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기 계시]
우리가 아는대로 성경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이는 성경이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조 세계에 당신을 드러내심으로 특별히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당신을 조명하기 위함이며 지혜와 능력을 통하여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시기 위한 점이라는 것이다.
감히 범죄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을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조명하신 성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를 발견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을수 있을뿐이다.
ㅇ계시에 대한 단어의
<갈라>나타나다,돋아나다, (타)떠나다,누설하다,벗기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언급해야할 부분이 계시에 대한 이해 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계시에 대한 것으로는"나타나다, 보여지다" 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어라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본사람이 없다 하셨다 보는것에 우리의 촛점이 맟추어진 기분이다.
물론 아브라함 시대나 모세의 시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발견하게 된다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성경의 지식을 가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때론 이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를 이해하기 의해서는 "벗긴다" 라는 뜻을 바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해하는 계시의 보여지는 혹은 나타나는 그래서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여주셔도 나타나셔도 우리가 "경험할수 없고 발견할수" 없는 당신을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해되고 경험할수 있는 분으로 혹은 상태로의 비하 혹은 낮아지심으로 강조한 것이라 이해 하여야 할 것이다.
<단2:
적어도 우리가 이해 해야할 계시의 의미는 <사45:15_>의 언급에서도 나타난 대로 스스로 숨어 계신 하나님 그래서 사람의 지혜로나 공력으로는 결코 발견할수 없고 그래서 알지못하고 가까이 갈수 없없던 하나님이 스스로의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당신을 벗으시므로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의 전편에 걸처 나타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치아니하고, 혹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으로 알지못하고 성경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성경의역사는 세상의 역사와다를바 없으며,그러한 역사속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사람의 이야기와 세상의 일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관을 갗고 성경을 대하게 될때 우리는 그역사속에서 당신을 벗으신 하나님 을 경험하게 되면 ,그역사속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을이루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이럴때 또한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라 부를수 있는 것이 아니가.
ㅇ계시의 적용면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벗으셨으며, 어떻게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신가,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있으며, 무엇을 보길 원하는가.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길 원하시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들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이라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성경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웃지못할 여러가지 오류들을 대하게 된다.
그중의 한가지 실예가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기도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즉 성경에 나타난 어떠한 특정인물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자는 미명아래 아브라함이 .이삭이 야곱이 요셉이``다윗이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해석의 방법들을 택하는 것이다.
말이 졸하여 바르게 표현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참모습은 어떤 사물이나,특정사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것이다.
오히려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고 일하시는가에 우리의 촛점을 맞추어야 할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우리의 성경관이 말로는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을 하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것이다.
과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바른 성경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성경의 모든 사건과 역사는 이렇한 하나님의 계시를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기억하여야 할것이다
<무엇을 드러내고 계신가>
ㅇ 하나님의 계시
적어도 오경에 나타난바 대로라면 당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지식과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출32:1- , 레17:7- ,대하15:3- 행76:42- ,암5:25- , 렘7:21-)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가 당신을 드러내셔야 했던 계시의 필요성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성경의핵심이라 할것이다.
1.창조자 하나님
<렘10:11->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일 것이다. 이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계시이며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창조자 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롬1:20->
이로 보건데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하는 점이다. 그분은 어떠한 분인가 오직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창조자 이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길 힘썼으며.피조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가. 특히 우리가 찿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범죄한 인생이 만나고 경험해야 할 하나님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
이는 참으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야 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적어도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 전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를과 함께하셨던 분이라는 사실이 모세가 그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하나님 즉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자로서 계시하심으로 마쳐서는 큰 오산이다.
사실 우리의 지혜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이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자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위대성을 짚고 생각하고자 하는바이다.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자로서 계시하심에 대하여 우리의 촛점은 지금 창조자 하나님을 통하여 감히 경험할 수 없어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의 계시에 대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 인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을 볼수 없다 그러나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한부분로서 우리는 감히 성경이 말하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는것이다.
과연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얼마나 고백했던가, 감히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상상이나 해 보았겠으며,능력의 근거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였음을 알았다면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였으리라.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릇되게 드러나기 시작하므로 신앙의 혼돈을 갖게 되었고 그릇된 신관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때 (살후2:1-12) 그러나 한편으로 감사한 것은 능력이란 허울로 하나님 행세를 하려는 어리석은 사단의 궤계를 발견함을 기쁘게 생각하며, 하나님이 계시 하시는 는 능력과 사단의 역사로 임하는 거짓능력을 분별할수 있는 은혜를 발견하게 됨이 매우 유익이라 할것이다.
즉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그런대도 우리가 말하고 경험했던 능력의 역사나 경험하길 원하는 능력을 우리는 어디서 찾고 있으며,이것이 능력이라고 증거하려 했던가.
이제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천지의 시작을 선언함과 동시에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능력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능력으로 하나님임을 드러내기 위해여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심으로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신 것이다. 과연 하늘 아래 누가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창조자 이시며. 이러한 천지 창조의 역사는 여호ㅗ와가 하나님 되심의 위대한 계시인 것이다.
창조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 되심의 하나님의 능력은, ,즉 참으로 다시금 고백하지만 우리는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그 만드신 창조의 능력을 통하여 경험할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대도 참으로 우리의 심정은 무감각하지 않는가, 참으로 하나님이 창조자 하나님이라 하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그것이 곧 우상 숭배며 능력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과는 달리 그것을 도용해 헛된 세상의 부를 축척하려는 신앙을 빙자한 탐심자가 아니겠는가.(.창3:1-7; 일반적인 이방의 신관; 눅12:13-.골3:5-; 요일2:12-17; 계 3:14-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 혹은 이나라 개개인의 신앙인 가운데 존재하는 몇가지의 신앙의 병들에 대하여 우리는 한번 정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혹자는 우리나라의 신앙상태를 기독교적인 생각에 불교적사상(마음)과 유교적인 행동의 한국교회를 지적한바 있다.이는 이 나라 모든 신앙인이 경험했던 바 유교와 불교적 관습에 기초한 기독교적 우리의 신앙을 검해야할 것이다
과연 절에 나가던 사람이 교회로 나온다고 기독교인 인가 유교적 관습에 살던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고 기독교인이 되는가 하는점이다 .조금은 비약되 사상 같지만 이방의 사람이 부르던 신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뀐다고 기독교 인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는 근본적인 변화 적어도 이방의 신전에 있던 사람이 교회로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바뀐 사람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화는 바이며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믿느다던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 이라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며 우리는 그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온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정검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 이상이 있음을 겸손이 하나님께 고백하고 이제라도 다시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앞에 겸손이 엎드려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ㅇ창조자가 하나님 되심 -창1:1-의 핵심은 신에대한 계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연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존재는 어떻게 이해하며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창1:1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개념과는 맹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보편적인 세상에서의 하나님은 인 면이나 추상적이며.사머니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라는 한정된<고후11:13-15, 살후2:10-> 혹은 성인군자<비 예수님당시의 가이사나, 헤롯왕 등>,더나아가 좀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을 유추해 내려는 사상들을<구약의 신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해는 매우 확실하며,또한 절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이시라는 점에서세사의 어느신과도 비교할수 없는 매우 절대적인 분 이라는 사실이다,<렘10:-11-> ㅡ특히 우리의 하나님을 출애굽에서 자세히 드러내셨지만 그분만이 "스스로 계신 자존자" 이시며, 이름이 "여호와" 라는 사실을 매우 실제적이고도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다.
특히 여호와께서 창조자 되심은 아담의 범죄 후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수 있다.
사실 하나님의 창조자 되심에 대한 지혜는 너무 막연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엔 우리의 지혜가 부족함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의 범죄 후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과연 여호와께서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 이시며 모든 피조물이 창조이신 여호와를 드러내기에 기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대로 성경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이는 성경이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조 세계에 당신을 드러내심으로 특별히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당신을 조명하기 위함이며 지혜와 능력을 통하여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시기 위한 점이라는 것이다.
감히 범죄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을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조명하신 성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를 발견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을수 있을뿐이다.
ㅇ계시에 대한 단어의
<갈라>나타나다,돋아나다, (타)떠나다,누설하다,벗기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언급해야할 부분이 계시에 대한 이해 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계시에 대한 것으로는"나타나다, 보여지다" 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어라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본사람이 없다 하셨다 보는것에 우리의 촛점이 맟추어진 기분이다.
물론 아브라함 시대나 모세의 시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발견하게 된다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성경의 지식을 가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때론 이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를 이해하기 의해서는 "벗긴다" 라는 뜻을 바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해하는 계시의 보여지는 혹은 나타나는 그래서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여주셔도 나타나셔도 우리가 "경험할수 없고 발견할수" 없는 당신을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해되고 경험할수 있는 분으로 혹은 상태로의 비하 혹은 낮아지심으로 강조한 것이라 이해 하여야 할 것이다.
<단2:
적어도 우리가 이해 해야할 계시의 의미는 <사45:15_>의 언급에서도 나타난 대로 스스로 숨어 계신 하나님 그래서 사람의 지혜로나 공력으로는 결코 발견할수 없고 그래서 알지못하고 가까이 갈수 없없던 하나님이 스스로의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당신을 벗으시므로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의 전편에 걸처 나타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치아니하고, 혹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으로 알지못하고 성경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성경의역사는 세상의 역사와다를바 없으며,그러한 역사속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사람의 이야기와 세상의 일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관을 갗고 성경을 대하게 될때 우리는 그역사속에서 당신을 벗으신 하나님 을 경험하게 되면 ,그역사속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을이루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이럴때 또한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라 부를수 있는 것이 아니가.
ㅇ계시의 적용면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벗으셨으며, 어떻게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신가,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있으며, 무엇을 보길 원하는가.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길 원하시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들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이라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성경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웃지못할 여러가지 오류들을 대하게 된다.
그중의 한가지 실예가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기도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즉 성경에 나타난 어떠한 특정인물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자는 미명아래 아브라함이 .이삭이 야곱이 요셉이``다윗이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해석의 방법들을 택하는 것이다.
말이 졸하여 바르게 표현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참모습은 어떤 사물이나,특정사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것이다.
오히려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고 일하시는가에 우리의 촛점을 맞추어야 할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우리의 성경관이 말로는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을 하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것이다.
과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바른 성경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성경의 모든 사건과 역사는 이렇한 하나님의 계시를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기억하여야 할것이다
<무엇을 드러내고 계신가>
ㅇ 하나님의 계시
적어도 오경에 나타난바 대로라면 당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지식과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출32:1- , 레17:7- ,대하15:3- 행76:42- ,암5:25- , 렘7:21-)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가 당신을 드러내셔야 했던 계시의 필요성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성경의핵심이라 할것이다.
1.창조자 하나님
<렘10:11->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일 것이다. 이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계시이며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창조자 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롬1:20->
이로 보건데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하는 점이다. 그분은 어떠한 분인가 오직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창조자 이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길 힘썼으며.피조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가. 특히 우리가 찿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범죄한 인생이 만나고 경험해야 할 하나님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
이는 참으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야 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적어도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 전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를과 함께하셨던 분이라는 사실이 모세가 그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하나님 즉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자로서 계시하심으로 마쳐서는 큰 오산이다.
사실 우리의 지혜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이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자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위대성을 짚고 생각하고자 하는바이다.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자로서 계시하심에 대하여 우리의 촛점은 지금 창조자 하나님을 통하여 감히 경험할 수 없어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의 계시에 대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 인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을 볼수 없다 그러나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한부분로서 우리는 감히 성경이 말하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는것이다.
과연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얼마나 고백했던가, 감히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상상이나 해 보았겠으며,능력의 근거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였음을 알았다면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였으리라.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릇되게 드러나기 시작하므로 신앙의 혼돈을 갖게 되었고 그릇된 신관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때 (살후2:1-12) 그러나 한편으로 감사한 것은 능력이란 허울로 하나님 행세를 하려는 어리석은 사단의 궤계를 발견함을 기쁘게 생각하며, 하나님이 계시 하시는 는 능력과 사단의 역사로 임하는 거짓능력을 분별할수 있는 은혜를 발견하게 됨이 매우 유익이라 할것이다.
즉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그런대도 우리가 말하고 경험했던 능력의 역사나 경험하길 원하는 능력을 우리는 어디서 찾고 있으며,이것이 능력이라고 증거하려 했던가.
이제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천지의 시작을 선언함과 동시에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능력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능력으로 하나님임을 드러내기 위해여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심으로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신 것이다. 과연 하늘 아래 누가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창조자 이시며. 이러한 천지 창조의 역사는 여호ㅗ와가 하나님 되심의 위대한 계시인 것이다.
창조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 되심의 하나님의 능력은, ,즉 참으로 다시금 고백하지만 우리는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그 만드신 창조의 능력을 통하여 경험할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대도 참으로 우리의 심정은 무감각하지 않는가, 참으로 하나님이 창조자 하나님이라 하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그것이 곧 우상 숭배며 능력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과는 달리 그것을 도용해 헛된 세상의 부를 축척하려는 신앙을 빙자한 탐심자가 아니겠는가.(.창3:1-7; 일반적인 이방의 신관; 눅12:13-.골3:5-; 요일2:12-17; 계 3:14-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 혹은 이나라 개개인의 신앙인 가운데 존재하는 몇가지의 신앙의 병들에 대하여 우리는 한번 정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혹자는 우리나라의 신앙상태를 기독교적인 생각에 불교적사상(마음)과 유교적인 행동의 한국교회를 지적한바 있다.이는 이 나라 모든 신앙인이 경험했던 바 유교와 불교적 관습에 기초한 기독교적 우리의 신앙을 검해야할 것이다
과연 절에 나가던 사람이 교회로 나온다고 기독교인 인가 유교적 관습에 살던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고 기독교인이 되는가 하는점이다 .조금은 비약되 사상 같지만 이방의 사람이 부르던 신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뀐다고 기독교 인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는 근본적인 변화 적어도 이방의 신전에 있던 사람이 교회로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바뀐 사람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화는 바이며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믿느다던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 이라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며 우리는 그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온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정검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 이상이 있음을 겸손이 하나님께 고백하고 이제라도 다시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앞에 겸손이 엎드려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ㅇ창조자가 하나님 되심 -창1:1-의 핵심은 신에대한 계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연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존재는 어떻게 이해하며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창1:1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개념과는 맹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보편적인 세상에서의 하나님은 인 면이나 추상적이며.사머니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라는 한정된<고후11:13-15, 살후2:10-> 혹은 성인군자<비 예수님당시의 가이사나, 헤롯왕 등>,더나아가 좀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을 유추해 내려는 사상들을<구약의 신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해는 매우 확실하며,또한 절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이시라는 점에서세사의 어느신과도 비교할수 없는 매우 절대적인 분 이라는 사실이다,<렘10:-11-> ㅡ특히 우리의 하나님을 출애굽에서 자세히 드러내셨지만 그분만이 "스스로 계신 자존자" 이시며, 이름이 "여호와" 라는 사실을 매우 실제적이고도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다.
특히 여호와께서 창조자 되심은 아담의 범죄 후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수 있다.
사실 하나님의 창조자 되심에 대한 지혜는 너무 막연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엔 우리의 지혜가 부족함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의 범죄 후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과연 여호와께서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 이시며 모든 피조물이 창조이신 여호와를 드러내기에 기뻐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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