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 읽을 만한 책의 선별과 (2) 요한계시록 12:2에서의 ‘여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와 12장의 해석에 대한 답글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1.10.17조회수287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동무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날이 점차 추워지는 가운데서
님께서 공원을 거니며
밤을 많이 주어오셨다니
정겨움을 느낍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공원에서 사람들이 밤이나 은행 등을
주울 만큼 떨어져 있는 것을 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주울 수 있다고 할지라도
동물들이 먹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도 없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여유롭게 공원을 거닐며
떨어져 있는 밤,
도토리 등을 줍는 광경에
정겨움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님은
두 가지를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읽을 만한 책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님이 읽은 책들 중에는
잘못된 소개로 인해서
책을 읽음으로 인해 얻는 유익보다는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적지 않은 고통의 해를 입은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 읽는 것에
조심스러움을 가지게 되다보니
이런 저런 책에 대해서
읽어도 되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합니다.
해서,
도움이 되어야겠는데,
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님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님이 읽어도 괜찮은 것인지를 물으며
제시한 책들의 대부분을 제가 알지를 못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님은,
Exposition of Ephesians by Goodwin-Bayne
Exposition of Ezekiel by Patrick Fairbairn
Exposition of Galatians by John Brown
Exposition of Hebrews by J Owen
Exposition of Songs of Solomon by John Gill
Exposition of Leviticus by A A Bonar
Exposition of John17 by John Manton
Suffering and Glories of the Messiah by J Brown
Temptation and Sin by John Owen
Justification by Faith by John Owen
The Ten Virgins by Thomas Shepherd
The Person and Glory of Christ by John Owen
을 제시하였는데,
제가 님이 제시한 책들을
대하고 읽은 것이 별로 없어서
그 내용 자체를 알지 못하기에
님이 읽을 만한 책인지 아닌지를
답변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John Owen의 경우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그 이름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명성 있는 분이시기에
이 분이 쓴 책은 어떤 제목으로의 글이든지 간에
소개하기에 그 누구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오나,
제 경우는 이 분의 책에서
‘성령론’(The Holy Spirit : His Gift And Power)을 읽은 것 외에는
이 분의 책에 대해서 크게 선호하지를 않아,
이 분의 또 다른 어떤 책에서는 부분적으로 읽은 것 외에는
이 분의 책 전체를 읽는 기회를 그리 갖지를 않았습니다.
해서, 이 분의 책들에 대해서 제가 잘 알지를 못합니다.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는 이 분의 책이 읽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해서가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님이 제시한 책들은
성경의 각권의 내용을 설명해 주거나
경건의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 여겨지기에
다양한 많은 책들을 읽으시는 것은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중에
님 자신이
어떤 책이 읽을 유익한 것인지와
읽어서 유익하지 못한 것인지를 분별하고
그에 따라서
책을 선별하여 읽을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길 것입니다.
이는
책 제목에서도,
또는 목차를 보고서도,
또는 머리글을 보고서도
님 자신이 읽을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사고력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여기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리지 못함에
죄송함을 표합니다.
한편,
님은 읽어도 괜찮은
추천할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님에게 읽을 책으로서는
성경의 어떤 주제나 제목에 따른 책을 읽는 것보다는
(이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며, 도움과 유익하기도 합니다)
성경 자체, 곧 성경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이는
성경의 한 부분에 대한 내용을 아는 것에 두지 말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본의를 알아 가는데
마음과 힘을 썼으면 해서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으로서는
제가 영문으로 된 책을 그리 알지를 못합니다.
제가 별로 소유하고 있지도 않으며, 잘 알지도 못하구요.
그래서
제가 추천할 수 있는 책으로서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필요한데,
제가 갖고 있는 영문책에 한해서 소개하면,
D. 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와
Raymond E. Brown, (The Anchor Bible)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이 괜찮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두 권만 해도 두껍습니다.
이 둘을 놓고 그 내용을 대조해 보면서
요한복음에서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행적에 의한 가르침을 따라서
찬찬히, 그러나 서서히 좀 더 나아가는
공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예수님이 온 세상에 구주가 되시는
복음의 절정과 그 핵심에 도달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한 후에
이와 관련하여 더 필요하다 싶은 것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복음이 뭔지에 대한 관점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온 세상에 주어져야만 했는지를 알기 위한 것으로
이에 대해 필요한 하나님의 언약적 관점을 아는 책을 읽고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언약적 관점으로 구약성경을 해석(설명)한 책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는
나중에
님이 필요하면
그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질문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요한 계시록 12장 2절의 여자를 교회로 보는 신학자들도 있고 이스라엘로 보는 신학자들도 있는데,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요한 계시록의 해석이 달라진답니다.”
라고 하면서,
“어느 것이 맞는 해석인지 성경 말씀에 근거로 알고자 합니다. 그 해석에 따른 요한 계시록 해석도 알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답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님이 읽은 ‘여자’가 말해지고 있는 요한계시록 12:1-2을 보겠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태양>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요한이 본이 광경은 장차 일어날 일을 상징한 큰 이적이 하늘에 나타나 보여 졌다는 것인데, 그 내용은 한 여자가 해<태양>를 입고 있었으며 달이 그 여자의 발 아래에 있고, 그 여자의 머리 위에는 열 두 개 별의 면류관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그 여자는 임신하고 있는 상태에 있어서 태 속에는 아기가 자라고 있었고, 임산부인 그 여자는 해산이 임박하여 산통 때문에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본 하늘에 나타난 이적의 내용은 이런 것인데, 이것은 상징성을 띤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님은 ‘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여자’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이야기가 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님은 자신이 들은 두 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는 ‘여자’는 교회를 말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자’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의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2:2에서의 ‘여자’ 에 대한 해석은 님이 들은 이 두 가지 외에도 이 ‘여자’를 마리아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고대 교부들입니다. 그리고 님이 들은 바와 같이 일부 신학자들은 이스라엘로 보며, 또 다른 신학자들은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1) 고대 교부들이 ‘여자’를 마리아라고 보았던 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현대의 카톨릭교회도 그렇습니다. 즉, 카톨릭교회도 ‘여자’를 마리아라고 말하는 것에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로나 교회로 보는 것인데, (2) 카톨릭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봅니다. a) 그런데 ‘여자’를 이스라엘로 보면서도 내면적 이스라엘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닌 표면적 이스라엘로서의 이스라엘, 그러니까 구약성경에서의 이스라엘, 즉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면적 이스라엘인 참 이스라엘로 이루어지는 교회와는 무관한 이스라엘로 봅니다. b) 그렇지만 신학자 대부분의 견해는 ‘여자’를 교회와의 관련에 의해서 이스라엘로 봅니다. (3) 그런가 하면 a) ‘여자’를 기독교의 교회라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를 기독교의 교회로 보게 되면 무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회는 사도들이 섬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의해서 세워지는데, 여기에는 이 복음에 따른 참된 교회도 있는가 하면 이 복음을 이용한 거짓된 교회도 함께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두 종류의 교회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 역사 속에서의 기독교의 교회 그 자체를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b) 그러므로 ‘여자’를 기독교의 교회로서가 아닌 신구약을 총망라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공동체인 교회로 보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견해일런지요. 요한계시록에서의 이 ‘여자’가 누구인지는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요. 요한계시록이 누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누구에게 말해지고 있는가에 ‘여자’가 상징하고 있는 상징성에 대한 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요. 교회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으로 말미암아서 장차 교회에 하실 일을 예언적인 계시로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는 곳 그 어디에서든지 항상 함께 하시고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때 이 교회는 말이죠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라고 말씀되고 있는 자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인데,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동일한 다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신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지칭하고 있는 ‘교회’라고 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만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또한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신구약 교회 전체로 봅니다. 여기까지가 요한계시록 12:2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여자’에 대해 가져온 견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에 대해 동의하며, 따라서 인정하여 이러한 견해를 갖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이해를 하는 관점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한이 본 ‘여자’는 그 교회가 있게 하는 ‘아들’을 낳게 되는 것에서 등장하며(계 12:1-5), 이 여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언을 가지고 있는 자들 -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신앙고백 하는 예수께 속한 자들 - 인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있게 됩니다(계 12:17). 그리고 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용이 ‘여자’가 낳는 즉시 삼키려고 한 ‘여자’가 낳은 아들(계12:4-5)에 의해서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 - ‘여자가 낳은 아들’ -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신구약을 망라한 총체적인 ‘교회’라는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자’와 그 여자로부터 나오는 ‘아들’과 그 아들로 말미암은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관계성에 의한 넓은 의미에서는 신구약 전체적인 하나의 ‘교회’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한 언약적 관점에서 다루게 되면, 여기서의 ‘여자’는 교회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오게 할, 그래서 ‘여자의 후손’을 품게 될 ‘여자’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것이 창세기 3:15에서 예언되고 있는 계시인 ‘여자의 후손’을 오게 하실 것으로 세워지는 ‘여자’에 의한 구원 약속이며, 그에 따라서 창세기 3:20절에서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는 ‘여자’입니다. 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한 ‘언약의 씨(후사)’를 품게 되는 ‘여자’에 의해서 ‘아들’의 잉태가 있으며, 마침내 ‘여자’가 낳은 ‘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속한 자임을 신앙고백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있게 됩니다. 님이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 3:15에서의 ‘여자의 후손’에 의한 구원 약속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는 하지 않겠습니다. 님께서는 단계별학습에 올려놓은 이 부분에 대한 글을 통해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님은 요한계시록 12:2에서의 ‘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을 통해서 요한계시록 12장에서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장차 일어날 일을 상징하는 것에서 환상으로 주신 여자와 용의 등장을 통해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는 잉태한 여자가 해산이 임박하여 진통 중에 아들을 낳는 것이었으며, 다음으로는 붉은 용이 나타나 해산하려고 하는 여자 앞에 서서는 아기를 낳는 즉시 삼키려고 하나 마침내 여자가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기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갔고, 여자는 광야로 도망쳐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처소에서 1260일 동안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이죠.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는 ‘여자’에 의해서 오게 되는 ‘여자의 후손(씨)’인 ‘아들’, 곧 그리스도의 출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있게 되는 여자가 낳은 아들을 삼키려는 사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패배를 안게 되는 것을(4-5절), 하늘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모습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7-9절). 그래서 미가엘이 그의 사자(천사)들을 데리고 용과 그의 사자(부하)들과 맞서 싸웠으며, 마침내 용과 그의 사자들은 그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어 패배하였으므로 더 이상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찾을 수가 없었으므로 쫓겨나게 되었는데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큰 용, 곧 옛 붉은 뱀은 그 부하들과 함께 땅으로 내던져졌다는 것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용은 자기가 땅에 내던져진 것을 알고는 아들을 낳은 여자를 해하기 위하여 뒤쫓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를 광야로 도망치게 하여 미리 준비한 처소에서 1260일 동안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인데(6절) - 요한계시록 20장에서는 이 기간을 천년이 지날 때까지의 기간<천년왕국>으로 표현한다 - 이로 말미암아서 여자는 그 준비된 처소에서 용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안전히 보호를 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여자가 낳은 아들을 삼키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그 아들에 의해서 패배하여 하늘에서 땅 - 무저갱/밑 닿는 데가 없는 끝도 없이 깊은 구렁텅이로 용<옛 뱀이라곧 불리며,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의 활동이 제한된 결박 상태를 나타낸다. 사단은 만국을 미혹하는 일을 할 것이나, 천년이 지나기까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미혹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함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사단은 단 한 사람도 미혹시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 외에는 사단은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에 한해서 사단은 활동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 따라서 사단은 천년이 지날 때, 곧 천년이 끝날 때 갇혀 있던 감옥인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나는 하나님의 결박에서 잠시 풀려 나 만국을 미혹하여 마지막 전쟁을 일으켜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과 함께 영원히 고통당하는 불못의 지옥에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으로 쫓겨나 그곳에 갇혀 있는 동안에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미혹하여 마지막 전쟁을 일으킬 것인데, 그 동안에 용은 여자를 박해하는 일에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산 자의 어미’로 있게 하시는 ‘여자’로 말미암아 오는 ‘여자의 후손(씨)’인 ‘아들’을 삼키려고 한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해 나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속한 자’임을 분명히 고백하는 신앙에 있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여자’를 뒤쫓는 것이었습니다(13-17절). 하지만, 이러한 용의 시도 또한 반드시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여자’가 낳은 아들에 의해서 있게 되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 -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교회- 은 하나님의 보호와 살핌 속에서 그 안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0-12절은 그에 대한 하늘의 찬송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보살피실 것에 대한 보장을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음성으로서의 찬송을 통하여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찬송을 9절에서 용이 그 사자들과 함께 땅으로 내던져지는 것을 말씀하고, 13절에서 용이 이처럼 자기가 땅에 내던져진 것을 알고는 아들을 낳은 여자를 뒤쫓아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그 사이에서 있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10-12절을 9절과 13절 사이에 삽입된 구절, 곧 삽입구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6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 - 하나님의 백성 - 를 용의 공격 속에서도 그 생명을 안전히 지켜 보살피실 것에서 안전장치를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권능과 왕국<지배>과 그리스도 권세가 나타났으니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형제된 하나님의 백성을 고소<참소, 무고>하던 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던져짐으로써 예수님의 형제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단을 이긴 자로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어린양을 위해서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늘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 - 교회 - 는 기뻐할 것이지만, 그러나 땅에 사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사단이 그들이 사는 그 땅에 내려갔기 때문에 그들은 사단과 더불어 다 영원한 불못에 내던져질 것이니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구약성경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후손(씨)’으로 예언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죽음, 부활, 승천으로 있게 된 것에서 설명되고 있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승리자)’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인 하나님의 백성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살피심이 얘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낳는 ‘아들’을 삼키려고 한 사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서 여자가 낳은 ‘아들’로 말미암아 그의 형제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삼키려고 여자의 뒤를 쫓아갈 것이지만 이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사단은 최후의 패배자로 끝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살피심에 의해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사단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삼키려고 했듯이 또한 자기들을 삼키려는 시도를 하는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임을 고백하는 신앙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변의 글을 마칩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이 예언되고 있는데다가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상징성으로 말미암아서 그 이해가 쉽지 않은 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으로 보기가 쉽습니다만,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우리에게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알기 어려우며, 알 수 없는 말씀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들어서 하나님이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주시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읽는다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후 문장의 문맥에 따라서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살핌에 있어서 마땅히 우리가 기울이고 가져야 자세일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본 답글의 도움을 받아서 님께서는 님이 읽는 말씀을 정독하시며 보다 그 의미를 자세히 깨달아 알아 가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는 오늘 이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섬겨나가는 믿음에 있고자 하는 님에게 그 믿음에 있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더욱 견고하게 갖게 해 줄 것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