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4) : 요한복음 4장 19-26절, 누가복음 24장 :27절 /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유일한 은혜의 방편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20.10.17조회수273 목록 댓글 0교회론(4) :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유일한 은혜의 방편
요한복음 4장 19-26절 /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장 27절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후 제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구약시대에 그림자의 역할을 통해 보여 왔던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과 교통하시는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과의 연합에 있는 자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자신 안에서 함께 지어져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인 교회로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를 말씀하신 이래,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서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이를 위해 메시야의 오심이 있었습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인 진리의 증거
영과 진리는 예배의 두 요소이니, 영이신 하나님 곧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파되는 진리에 의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공동체인 교회를 이룸에 있게 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증거하는 것에 있는 것을 교회의 참된 표지로 말해 왔습니다.1) 교회는 성령으로 말함에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고 이를 설명하여 자세히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장성한 자가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출처인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구원 얻는 유일한 은혜의 방편으로 교회의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 되고 있슴
교회사에서 개혁교회는 설교에 의해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일과 함께 중요한 신앙의 유산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신앙고백으로 요약 정리한 사도신경이며, 이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진리 체계의 순서에 의해서 만든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신학 자료와 성경 주석이 만들어져 나와 있습니다만, 그 모두는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를 앞서지 못합니다. 즉,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를 무시하고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는 그 출처가 성경이기에 성경의 권위를 앞서지 못합니다. 설교와 가르침에서 전해지는 말씀이 진리로 공인 받는 출처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인 성경입니다. 모세의 글부터 시작하여 선지자들이 기록해 놓은 모든 구절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인 예수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있는 유일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눅 24:27)
교회의 중요한 신앙의 유산을 통해서 받는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배움의 열심에 있어야 함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하신 일의 순서에 의해“성부 하나님을… 믿사오며, 성자 하나님을… 믿사오며, 성령 하나님을… 믿사옵니다”라고 교회가 갖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교회에 대하여 갖는 신앙에 대해서 사도신경은“성령을 믿사오며”라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고백서에서 다루고 있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갖는 신앙을 기독교의 교리로 체계화하여 정리하였습니다. 교리문답서 중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는 전체 129문답으로 되어 있는데, (1) 인간론 :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인간에 대한 이해(제1-22문답)와 (2) 신론 : 사도신경에 고백되고 있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이해(제23-58문답) (3) 신앙론 :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얻는 유익과 그리스도의 은덕에 참여함에 대한 이해(제59-129문답)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인간에 대하여 알아야 할 가르침들을, 죄인을 구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교회가 신앙고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가르침들을, 하나님의 구원이신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얻는 유익과 그리스도의 은덕에 참여함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할 가르침들을 129개의 질문을 통해 가르침을 주시고 있는 것이 답변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 예수께서 제자인 사도들을 통해서 세워나가신 이래 세월이 2000년이 흘러오면서 성경과 함께 교회에 신앙의 유산으로 사도신경과 여러 신앙고백서 및 교리문답서를 왜 남겨 놓게 하셨는지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그 믿음에 굳건히 서게 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지식이 있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신 유일한 은혜의 방편이며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주께 굳건히 붙어 있게 하는 유일한 은혜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는 그 보조 자료입니다. 이것이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헛되이 믿지 않고 은혜 입은 자의 믿음으로 올바르게 사는데 큰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를 잘 배워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욥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행 17:28). 우리는 진리가 증거해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요.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면서(요1서 5:1),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받아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까닭이 없다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어 있을 것이어서 그때 그분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것입니다(요일 3:1-2). 그러니 말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그리고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서, 교리문답서를 잘 사용하여 배워서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뵐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을 내고 열심에 있어야겠습니다.
이 중 신론으로 다루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서 교회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는 제54-56문답에 대하여서 앞으로 계속해서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 ..................................................................................... 1) 교회의 표지(標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 거짓된 교회인지를 구분하는 특징이나 표시를 뜻한다. 이것이 대두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1) 첫째는 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외형과 의식에 치우치는 것에 있으므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구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점점 형식화, 제도화되어지고 전통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형식과 제도, 전통에 편승해서 변질된 교회의 표상이 되었다. 십자가가 세워져야 하고 특정한 건물이 있어야 교회인가? 준엄한 분위기에서 집행되는 예배의식과 성례전이 실행되어야 교회인가?에 대한 답을 교회는 주어야만 했다. (2) 둘째는 AD 2세기 이르러서 당시 교회는 기독론 논쟁에 휩싸여 있게 됨으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에 대한 제시가 필요했다. 율법주의자(유대주의)나 영지주의 등의 이단이 나타남으로 참된 교회를 증명할 수 있는 외적인 특징이 필요했다. 즉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이단이 아닌 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분명한 표준과 표시가 있어야 했기에 공동교회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게 전해지고 또한 그 말씀을 들으며,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라서 성례가 시행되면, 거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교회의 표지를 제시했다. 칼빈이 말씀과 함께 성례를 참된 교회의 표지로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예식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는 일곱 성사(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배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를 가지며 이 성례를 행함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례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이 말씀과 함께 하는 성례를 다루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성례가 수반하며 보여준다는 것에서 인데 오직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말했다. 그에 따라서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말씀과 함께 성례를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말씀과 함께 하는 성례는 말씀과 성례를 동격으로 다루는 것에서가 아니다. 성례는 말씀에 속하는 것에 있는 것에서 이다.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유일한 은혜의 방편이나, 세례와 성찬은 구원이 베풀어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함에도 세례 그 자체를 말씀과 동일하게 여기며, 세례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여긴다면, 바울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고전 1:14)라는 것에서 보게 되듯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는 성찬도 마찬가지 이다. 성찬(聖餐)은 ‘주의 만찬’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몸의 지체로서 함께 하는 식사 문화인 애찬(愛餐)이다. 세례는 세례를 시행하는 의식 자체의 중요성 보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 본질적인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성찬은 교회에 제도적으로 의식화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식사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살과 피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의존함에 있는 것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세례와 성찬은 말씀 전파의 방편으로써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과 함께 교회의 표지로 다루어지는 것이지 말씀이 없이 단지 이것의 행함 여부로는 교회의 참됨과 거짓됨의 진위를 가늠하는 표지가 되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바울이 말한 바인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9~11)에 있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10)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표지는 오직 ‘성경말씀’ 뿐이다. 말씀 안에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 함의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만 바르게 분변하고 가르치고 전파한다면 참 교회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출처 : 대구동산교회, 신학에세이 ‘교회의 참된 표지’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