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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답

Re:'장례에 대하여...'의 답 글 입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2.12.07|조회수563 목록 댓글 0
목사님의 글들을 통하여 누리는 유익을 커다란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들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장례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현재 교회에서는 장례절차에 따라서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이렇게 나누어서 4번에 걸쳐서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상 장로교 헌법에서도 당연하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정장복 교수님이 번역한 레쉬만의 "westminster directory"를 보면서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생각케 하였습니다.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서 장례예배를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선배들의 모습과 또 더불어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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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님, 개혁주의 신앙 안에서 늘 관심을 갖고 찾으시며, 큰 유익을 얻고 계시다고 하니 본 까페를 운영하는 주인으로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으며 용기도 얻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이 땅 한 곳에서 복음의 진리 안에서 주님의 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가고 계실 것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님의 질문을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례에 관한 님의 질문에 개혁주의 신앙 안에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여서 바른 교회를 이루어 가려고 힘쓰는 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견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님께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선배들의 모습과 또 더불어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사실 나는 장로교회에서 목사로 사역하면서(지금은 아닙니다) 성경적인 교회로 개혁해 나가는 개혁교회를 지향해 나왔습니다만 우리네 교회가 말하는 개신교(개혁신교 or 개혁교회;장로교회)의 하나였지 역사적 전통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세계 개혁교회(개혁교회와 개혁장로교회)의 실체 속에서 개혁교회를 경험한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혹 님께서 생각하시는 개혁교회(현존하는 역사적 전통의 개혁교회)가 장례에 대하여 어떤 입장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서 언급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다만, 님의 질문에 답해 나가는 글에서 실제 개혁교회가 장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신을 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그리고 실제 개혁교회 속에서 몸 담았던 분의 글에서 간략히나마 언급을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교회의 장례 문화는 과연 성경적인가? 이렇게 물으면서 님의 질문에 아래와 같은 글의 전개로 답해 나가고자 합니다.


고려되어야 할 장례 문화와 개혁교회의 장례식 모습

님께서 알고 계신 대로 현재 우리 나라 교회는 장례 절차를 ①입관예배 ②발인예배(장례예배) ③하관예배의 순서로 합니다. 이는 장로교 표준 예식에서도 다루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전에 '임종예배'라는 것도 드립니다. 그래서 모두 4번에 걸쳐서 진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장례 절차는 각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우리네처럼 모두 4번에 걸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각 나라의 장례 문화가 고려되어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네 교회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고인의 장례의 절차를 4번에 걸쳐서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며, 또는 그렇지 않고 달리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가령 (호주나 화란)개혁교회에서는 장례를 교회가 주관하지 않고 가족과 친지 중심으로 합니다. 이는 개혁교회의 교회정치에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고 가족의 일이니 이에 상응하게 치루어져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65조). 따라서 입관예배이니 발인예배이니 하관예배이니 하는 우리가 하는 예배 의식의 절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입관과 발인과 하관의 절차는 매우 단순합니다. 입관은 장례(발인)를 하기 전에 한두 시간을 정해서 가족과 친지들이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때면 장의사에서 관의 뚜껑을 열어 놓고 조문객을 맞습니다. 그리고 장례일에는 장례식을 가정에서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교회당에서 갖기를 원하기 때문에 교회당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고인의 시신을 교회 앞(또는 안)에 운구하여 두지 않습니다. 교회에서의 모임이 마칠즈음이 되면 장의사로부터 시신을 실은 장의차가 교회 앞에 도착하게 합니다. 이때에는 시간을 낼 수 있는 교인들은 거의 참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임도 교회적인 모임의 성격이 아니라 가족과 친지를 위로하는 모임입니다. 이때 찬송을 하고 말씀을 읽고 위로하며 기도한 후에는 바로 장지로 향하는데, 교인이 꽃을 가지고 와서 조문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는 꽃이 별세한 분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고, 슬픔을 당한 유족에게도 뜻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지에서 하관하는 절차도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네처럼 말씀을 읽고 긴 시간을 말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둘러서서 사도신경을 다 같이 고백하고, 목사가 합당한 성경을 읽은 다음에 주기도문으로 끝을 맺습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축도는 교회의 공예배에서만 하기 때문에 어떤 장례 절차에서도 축도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장례 절차가 이렇게 매우 단순하게 치루어지지만 그러나 결코 장례를 가볍게 다루고 소홀히 치루지는 않습니다. 매우 정중하고 엄숙하게 치룹니다. 이는 어른의 장례에서나 아이의 장례에서도 꼭 같습니다(*개혁교회의 이러한 장례 모습은 허순길이 쓴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에서 소개되어 있습니다).


장례 절차에서 '예배'라는 말을 써야 하는가?

장례를 어떤 절차로 치루어야 하느냐는 것은 각 나라가 갖고 있는 장례 문화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장례 절차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닙니다. 해서 여기서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해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의 장례 문화에서 정말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장례에 '예배'라는 말을 쓸 수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님께서는 "얼마 전 정장복 교수님이 번역한 레쉬만의 "westminster directory"를 보면서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생각케 하였습니다.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서 장례예배를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장례예배는 금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선 장례에 예배라는 말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가 성령의 교통에 의한 교회적인 모임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교회적인 그런 공적인 모임은 아닐지라도 가족 간에서든 서로 믿는 자들 간에서든 사적인 모임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를 다하여 절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행위입니다. 교회는 공적인 모임(예배를 위한 집회)에서 예배의식에 의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교회는 이 예배를 주일에 행하기 때문에 '주일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예배'가 우리네 교회에서는 심각하게 변질되어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분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기쁨과 자랑을 위하여, 또는 기타 목적으로 예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목사 (장로, 집사)임직 예배'라든지 '권사 취임 예배'가 그것입니다. 교회 직분 만에서가 아니라 '출판 기념 예배'라든지 '회갑(수연) 기념 예배', '돐 예배', '개업 예배', '사업 확장 예배', '교회 이전 예배', '성전 봉헌 예배', '교회 20주년 기념 예배' 등 참으로 온갖 명목에 예배가 쓰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사실은 혼인과 장례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결혼 예배', '장례 예배'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단언하건대 이런 것은 그 어떤 경우에서도 '예배'란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사실 장례에 관하여 장로교 표준 예식에서도 장례예배란 말을 쓰진 않습니다. '장례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란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입관식', '발인식', '하관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입관식(이나 발인식이나 하관식)을 집행하면서 정작은 '입관(발인, 하관)예배를 드린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예배의식으로 합니다. 예배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설교'와 '축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위로와 권면의 말을 전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대신) 제13장 장례식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1. 장례 때에 마땅히 행할 예식은 적당한 시나 찬송을 부르고, 합당한 성경을 낭독하고, 목사의 생각한 대로 합당한 설명을 하고, 특별히 비참한 일을 당한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며, 저희의 슬픔이 변하여 영원한 유익이 되게 하며, 저희가 보호하심을 받아 비참한 가운데서 위로함을 받게 기도한다.
2. 이 장례식의 주례 목사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많으나, 그 주요한 뜻을 잃지 말지니, 경계함과 훈계함과 생존자 위로함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誤用)하여 신앙 없이 생활하다가 별세한 자도 복음의 소망이 있다고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다루어져야 할 장례가 예배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리네 교회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장례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를 사용하여 장례예배로 해 나가는 것은 단지 "교회가 실수하고 잘못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닌 '죄악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장례예배란 말은 죽은 자를 위하여 하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아 있는 유족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설교를 한다고 하지만, 설교는 그야말로 예배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장례예배란 죽은 고인을 장례하는 일에 예배를 사용하는 것이니 이는 분명 죽은 자에 대해 예를 다하는 그 안에서 유족 또한 상대하는 것이므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는 신앙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죄악인 것입니다. 죽은 자는 그 때로부터 그의 영원한 상태가 결정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는 하늘에 이미 가 있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주 밖에서 죽은 자는 이미 영원히 버림을 받아 지옥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2장 사후 상태와 죽은 자의 부활에서 1항에,

"…의인의 영혼은, 죽는 순간에 거룩함으로 완전케 되어,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러나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거기서 고통과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지내며 마지막 날의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가게 되는 천국과 지옥 이 두 장소 외에 성경은 다른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교인의 부탁으로 믿지 않는 부모나 형제나 자녀의 장례를 교회가 치루어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으로 이미 지옥에 가 있는데.....죽은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연 생존해 있는 유족을 위해서라면 그 또한 장례식이어야 하지 장례예배라니요!.


장례예배는 구교(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으로의 회귀를 뜻함

개혁교회는 장례를 교회적인 일로 보지 않습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서는 혼인에 관해서나 장례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갖는 거룩한 예전(禮典)으로서는 오직 '세례'와 '성찬'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거 교회(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죽은 자의 장례를 위해 교회에서 예배로 모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교인들은 죽은 자를 위해 송영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는 성경적인 처사가 아닙니다. 미신적인 일입니다(허순길,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 개혁교회는 교리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잘못된 예배 의식에서도 완전히 단절해 왔습니다(마틴 루터의 교회는 교리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단절하였지만 예배 의식은 벗어버리지 않고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존 칼빈의 개혁교회는 교리에서도 예배 의식에서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는 완전히 단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소위 개혁주의 교회요 근본주의 교회요 복음주의 교회요 정통주의 교회를 부르짖는 우리네 교회는 장례에서조차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으로 회귀해 가는 실정입니다. 이는 장례에서만이 아니라 결혼에서도, 그런가 하면 교회 건물과 내부 장식에서 등 온갖 것에서도 보입니다.


말을 맺으며.....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의 말로 맺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전통있는 그런 실제 개혁교회이든, 아니면 그 개혁교회의 영향을 받아 개혁교회로 왔든지간에 개혁교회의 신앙 속에 있는 교회라면, 장례에 관한 절차를 비롯하여 모든 일에서 항상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그래서 '과연 복음적인 신앙인가?를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장례를 장례예배란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하는 것이나 장례를 실제 예배 행위를 해 가면서 하는 것 모두가 비성경적이요 비복음적인 신앙이라고 하면 마땅히 이를 금하고 장례를 합당한 방식으로 치루는 것이 옳습니다. 개혁교회는 바로 이런 것 하나 하나에서도 개혁교회의 성격을 분명하게 띠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님이여!, 님의 질문은 나에게서 기독교의 장례 문화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네 교회가 하고 있는 장례예배의 문제점이 주 내용이다보니 정작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기독교의 장례 문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루지를 못했습니다(기독교의 장례 문화는 이외에도 '매장'이어야 하는가? '화장'하면 안 되는가? 등도 일방적 견해에서가 아니라 성경적인 이해와 함께 시대가 안고 있는 상황과 각 나라의 문화와 형편을 고려하여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호주나 화란 등의 개혁교회를 통해서 개혁교회의 장례에 대하여는 "그렇게 하고 있구나!." 하고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되었지만, 과연 개혁주의 신앙으로 교회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우리네 교회에서도 그것을 본으로 삼아서 그대로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우리네 교회의 장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나은 것인지는 서로 많은 대화를 하는 중에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뜻을 모아 가야 할 것입니다. 그 필요성을 느끼면서 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맺겠습니다. 언제 한번 님과 여기에 대해(꼭 이것이 아닐지라도) 진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님의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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