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나비 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중생
언제인가 유선방송인 모채널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번뿐인 인생을 산다면서, 이러한 인생을 잘 살아야하며 성공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은 변화되어야 한다며 그 예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애벌레와 나비입니다. 애벌레가 나중에는 나비가 되는데, 애벌레로 끝나면 참으로 볼 품이 없지만 나비가 되면 아름답다며, 사람은 애벌레 인생으로 끝나지 말고 나비와 같이 성공하고 잘 사는 인생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달걀과 닭입니다. 달걀이 닭이 되니 얼마나 멋지냐며, 사람의 인생이 만일에 달걀 그 자체로 끝난다면 아무 것도 아닌데 닭이 되면 참으로 화려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사람도 변화를 받으면 애벌레에서 나비 인생으로, 달걀에서 닭 인생으로 성공해서 잘 살아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사람이 나비와 닭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중생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어이없는 말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애벌레가 그냥 언제까지나 애벌레로 있나요? 곤충은 대개는 알 - 애벌레 - 번데기 - 성충이란 4단계를 가집니다. 알이 성장하는 과정의 하나로 애벌레로 있는 것이며, 이 애벌레는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서 성충이 되는 것에서 안쪽의 몸을 드러내는 것으로 겉껍질을 벗어버리는, 즉 허물을 벗어버리는 탈바꿈을 합니다. 이것을 변태라고도 말합니다.
왜 이런 상식인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말이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은 곤충이 성충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이며 반드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애벌레에서 성충인 나비가 되는 것은 하등의 이상한 이야기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달걀이 닭이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미 닭의 품에서 일정한 시기를 보내면 달걀 안에서 병아리가 달걀 껍질을 쪼아 깨고 나옵니다. 그리고 열심히 모이를 먹고 신나게 뛰어놀며 닭으로 자라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달걀이 닭이 되는 것을 사람이 잘 사는 사람으로, 성공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에로 비유가 되다니요? 더욱이 그 변화를 중생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서 되어지는 것으로 말하다니요?
사람이 중생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자연스런 성장의 과정에서 있는 탈바꿈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말이죠. 사람이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육에서는 육의 사람만이 나올 뿐이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탈바꿈을 한다는 변화는 애벌레가 나비로 성충이 되고 달걀이 닭으로 다 자란 동물이 되는 것에서 있는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힘, 곧 자연의 법칙으로는 있을 수 없으며, 오직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있는 변화란 나비로 닭으로 사는 것에서 잘살고 성공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 그렇게 돼봐야 한 철을 넘기지 못하며, 닭튀김이니 닭강정이니 하는 요리가 되어 식탐에 있는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 밖에 더 되는지요 - 아무에게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예수께서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어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모셔 섬김에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날마다 지배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믿음에 있게 하고 있는 경이로움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