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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 마태복음 25:1-13의 비유에 등장하는 등과 기름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0.11.04|조회수1,338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동무님

 

주님의 복음 안에서 진리와 함께 잘 지내시는지요.

 

님의 질문에 대해 늦으나마 이제야 답변을 드립니다.

 

오늘은 답글이 올라왔으려나....하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을 님을 생각하면, 좀 더 빨리 답변을 드리지 못했음에 참으로 미안한 마음 그지 없으며, 양해를 바랍니다.

 

님께서는 마태복음 25:1-13에 있는 등과 기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성경 말씀 귀절과 함께 알길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에만 답변을 드린다면 님의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겠다는 것에서 언급하였습니다만 이것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기에 아주 간단히 답변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님이 궁금해 하시며 질문한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25장 1-13절이며, 그 내용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항상 깽 있어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등과 등잔은 비유를 들어 이야기를 전개해 가시는 것에 등장하는 것으로 이것 자체로서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비유를 드신 이런 것에는 어떤 해석적 의미의 설명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비유를 가지고서 대개는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등은 교회이며, 기름은 성령이라고 하거나, 등은 믿음이고 기름은 성도의 행위라고 하는 등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님이 궁금해 하시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님이 질문하신 내용의 성경 구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입니다.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보면, 이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을 ‘그 때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비유가 독립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 문장과의 연관에서 이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선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위용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참으로 아름다우며 언제까지나 그 위용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 성전에 있게 될 일을 예언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인데 돌 위에 돌 하나 제대로 얹혀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예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을 예수께서 세상 끝에 심판하러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일어날 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의 주가 세상에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날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기에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먼저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을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하실 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는 날이 세상 끝 날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오시는 세상 끝 날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언제 그런 일이 있어나겠는지를 물었습니다. 즉,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은 대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날, 곧 세상 끝 날을 알 수 있는 징조로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이에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재난을 겪게 될 것인데 그것이 세상 끝 날을 보여주는 징조는 아니라는 것을 여러 재난을 들어서 설명합니다. 우선 거짓된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미혹받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것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미혹하는 일을 할 것이며 이로 인해서 마치 세상 끝 날이 이른 것처럼 잘못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의도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언제인지, 세상 끝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게 될 것인지를 말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는 거짓된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며, 이런 미혹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있어왔습니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있었던 대표적인 것이 시한부종말론자인 다미선교회에서 주장했던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8년에 있었던 소동입니다. 그 후에도 간헐적으로 이런 주장들이 계속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재난을 겪는 것을 세상 끝 날이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보다 더 큰 일인 난리와 난리 소문, 곧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으며, 민족과 나라들이 일어나 서로 싸우며, 곳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재난들이 있겠지만 그것으로 세상 끝 날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것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런 숱한 재난들은 단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재난들이 세상 끝 날을 말하고 보여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고통과 죽임을 당할 것이며 온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고,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죄 가운데 다시 빠져 들어가 서로 배반하고 미워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활동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세상은 무법한 천지가 되며 사랑이 식어질 것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있다는 것으로 해서 마치 당장에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알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세상 끝 날은 이런 것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은 이런 것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해도 이런 것에 의해서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이런 것들은 세상 끝 날에 있을 징조가 결코 되지 못합니다.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은 이런 징조로 말해지고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을 자신의 다시 오심으로 있을 세상 끝날의 징조로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 끝 날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의 수가 충만함으로써 비로소 있게 됩니다. 그러한 것으로 예수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마 24:13).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인자[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그것은 세상 이 끝에서부터 세상 저 끝에 이르기까지 인자가 보낸 사자[천사]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듯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니 그 날과 그 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시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날과 그 시에 그 아들을 다시 보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 있을 일, 그러니까 인자가 오셔서 하시는 일엔 대하여 말씀합니다. 노아 때에 사람들은 물로 심판을 받을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인자가 오실 때도 그럴 것인데, 그 때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내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두 남자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이요, 그 때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인데 그러한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오시는 날에 그들이 주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함에 있는 일로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잠도 자지 말고 그렇게 깨어있을 것을 이야기 하시거나, 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을 맞이할 뭔가 준비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을 이야기 하시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자가 오시는 날에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깨어 있음에 있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깨어 있음은 그들 자신의 단단한 결심과 그 의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히셔서 하나님의 의에 있게 하시는 데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이야기를 말씀하심은 그래서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깨어 있으라(또는 예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오시는 날까지 그들을 그 깨어 있음에 두실 것이란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것이요, 그에 따라서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음’에 있어나가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가르침으로 등장하는 것이 여러 가지 비유입니다. 먼저는 마태복음 24:45-51에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맡기 소유를 종은 충성되고 지혜롭게 잘 관리하였으며, 돌아온 주인은 그 종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주인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동료들을 억압하고 주인의 소유를 가지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심으로 허비를 하였습니다. 주인은 그 악한 종을 벌하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심판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의 종에게서 충성되고 지혜로움과 악함은 돌아오실 주인에 대한 “깨어 있음”과 “깨어 있지 못함”을 들려주는 것으로 있는 것이며, 이렇게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으로 있음은 그들의 행동 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전개되는 이야기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누구냐?이며 또한 악한 종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즉, 누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주님이 맡기심에 의하여 “깨어 있음”에 있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며, 누가 주님이 맡기신 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모름에 있는 “깨어 있지 못함”에 있는 악한 종이냐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이 비유에 대한 연결에서 또 하나의 비유를 드는 것으로 님이 질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비유’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소위 ‘열처녀 비유’로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앞서의 비유를 들게 된 예수님이 영광 중에 오시는 그 날의 ‘그 때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주께서는 자신의 나라에 있게 하실 것에서 그들이 어떻게 “깨어 있는 자”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말이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주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하는 자로 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로서 비유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 일에 있게 되는 것으로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하는 슬기로움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종에게서 보듯이 또한 미려한 다섯 처녀는 전혀 깨어 있지를 못하여 주님을 맞이할 준비에 있지를 못합니다. 주님은 이것으로 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버리시는, 곧 주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하는 것과 주님에 의해서 버림을 당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가르치시는 것을 비유에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열 처녀이며 이 처녀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등(등잔)’과 이 등에 담는 ‘기름’이 등장합니다.

 

이 비유를 들게 되신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공통된 공식적인 문구 형식을 보게 되는데, “그 때에 천국은 마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와 같다’는 것에서 이 비유를 왜 말씀하시는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천국이 하는 일에 대하여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한 사람을 슬기로움에 있게 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다른 한 사람을 미련함에 있게 합니다. 그래서 천국은 한 사람을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또한 천국은 다른 한 사람은 혼인집 문밖에 두고 문을 닫고서는 “나는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대개는 ‘열처녀’는 그리스도인, 곧 성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등’은 교회이고, ‘기름’은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 중에서 슬기로운 처녀와 같은 자가 있을 것이고 또한 미려한 처녀와 같은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으로 교회 생활을 잘하고 성령님과 함께 하며 그 인도를 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는 ‘등’은 믿음이고 ‘기름’은 행함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꺼진 등불과 같다며 행함이 있는 믿음에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또는 ‘등’은 믿음이며 ‘기름’은 사랑이며 지혜이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의도하신 하나님의 본의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것으로 참으로 해롭습니다. 예수님은 등과 기름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의미로도 이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것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다만 말씀하고자 하신 하나의 의도에서입니다. 그것은 13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그런즉 깨어 있으라”를 설명해 나가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인자가 오시는 날,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 날과 그 시가 임하면, 그래서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깨어 있는 슬기로운 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깨어 있지 못한 미련한 자는 버림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등과 기름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를 두고서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등과 기름이란 비유적 요소를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서 단지 '깨어 있는' 슬기로움과 '깨어 있지 않은' 미련함을 나타내고자 하셨을 뿐입니다. 

 

더욱이 등과 기름을 이런 저런 의미를 주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임의로 부여하고서 성도[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믿음에 행함이 없으면, 그래서 등에 이런 저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슬기롭지 못한, 미련한 처녀로 있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가르치거나, 또는 천국에서 상급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거짓된 가르침이며 따라서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입니다. 어찌 그리스도인을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로, 어찌 그리스도인을 구원을 받는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로 나눌 수 있는지요. 또한 어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와 영광을 함께 하는 상급을 받는 영화로운 자와 그리스도와 영광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무런 상급이 없는 비천한 자로 나눌 수 있는지요. 이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르침의 본의에서 벗어난 것이요 주님의 의도를 왜곡시키는 악한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을 재미있게 엮어나가고 풀어나가는 것으로 제마음대로 의미를 갖다 붙이고 해석하고 설명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열 처녀를 통해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은 [인자로 불려지는]그리스도께서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으실 때 모든 민족이 불려 나와 인자 앞에 모일 것이며,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 놓듯이 사람들을 갈라 놓아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며 오른편에 있게 한 자들에게는 “내 아버지께로부터 복 받을 사람들아, 와서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에 들어가라”고 하실 것이나, 왼편에 둔 자들에게는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저주받을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 마귀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 25:31-46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일을 하시는 그 날과 그 시, 곧 인자가 오시는 날까지 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자신 안에 두고서 깨어 있어 주님의 데려감을 당하는 준비에 있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예비하고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셔서 이제 십자가에서 대속주가 되실 것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그들의 주이신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지에 대한 이해, 곧 주님의 구속 사역 대한 이해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일로 세상 끝 날에까지 주께서 천국 복음이 지닌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에서 해나가실 것에 대한 이해를 가져나가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도에서 마태복음 25:1-13의 비유도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오니, 님께서는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가르침의 의도를 잘 파악하시고 올바른 이해에 의한 깨달음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유에 사용하신 등이나 기름에 임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서 이것으로 한갖 행위 신앙을 가르치고 이것으로 행위 구원, 행위 상급 등의 거짓을 말하는 것에 미혹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교회에 맡기신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에 참으로 단호하게 답변을 드리거니와 마태복음 25:1-13에서의 비유에 나오는 ‘등’과 ‘기름’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이런 것에 있지를 않습니다. 비유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를 대조적으로 비교하여 등장시키는 것을 통해서 "깨어 있음에 있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등과 기름을 비유의 내용에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궁금해 하시는 님에게 도움이 되며 유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른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님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이는 또한 저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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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무 | 작성시간 10.11.20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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