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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앙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1).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심'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3.01.17|조회수382 목록 댓글 1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장 17-22절)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주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완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율법은 크게는 구약 성경을 말하고 작게는 제사법과 절기법, 그리고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주어진 일체의 율례들을 말합니다. 주님이 "나는 율법을 폐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히려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이 율법과 분명히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깨달은 복음 진리는 구원을 얻는 것은, 의로와지는 것은 율법을 행하여서가 아니라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지, 또한 이 율법과 우리 주님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지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으로 인해서 오늘 시대에는 율법이 필요 없다든지, 또는 율법은 믿는 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까 율법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훨씬 많이 합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율법에 대한 인식이 은혜와는 전혀 다르다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은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이 우리에게 옴으로서 죄를 분명히 깨닫게 해 준다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롬 3:19-20).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짐으로 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죄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에 절하여 섬기는 것이 죄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죄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죄요, 살인하는 것이 죄요, 간음하는 것이 죄요, 도적질하는 것이 죄요,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것이 죄요, 다른 사람이나 무릇 그들의 물건을 탐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다 죄인데, 죄를 죄인 줄을 모르고서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죄를 죄로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짐으로 우리가 누군가 하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감추고 부정하더라도 율법을 들이밀며 "자 이것을 보라. 이런 이런 일을 한 네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아라. 네가 한 행위는 죄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셔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또한 그 죄를 지은 대가가 어떤 것인지도 똑똑히 보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는 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죄를 죄로 알게 해 주어서 우리가 행한 악행에 대하여 정죄를 하며,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그 모든 것을 행하여도 죄인줄 모르고 살았는데, 율법이 주어짐으로써 죄인줄 알고 행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뻔히 죄가 되는 줄 알고서도 죄를 짓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롬 7:7-13). 죄를 지으면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허지만, 하나님은 율법을 단지 정죄와 심판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만 그 역할을 하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우리를 향하여 "너는 죄인이다!. 너는 나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이다. 너는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 라는 사실 확인만을 위하여 있는 것이냐? 그렇게 단지 정죄하고 심판을 선언하는 역할만을 위하여 있는 것인냐 할 때 율법은 그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게 무엇인가를 갈라디아서 3장 19-24절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를 율법 안에 가둔다고 합니다. 왜 가두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얼마나 필요한가 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너는 죄인이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죽음을 당할 것이다"를 말해 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율법에서 너의 존재가 죄인이요 죽음 아래 놓여져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알았느냐? 그런 너를 죄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율법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보거라. 그리고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와 무릎을 끓는 자가 되어서 믿는 자가 되어라. 그 믿음으로 네가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밖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의지하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무릎을 끓게 하기 위하여 율법의 칼을 들이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율법을 폐하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율법을 가리켜 말하기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뜻에서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받았는데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죄인된 것과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을 입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라고 말하고 십자가의 사건을 사랑이라고 긍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율법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죄인줄을 뻔히 보면서도, 그래서 자신은 죄에 사로잡힌 자로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 받지 않으면, 그는 단지 율법의 정죄와 심판 속에 있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대하여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합니까? 그 원인은 이 문제에 모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율법을 통과하지 않고, 율법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 바로 십자가를 소개받아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없이 막 바로 십자가 사건으로 직행한 것입니다. 먼저 율법으로 자기를 보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그래서 얼마나 추하고 악하며 불쌍하고 불행한 존재인지를 확연히 보고서 그 앞에 무너지고 좌절하고 전적 부패를 깨달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도무지 살아날 수 없는 자라는 절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주신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바지 가랑이를 붙들고 "도와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하는 절박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이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만 바라보면 구원받는다고 하더라"고 하며 "주님, 날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하며 십자가를 붙들고 아우성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참된 회개가 없고, 은혜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자기 믿음으로 세상적이요 육체적 의미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종교행위, 종교 열심주의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또 병 고치고 부자 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기복신앙, 은사주의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투자한 것은 확실하게 뽑을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를 투자했으니 갑절의 축복을, 30배, 60배, 100의 축복을 해 주셔야 한다고 어거지를 부립니다. 마치 정조를 잃은 여인이 "내 순결을 너에게 바쳤으니 이제 내 인생은 네가 다 책임져야 한다. 안 그러면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복수하겠다"하는 식입니다.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면 아시지요?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잘 아실 것이니 들어주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것 저것을 얼마나 투자했는지 모른척 하신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차라리 안 믿겠습니다" 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이 많아야 합니다. 십계명으로 율법의 전부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단지 하나님의 뜻과 그 정신을 강령으로 나타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아 열을 알 듯이, 십계명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에 관련된 율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21-22절). 율법은 곧 지식을 말합니다. 율법이 많음으로 우리는 고민과 갈등과 심적인 고통을 양심의 눌림을 받으며 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로 인하여 결국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소망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을 향하여 두 손을 벌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입기를 구하며, 그 은혜를 입은 자는 또한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도대체 왜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 외에는 살 소망이 없음을 알고서 붙들고 게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무엇인가 인간적인 소원의 성취를 얻어내기 위하여서 붙들고 계신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에게는 십자가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욕심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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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주달영 | 작성시간 20.05.07 귀한 은혜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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