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단계별학습

신약구속사 7강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5.05.23|조회수490 목록 댓글 1
*요한복음 1장 35-51절을 읽으신 후에 본 설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그리스도로서의 공식적인 사역을 수행하기 시작한 때는 그가 삼십 세의 성년으로서(눅 3 : 23)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그 시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서 광야에 들어가 40일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직무를 권위 있게 행하실 것임을 이 세상에 나타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시고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메시야로서의 구원 사역을 시작하신 것은 5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일을 하신 것에서부터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모두 5차년도에 걸쳐서 되어졌는데, 그 중에 제 1차년도의 사역은 요한의 메시야 증거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또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이후 그 이듬해에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까지의 사역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다섯 명의 제자를 부르신 일과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이적을 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관복음은 한결 같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당함을 마치신 뒤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 그곳에서 전도 여행을 한 것으로 전체 설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4:12-17, 막 1:14-15, 눅 4:14-15). 그러나 공관복음이 보여주는 갈릴리 지방의 전도 여행은 제 2차년도 사역 후반기에 있었던 것으로 실상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이후로 약 일년이 지난 뒤에 있은 일입니다. 즉 1년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제 2차년도 사역의 전반기의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있는데(단, 세례요한이 체포된 기록은 누가복음 3장 18-20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2장 13절부터 4장 42절까지로 주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전도 여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음

광야에서 있은 마귀의 시험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요단강 베다니로 나오셨습니다. 이 베다니는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와는 구별되는 곳으로써 통상 "벳바게"라고 호칭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으로 오셨을 때에 요한은 여전히 그의 제자들과 함께 물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사역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요한은 사역을 지속하던 중 예수께서 자기 앞에 오시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죄를 지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 것과 이후 자신이 베푼 물세례의 본질인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요 1:29-34). 그 다음날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아직 요단강에 계신 것을 보고는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증거하며 그의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보냈습니다. 그럼으로써 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점차 마무리 지어갔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 동안 그의 길을 곧게 하는 외치는 소리의 사역을 다한 자신은 조용히 사라져 가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오셨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이 가장 아끼며 사랑하는 두 제자를 보냄으로써,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 말한 대로 소리로서의 사명과 또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는 공언에 대한(요 1 : 23, 3 : 30) 실천의 모범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선생님, 어디에 머물러 계십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과 같이 지내면서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뜻인 동시에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께 나아오게 된 동기가 결코 순간적인 충동심이나 즉흥적인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평소부터 스승 세례 요한에게서 물세례가 상징하고 있는 죄 사함의 은혜가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침 받아왔는데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신 것을 이사야 53장 7절을 근거로 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자 한다면 그를 세상 죄를 지신 분으로서 가르쳐야 하며, 또한 그에게 나오는 자 역시 사죄의 은혜를 받기 위한 목적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진리를 외면하고서 단지 '축복'을 받고자 하거나, '신비한 능력'을 경험하며 소유하고자 하거나, 또는 '경건 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사실 신앙을 빙자한 불신앙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두 제자를 향하여 "와 보라"고 대답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함께 가서 오전 10시부터(유대인의 시각이며, 로마의 시각으로는 오후 4시) 밤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약에서 말씀하시고 있고, 그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 행한 물세례가 자신과 자신이 행할 구속 사역과 관련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그 두 제자가 보인 행동에서 알 수 있습니다.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안드레는 형인 시몬을 찾아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행동은 거론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본 내용을 기록한 저자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 인 것입니다.


안드레의 형인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음

예수님을 따라간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는데 그가 자기 형 베드로를 찾아가서 자기가 보고 들어 깨달은 진리를 말하기를 ,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의 증거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되어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 믿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와 보라"라고 말하여 그들을 이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장차 베드로라고 불리울 시몬(Simon)이라는 사람도 그의 형제 안드레(Andrew)를 통해서 자신에게 나오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그의 형제 안드레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시몬을 보신 예수께서는 그에게 '게바'(Gephas)라는 이름을 새롭게 지어 주셨다. 게바란 이름은 아람어인데 이 이름은 우리에게 헬라어로 된 이름인 '베드로'(Peter)로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게바, 그러니까 베드로로 바꾸어 주신 것은 그 이름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담긴 뜻을 심어 주어 그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페트로스〉)라는 이름은 "반석"( 〈페트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장차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교회의 반석이 될 것입니다. 이는 그가 교회를 조직하는 일에 선구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 교회를 이루는 원천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있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모범적인 한 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마 16:13-20). 이렇게 장차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앙고백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 일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실예를 보일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일이 시몬에게 분명히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기억시켜 주시기 위해서, 마치 과거 구약 시대 때에 하나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신 것처럼(창 17:5, 15, 32 : 28) 예수님은 시몬이 장차 게바 - 베드로 - 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로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진리에 대한 그의 결단력은 실로 과감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형제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기타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여러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하거나 혹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소개하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41절에 있는 "먼저"라는 말에서 충분히 짐작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냉랭한 자세와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는 안드레의 열심은 그가 진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요소로 말미암아 그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그 진리를 전파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빌립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음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를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은 이렇게 세례 요한의 두 제자와 그리고 베드로 외에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을 떠나 그의 고향 나사렛 근방으로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때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빌립을 만나 그를 부르셨고 빌립은 그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로써 빌립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최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새다 사람입니다.


빌립을 통해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음

그리고 그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성경은 그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인도 받으면서 보인 반응을 다룸으로써 그 중요성을 보입니다. 나다나엘은 처음에 빌립이 "우리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그 메시야를 만났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인데 나사렛 사람 요셉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듣고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립이 "당신이 직접 그분을 만나 보라"는 말을 듣고 메시야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명상하며 그 기다림 속에서 있었던 나다나엘이었던지라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빌립이 말한 대로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보고자 하였는데, 이는 그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보고 그를 주로 모시고 섬기고자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는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된 이유는 그가 그 속에 간사한 마음을 품지 않은, 그러니까 진리에 주저 없이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진리 앞에서도 항상 고의적으로 불순종한 데 반해 나다나엘은 순종하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는 그의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요 1 : 47)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은 영적 구원에 대한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통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사에 대한 원리의 모형을 계시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일체의 종교적 특권은 이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사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따라서 민족적 구원의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롬 9:1-13).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이를 크게 오해하여 자기들이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 한 가지에만 근거하여 그것을 구원의 원리로 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타민족을 멸시하는 못된 교만을 보였습니다(엡 2:11). 이와 같은 때에 나다나엘과 같은 율법학자가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수께 나아왔다는 것은, 평소 그가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망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통하여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고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하자,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찾아가기 전에 이미 나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라는 표현은 랍비 문헌에 쓰인 말로써 율법을 묵상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상징어입니다(Merrill C. Tenney). 나다나엘의 과거를 자세히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전능성은 나다나엘을 탄복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주저하지 않고 그 즉시로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창세기 28장 12절을 그 내용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던 중 벧엘에서 꾼 꿈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인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인데,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될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내용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었던 사닥다리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야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끄집어내어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관계성 회복을 위해서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다나엘은 바돌로매(Bartholomew)라고도 불리우는데 (마 10:3, 눅 6:14) 앞서 부름을 받은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과 함께 열 두 제자의 수에 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공적 사역이 수행되는데 있어서는 이처럼 먼저 예수님과 함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수영 | 작성시간 05.07.29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