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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를 찾아서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2.11.21|조회수184 목록 댓글 0
참된 신앙을 찾아 "나그네"의 삶을 떠난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지난달에 "참된 신앙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기독교 2,000년 역사를 정리한 내용을 잘 읽어보셨는지요? 이번 달에는 먼저 글을 중심으로 그런 2,000년 역사 속에서 바른 신앙을 지켜 왔던 교회의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을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런 참된 신앙을 지켜 오도록 하셨는가? 그리고 이처럼 참된 신앙을 지켜 온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이런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2,000년 교회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참된 신앙의 핵심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만나게 된 하나님을 전 삶 속에서 신뢰하며, 사랑하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1) 왜 이것을 기억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유일한 신앙이 바로 이처럼 오직 성경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이런 신앙의 모습이 이미 성경에서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사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벧후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성경)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처럼 신앙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을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그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외의 어떤 경험적이고 환상적이며, 신비적인 신앙은 거짓이며 또한 우상 숭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신앙에 대한 분명한 정립에 의해서 참된 교회관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다른 것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이 참된 신앙을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벌써 교회로서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교회의 목적을 어떤 인간 혼자서 지켜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동체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혼자서 잘 믿으면 될텐데 왜 이 땅에 교회를 남겨 두셨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그런 참된 신앙이 바르게 지켜져 가도록 그리고 그런 신앙을 연약한 인간은 혼자서 완성해 갈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를 통해서 부지런히 서로 격려하며 도우면서 자라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러한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성경적인 정신이 칼빈의 다음의 말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든 경건한 자의 어머니인 진정한 교회에 우리는 반드시 연합되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품속으로 자녀들을 모이시기를 기뻐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와 어린아이일 동안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 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성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 연약한 우리는 일평생 교회에서 배우는 자로 지내는 동안 이 학교에서 떠나는 허락을 받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위에서 말한 것처럼 참된 하나님을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그런 공동체를 떠나서 혼자서 신앙 생활하려는 행위). --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가(말씀)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리의 충실한 파수꾼이다(강요4. 1. 1-9.)"

이처럼 참된 교회에서는 성도 혼자서 신앙 생활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 한 일원으로 소속되어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자라 가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교회에는 그 존재의 필요성과 또한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순수성이 늘 지켜져야 하며 그리고 성도는 거짓된 교회에 있어서는 안되며 이런 순수한 교회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며 또한 참여한 자는 그 교회가 더욱 순수함을 지켜 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을 참된 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에서는 과연 어떤 교회가 참?교회이며 또한 이 참된 교회가 그 순수함을 지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에서는 성경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된 교회였음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는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참된 신앙의 기초는 오직 말씀을 바르게 믿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오직 말씀이 바르게 지켜져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정리했습니다2).

두 번째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얻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시고 이 은혜를 확신할 수 있는 외적인 표징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례(세례와 성만찬)였던 것입니다. 즉 눈으로 확인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더욱 확실히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을 표징하며, 성찬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게 하며 또한 지금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서 우리가 날마다 그 은혜로 살아가는 자임을 확신하도록 표징을 주신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위와 같은 복음의 핵심과 말씀을 통한 하나님 뜻이 가려지거나 변질되거나 부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는 철저히 권징(책망)을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교회 안에 거짓과 부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늘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이 참된 교회의 중요한 특징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위의 3가지는 공통적으로 모두 말씀(성경)과 관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또한 그 말씀의 의미가 바르게 전달되어 성도들의 가슴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의 순수성이 더렵혀지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책망하는 그런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는 참된 신앙이란 것이 오직 성경만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이 성경의 내용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세워 주신 참된 교회였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3가지를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별하는 참된 교회의 표지로 모두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 안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소중하게 가르쳐져 왔는지를 잠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18장 참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별하게 하는 표시에 대하여.

사탄은 처음부터 그의 악독한 회당을 하나님의 교회라고 지칭해 왔으며, 잔인 무도한 살인자들로 하여금 참 교회와 그 회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도록 종용해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분명하고 완전한 표시를 척도로 하여 참 교회와 더러운 회당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짓 교회를 참 교회로 받아들임으로 저주를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 참 교회의 표시는 세 가지다.

첫 번째 표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설교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 안에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즉, 이 계시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글에 선포되어 있다. 두 번째 표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세례와 성찬을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우리의 마음속에 인치며 확증하는 것이다. 세 번째 표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회의 치리(권징)를 바르게 행사하는 것이다. 이 권징을 통하여 교회는 악을 억제하고 덕을 키운다. 따라서 이러한 세 표시들이 보이며 어느 때든지 지속하고 있는 곳에는 숫자에 관계없이,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참 교회가 존립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약속에 따라 이 참 교회와 함께 계시며 동행하신다.3)

*벨직 신앙고백서: 29장 참 교회의 특징 및 거짓 교회와의 차이점.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 바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도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 교회의 하나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교회임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만일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성례가 순수하게 이행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죄를 징벌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참 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거짓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지 않는 교회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성례를 시행치 않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 맡긴 채 말씀에서 무언가를 더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보다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자를 핍박하며, 그들의 죄와 욕심과 우상 숭배를 책망하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교회는 쉽게 알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다.

우리는 몇 가지 교회 역사의 자료만을 살펴보아도 이 3가지 내용이 얼마나 교회 안에 중요한 내용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중요성에 대한 칼빈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이 표지들을 깊이 명심해서 주의 뜻에 따라 존중해야 한다. 이것들 모두나 또는 그 중 하나를 제거하고 말살하려고 사탄은 최대의 음모를 꾸민다. 때때로 그들은 교회의 진정하고 참된 특색을 없애기 위해서 이 표지들을 말살하며 파괴하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이 표지들을 대대적으로 멸시하므로 써 우리로 하여금 참된 교회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떠나게 만들려고 한다. 사탄은 그 간계에 의해서 어떤 시대에는 말씀에 대한 순수한 선포를 없애 버렸다. -- 우리는 이와 같은 표지들에 유의해야 한다. "교회"라는 이름에 속지 않기 위해서(단지 교회라는 명칭을 걸고 있다고 해서 모두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교회라고 불려지는 많은 교회들 중에 거짓된 교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자칭하는 모든 집단에 이 표준을 시금석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표지가 없으면서 교회를 자칭한다면, 우리는 세밀한 경계심으로 이런 거짓에 대처해야 한다(기독교 강요4. 1. 11).

교회 역사 속에서는 이처럼 다른 여러 가지가 부패했어도 최소한 이 3가지가 남아 있으면 그 교회는 성경적으로 참된 교회라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3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교회는 모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거짓된 교회로 분별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이런 거짓된 교회에 참여 하지 못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런 중요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 교회 가운데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먼저 대충 살펴보면 말씀 선포나, 세례와 성만찬 수행이나, 권징등이 모두 교회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형식상으로 현재 교회에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글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지금 우리의 한국 교회들이 거의 비성경적인 정신에 영향을 입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초기부터 이미 이단으로 정죄되었었고 예수님과 사도들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했던 거짓 신앙을 소유한 분파들의 신앙과 신학적 내용들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아주 심각한 상황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글에서도 보았지만 바르지 않은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늘 성경보다는 자신들의 어떤 종교적인 경험이나 느낌을 더욱 중요한 신앙적 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말씀 자체만을 바르게 믿는 신앙을 멀리하고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즉 어떨 때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소흘이 하고, 또는 세례와 성찬보다는 영적인 체험을 더욱 강조하고, 또한 권징을 없애 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멀리하는 정신은 당연히 위에서 말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하는 것과 세례와 성찬과 권징의 내용들을 중요하게 생각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3가지는 모두 말씀을 철저하게 믿는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정신에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 교회는 어떻겠습니까? 역시 이 3가지를 무시하고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행하고 있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이3가지가 가지고 있는 참된 가치와 중요성이 가르쳐지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행하고 있고 정작 중요한 신앙적 내용은 비성경주의 분파들이 행했던 신비주의적이고 경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한 가지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말씀의 순수한 선포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설교 시간을 통해서 말씀이 선포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참된 교회에서 이 '말씀의 순수한 선포'라고 가르쳤을 때 이것은 단지 외형적으로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의 참된 뜻과 의미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까지도 포함된 의미로 가르쳤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미 위에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13문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에서 금지된 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어느 부분을 잘못 해석하거나 잘못 적용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곡해하여 신성을 모독하는 농담, 호기심에 넘친 무익한 질문, 헛된 말다툼 혹은 그릇된 교리를 지지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라고 언급해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대로 이해하거나 또는 변질시키는 것은 그가 말씀을 사용하고 있어도 여전히 말씀을 무시하고 버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단순히 설교가 행해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첫 번째 내용을 소중하게 행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설교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거나, 성경 본문을 가감하면서 성경을 무시하고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설교 모습을 보십시오. 성도들도 예배 시간의 전체 내용 중에 설교 시간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즉 설교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금세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저녁 예배는 온통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찬양 시간으로 대치되고 설교를 듣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된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전체적인 체계를 정리하고 고백한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서를 부지런히 배워서 성경을 잘 배우도록 도왔지만 지금은 이런 교육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칼빈은 "이 교리문답은 옛적부터 교회 위에 준수되어 왔고, 교회가 『완전히 부패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포기된 적이 없는 관례적인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이런 교육 내용을 잃어버리게 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알아 갈 수 없음을 지적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교회 제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Q.T, 제자 훈련, 구역 공과 등의 성경 공부로 대치되어 위와 같은 그런 교육 내용은 이미 교회에서 사라진지 오래 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제자 훈련이나 구역 공과 같은 성경 공부 방식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체계 있게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성경을 단편적으로 이해해서 버리게 되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보다는 이미 성경에서 자녀 교육 내용으로 소개해 주고 있는 이런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 방식의 교육 내용을 철저하게 고집했던 것입니다.4)5)

그리고 이런 교육 내용의 무시와 거부의 모습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언급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에서 성경적으로 지켜져 왔던 교육 내용을 무시하고 인간의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서 스스로 고안해 낸 것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집사 등의 교회 직원을 임명 시킬 때 공통적으로 서약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헌법 조항에 제시되는 것처럼 "신앙과 삶에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제2의 규범으로 인정하고 이것을 교회 가운데 신실하게 가르치고 지킬 것이다"라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약하는 형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전혀 모르고 또한 교회 안에서도 서약한 대로 가르치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딱딱하고 교리적이라고 하면서 거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약할 때는 그렇게 서약하고 현실에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교회의 첫 번째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세례와 성만찬이 있습니다. 이 세례와 성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담고 있는 귀중한 내용은 무엇인지 전혀 소개되지 않고 그냥 형식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이것보다는 "성령 세례"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은사 체험이나, 신비한 경험을 하는 것이 더욱 영적인 일로 중시되고 있습니다. 순복음 교회를 중심으로 전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성령 세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새로운 권능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도 부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이 전혀 언급될 수 없습니다. 이미 세례보다는 "성령 세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이 두 번째 표지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성령 세례"와 같은 신비주의적인 종교 경험들은 먼저 글에서도 보았지만 역사적으로 이단들이 강조했던 신앙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참된 교회에서는 이런 종교적인 체험보다는 세례와 성만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성도들에게 더욱 깊이 가르쳐 지도록 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이 세례와 성만찬을 잘 실행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6) 즉 "성령 세례"란 신비주의적 종교 현상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례와 성만찬을 집행할 때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7)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던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영혼의 구원에 이르도록 믿을 수 있게 된 믿음의 은혜는 그들의 마음속에 계시는 성령의 은혜이다. 이 믿음은 보통 말씀의 사역에 의해 생겨진다. 또한 말씀의 사역과 『세례와 성만찬의』 시행과 기도에 의해 신앙은 자라고 강화된다(제14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에 관하여)". 그런데 이처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거부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은혜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권징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권징의 내용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변질되지 않고 순수하게 지켜지기 위해서 행했던 것인데 위에서 이미 보았던 것처럼 벌써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버리고 이것을 거부했으니 권징도 참되게 실행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도 오늘날 형식적으로는 행해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제시하는 참된 권징은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세 번째 표지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한 장으로 정리되어 고백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징은 범죄 하는 형제들을 바로 잡아 잃어버리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막아 같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온 덩어리에 퍼지는 누룩을 제거하며, 그리스도의 명예와 복음의 거룩한 고백을 옹호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막기 위해 권징은 필요하다(30장 권징에 대하여)"

이처럼 권징은 인간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내리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교회의 보호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도들 스스로도 더 이상 권징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죄에 대해서 책망하면 금세 시험에 들고 다른 교회로 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목회자 스스로도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으로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여러 가지 기준과 규범으로 책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참된 교회에서는 성도의 양심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목회자도 이것을 침범해서 책망할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쳤던 것입니다. 즉 목회자가 신앙이나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말씀을 거스리거나 떠난 사람들의 교리와 계명에 따라서 성도를 책망하는 것은 큰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도 이런 명령을 받을 때는 이것을 저항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던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 성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징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말씀을 존중하고 바르게 배우고 지켜질 때 실행 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방법에 있어서도 말씀이 지켜지는 방식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에서는 ① 교직자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공적으로 충고하고 ② 듣지 않으면 일시적인 성만찬의 참여를 금지시키고 ③ 마지막으로는 교회로부터 제명이나 출교를 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속에서 이런 권징의 내용과 방식들이 남아 있습니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까지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라고 했을 때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된 교회인지를 살펴보았으며 또한 이런 기준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 모습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내 교회가 참된 교회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 2,000년 역사의 내용에서도 이미 드러났지만 거의 모든 교회가 비성경적인 신앙의 형태로 성경을 믿지 않고 바르게 배우지 않는 모습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말씀 드리는 것은 지금의 우리 성도들이 교회 역사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단지 "교회"라는 명칭만 달고 있으면 모두 참된 교회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엄청난 혼동과 오류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처럼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가 금세 구별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교회가 거짓된 교회인지 전혀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페이지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도는 혼자서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는 공동체와 함께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교회에 참여해서 신앙 생활을 하는가? 가 우리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교회의 신앙적 성격이나 모습을 자연적으로 참여하면서 배우게 되기 때문에 거짓되고 변질된 냠맙?있다 보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신앙도 변질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부패로 치달으고 있을 때 칼빈은 성경을 통해서 이런 3가지 표지를 발견하고 참된 교회로 세워지고 지켜지기 위해서는 로마 카톨릭을 반드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고 프랑스 국민들에게도 이것을 멀리 하라고 끊임없이 권면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떠난 유일한 원인은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것을 그들이 절대로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그의 이름 때문에 회당(당시 교회)에서 쫓겨나리라고 미리 경고하셨다(요16:2). 주께서 말씀하신 이 회당들은 당시에 합법적 교회로(가장 대표적인 교회) 인정되었다. 이제 우리는 쫓겨났고 이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생긴 일이란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증명할 수 있다. -- 이는 나로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해서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한 사람들은 교회의 교통을 중요시하되 교회가 부패하고 모독적인 의식으로 타락했을 경우 그런 교회를 경솔하게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기독교 강요4. 2장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비교 부분)

그리고 칼빈의 "사돌레토에의 답신(1539년)"이란 편지는 이런 역사를 대변해 주는 매우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카톨릭은 자신들은 1,000년 이상 교회를 형성해 왔고 당시에도 가장 세력도 크고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교회인데 칼빈이 이런 교회를 거부하고 나간다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하면서 조롱과 회유와 책망을 하면서 사돌레토라는 주교를 통해서 칼빈에게 편지를 쓰면서 당신도 돌아와 하고 또한 당신을 따라서 나간 백성들도 돌아오도록 하라는 유명한 편지입니다. 바로 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쓴 것이 본 자료입니다. 이 자료에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그런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네바 시민들은 우리의 설교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그들이 이전에 빠져 있었던 오류의 수렁에서 벗어 나와 복음의 순수한 교훈으로 나아갔는 바, 그대는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로 부터의 이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네바 시민들은 스스로 보다 나은 형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로마 교황의 폭정을 벗어 던지고자 했는데, 그대는 그것을 교회로부터의 도망이라고 했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기존의 교회 상태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고대의 경건함과 거룩함을 열망하여, 현재 교회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고 초대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대는 오랜 옛 교회의 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기초하고 안전하게 유지되는 것은 다음의 3가지에 근거하는 바, 그것은 교리(말씀), 성례, 권징입니다. -- 교회가 기초를 두어야 하는 그 선지적 및 복음적 교리의 진리가 그대의 교회에서는 대부분 소멸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과 검에 의하여 무참하게 제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칼빈의 글과 또한 당시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신앙을 포기하고 참된 신앙을 찾아서 떠난 선조들의 역사를 보면서 이들이 이런 삶의 길을 선택한 것은 오직 말씀과 성례와 권징이 바르게 제시되는 참된 교회의 순수함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서 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런 중요한 내용에 따라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또한 흘러가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은사를 받고 또한 축복을 받으며 신비한 종교적인 경험과 종교적인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아무거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매우 심각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깨어나십시요!

이제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나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문제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별로 문제가 없고, 오히려 교회가 더 부흥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신 강도사만 이렇게 심각하게 말하는가?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염려와 책망이 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과 우리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엄중한 경고와 권면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편지를 통해서 이미 그 역사의 내용들을 소개해 드렸으며 또한 우리는 성경에서 예레미야가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 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8)라는 말씀을 통해서 당시 거짓된 선지자들은 모두 평안하고 일이 다 잘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예레미야만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깨닫고 백성들의 죄를 책망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나 성도들이 우리가 지금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 있는지 또한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모든 일이 문제 없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큰 심판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가 지적했던 죄의 내용들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바로 그런 내용들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죄를 돌이키지 않으면 곧 무서운 하나님의 책망과 진노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권면을 깊이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칼빈도 자신의 시대에 권면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증거 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싸움의 불꽃을 당기기 전에는 모든 것이 잠잠하고 완전히 평화스러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목자들 세계나 평신도들 세계에서도 『무지와 나태함으로』 인해 종교에 관하여는 어떤 논쟁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고요함만이 있었던 곳에 복음이 다시 일어나게 됨에 따라 큰 논쟁들이 있게 되었습니다(사돌레토의 답신)" 이처럼 저의 권면도 지나친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내용을 아무도 분명하게 증거하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지, 누군가가 오늘날도 다시 참된 신앙과 참된 교회를 제시하면 지금의 대부분의 교회는 반발하며 싸움은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거룩한 싸움에 동참하시기를 초대합니다.

이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번째 편지와 둘째 편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권면하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를 제발 살펴보시고 무엇이 참된 교회인지 또한 거짓된 교회인지를 분별하시고 오직 참된 신앙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고 또한 신앙이라고 해서 모두 옳은 신앙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교회와 거짓된 신앙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처럼 참된 신앙과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저항하고 부패한 교회를 떠나려고 할 때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십시오. 오히려 이 길을 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큰 책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용기와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즉 우리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모호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9)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반드시 이 길을 회피해서는 안되며 꼭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자, 함께 갑시다.

미주

1)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 그 자체를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성경을 부정하고 믿지 않는 신앙의 형태로 신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성경을 조금 부정하거나 아니면 성경을 믿으면서도 다른 종교적 경험이나 신비한 환상이나 자신의 내적인 음성 등을 의지하는 신앙은 결국 성경을 믿지 않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믿는 것도 성경을 버리는 신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우상 숭배입니까? 답: 성경 말씀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에 또는 그 옆에 무엇인가 다른 것을 고안해 내거나 소유하여 인간이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95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에서 금지된 죄는 무엇입니까? 답: 3계명에서 금지된 것은 ---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어느 부분을 잘못 해석하거나 잘못 적용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곡해하여 신성을 모독하는 농담, 호기심에 넘친 무익한 질문, 헛된 말다툼 혹은 그릇된 교리를 지지하는데 쓰이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13문)"

2)"교회는 오직 외면적인 복음 선포(말씀)에 의해서만 자란다(기독교 강요4. 1. 5)".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힘과 생명 자체가 되는 말씀 선포를 말살해 버리는 무리를 누가 감히 통틀어서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가?(4. 2. 4,7)"

3)이 외에도 중요한 신앙고백서들의 표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교회에 대하여: 이 보편적인 교회는 때로는 더 잘 보이고 때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보편적 교회의 지체인 개교회는 복음의 교리가 어떻게 바로 가르쳐지고 받아들여지고 규례가 집행되며, 공예배가 행해지는 데에 따라 더 순결하기도 하고 혹은 덜 순결하기도 하다".

4)위와 같은 교육 방식의 성경적인 근거는 다음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이미 구약에서부터 말씀의 체계적인 교리를 묻고 배우는 방식을 통해서 성경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내용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배우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신6:20) 훗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신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하심이라 (신6:25)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5)이런 정신때문에 참된 교회에서는 목사가 다음과 같이 설교 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교해야 할 것인가? 답: 말씀의 사역에 부름을 받은 자들은 바른 교리를 가르치되 부지런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할 것이며, -- 충성스럽게 하나님 말씀의 모든 뜻을 알게 할 것이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159문)".

6(고전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7)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 수 있도록 성령이 능히 깨닫게하여 주시므로 그는 이상한 계시가(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직접 계시와 같은 것, 또는 환상) 주어지지 않아도 보통방편을 올바르게 사용(말씀, 성례, 기도)하여 이 확신에 이를 수 있다".

8(렘6:14-15) (겔13: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9(롬16:17) (잠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살후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사도들의 말씀)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개혁파신앙(한마음교회;www.reformedfaith.or.kr), 신원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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