질문이 그냥 타락 후의 인간의 상태에서의 자유의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염두에 두고서 궁금해 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후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타락 후의 인간의 자유의지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따른 것으로 단지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집중되어 있으며 오로지 이것을 위하여 작용합니다. 이러한 인간에게서는 그 자유의지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인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뜻을 따르는데 어떤 의지의 발휘도 없으며 따라서 전혀 나타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타락 후의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은혜로 입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된 그리스도인에게서의 자유의지는 어떤 것이겠는지요. 대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으니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의인이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시며 선을 행할 수 있는 마음에 있게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그는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는 성경도, 그래서 성경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인간의 이해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에서, 그리고 또한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세상 끝 날까지 온 세상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는 복음으로 주어진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서는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어떤 의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 안에서 올바르게 살며 선을 행하고자 하는데 도무지 되지를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입니다. 선을 하고자 원하는데 도리어 악을 행합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분명하잖습니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지요.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았으며, 그래서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는 죄의 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종 상태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그분의 종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여전히 죄를 섬기는 죄의 종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죄의 노예되어 있었던 그 노예 근성으로 여전히 살아갑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요? 그 까닭은 우리가 아직 육의 구속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우리 육이 부활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의 부활을 입을 때까지는 육인 우리 몸은 죄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즉, 육인 우리 몸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종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몸인 우리를 믿음의 주이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능력으로 우리가 다시는 정죄 받는 일이 없게 하며, 죽음의 형벌의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보게 되는 우리, 곧 그리스도인의 자유의지란 그 자유한 의지를 발휘하여서 자기 의지로 죄와 상관없이 살고 의로운 자로 살아가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우리 몸의 상태에서 나오는 자유의지란 무슨 선하고 의로운 의지가 전혀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성령님은 일절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행하는 것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자신의 몸의 욕망을 좇아 사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인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란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자유의지에 개입하셔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게 하시고 마실 것을 마시지 못하게 하시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게 하시는 일에 계신 것이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갖는 유일한 관심은 우리가 그 모두에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아닌 하나님만이 참된 주인인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그러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죄로 인해 죽을 우리 몸을 살리는 일에 긍휼을 풍성히 베풀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신가요? 이는 우리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의를 행하고 해서 마땅히 구원받을만한 일을 했다는 자랑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만일 선을 행하였다면 그것은 그 선을 행한 우리가 아니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란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신입합력(협력)설’에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선을 행하셨다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러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신 분이심을 아는 것에 있다면,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음과 같이 드릴 수 있겠습니다. 님은 “창조시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 시에 자유의지에 관해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알고싶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위에서 설명을 드린 것에는 창조 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 후의 인간의 자유의지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창조 시에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서의 자유의지로 아직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유의지를 발휘해나가는 것이었으며, 타락 후의 인간의 자유의지는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 상태에서 그 자유의지를 발휘해 나가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 모두에서는 육의 본성과 본능에 따른 욕망에서 발휘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그 은혜 속에 두시고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 가십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님의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알고서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는 것으로서의 글이 되었는지는 난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 글이 님에게 도움이 되며 유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 답글과 함께 보다 자세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하오니 같이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이미 앞서 한 분이 님이 질문한 것과 같이 자유의지에 대하여 궁금해 하며 질문한 것에 답변을 드린 글입니다. 본 ‘질문과 답’에 올린 258번에 ‘자유의지에 대한 답글입니다’가 있습니다. 좀 긴 글이지만 꼼꼼히 정독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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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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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민구 | 작성시간 10.07.14 목사님 감사합니다. 제가 사역을 하고 있는데 성도중에 한 사람이 질문을 해서 답을 해 주어야 하는데 좋은 답변 다시 감사합니다. 늘 주님 안에서 승리 하시고,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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