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불리우는 교회
교회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사물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임재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된 인간과의 관계성'에 의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다루는 교회론에서 말하는 여러 용어 중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란 용어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 '진리의 기둥과 터', '그리스도의 신부요 처녀', '양무리'로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데, 구약 시대 때부터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의 상징성을 띠는 것과 함께 장래 일의 모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것을 다음의 설명에서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출 3;14). 스스로 있는 자로서 하나님 자신이 영광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의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되심과 영화로우심을 온전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육용으로 요약 정리한 대교리 문답에서는 질문 : "사람의 제일되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며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히 마음을 다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고, 소교리문답에서도 질문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쳐서 사람에게서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 그리고 전도서 12장 3절에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데, 종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창조 받은 목적에 따라 그 본분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으로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에 의하여 하나님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시 104:1) 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어 나타내시기에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한 분이시오 능력이 영원한 분인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롬 1:19).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 곧 인간입니다. 그것은 인간은 유일한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만이 하나님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온 세상에 발견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인간에게서 발견되어 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이 세상을 다스리시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그 인간과 더불어서 관계성을 가지고서 사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창조 받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음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복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복되게 살아가는 곳으로서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 받아 자기의 백성 된 자에게 임재하여서 함께 사십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짓고 타락한 후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낸 것에서 계시해 주고 있듯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비참한 실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가지신 영원한 작정에 따라 완전하게 회복시켜 놓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것이나 처음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썩을 몸이요 하나님에 대하여서 죽은 상태였습니다.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는 그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사단의 유혹에 의해서 죄를 짓고 타락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적 부패하여 악을 내뿜을 수 있는 그런 상태요 죽음이 왕 노릇할 수 있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그렇게 시험적 상태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다시는 썩지 않을 몸이요 하나님에 대하여 영원히 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실천은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 보내주시는 것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사건은 구약의 경륜 하에서는 임마누엘로 불리웠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서 선지자 이사야가 아하스왕에게 아람 왕 르신과 르말이야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다윗 왕가를 위협한 데 따른 하나님의 진노로 그 두 원수들을 진멸 할 것에 대한 표징으로 임마누엘을 주셨는데(사 7:1-16), 이는 훗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구원을 이끌어 가실 것에 대한 예표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전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에 의하여서 다루어지며, 또한 성막(성전)을 통해서 모형적으로 계시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이 지상에 교회를 세워나가신 것에서 성취가 되어졌습니다(참조. 3강 교회 형성의 역사성). 그래서 하나님께서 과연 자기 백성에게 임재하여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원리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운다"라고 했을 때는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과 같은 개념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교회가 사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함께 관계를 맺어 가시는 인격체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거나 허물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16-17)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는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이 큰 원리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는 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지 않는 자는 그들이 어떤 자들이든지간에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는 그들이 어떤 자들이었든지간에 이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쉐키나 구름이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비추고 있고 매년 대제사장이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서 피를 가지고 들어와 엎드려 경배할 때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하신 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적으로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거주하시는 처소로 삼으신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주로 섬기는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수 있는 그런 거룩한 자요 정결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너희 몸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너희는 이제 너희 몸 안에서 너희에게 은혜로운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항상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으신 생각이 너희 생각으로 나오고 하나님의 의지가 너희 의지를 통해서 나타나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 몸을 통해서 행사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너희 구원을 이끌어 가시는 선한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된 자는 자신을 온갖 더러움에서 지켜가야 함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된 큰 원리를 언급한 후에 이어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 된 자는 그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밝히기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은 "너희가 몸을 더럽히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요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너희 몸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너희 몸을 정결하게 지키는 자는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로 삼으실 될 것이나 너희 몸을 더럽히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전을 헐어버리는 행위이니 하나님은 그의 몸 또한 멸망시키실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이 왜 성전이 허물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구약의 경륜 하에서 주어진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불결한 자가 되었을 때 훼파되어 무너진 것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 된 우리 몸을 우리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까?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 고린도교회가 겪은 상황 속에서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가 처한 상태를 바라보는 바울은 그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그들을 불러 구원하신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를 못하여서 서로 나뉘어 제 각기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보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보인 시기와 분쟁의 행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치켜 세워 그가 하나님의 일군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을만한 분이라고 하면서 그분에게서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 것에 긍지를 갖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볼로를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가 한갖 바울이나 아볼로의 제자 된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믿음의 관심과 재미를 삼고 그것 때문에 정신 차리지를 못하고 분쟁하자 바울은 하나님의 밭과 하나님의 집을 예로 들어서 이들은 다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이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일한 하나님의 동역자들일 뿐이라고 하면서, 고린도교회는 바울이나 아볼로의 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밭이며, 바울이나 아볼로가 건축하여 세운 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은 건축자의 비유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건축하는 집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판날이 와서 모든 사람들이 건축하여 세운 집을 불로 시험할 때 금과 은과 보석을 사용하여 집을 지어서 불을 견디어 낸 집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나무와 풀과 짚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불길일 치솟아 올라 타 없어지는 집도 있을 것인데 그 집을 건축한 사람 자신은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 속을 피해 나와 겨우 목숨만은 구하듯 그렇게 구원받을 것임을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금과 은과 보석을 사용하여서 건축하는 공력을 들여야 할 것이지 그렇지 않고 나무와 풀과 짚을 사용하듯이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에 그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 올바르게 건축한 것이 아닌 것이 판명되어 무너짐이 심할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성전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헛된 지혜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혀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곧 하나님의 성전인데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더럽혀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성전 된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는 재고의 가치가 없이 멸망 받을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일을 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기초 위에 그 복음이 갖고 있는 진리를 사색하고 배워가면서 밝히 알아가고 의존하며 거기에 걸맞게 살면서 아름답게 세워져 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며,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금의 교회가 보이는 행태는 참으로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 아니라, 사람이 지은 집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집이요 아볼로의 집으로서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는 교회당의 크기가 크며 그래서 그 위용이 클수록 그러는 경향이 짙은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교회 목회자의 인품이나 이런 저런 훌륭함을 거론하고, 심지어는 교회당의 위세를 자랑하며 자신이 그 교회에 다니고 그 목회자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며 그래서 그분의 성도요 제자로 있다고 하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갖는 온갖 신앙적인 행위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며 게다가 그러한 행위를 한 자기 의를 은밀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랑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교회를 사람들이 찾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며 또한 교회가 사회에 유익을 끼치며 선도해 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세속적인 문화를 끌어들인 공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건축한 집은 결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거룩성을 띠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악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며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불 가운데서라도 구원받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푸심으로 그러한 은혜를 입히시면 모르겠지만 그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성전에게 가진 모습으로는 그것은 교회로서의 자기 성격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실은 하나님의 자비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는 것이냐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으로서 거룩성을 띠고 있어야지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데 강조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성전 된 우리는 자신을 온갖 더러움에서 지켜가야 합니다. (*)
교회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사물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임재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된 인간과의 관계성'에 의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다루는 교회론에서 말하는 여러 용어 중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란 용어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 '진리의 기둥과 터', '그리스도의 신부요 처녀', '양무리'로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데, 구약 시대 때부터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의 상징성을 띠는 것과 함께 장래 일의 모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것을 다음의 설명에서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출 3;14). 스스로 있는 자로서 하나님 자신이 영광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의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되심과 영화로우심을 온전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육용으로 요약 정리한 대교리 문답에서는 질문 : "사람의 제일되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며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히 마음을 다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고, 소교리문답에서도 질문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쳐서 사람에게서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 그리고 전도서 12장 3절에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데, 종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창조 받은 목적에 따라 그 본분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으로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에 의하여 하나님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시 104:1) 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어 나타내시기에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한 분이시오 능력이 영원한 분인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롬 1:19).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 곧 인간입니다. 그것은 인간은 유일한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만이 하나님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온 세상에 발견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인간에게서 발견되어 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이 세상을 다스리시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그 인간과 더불어서 관계성을 가지고서 사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창조 받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음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복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복되게 살아가는 곳으로서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 받아 자기의 백성 된 자에게 임재하여서 함께 사십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짓고 타락한 후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낸 것에서 계시해 주고 있듯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비참한 실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가지신 영원한 작정에 따라 완전하게 회복시켜 놓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것이나 처음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썩을 몸이요 하나님에 대하여서 죽은 상태였습니다.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는 그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사단의 유혹에 의해서 죄를 짓고 타락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적 부패하여 악을 내뿜을 수 있는 그런 상태요 죽음이 왕 노릇할 수 있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그렇게 시험적 상태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다시는 썩지 않을 몸이요 하나님에 대하여 영원히 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실천은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 보내주시는 것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사건은 구약의 경륜 하에서는 임마누엘로 불리웠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서 선지자 이사야가 아하스왕에게 아람 왕 르신과 르말이야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다윗 왕가를 위협한 데 따른 하나님의 진노로 그 두 원수들을 진멸 할 것에 대한 표징으로 임마누엘을 주셨는데(사 7:1-16), 이는 훗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구원을 이끌어 가실 것에 대한 예표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전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에 의하여서 다루어지며, 또한 성막(성전)을 통해서 모형적으로 계시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이 지상에 교회를 세워나가신 것에서 성취가 되어졌습니다(참조. 3강 교회 형성의 역사성). 그래서 하나님께서 과연 자기 백성에게 임재하여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원리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운다"라고 했을 때는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과 같은 개념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교회가 사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함께 관계를 맺어 가시는 인격체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거나 허물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16-17)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는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이 큰 원리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는 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지 않는 자는 그들이 어떤 자들이든지간에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는 그들이 어떤 자들이었든지간에 이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쉐키나 구름이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비추고 있고 매년 대제사장이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서 피를 가지고 들어와 엎드려 경배할 때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하신 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적으로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거주하시는 처소로 삼으신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주로 섬기는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수 있는 그런 거룩한 자요 정결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너희 몸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너희는 이제 너희 몸 안에서 너희에게 은혜로운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항상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으신 생각이 너희 생각으로 나오고 하나님의 의지가 너희 의지를 통해서 나타나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 몸을 통해서 행사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너희 구원을 이끌어 가시는 선한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된 자는 자신을 온갖 더러움에서 지켜가야 함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된 큰 원리를 언급한 후에 이어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 된 자는 그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밝히기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은 "너희가 몸을 더럽히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요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너희 몸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너희 몸을 정결하게 지키는 자는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로 삼으실 될 것이나 너희 몸을 더럽히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전을 헐어버리는 행위이니 하나님은 그의 몸 또한 멸망시키실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이 왜 성전이 허물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구약의 경륜 하에서 주어진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불결한 자가 되었을 때 훼파되어 무너진 것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 된 우리 몸을 우리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까?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 고린도교회가 겪은 상황 속에서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가 처한 상태를 바라보는 바울은 그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그들을 불러 구원하신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를 못하여서 서로 나뉘어 제 각기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보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보인 시기와 분쟁의 행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치켜 세워 그가 하나님의 일군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을만한 분이라고 하면서 그분에게서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 것에 긍지를 갖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볼로를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가 한갖 바울이나 아볼로의 제자 된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믿음의 관심과 재미를 삼고 그것 때문에 정신 차리지를 못하고 분쟁하자 바울은 하나님의 밭과 하나님의 집을 예로 들어서 이들은 다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이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일한 하나님의 동역자들일 뿐이라고 하면서, 고린도교회는 바울이나 아볼로의 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밭이며, 바울이나 아볼로가 건축하여 세운 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은 건축자의 비유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건축하는 집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판날이 와서 모든 사람들이 건축하여 세운 집을 불로 시험할 때 금과 은과 보석을 사용하여 집을 지어서 불을 견디어 낸 집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나무와 풀과 짚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불길일 치솟아 올라 타 없어지는 집도 있을 것인데 그 집을 건축한 사람 자신은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 속을 피해 나와 겨우 목숨만은 구하듯 그렇게 구원받을 것임을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금과 은과 보석을 사용하여서 건축하는 공력을 들여야 할 것이지 그렇지 않고 나무와 풀과 짚을 사용하듯이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에 그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 올바르게 건축한 것이 아닌 것이 판명되어 무너짐이 심할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성전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헛된 지혜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혀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곧 하나님의 성전인데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더럽혀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성전 된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는 재고의 가치가 없이 멸망 받을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일을 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기초 위에 그 복음이 갖고 있는 진리를 사색하고 배워가면서 밝히 알아가고 의존하며 거기에 걸맞게 살면서 아름답게 세워져 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며,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금의 교회가 보이는 행태는 참으로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 아니라, 사람이 지은 집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집이요 아볼로의 집으로서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는 교회당의 크기가 크며 그래서 그 위용이 클수록 그러는 경향이 짙은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교회 목회자의 인품이나 이런 저런 훌륭함을 거론하고, 심지어는 교회당의 위세를 자랑하며 자신이 그 교회에 다니고 그 목회자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며 그래서 그분의 성도요 제자로 있다고 하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갖는 온갖 신앙적인 행위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며 게다가 그러한 행위를 한 자기 의를 은밀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랑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교회를 사람들이 찾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며 또한 교회가 사회에 유익을 끼치며 선도해 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세속적인 문화를 끌어들인 공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건축한 집은 결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거룩성을 띠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악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며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불 가운데서라도 구원받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푸심으로 그러한 은혜를 입히시면 모르겠지만 그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성전에게 가진 모습으로는 그것은 교회로서의 자기 성격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실은 하나님의 자비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는 것이냐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으로서 거룩성을 띠고 있어야지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데 강조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성전 된 우리는 자신을 온갖 더러움에서 지켜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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