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없다고 탓하시나요?
예수님이 ‘구주’로 불려지는 것은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아들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에 의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빌라도 총독의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심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은 온 세계 사람들이 익히 압니다. 여기에는 그것의 신비로움을 말하기 위해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만들어서 사용되고 있는 그 흔한 공허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들어가 있지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 총독과 헤롯 왕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결국에는 사형 판결을 받고 로마 병사에게서 채찍을 맞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힘겹게 올라갔으며, 양 손과 양 발에 큰 못으로 박혀 십자가에 달린 것만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에 있은 여러 가지 일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신화적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세 시간 동안 흑암이 덮었던 것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둘로 갈라진 것도, 그리고 6시간 만에 신속히 운명하신 것도, 그리고 죽은 자를 장례 치르기 위하여 마련해 두었던 곳에 장사(葬事)된 것도, 그리고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모두 모두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란 종교를 구축하고 전파할 수 있기 위하여 조작한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전파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기절설이니 환상설이니 이런 저런 말로 허위로 만들고자 하며 막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이분은 옳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없다”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는 말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그 현장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인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에게서,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편 강도에게서 나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죽음에 있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배척하며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 죽게 하였으나,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행하시고 자신의 나라에 임하여 온 세상의 주가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 너머에 있는 참되고도 영원한 세계를 보며 그 즐거움을 아시는지요. 그러한 그리스도인을 우리네 주위에 있는 교회는 왜 그렇게도 이래서 믿음이 없고 저래서 믿음 없다며 마음 놓고 제대로 숨 한번 못 쉬게 하며 무거운 짐 지고 온갖 눈치 보며 살게 하는지요. 구원, 해방, 자유를 그리스도에 의해서 말하면서도 왜 그렇게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여서 좋은 믿음, 큰 믿음에 있어야 한다고 하는지요. 이것이 아니면 믿음이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것으로 믿음을 주신 일이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고난을 기꺼이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에서 믿는 게 참으로 버겁지만 그래도 어렵게 믿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벨을 비롯한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어떻게 저렇게 죽음에 처하면서도 그들의 믿음이 굳게 그리스도께 있는가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으로 믿음이 말해지고 있는 것인데, 행함으로 믿음을 말하고자 한다는 사람들은 과연 ‘죽기까지 복종하셨느니라’의 즐거움에 결코 이르지를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복종에서 즐거움에 있지를 않고 자신이 행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가져가려고 하니 즐겁지 못한 행동에선 즐거움에 있지를 못함이 한 두 번이 아니며 괜스레 짜증내며 믿음 없음을 탓하게 됩니다.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제가 믿음이 없었나이다!”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