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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성경의 "기록목적"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작성자사노라면|작성시간09.02.21|조회수492 목록 댓글 0

 

                                   성경의 "기록목적" 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 김 규 욱 -

 

 지난 첫 번째 글이 저의 신학적인 입장을 소개하다 보니 다소간 어려워져서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신학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독자 여러분에게 정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 불가피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는 우리의 신앙적 삶을 검토하고 음미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세우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아시리라 봅니다.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이어서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기본과 근본을 새롭게 다지고 확인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지난번 우리 나라가 월드컵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의 기본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의 전수도 기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실력 발휘가 되지 않습니다. 축구와 같은 운동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우리 삶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 기본의 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본중의 기본은 도무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있습니다. 이 점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 하고자 해도 결국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난 번 글에도 약간 밝힌 대로 기독교는 불교처럼 인간이 도를 닦아 스스로 깨닫는 종교가 아닙니다. 또한 유교처럼 인간의 도덕적인 행위의 수련을 강조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계시해 주신 말씀 위에 세워지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에 따라 신앙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처럼 성경을 사랑하고, 그리고 많이 읽고 배우는 성도들은 전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가 뉴질랜드에 와서 약 2 달 남짓 뉴질랜드인 교회를 다니면서 참으로 충격적으로 놀라기도 하고, 동시에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예배 시간에 성경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성도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저 앞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동안, 극장에서 영화 관람하듯이 듣기만 하지 자신들의 눈으로 성경을 따라 가면서 확인하는 성도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이나 보는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이 바로 그런 현상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런 뉴질랜드 교회의 현상과는 달리 한국 교회는 성경읽기와 공부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21세기 세계 경영의 축이 아시아 특히 한국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보는 많은 문명이론가들의 진단대로 한국은 세계 역사의 무대에서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그런 이유중의 가장 주된 요인은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성경을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결코 허황되거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인생의 진정한 변화와 사회의 변혁은 결국 그 인간과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관으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런데 신관, 즉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바른 성경 읽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신앙인 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턱대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성경이 잘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한 성경을 가지고 그렇게도 많은 교파와 심지어 수많은 이단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쉽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본문을 가지고도 온갖 다른 설교가 생겨난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면 “성경 해석의 문제” 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 뜻이 인간들의 온갖 주관적인 생각에 의하여 혼잡스럽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성경에서 객관적인 생명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이는 신앙인에게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기록하게 된 근본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성경의 기자들을 동원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근본 목적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막을 수가 있으며 성경의 객관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의 근본 기록 목적을 바르게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사용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7: 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앞뒤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기록 목적을 염두에 두면 하나님의 의와 나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 는 말씀입니다.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세속적인 복과 인간적인 욕망을 이루는 책으로 간주하고 그 본문을 해석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기 소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것도 반복적으로 강청하다시피 줄기차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기복주의적이고 해괴한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본문 앞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같은 세속적인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므로 구하지 말라(마6: 31)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공중의 새보다 더욱 귀한 이 땅의 성도들에게 필요할 줄을 하나님은 익히 아시고 때를 따라 적당하게 주시는 것이며, 우리 성도가 이 땅에서 참으로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요, 우리 성도가 추구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면 그 본문의 뜻은 자명하게 확인됩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만물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자신을 알려 줄 수 있는 (즉, 계시하시려는) 방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에 예수님은 자기를 본 자는 아버지 (하나님)를 보는 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를 해석하든지 우리는 성경의 중심 내용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에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 기록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성경이 도덕책이나 세속적인 복의 비결서, 혹은 점쟁이의 책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게 하는 하나님 계시의 책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골격과 흐름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가? 이것이 두 번째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다음 글에서 만날 때까지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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