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성령의 유기적인 역사로 세워져 가는 가정
성령님의 인격과 나의 인격의 신비로운 연합의 특성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이 한 인격을 지닌 생명체로 교회의 속성을 이 땅에 충만히 나타내는 삶을 사는 그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세상에 내어놓도록 역사하십니다. 가정에서 행하는 성도의 삶은 자기라고 하는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성도 안에는 두 인격이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존재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격과 자기라고 하는 인격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과 연합하여 존재해 있습니다.
이때 이 두 인격이 서로 각각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인격이 겉으로 나타날 때는 항상 나라고 하는 한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이제 성도의 삶은 성령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유기적인 존재(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신지를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에서는,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명령법을 쓰시는 것을 통해서 실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향하여 가지신 내 뜻이 이것이다"를 알려주시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일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 이것은 '나'라고 하는 우리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목표와 의무에 따라 행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이 일을 성령님께서 해 나가시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신 모든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그에 대한 소원을 갖도록 그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나'라고 하는 존재인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인데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움직이고 행동하는 인격의 주체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의 배후에는 성령님께서 간섭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 까닭에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까닭에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도록 순종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서 도와주십니다.
다음의 말씀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자신이 그들이 주로 섬기던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심을 드러내어 알게 하시고 조반을 나눈 후에 베드로에게 이후 그가 주님의 교회를 이루고서 사역해야 할 목양의 사명을 말씀하시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부언하셨는데, 요한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요 21:18-19).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베드로의 생애가 그의 자의지와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의 인격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셔서 그의 생애가 성령님께서 의도하시는 선한 삶으로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죽음을 당하는 것까지도 성령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삶이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의 계획에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미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교회를 이루는 일의 위대한 계획 속에 있는 우리의 모든 삶도 성령님의 철저한 간섭을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 그분이 가지신 생각을 좇아 선한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롬 8:5, 빌2:5; 13). 그래서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 인격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가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는 바로 성령님의 인격의 선하심이 우리에게서 나라고 하는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성령의 소욕(所欲)으로 살라는 말인데(갈 5:17), 성령님이 가지신 선한 생각을 좇아 거기에 순종으로 자신을 드려 가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격을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그에게서는 성령의 열매로 표현되어진 그런 선한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인격이 자기의 욕심과 그 욕심을 이루려는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성령님의 선한 생각을 좇는데 따라서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에 나타나는 데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또한 그에 따른 마땅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사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고, 그 성령님의 인격의 선하심은 우리 인격에 그대로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에서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또한 14절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는 말씀을 덧붙이신 것은 그래서입니다. 왜 갑자기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까?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앞의 문맥과 동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우리의 인격적 기능 속에 작용하심으로 우리가 성령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이 가지신 뜻을 나의 소원으로 품게 하시고 그것을 행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내가 나의 의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은 사실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요 성령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나, 교회의 속성을 지닌 가정 안에서 원망과 시비를 갖는 일은 전혀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15절에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원망과 시비를 갖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뜻이, 어느 누구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마음이 비뚤어지고 완고한 사람들이 가득 찬 이 어두운 세상에서 흠 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들 사이에 생명의 말씀을 높이 들고 등불처럼 빛을 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원망과 시비가 없었다면, 그러한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요 그것이 육인데, 이 육을 쳐서 나오지 않게 하고 성령님의 마음과 그 생각을 좇아서 움직이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님의 뜻에 복종으로 자신을 드려 갈 수 있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무엇을 행할 때라든지,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에 힘쓴다고 하면 그 배후에는 항상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그분의 소원을 품고, 또한 의욕적으로 소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힘도 얻어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유기적 역사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의 유기적 역사'라고 하는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사용하여서,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항상 생각하는 주체는 나요, 행동하는 자도 나입니다만 그러나 여기에는 사실 성령님의 인격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인격은 성령님이 함께 하셨을 때는 나라는 인격이 독립된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라고 하는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나의 인격을 통해서 유기적(有機的)으로 움직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킬 때에 단순히 조직체(organization)라고만 말하지 않고 '유기체'(organism)임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유기적인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이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유기체란 하나의 동식물, 또는 인간의 몸과 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말합니다. 반면 조직체는 비록 움직이는 기관으로 구성되기는 하나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격을 형성해 내는 까닭에 유기체입니다. 물론 교회는 조직체적인 성격도 가집니다. 성도는 목사를 세우고 목사가 직분을 감당하여 교회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중에 필요에 의해서 장로와 집사를 세울 때 교회는 조직체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또한 교회가 봉사의 일을 하는 기관으로서 이런 저런 이름으로 그룹을 형성하여 조직체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일을 해 나가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각 각 조직체가 해 내는 일은 교회 전체에서 볼 때 많은 일이요 큰 일을 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직체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는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조직체를 갖고 있든지, 또는 없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생명체요 인격체로 있으면서 각 지체간에 활발한 유기적인 관계성을 맺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조직체의 성격은 성령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성도를 섬겨 봉사함으로써 모두가 한 몸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인격은 곧 성령님의 인격입니다. 교회의 조직체는 이렇게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성령님의 인격을 형성해 내는 일을 하므로 유기체의 성질을 보여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체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제도 위에 세워진 기관이기 때문에 생명체는 아닙니다. 오직 유기체만이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유기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살아있는 생명체인 각 지체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내고 있는 성도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가정 생활을 통하여 가장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현상들 중에서 가정만큼이나 유기체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가정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며, 나와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인격들이 모여서 살아가는데, 이들의 삶의 형태는 항상 '우리 가정' 혹은 '나의 가정'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로 집중됩니다. 한 사람은 직장에 나가고, 한 사람은 주부의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합니다. 이렇게 각자가 하는 일이 다르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결국 가정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데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은 가정 전체의 행복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불행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험에 낙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병마에 시달리는 일일 수도 있고, 실직하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때 이 불행은 나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가정을 구성하는 공동체 전체에게 미칩니다. 그래서 가정 전체가 불행을 끌어안고 고통을 겪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이 세상에서 유기체적인 성격을 가장 현실적으로 체험하는 곳입니다. 가족들은 각기 자기의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지만, 사실은 가정이라고 하는 한계 혹은 영향이나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가족을 돌아보는 생각을 갖고서 합니다.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일은 가정이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을 유익되게 하고 온전히 세워나가는 자로서 내가 가정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족 관계가 아닙니다. 남이지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격이 이렇게 유기적입니다. 바로 이 유기체적인 특성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의사는 우리의 의사가 되어, 우리의 지, 정, 의적인 활동, 곧 우리의 인격적인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가실 때에, 그것은 우리라고 하는 사람의 인격적 기능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성령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며, 급기야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의 행위로 나타나는 데까지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나라고 하는 우리의 측면에서 보면, 마치 내가 주도적으로 기뻐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소원을 가지고, 내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묘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이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격적인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이런 삶을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적 모습 안에서만 소원으로 갖게 하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있는 어느 곳에서도 인격으로 나타나도록 주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가 생명의 도리의 삶을 낼 수 있도록 가정으로 인도하여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격을 지닌 교회의 거룩한 모임은 가정이라는 곳으로 흩어져서 가정이 교회의 거룩한 속성을 지니고 생명의 도리의 삶을 발휘하는 인격을 나타냅니다. 이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은 가정 안의 식구들에게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격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정에서 나타나는 인격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펼쳐 나가십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의 존재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믿음과 삶을 바르게 갖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맺는 말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여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인데, 그이미지를 가정의 개념을 가지고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건설되어 새로운 가정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자녀로 입양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형제'요 '자매'라는 친근감 있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형성의 표현은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상태요, 결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음 바 된 자들입니다. 이 새로운 질서 속에 들어온 구원받은 무리들은 사랑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시며,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된 표현이요, 그 영광에 참여된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땅한 복종은 주님의 사랑에 참여되고 있는 영광의 표현이요, 이 사랑의 생명을 어떠한 것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능력이요, 생명입니다. 이 사랑의 친밀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교제'함으로 나타납니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목적이나 행동에 대한 '동참'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믿음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안에서의 참여'하는 것이며, 그래서'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사역에 종사하는 것'이며, 이는 '경제적 지원의 참여'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참여를 행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요, 주님이 행한 삶을 같이 누리는 '영광의 참여'입니다. 이 기쁨을 함께 참여함으로 우리의 사랑의 행위가 교회 안에서 풍성함으로 넘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누려져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는 나누어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이든 가정이든 그 원형은 '그리스도와 한몸된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러하듯이 가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세상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가정의 출발은 부부로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부부의 출발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적인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교회는 곧 부부가 배우고 표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형입니다. 창조의 원리에 있어서 부부는 둘의 분명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입니다. 두 인격은 각자의 인격의 권리를 가지고 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그 남편에게 복종하는 원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내가 복종하는 것은 복종할 만한 지각이 있으며, 그의 뜻을 헤아리는 자이며, 그의 기쁨에 함께 누리는 자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에게 맡겨진 분량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영광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자기들의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 안에 참여할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영광 안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삶은 성령님이 행한 삶의 결과입니다. 나라고 하는 안에는 '성령님의 인격'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라고 하는 이 인격에는 우리의 소원은 사실 성령님의 소원이며, 성령님의 소원은 곧 우리의 소원이 되어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우리의 육을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몸된 교회를 통하여 작용하게 되며, 그 몸은 또한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며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합니다. 교회로 주신 모든 생명은 가정 속에서도 그 영광의 빛이 세상으로 전달 될 것입니다.
토의문제
1. 교회의 이미지를 왜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까?
2. 교회의 질적인 표현은 사랑인데 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3. 영적 교통을 기초로 하는 나눔이 교제라고 한다면 교회(가정)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4. 하나님의 뜻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성령님의 인격과 나의 인격의 신비로운 연합의 특성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이 한 인격을 지닌 생명체로 교회의 속성을 이 땅에 충만히 나타내는 삶을 사는 그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세상에 내어놓도록 역사하십니다. 가정에서 행하는 성도의 삶은 자기라고 하는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성도 안에는 두 인격이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존재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격과 자기라고 하는 인격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과 연합하여 존재해 있습니다.
이때 이 두 인격이 서로 각각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인격이 겉으로 나타날 때는 항상 나라고 하는 한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이제 성도의 삶은 성령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유기적인 존재(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신지를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에서는,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명령법을 쓰시는 것을 통해서 실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향하여 가지신 내 뜻이 이것이다"를 알려주시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일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 이것은 '나'라고 하는 우리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목표와 의무에 따라 행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이 일을 성령님께서 해 나가시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신 모든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그에 대한 소원을 갖도록 그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나'라고 하는 존재인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인데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움직이고 행동하는 인격의 주체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의 배후에는 성령님께서 간섭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 까닭에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까닭에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도록 순종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서 도와주십니다.
다음의 말씀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자신이 그들이 주로 섬기던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심을 드러내어 알게 하시고 조반을 나눈 후에 베드로에게 이후 그가 주님의 교회를 이루고서 사역해야 할 목양의 사명을 말씀하시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부언하셨는데, 요한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요 21:18-19).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베드로의 생애가 그의 자의지와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의 인격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셔서 그의 생애가 성령님께서 의도하시는 선한 삶으로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죽음을 당하는 것까지도 성령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삶이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의 계획에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미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교회를 이루는 일의 위대한 계획 속에 있는 우리의 모든 삶도 성령님의 철저한 간섭을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 그분이 가지신 생각을 좇아 선한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롬 8:5, 빌2:5; 13). 그래서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 인격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가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는 바로 성령님의 인격의 선하심이 우리에게서 나라고 하는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성령의 소욕(所欲)으로 살라는 말인데(갈 5:17), 성령님이 가지신 선한 생각을 좇아 거기에 순종으로 자신을 드려 가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격을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그에게서는 성령의 열매로 표현되어진 그런 선한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인격이 자기의 욕심과 그 욕심을 이루려는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성령님의 선한 생각을 좇는데 따라서 성령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에 나타나는 데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또한 그에 따른 마땅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사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고, 그 성령님의 인격의 선하심은 우리 인격에 그대로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에서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또한 14절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는 말씀을 덧붙이신 것은 그래서입니다. 왜 갑자기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까?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앞의 문맥과 동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우리의 인격적 기능 속에 작용하심으로 우리가 성령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이 가지신 뜻을 나의 소원으로 품게 하시고 그것을 행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내가 나의 의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은 사실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요 성령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나, 교회의 속성을 지닌 가정 안에서 원망과 시비를 갖는 일은 전혀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15절에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원망과 시비를 갖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뜻이, 어느 누구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마음이 비뚤어지고 완고한 사람들이 가득 찬 이 어두운 세상에서 흠 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들 사이에 생명의 말씀을 높이 들고 등불처럼 빛을 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원망과 시비가 없었다면, 그러한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요 그것이 육인데, 이 육을 쳐서 나오지 않게 하고 성령님의 마음과 그 생각을 좇아서 움직이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님의 뜻에 복종으로 자신을 드려 갈 수 있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무엇을 행할 때라든지,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에 힘쓴다고 하면 그 배후에는 항상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그분의 소원을 품고, 또한 의욕적으로 소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힘도 얻어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유기적 역사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의 유기적 역사'라고 하는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사용하여서,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항상 생각하는 주체는 나요, 행동하는 자도 나입니다만 그러나 여기에는 사실 성령님의 인격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인격은 성령님이 함께 하셨을 때는 나라는 인격이 독립된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라고 하는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나의 인격을 통해서 유기적(有機的)으로 움직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킬 때에 단순히 조직체(organization)라고만 말하지 않고 '유기체'(organism)임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유기적인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이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유기체란 하나의 동식물, 또는 인간의 몸과 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말합니다. 반면 조직체는 비록 움직이는 기관으로 구성되기는 하나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격을 형성해 내는 까닭에 유기체입니다. 물론 교회는 조직체적인 성격도 가집니다. 성도는 목사를 세우고 목사가 직분을 감당하여 교회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중에 필요에 의해서 장로와 집사를 세울 때 교회는 조직체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또한 교회가 봉사의 일을 하는 기관으로서 이런 저런 이름으로 그룹을 형성하여 조직체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일을 해 나가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각 각 조직체가 해 내는 일은 교회 전체에서 볼 때 많은 일이요 큰 일을 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직체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는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조직체를 갖고 있든지, 또는 없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생명체요 인격체로 있으면서 각 지체간에 활발한 유기적인 관계성을 맺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조직체의 성격은 성령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성도를 섬겨 봉사함으로써 모두가 한 몸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인격은 곧 성령님의 인격입니다. 교회의 조직체는 이렇게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성령님의 인격을 형성해 내는 일을 하므로 유기체의 성질을 보여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체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제도 위에 세워진 기관이기 때문에 생명체는 아닙니다. 오직 유기체만이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유기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살아있는 생명체인 각 지체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내고 있는 성도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가정 생활을 통하여 가장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현상들 중에서 가정만큼이나 유기체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가정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며, 나와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인격들이 모여서 살아가는데, 이들의 삶의 형태는 항상 '우리 가정' 혹은 '나의 가정'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로 집중됩니다. 한 사람은 직장에 나가고, 한 사람은 주부의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합니다. 이렇게 각자가 하는 일이 다르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결국 가정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데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은 가정 전체의 행복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불행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험에 낙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병마에 시달리는 일일 수도 있고, 실직하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때 이 불행은 나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가정을 구성하는 공동체 전체에게 미칩니다. 그래서 가정 전체가 불행을 끌어안고 고통을 겪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이 세상에서 유기체적인 성격을 가장 현실적으로 체험하는 곳입니다. 가족들은 각기 자기의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지만, 사실은 가정이라고 하는 한계 혹은 영향이나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가족을 돌아보는 생각을 갖고서 합니다.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일은 가정이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을 유익되게 하고 온전히 세워나가는 자로서 내가 가정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족 관계가 아닙니다. 남이지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격이 이렇게 유기적입니다. 바로 이 유기체적인 특성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의사는 우리의 의사가 되어, 우리의 지, 정, 의적인 활동, 곧 우리의 인격적인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가실 때에, 그것은 우리라고 하는 사람의 인격적 기능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성령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며, 급기야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의 행위로 나타나는 데까지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나라고 하는 우리의 측면에서 보면, 마치 내가 주도적으로 기뻐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소원을 가지고, 내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묘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이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격적인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이런 삶을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적 모습 안에서만 소원으로 갖게 하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있는 어느 곳에서도 인격으로 나타나도록 주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가 생명의 도리의 삶을 낼 수 있도록 가정으로 인도하여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격을 지닌 교회의 거룩한 모임은 가정이라는 곳으로 흩어져서 가정이 교회의 거룩한 속성을 지니고 생명의 도리의 삶을 발휘하는 인격을 나타냅니다. 이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은 가정 안의 식구들에게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격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정에서 나타나는 인격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펼쳐 나가십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의 존재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믿음과 삶을 바르게 갖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맺는 말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여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인데, 그이미지를 가정의 개념을 가지고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건설되어 새로운 가정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자녀로 입양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형제'요 '자매'라는 친근감 있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형성의 표현은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상태요, 결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음 바 된 자들입니다. 이 새로운 질서 속에 들어온 구원받은 무리들은 사랑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시며,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된 표현이요, 그 영광에 참여된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땅한 복종은 주님의 사랑에 참여되고 있는 영광의 표현이요, 이 사랑의 생명을 어떠한 것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능력이요, 생명입니다. 이 사랑의 친밀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교제'함으로 나타납니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목적이나 행동에 대한 '동참'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믿음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안에서의 참여'하는 것이며, 그래서'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사역에 종사하는 것'이며, 이는 '경제적 지원의 참여'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참여를 행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요, 주님이 행한 삶을 같이 누리는 '영광의 참여'입니다. 이 기쁨을 함께 참여함으로 우리의 사랑의 행위가 교회 안에서 풍성함으로 넘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누려져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는 나누어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이든 가정이든 그 원형은 '그리스도와 한몸된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러하듯이 가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세상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가정의 출발은 부부로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부부의 출발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적인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교회는 곧 부부가 배우고 표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형입니다. 창조의 원리에 있어서 부부는 둘의 분명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입니다. 두 인격은 각자의 인격의 권리를 가지고 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그 남편에게 복종하는 원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내가 복종하는 것은 복종할 만한 지각이 있으며, 그의 뜻을 헤아리는 자이며, 그의 기쁨에 함께 누리는 자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에게 맡겨진 분량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영광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자기들의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 안에 참여할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영광 안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삶은 성령님이 행한 삶의 결과입니다. 나라고 하는 안에는 '성령님의 인격'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라고 하는 이 인격에는 우리의 소원은 사실 성령님의 소원이며, 성령님의 소원은 곧 우리의 소원이 되어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우리의 육을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몸된 교회를 통하여 작용하게 되며, 그 몸은 또한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며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합니다. 교회로 주신 모든 생명은 가정 속에서도 그 영광의 빛이 세상으로 전달 될 것입니다.
토의문제
1. 교회의 이미지를 왜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까?
2. 교회의 질적인 표현은 사랑인데 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3. 영적 교통을 기초로 하는 나눔이 교제라고 한다면 교회(가정)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4. 하나님의 뜻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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