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갑을병님께서
메일을 통해 질문해 주신 것에
답글을 드린 것으로서,
개혁주의신앙공동체 회원들께도
도움이 되실 것이기에
질문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 ‘질문과답’에 올린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갑을병님
님께서는
제게 주신 메일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저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할 때에 그것을 기록케 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읽고픈 마음이 아주 간절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말씀을 들을 때면 저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생각을 하면서........올바른 분별력으로 말씀을 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세기 6장 8~9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와 히브리서 11잘 7절의 노아를 언급하면서 '그러나'의 믿음을 살았던 노아를 본받자... 즉, 극도로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노아를 본받고. 순종의 노아를, 그리고 인내의 노아를 본받자.....이런 식의 말씀이었는데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지극히 옳고 아주 교훈적인 내용이긴 했지만 그러나 고개가 좀 갸웃거려졌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노아 역시 전혀 특별난 자가 아닌, 그 당시 부패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닌지요?
해서, 노아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믿음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작 그 본문에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선 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러니까 노아의 믿음을 언급하기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언급해야 하는것 아닌지...그렇지 않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으니 노아의 믿음만을 바로 강조하는 것이 그 사건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맞는건지....이런 저런 생각으로 결국은 목사님께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본 답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할 때에
그것을 기록케 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읽고자 하시는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님께서는 창세기 6장 8~9절의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히브리서 11잘 7절의 노아를 언급하면서 교회에서 설교되고 있는 '그러나'의 믿음을 살았던 노아를 본받자... 즉, 극도로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노아를 본받고. 순종의 노아를, 그리고 인내의 노아를 본받자…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노아 역시 전혀 특별난 자가 아닌, 그 당시 부패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믿음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작 그 본문에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선 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 노아의 믿음을 언급하기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언급해야 하는것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으니 노아의 믿음만을 바로 강조하는 것이 그 사건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맞는건지....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앞서 답글을 준비하겠다는 메일을 보내면서 우선 님에게 님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이제 답변을 드리는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님의 질문 부분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 6장 8~9절에서의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하신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이해부터 가져야 합니다.
노아(Noah)에 대한 첫 언급은 아담의 후손을 다루는 계보가 등장하는 창세기 5장 28-32절에서 보게 됩니다. 노아의 부친은 라멕으로서 그가 182세 되던 해에 아들을 낳고는 그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이 땅에서 말할 수 없이 고생하는 우리에게 이 아이가 위안을 주리라”는 뜻으로 지은 것입니다. 라멕이 아들을 낳고서는 이러한 이름으로 부른 것은 그 이름에는 노아가 죄로 인해 내린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바람의 기대가 들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노아 스스로가 인류를 구원할 자인 것은 아니지만, 라멕은 아들인 노아를 낳은 것에서 장차 있게 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카이저(Waler C. Kaiser)는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노아 출생시 노아에게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이전에 저주 받았던 땅 위에서의 그의 활동이 노아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된 안위를 발견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노아는 500세가 넘은 후에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출현은 전후 문맥과의 연결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노아의 이름이 등장하기 전에는 아담의 후손 중에서 아벨을 죽인 가인을 비롯하여서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에녹, 두 여인에게 장가 든, 라멕이 아다에게서 낳은 가축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야발, 그리고 그 아우로서 예능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유발, 그리고 라멕이 씰라에겟 낳은 공업 기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두발가인, 이 모두는 라멕의 노래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악한 죄성이 언급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아내와 동침하는 아담에게 아벨을 대신하는 ‘씨’를 주심으로 셋을 낳고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불렀으며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 약속에 의하여 ‘약속의 씨’가 되는 ‘산 자’의 계대성이 있음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리고서 5장에서 노아에 이르는 아담의 후손된 계보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출현이 어떤 성격으로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봄에 있는 죄로 인한 죽음의 저주아래 있는 사람의 실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 언약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6장부터 9장까지 전개되는 노아의 홍수요 또한 노아 언약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해 오신 하나님의 언약의 존재가 ‘언약’이란 공식화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때는 노아 때에 이른 창세기 6:18에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은 단순히 노아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계시 방편입니다. 노아 언약은 하나님께서 앞서 언약하신 창조 언약, 아담 언약, 그리고 ‘여자의 후손’에 의한 구원의 약속에서 계시해 주시고 있는 데 따른 연결고리에 의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시대에 연결고리를 갖고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목적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원리를 세상에 전하여 하나님이 택정하신 모든 자들을 부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은 노아에게서는 ‘생명의 보존’ 언약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노아와 맺은 언약은 이후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언약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노아 언약을 통해서 앞으로 주실 아브라함 언약을 펼쳐나가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맺은 언약에 의해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악할 뿐인데 따른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한 노아와 그 후손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크게 번성케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실 복에 대한 계획을 준비해 나가시는 것에서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전후 문맥 속에서 노아의 홍수 사건이 등장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노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손들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습니다.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땅 위 곳곳에 퍼져나가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다”(창 6:12) 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죄에서 나오는 인간의 악함으로 패괴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특징적인 것으로 셋의 계열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가인의 계열인 사람의 딸들의 통혼의 계기가 당시 죄의 관영을 급속히 부추긴 사실을 강하게 시사합니다(창 6:1-3). 그리고 이러한 죄악된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서 성경역사 속에서 ‘죄의 관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나타내십니다. 이런 원리에 근거하여서 신약의 기자는 죄의 값은 사망이요(롬 5:12; 6:23), 그 결국은 종말론적 심판임을 경고합니다(히 9:27) 따라서 노아 시대에 내린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홍수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서 사실은 죄를 고발하고 정죄하며 심판하시는 성격의 것으로 장차 있게 될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의 선인식(先認識)을 전제로 하고서, 이제 님이 하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여 멸망케 하실 것과 그로 인해서 있게 되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물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의 보존 언약을 맺으시는 일을 하시는 것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상 심판에 대한 계획인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라고 노아에게 알리시고는, 이러한 심판의 성격은 당시 모든 인류가 물 심판을 당하는 것에서 노아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구원 받게 하실 것에서 이들의 구원이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씀해줍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저자는 6장 8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한 후에, 9절에서는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의 문자적인 의미는 말이죠. 노아의 ‘사적’, 곧 “노아의 ‘역사’(또는 내력, 이야기, 계통, 자손)는 이러하다”고 하면서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그의 세대에서 순전하여 하나님과 함께 노아는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이렇게 의로운 사람인 것은, 그가 그의 세대에서 순전하여 하나님과 함께 걸어간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할 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말이죠. 노아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노아가 의로운 사람이고, 그가 그의 세대에서 순전하여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이 있게 된 동인(動因)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에게 있음으로 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하는 것이요, 이것은 당시의 죄악이 관영하여 온 땅이 패괴함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실상과는 대조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입니다. 오직 악한 죄성만 보이는 부패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에게는 그들과 대조되는 은혜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로 하여금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게 되는 타락 상태로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노아의 이런 은혜 상태는 하나님 은혜 외에 다른 것에서 나왔다고 지적하는 곳은 없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사람이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노아는 사람들이 항상 악할 뿐인 당시에 의로운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노아에게 나타난 이 하나님의 은혜의 특성은 그의 의로움에서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노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특성은 구원 언약 속에서 계속 나타나는 주제로 사도 바울에 의해 강조된 것처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경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선물로서 오게 되는데(참조. 엡 2:1-2; 8-10), 이는 앞서 언급한 ‘여자의 후손’ 약속에 계시된 구원의 원리에 근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인류의 역사 처음 때부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시행되는 주권적인 선택의 섭리역사로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한데 말입니다. 님께서 의문을 품으며 지적한 것처럼 우리네 주위의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본의(本意)에 따른 노아의 홍수와 여기에 있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왜곡하여 전혀 다르게, 참으로 엉뚱하게 해석하여서 설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말이죠. 노아의 홍수를 다루는 본문의 중심 사상과 그에 따른 설교의 초점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있지를 않고 노아에게 맞추어서 노아처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떻게 죄악된 데 '그러나' 극도로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믿음에 있었던 노아를 본받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노아를 본 받고, 인내한 노아를 본받아서 우리도 순종하고 인내하자!” 라고 합니다.
이러한 설교를 들으면서 님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노아 역시 전혀 특별난 자가 아닌, 그 당시 부패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라고 생각된다며, 노아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믿음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작 그 본문에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선 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 노아의 믿음을 언급하기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언급해야 하는것 아닌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님의 생각과 말은 옳으며, 제대로 잘 보신 것이며 바르게 이해하여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정작 교회에서 설교자인 목사는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서 노아처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서, 그래서 노아처럼 좋은 믿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에서 열심주의에 의한 믿음을 강요하는 참으로 잘못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이죠. 노아처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것을 강조하고, 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이죠. 노아가 하나님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음에 있게 하심으로 당시의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노아가 의로운 사람으로 있도록, 그리고 그가 그의 세대에서 순전하여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이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함께 해 오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노아와 함께 하심은 이후에 있을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뒤덮는 홍수의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물에서 구원해 내시고 노아와 언약을 맺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노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하시며 무슨 일을 해 나가고자 하신 것인지를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에서 구원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먼저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는 일을 해오심으로 노아가 의로움에 있게 해 오셨고 또한 순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있어 오게 하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온 땅을 뒤덮었던 물이 온 지면에서 다 걷히고 땅에 물이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때가 홍수 심판이 있은지 1년이 지난 노아가 601세가 되던 해 2월 스무이렛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 하리라”(창 8:16-1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또한 함께 방주에 들어갔던 동물들도 각각 그 종류대로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배 밖으로 나온 노아는 가장 먼저 여호와께 제사를 올릴 제단을 쌓고 제물로 드리기에 적합한 정결한 짐승과 새를 각 종류대로 가려내어 제물로 잡아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 제물의 향기를 맡고 만족해하시면서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1-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홍수를 내려서 모든 생물을 멸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서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고 거두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에서 이어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 내리시며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1-3)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노아의 후손의 생육과 번성과 땅에 충만할 것을 말씀하시며, 또한 모든 짐승들을 양식으로 삼을 수 있게 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되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명의 주도권이 하나님 자신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는 중에 이미 양식으로 삼고 있는 식물과 함께 짐승들을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그들의 생명이 보존되고 있는 것도, 또한 살아있는 모든 짐승들이 사람들의 양식이 됨으로써 사람들을 위하여 제공되고 있는 것도 모두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되고 있음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들어 있는 노아와 그에게 속한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시며 살펴 가시는 까닭에 그러한 사람의 피를 흘려 생명을 빼앗으면 그의 생명의 주가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피값의 갚음이 되시겠다는 것으로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창 9:6)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생명 있는 자에 대한 보존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는 창세기 9장 8-17절에서 공식화됩니다. 이곳 1-7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여 나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에 이어서 10-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들의 뒤를 이을 자손들과도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배 안에 있던 모든 짐승들과도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은 계대성을 띠며, 이 언약을 통해서 사람과 생물과 그들이 사는 땅을 보존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노아와 언약을 세우심으로 노아와 맺은 약속을 확정하시고 확고히 하셨습니다. 이 노아 언약은 창세기 9장에 와서 세워지지만, 사실은 홍수 심판이 행해지기 전, 곧 방주에 들어가기 전인 창세기 6장 18절에서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우시는 언약이 홍수 심판이 행해지기 전인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 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은 홍수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지기 전에 이미 노아와 그의 가족이 구원에 포함된 것이 언약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그의 가족들의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미 작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전우주적인 홍수에 의한 세상의 심판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것을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온 세상에 말해가기 위하여서 노아 시대에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세운 언약에서 나타내 보이시고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무지개를 표징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창 9:12-17).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로 노아와 세운 언약은 노아 당대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시기에 자신의 신실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언약도 영원히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에게 속한 가족들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짐승들과 함께 영원토록 언약을 맺었다는 표징으로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삼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는 언약의 표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이용하여서 언약의 표징으로 삼으신 것은 이것을 가지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자손들을, 또한 모든 생물들을, 그들을 물에서 구원하시고 또한 생명을 보존해 가시는 하나님에게 예속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무지개를 표징으로 세운 언약을 기억하여 이 언약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맺은 자신의 언약에 참으로 신실하십니다. 언약을 지켜 나가는 것은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 안에로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이 있기 전에 노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홍수 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언약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에 온전하십니다. 우리가 노아 시대에 있은 홍수 심판 사건에서, 이때의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본의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알아가시며
그 믿음에 잘 서나가시는 님에게
도움이 되며
유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