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간에는 인정서가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높고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일류출신이며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추천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실력, 재능, 출신, 과정 등을 인정해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좀 더 알아줄 수 있는 인정서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옛날에는 누군가를 소개해 주는 수단으로 인정서가 통용되었습니다. 가령 스승이 제자를 어느 사람에게 보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인정서를 같이 보내었습니다. 사회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방식만 바뀌었다 뿐이지 여전히 인정서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졸업증과 학위, 자격증이 그것입니다. 심지어는 명함에다 자기 소개를 죽 나열해 놓아 스스로 자기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비해 오늘날에 통용되고 있는 인정서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단지 그런 종류의 인정서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나 자격을 평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실제 사람 됨됨이나 자격은 그의 인격과 삶에서 보여지기 마련인데도 사회가 인정서로 평가하여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능하면 더 좋은 인정서를 받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종교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을 "나는 부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풍족하므로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인정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하여 "너는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여 그들의 부끄러운 점을 지적했습니다(요한계시록 3장 17절). 누가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신앙의 행위나 봉사 따위를 잘하려는 자들이나, 겉을 꾸미고 크게 하려고 애쓰고, 뭔가 특별하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화려한 이름을 가지려는 자는 대개가 사람들에게 잘 보여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인본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주의자들이 하는 행위들을 지적하기를, "안은 더러운데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게 하는 자들"이라 하셨고,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3장 25절, 27절). 이것은 유대주의자들이 사람들에게만 잘 보여 인정받으려는 외식을 책망하신 것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어떤 중심으로 있는지를 보시는 주님의 통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차원으로 그 존재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원히 구별된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에 그러한 교회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의 주로 계시니 하나님 중심을 기준으로 하는 자녀가 되어서 매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우리 중에서 성도를 올바르게 가르쳐 인도할 지도자를 세워 주셨으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일군으로 인정받는 일군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교회는 어떤 측면의 상태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받은 자답게 하나님께 인정받으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로 세워져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여기에는 애쓰지 않고 세상 사회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자신들을 갖추어가고 있고 또한 교회들도 그런 자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실상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를 보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거짓 교사들이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실력이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천거서(추천서, 인정서)를 통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고린도후서 3장 1절). 바울은 그 거짓 교사들에게서 시기를 받고 끊임없이 사도직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가령 고린도후서 10장 10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대로 바울은 편지에서 대하는 글을 볼 때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말이 약하고 시원치 않는다든지, 고린도후서 1장 17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로 경홀한 사람이라고 몰아 부쳤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부적당한 사람이다, 사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다, 사도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도로 있다는 식입니다. 심지어는 그보다 더 나쁘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복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자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런 그들의 비난은 바울의 사도성을 일부러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그들의 말에 동요되는 큰 해를 입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고린도후서에서 변론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2장 14절 이하에서 보는 대로 다만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여 왔는가를 피력할 뿐이었습니다. 수다한 사람과 같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온 것이 아니라 순전함으로 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전하는 복음성-순전함-이 그 사실을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 낸 지어서 하는 복음은 순전함이 없습니다. 복음을 적당히 왜곡시켜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인양 팔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장 1절에서 자신은 복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대로 순전함으로 전하였는데 굳이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변명을 늘여 놓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자신은 어느 누구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필요가 없고, 또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기 위하여 거짓 교사들이 하는 것처럼 긴 편지를 써서 구차하게 자기 선전을 늘어놓는다든지,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잘 소개하여 추천하는 편지를 쓰게 해서 고린도 교회에 부친다든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게 그러한 편지를 부탁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게 청탁하는 추천서가 따로이 필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로서 그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스스로가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추천서라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던 추천서를 거짓 교사들은 자기를 인정받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내어 밀며 "나의 출생지는 어디이며, 지금 사는 주소는 어디이고, 나의 학력과 경력은 어느 정도이기 때문에 얼마큼의 실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 추천서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회들이 일반대학 졸업하고 신학을 한 목회자를 청빙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유학을 갔다 온 모 신학 계통 출신의 박사 학위가 있는 목사,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목사를 엘리트 목사로 인정하고 있는 오늘날 교회들과 별다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사회적 엘리트, 교계에서 인정하는 능력자나 그 목사 이름 밑에 붙은 화려한 간판 등을 인정하고 또 그런 목회자를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출신, 명분, 계통, 학위들을 명함으로 내세워 교회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그 여파로 생겨진 해는 실로 큽니다. 가짜 박사 중에 신학계통의 박사가 제일 많다는 통계가 부끄럽게도 나오게 되었고,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화려한 간판을 다는데 전념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교회 주보나 전도지가 목회자 출신, 경력, 소개장이 되는 한심한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며 인정해 달라고 보일 수 있겠느냐? 나를 인정하는 추천서는 바로 너희 속에 새겨져 있지 않느냐? 바로 너희가 우리가 쓴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나를 인정해주는 추천서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3장 1-3절).
하나님의 종 된 목회자로 진정 단정될 수 있는 것은 그 목회자가 증거한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성도의 중심에 있습니다. 양은 그 목자를 알고 그 목자는 그 양을 아는 것처럼 바울이 증거한 복음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된 그 성도는 바울을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인정하기 마련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24절에서 바울은 "나는 복음을 증거 하는데 유대인들은 표적과 이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바울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은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기 때문에 이들만이 바울을 복음의 사도로 인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인정서가 없어도, 그래서 다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방 받고 우습게 여김을 받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중심에 굳게 서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또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데 제일 된 중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황부일, '우리, 이제 순전한 신앙으로 돌아가자'에서)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종교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을 "나는 부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풍족하므로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인정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하여 "너는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여 그들의 부끄러운 점을 지적했습니다(요한계시록 3장 17절). 누가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신앙의 행위나 봉사 따위를 잘하려는 자들이나, 겉을 꾸미고 크게 하려고 애쓰고, 뭔가 특별하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화려한 이름을 가지려는 자는 대개가 사람들에게 잘 보여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인본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주의자들이 하는 행위들을 지적하기를, "안은 더러운데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게 하는 자들"이라 하셨고,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3장 25절, 27절). 이것은 유대주의자들이 사람들에게만 잘 보여 인정받으려는 외식을 책망하신 것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어떤 중심으로 있는지를 보시는 주님의 통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차원으로 그 존재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원히 구별된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에 그러한 교회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의 주로 계시니 하나님 중심을 기준으로 하는 자녀가 되어서 매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우리 중에서 성도를 올바르게 가르쳐 인도할 지도자를 세워 주셨으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일군으로 인정받는 일군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교회는 어떤 측면의 상태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받은 자답게 하나님께 인정받으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로 세워져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여기에는 애쓰지 않고 세상 사회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자신들을 갖추어가고 있고 또한 교회들도 그런 자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실상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를 보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거짓 교사들이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실력이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천거서(추천서, 인정서)를 통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고린도후서 3장 1절). 바울은 그 거짓 교사들에게서 시기를 받고 끊임없이 사도직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가령 고린도후서 10장 10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대로 바울은 편지에서 대하는 글을 볼 때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말이 약하고 시원치 않는다든지, 고린도후서 1장 17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로 경홀한 사람이라고 몰아 부쳤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부적당한 사람이다, 사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다, 사도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도로 있다는 식입니다. 심지어는 그보다 더 나쁘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복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자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런 그들의 비난은 바울의 사도성을 일부러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그들의 말에 동요되는 큰 해를 입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고린도후서에서 변론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2장 14절 이하에서 보는 대로 다만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여 왔는가를 피력할 뿐이었습니다. 수다한 사람과 같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온 것이 아니라 순전함으로 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전하는 복음성-순전함-이 그 사실을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 낸 지어서 하는 복음은 순전함이 없습니다. 복음을 적당히 왜곡시켜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인양 팔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장 1절에서 자신은 복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대로 순전함으로 전하였는데 굳이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변명을 늘여 놓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자신은 어느 누구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필요가 없고, 또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기 위하여 거짓 교사들이 하는 것처럼 긴 편지를 써서 구차하게 자기 선전을 늘어놓는다든지,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잘 소개하여 추천하는 편지를 쓰게 해서 고린도 교회에 부친다든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게 그러한 편지를 부탁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게 청탁하는 추천서가 따로이 필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로서 그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스스로가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추천서라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던 추천서를 거짓 교사들은 자기를 인정받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내어 밀며 "나의 출생지는 어디이며, 지금 사는 주소는 어디이고, 나의 학력과 경력은 어느 정도이기 때문에 얼마큼의 실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 추천서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회들이 일반대학 졸업하고 신학을 한 목회자를 청빙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유학을 갔다 온 모 신학 계통 출신의 박사 학위가 있는 목사,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목사를 엘리트 목사로 인정하고 있는 오늘날 교회들과 별다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사회적 엘리트, 교계에서 인정하는 능력자나 그 목사 이름 밑에 붙은 화려한 간판 등을 인정하고 또 그런 목회자를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출신, 명분, 계통, 학위들을 명함으로 내세워 교회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그 여파로 생겨진 해는 실로 큽니다. 가짜 박사 중에 신학계통의 박사가 제일 많다는 통계가 부끄럽게도 나오게 되었고,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화려한 간판을 다는데 전념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교회 주보나 전도지가 목회자 출신, 경력, 소개장이 되는 한심한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며 인정해 달라고 보일 수 있겠느냐? 나를 인정하는 추천서는 바로 너희 속에 새겨져 있지 않느냐? 바로 너희가 우리가 쓴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나를 인정해주는 추천서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3장 1-3절).
하나님의 종 된 목회자로 진정 단정될 수 있는 것은 그 목회자가 증거한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성도의 중심에 있습니다. 양은 그 목자를 알고 그 목자는 그 양을 아는 것처럼 바울이 증거한 복음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된 그 성도는 바울을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인정하기 마련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24절에서 바울은 "나는 복음을 증거 하는데 유대인들은 표적과 이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바울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은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기 때문에 이들만이 바울을 복음의 사도로 인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인정서가 없어도, 그래서 다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방 받고 우습게 여김을 받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중심에 굳게 서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또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데 제일 된 중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황부일, '우리, 이제 순전한 신앙으로 돌아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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