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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에 대하여

작성자황부일|작성시간15.04.19|조회수486 목록 댓글 0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에 대하여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 사람이 겨울철 얼어있는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금이 가면서 깨지자 "어이쿠, 하나님" 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놓고 이 자도 구원받은 자가 아닌가? 아니다 그렇게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는 둥 서로 논쟁을 벌인 신학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고 외친다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고 은혜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실제로 말씀한 바>

이 말씀은 주후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고의 말씀인데 요엘서에서 먼저 나옵니다. 거기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날이 이르기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요엘 2:31-32)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 대한 예고의 말씀 (요엘 2:28-36)에 이어 나온 말씀으로 그것을 순차적으로 이어보면 예수께서 오시어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때까지 이 섬에 유하라 (눅 24:48)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고 (행 1:4-5, 8)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은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권능으로 복음의 역사가 확장되면서 예루살렘의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놀랍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요엘서의 예고대로 곧 닥쳐올 예루살렘의 멸망, 즉 주후70년경에 있던 로마군대로 인한 멸망이 오기 전에 복음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먼저 있을 것에 대한 예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과 같은 시기에 관한 말씀을 하나더 참조해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자들 위에는 내가 내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내 하나님이라 하리라 (슥 13:7-9) 그러니까 주후 70년에 있을 유다의 멸망전에 복음의 강한 역사로 택자를 구원하실 것인데 그들이 바로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자요 구원을 얻은 자들인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예고한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에 대해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롬 10:13-15)

요엘선지자는 여호와 이름이라 했고 바울은 주의 이름이라 했는데 동일한 것으로서 하나님되신 주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부르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바울사도는 구원을 얻는 것으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입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되야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주를 복음으로 들어야 믿게 되는 것이고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듣고 믿을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주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구원의 믿음을 주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점을 강조하신 바를 우리는 잘 압니다. 마태복음 7:21-23을 보면 "나더러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를 수없이 불러도 주님으로부터 결국 외면당하는 부름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뜻대로가 아니라 저들 멋대로 주를 필요로 해서 또는 주를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주를 부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나타내셨을 때 그것을 실제로 체험했던 유대 무리들이 예수를 억지로 임금삼으려 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무리를 떠나셨던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메시야를 통해 썩는 양식이나 자기 인간기대를 얻고자 찾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구원의 종교가 아닌 유대종교나 이단이나 사이비들이 더 열정으로 주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빈 깡통이, 빈 수레가 더 요란한 것처럼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주를 찾고 부르는 소리가 함성같고 요란히도 간절하지만 자기기대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독교 안이든 밖이든 사이비 이단들이나 삯군들 그리고 그 중심으로 모이는 무리들이 다 예수 이름을 부르며 예수 이름을 이용하여 각자의 목적을 가지며 무리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어떤 자들은 자기가 예수라 하는 자들도 많고 기독교 이름내에도 예수를 만사 형통의 역사자로 모든 문제의 해결사로 열심히 가르치며 그런 예수를 열심히 찾고 부르게 하는 데가 많습니다. 이런 자들이 주를 부르는 것은 헛되고 무의미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를 구원의 주로 믿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된 자들만이 주를 진실로 부른다>

교회를 정의하는 말씀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우리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2-3)고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점에 대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면서 그러나 믿지 않는 자를 어찌 부르냐고 했습니다.(롬 10:13-14) 그러니까 여기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주라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요 구원이 되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2:3) 아무나 예수를 주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이요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더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3-17) 이어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 곧 성령으로 인해 알고 믿고 고백되는 예수를 주로 부르는 그 신앙고백이 바로 구원으로 교회가 되는 요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교회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창세기 4:16-26절을 보면 가인의 후예와 반대로, 아벨을 대신하여 이은 셋의 후손이 나오는데 보면 가인의 후예는 세상을 건설하는 자들로서 모든 분야에 원조가 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일반은총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유기된 자들로 하나님과는 단절된 자로 결국 형벌의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아벨 대신 셋을 주시고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했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다.(창 4:25-26) 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백성된 자들의 증거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성령에 의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시초에서 주를 부르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부터 모든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생활에서 주를 부르는 신앙생활까지 다 포함 되는 것입니다. 교회된 자들만이 이렇게 주를 믿음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상태의 분류> 주의 이름을 부름에는 먼저 신앙 고백적인 부름부터 출발합니다. 성령의 기본적인 역사에 따라 예수를 주라 부르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고전 12:3)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교회 되고 교회를 이루는 사도가 된 것이 주의 이름을 구주로 고백한 그 때부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한 것이 반석과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시고 그를 성령으로 고백한 신앙이 되어 교회 됨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복음 서신을 보내는 서두에서 그것을 받는 교회된 자들에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같은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함께 받은 자들로 교회된 자임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으로 부를 수 없고 또한 그렇게 주를 부르는 자가 되지 않고는 구원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언약된 교회 구원의 원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된 자들로 택함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경륜을 따라 성령이 찾아오셔서 구원으로 교회되기 위해 주의 이름을 고백적으로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구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게 되는데 그 다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배와 찬송함에 있고 또한 주님과의 기도의 교통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창세기 12:7-8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라고 말씀 함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창 13:4에 보면 거기서도 아브람이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람뿐만 아니라 그의 언약의 씨가 되는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고 (창 26:25) 그의 아들 야곱도 하나님과 만났던 벧엘로 돌아와 단을 쌓고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창 35:7) 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들이 택함속에서 부름을 입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서 예배의 행위로서 주를 부르는 것입니다. 경배와 찬양으로서의 고백이고 부름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4:25-26에서 가인의 후손과 반대되는 아벨의 후손격인 셋과 에노스가 여호와 이름을 불렀다 함에는 하나님을 구주로 아버지로 그리고 영광을 받으신 이름으로 부르는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중에 보면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울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라고 했는데 (시 40:3) 시편 22:25절에도 보면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은 자는 여호와를 찬송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 115:17)

산자, 즉 구원받은 자만이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술로만 주여주여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 부름만이 구원을 얻는 구주를 부름이 되며 또한 구원해주신 주님을 감사찬송으로 부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를 불러 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신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주님과의 교통으로 기도로서 부름을 말합니다. 시편 50:15에도 보면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여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함처럼 성도는 주를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곧 은혜로서 구원을 얻고 구원을 살아가도록 위해 성령께서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거룩한 교회를 세워감에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예수를 성령으로 구주를 불러 교회된 자들은 이제부터 주의이름을 깨끗한 입술로 순전한 마음으로 오직 주만 부를 수 있또록 복음의 능력을 입어야 하며 바울의 증거중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는 말씀을 (딤후 2:19) 반드시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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