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언약
Ⅰ. 서론
Ⅱ.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 전의 시대적 상황 이해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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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아브라함 언약
1. 아브라함의 소명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혹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에서부터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맥코미스키(Thomas Edward McComiskey)는 “구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양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그의 후손에게 반복하셨던 약속이다” 라고 평가하면서 “이 약속의 주제는 신약과 구약에 걸쳐 시종 얽혀 있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약2:23)이라 일컬어졌던 인물이며,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자신의 칭호들 중의 하나인 ‘아브라함의 자손’(마1:1)이라고 불리워졌던 인물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그 때부터 역사의 무대에 아브라함이 나타날 때까지는 300년 이상의 기간이 흘렀다.
대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삼고 있는 구절을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찾는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으로 다루어지는 곳은 창세기 17장에서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는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주요 동기인데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는 내용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여서’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함으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할 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민족으로 복을 받게 하는 구원 계획을 성취시켜 나가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에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 그로 하여금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여 이를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등장하지만,1) 이 언약을 맺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에는 먼저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면서 그에게 약속을 주시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라함의 소명에서부터 다루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은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를 그의 아들 중 아브라함(이 당시에는 아브람으로 불렸다)과 그의 부인, 그리고 하란의 아들인 롯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그곳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심에 따라서 가는 길에 하란에 머물고 있던 상태에서 데라가 죽고 난 후(창11:31-32)에 아브람을 소명하시는 것에서 주어짐으로(창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그에게 약속을 주시는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을 또한 약속하셨다. 그것은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 계획은 구체화 되며 실현되어 그 성취를 이루어 나간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몇 가지의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이끌어 내신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아들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어 그 자손이 번성케 될 것과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후손에게 줄 땅의 영역을 언급하신 것이다(창5장). 둘째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그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할 것을 약속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부름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크게 번성하고 그 후손 가운데에서 열왕이 나오고 열국을 이룰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확고히 하시고 이 언약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징표로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창17장). 셋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심히 번성케 되는 약속은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낳게 되는 아들인 오직 이삭만을 통해서 되어 질 것을 알리셨다(창21:12). 넷째는,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는 독자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게 한 후 그에게 약속한 것을 상기시켜 확인케 하심으로 그 믿음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장차 되어질 일을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으나 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2. 창세기 12장 1-3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세워지나 이 언약의 시작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말씀하신 약속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의 원문과 직역의 대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여기서는 원문이 올려지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히브리어 원문과 직역과 대조에서의 창세기 12장 1-3절의 내용은 아브라함2) 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후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여서’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함으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할 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민족으로 복을 받게 하는 구원 계획을 성취시켜 나가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에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 그로 하여금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여 이를 분명히 하셨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는 언약은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 곧,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 부를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름을 새롭게 짓게 하여 부르게 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알 수 있게 해주셨듯이, 이제부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서 그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그 후손 가운데는 여러 왕도 나올 것이며, 그 후손이 크게 불어나 여러 나를 이룰 것으로 아브라함과 맺는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며, 또한 앞으로 오고 올 세대인 그 후손들과도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약속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아브라함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너는 너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키며,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이 언약을 굳게 지키도록 이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과 직역을 대조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명하신 아브라함에게 ‘그 안에서’, 곧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1-2정에 두고서 ‘땅’과 ‘자손’에 두는 경향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내용의 중요한 것은 12장 3절에 있으니, 그 골자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한 말씀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대한 결론이자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추구하시는 바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는 3절의 이 마지막 구절에 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세상에 대한 최종적인 복’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목적하시고 있는 바 그 정하신 뜻대로 행하여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여(창18:19) 부르시고 그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게하고 계시며, 또한 ‘큰 민족’으로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며,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또한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은 그를 보호하심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메시야, 곧 아브라함의 자손(마1:1, 갈3:16)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구원 축복 받을 일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세계 구원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소명이 특징 있게 다루어진다. 그라프(S. G. De. Graff)는 이것을 “은혜가 모든 민족의 삶 속에 파고 들었다”고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다. 그 언약의 내용은 ‘아브라함으로 심히 번성케 하신다’는 것으로 아브람을 ‘아브라함’, 곧 ‘열국의 아비’로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언약을 반드시 이루셔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 많게 함으로 그 후손 가운데에서 여러 왕도 나올 것이며, 또한 그 후손이 크게 불어나 여러 나라를 이룰 것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세운 이 언약을 그에게만 아니라 그와 그의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그에게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로 들어와 그 혜택을 볼 것을 말씀하셨다(창17:3-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영원한 언약’으로, 이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의 살에 있게 하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은 악한 죄로 다루면서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크게 번성케 하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며, 이 생명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의 부인 사라에게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날 자’가, 그래서 사라가 낳을 아들인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임을 말씀하셨으며, 오직 그만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인정하셨다(창17:10-22; 21:12).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심히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로 선택된 자들에게 생명의 주가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후의 글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 가나안 땅의 소유 과정에서 이삭의 출생이 어떻게 성취되어갔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3. ‘땅’과 ‘후손’의 약속과 성취
1)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들어갈 새로운 땅의 약속이 주어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은 갈대아 우르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는 내용이 창세기 12장 1-3절에서 말씀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때로 본다. 하지만 이곳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고 있는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것이며, 그 이전인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떠난 것에서부터 아브라함이 소명 받은 시작이 다루어져야 한다. 창세기 11장 31절에서는 데라가 자기 아들인 아브라함과 이미 죽은 하란의 아들인 손자 롯과 며느리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 여기서 데라가 그의 가족 중 일부를 데리고 갈대아 우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 구절을 아브라함의 소명과는 별개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사도행전 7장 2-4절에 의해서 배제된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이 구절은 집사 스데반이 군중들과 유대인 지도자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산헤드린 공의회에 선 가운데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를 하는 것의 일부이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하란으로 옮겨 가기 전인 메소보타미아에 살고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은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수리아의 하란으로 가서 그의 부친 데라가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다가 그 후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시작은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되어졌다. 그런데 창세기 11장 31절에서 “데라가…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하고 있어서 데라가 자신과 함께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데라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과 상관없이 데라의 이주에 의해서 아브라함도 부친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게 하시는 것에 의해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는 것에 그의 부친 데라도 함께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을 데라의 역사에서 있는 이야기로 말하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데라의 역사는 끝을 맺으며 아브라함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야기의 전환을 이룬다.5) 그에 따라서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하란에 다다라 거기서 살다가 205세에 하란에서 죽고(창11:32) 아브라함의 역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그에게 ‘땅’을 약속하심은 ‘가나안’이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11:31). 이 말씀에 의하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고자 한 곳은 가나안 땅이다. 그러니까 데라와 그 아들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자신들이 가고자 한 땅을 알고 있었던 것은 그 땅의 지명에 대한 하나님의 언급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이란 뜻이다. 가나안 땅의 광활한 대지를 하나님께서 마침내 보여 주어 그곳에 거주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은 다만 땅을 약속만 받았지 정작 그 땅이 어디 있는 곳인지 알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서 떠난 것으로만 이해한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 8절인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에서의 ‘갈 바를 알지 못하고’란 표현 때문이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고향을 떠나 약속하여 주신 땅으로 가라는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여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속받은 땅이 ‘가나안’인지를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음과 함께 고향을 떠날 것을 지시받았기 때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그곳이 어디이며, 어떻게, 얼마큼을 가야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본 뜻은 ‘내가 너에게 보여줄 그 땅으로 (너는 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게 하였으며, 지금 하란에 머물고 있는데 이제 이곳을 떠나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계속해서 진행을 해 나가야 하는 그에게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에 이르렀을 때에 그 땅이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임을 눈으로 보게 하여 알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을 이렇게 이해하지를 못하면, 창세기 11장 31절과 충돌이 된다.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고자 한 땅은 분명히 ‘가나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장 5절에서는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라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하였으며, 아브라함 일행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자 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바로 이 땅을 내가 네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심으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라고 한 그 땅을 보게 해주시면서 그가 보는 그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이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한 약속을 실제 그 땅을 소유한 자가 되기까지 그 약속에 대한 확인을 시켜주며 그 믿음에 서 나게 하시는 일을 필요로 할 때마다 계속해서하신다. 이때 ‘땅’에 대한 약속은 이후의 글에서 보게 되듯이 독자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항상 ‘후손’에 대한 약속과 병행해서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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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닐랜즈(David L. Neilands)는 창세기 17장이 지닌 중요성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창세기 17장의 중요성은 계시사(啓示史)에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장이다”라고 말하였다.
2) 아브라함의 이름은 본래는 아브람이며,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그렇지만 본 글에서는 이름 사용에 있어서의 글의 전체적인 통일을 위하여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일괄적으로 사용함을 밝힌다. 그러나 아브람으로 표기해야 할 곳에서는 아브람으로 사용할 것이다.
3)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땅’과 ‘자손’의 약속을 일반적으로는 아브라함(당시는 아브람)에게 주어진 개인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보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그 약속이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 후손 대대로 영원히 지킬 언약으로 주어진 것(창17:7)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 한 개인에 국한된 약속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이다. 이는 약속의 자녀로 오는 오직 ‘한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영원한 땅’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으로써 온전히 성취된다.
4) 바울은 할례를 세례와 연결시켜 “너희가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 될 때, 너희는 할례를 받았느니라”(when you were buried with him in baptism, you were circumcised), 혹은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됨으로 너희는 할례를 받았느니라” 라(by being buried with him in baptism you were circumcised)고 말한다. 여기서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 말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 ‘죽은 자와 합하여’로 번역하였다. 이 신약적 의미에서의 해석을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에서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자식(아들)을 생산치 못하는 ‘죽은 몸’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할 ‘생명의 몸’에 전능하신 하나님(God the Almighty)께서 있게 하실 것으로서의 할례를 언약을 세우시는 것으로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례를 “육적인 몸을 벗어버리는 데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경험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고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5) 아브라함의 소명에 데라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의미 있다. 여호수아 24:2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는 유프라데스 강 건너 편, 곧 갈대아 우르에서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런 데라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 갈대아 우르를 아브라함과 함께 떠난 것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자신만이 살아 계신 참된 신이심을 계시하여 주신 은혜가 있었을 것이며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으로 우상 숭배에서 떠나게 하신 데 따른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것은 데라에게서는 우상 숭배로부터 완전히 결별하는 것인 동시에 아브라함에게서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된다.
Ⅰ. 서론
Ⅱ.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 전의 시대적 상황 이해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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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아브라함 언약
1. 아브라함의 소명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혹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에서부터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맥코미스키(Thomas Edward McComiskey)는 “구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양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그의 후손에게 반복하셨던 약속이다” 라고 평가하면서 “이 약속의 주제는 신약과 구약에 걸쳐 시종 얽혀 있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약2:23)이라 일컬어졌던 인물이며,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자신의 칭호들 중의 하나인 ‘아브라함의 자손’(마1:1)이라고 불리워졌던 인물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그 때부터 역사의 무대에 아브라함이 나타날 때까지는 300년 이상의 기간이 흘렀다.
대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삼고 있는 구절을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찾는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으로 다루어지는 곳은 창세기 17장에서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는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주요 동기인데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는 내용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여서’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함으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할 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민족으로 복을 받게 하는 구원 계획을 성취시켜 나가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에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 그로 하여금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여 이를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등장하지만,1) 이 언약을 맺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에는 먼저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면서 그에게 약속을 주시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라함의 소명에서부터 다루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은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를 그의 아들 중 아브라함(이 당시에는 아브람으로 불렸다)과 그의 부인, 그리고 하란의 아들인 롯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그곳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심에 따라서 가는 길에 하란에 머물고 있던 상태에서 데라가 죽고 난 후(창11:31-32)에 아브람을 소명하시는 것에서 주어짐으로(창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그에게 약속을 주시는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을 또한 약속하셨다. 그것은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 계획은 구체화 되며 실현되어 그 성취를 이루어 나간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몇 가지의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이끌어 내신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아들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어 그 자손이 번성케 될 것과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후손에게 줄 땅의 영역을 언급하신 것이다(창5장). 둘째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그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할 것을 약속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부름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크게 번성하고 그 후손 가운데에서 열왕이 나오고 열국을 이룰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확고히 하시고 이 언약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징표로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창17장). 셋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심히 번성케 되는 약속은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낳게 되는 아들인 오직 이삭만을 통해서 되어 질 것을 알리셨다(창21:12). 넷째는,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는 독자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게 한 후 그에게 약속한 것을 상기시켜 확인케 하심으로 그 믿음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장차 되어질 일을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으나 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2. 창세기 12장 1-3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세워지나 이 언약의 시작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말씀하신 약속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의 원문과 직역의 대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여기서는 원문이 올려지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히브리어 원문과 직역과 대조에서의 창세기 12장 1-3절의 내용은 아브라함2) 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에게 가게 하는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후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셔서 그를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여서’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함으로’ 무릇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할 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민족으로 복을 받게 하는 구원 계획을 성취시켜 나가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에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 그로 하여금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여 이를 분명히 하셨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는 언약은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 곧,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 부를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름을 새롭게 짓게 하여 부르게 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알 수 있게 해주셨듯이, 이제부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서 그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는데, 그 후손 가운데는 여러 왕도 나올 것이며, 그 후손이 크게 불어나 여러 나를 이룰 것으로 아브라함과 맺는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며, 또한 앞으로 오고 올 세대인 그 후손들과도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약속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아브라함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너는 너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키며,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이 언약을 굳게 지키도록 이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과 직역을 대조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명하신 아브라함에게 ‘그 안에서’, 곧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1-2정에 두고서 ‘땅’과 ‘자손’에 두는 경향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내용의 중요한 것은 12장 3절에 있으니, 그 골자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한 말씀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대한 결론이자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추구하시는 바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는 3절의 이 마지막 구절에 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세상에 대한 최종적인 복’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목적하시고 있는 바 그 정하신 뜻대로 행하여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여(창18:19) 부르시고 그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게하고 계시며, 또한 ‘큰 민족’으로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며,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또한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은 그를 보호하심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메시야, 곧 아브라함의 자손(마1:1, 갈3:16)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구원 축복 받을 일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세계 구원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소명이 특징 있게 다루어진다. 그라프(S. G. De. Graff)는 이것을 “은혜가 모든 민족의 삶 속에 파고 들었다”고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다. 그 언약의 내용은 ‘아브라함으로 심히 번성케 하신다’는 것으로 아브람을 ‘아브라함’, 곧 ‘열국의 아비’로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언약을 반드시 이루셔서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 많게 함으로 그 후손 가운데에서 여러 왕도 나올 것이며, 또한 그 후손이 크게 불어나 여러 나라를 이룰 것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세운 이 언약을 그에게만 아니라 그와 그의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그에게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로 들어와 그 혜택을 볼 것을 말씀하셨다(창17:3-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영원한 언약’으로, 이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의 살에 있게 하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은 악한 죄로 다루면서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크게 번성케 하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며, 이 생명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의 부인 사라에게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날 자’가, 그래서 사라가 낳을 아들인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임을 말씀하셨으며, 오직 그만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인정하셨다(창17:10-22; 21:12).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심히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로 선택된 자들에게 생명의 주가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후의 글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 가나안 땅의 소유 과정에서 이삭의 출생이 어떻게 성취되어갔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3. ‘땅’과 ‘후손’의 약속과 성취
1)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들어갈 새로운 땅의 약속이 주어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은 갈대아 우르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는 내용이 창세기 12장 1-3절에서 말씀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때로 본다. 하지만 이곳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고 있는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것이며, 그 이전인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떠난 것에서부터 아브라함이 소명 받은 시작이 다루어져야 한다. 창세기 11장 31절에서는 데라가 자기 아들인 아브라함과 이미 죽은 하란의 아들인 손자 롯과 며느리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 여기서 데라가 그의 가족 중 일부를 데리고 갈대아 우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 구절을 아브라함의 소명과는 별개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사도행전 7장 2-4절에 의해서 배제된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이 구절은 집사 스데반이 군중들과 유대인 지도자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산헤드린 공의회에 선 가운데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를 하는 것의 일부이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하란으로 옮겨 가기 전인 메소보타미아에 살고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은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수리아의 하란으로 가서 그의 부친 데라가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다가 그 후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시작은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되어졌다. 그런데 창세기 11장 31절에서 “데라가…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하고 있어서 데라가 자신과 함께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데라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과 상관없이 데라의 이주에 의해서 아브라함도 부친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게 하시는 것에 의해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는 것에 그의 부친 데라도 함께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을 데라의 역사에서 있는 이야기로 말하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데라의 역사는 끝을 맺으며 아브라함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야기의 전환을 이룬다.5) 그에 따라서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하란에 다다라 거기서 살다가 205세에 하란에서 죽고(창11:32) 아브라함의 역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시며 그에게 ‘땅’을 약속하심은 ‘가나안’이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11:31). 이 말씀에 의하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고자 한 곳은 가나안 땅이다. 그러니까 데라와 그 아들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자신들이 가고자 한 땅을 알고 있었던 것은 그 땅의 지명에 대한 하나님의 언급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이란 뜻이다. 가나안 땅의 광활한 대지를 하나님께서 마침내 보여 주어 그곳에 거주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은 다만 땅을 약속만 받았지 정작 그 땅이 어디 있는 곳인지 알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서 떠난 것으로만 이해한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 8절인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에서의 ‘갈 바를 알지 못하고’란 표현 때문이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고향을 떠나 약속하여 주신 땅으로 가라는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여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속받은 땅이 ‘가나안’인지를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음과 함께 고향을 떠날 것을 지시받았기 때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그곳이 어디이며, 어떻게, 얼마큼을 가야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본 뜻은 ‘내가 너에게 보여줄 그 땅으로 (너는 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게 하였으며, 지금 하란에 머물고 있는데 이제 이곳을 떠나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계속해서 진행을 해 나가야 하는 그에게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에 이르렀을 때에 그 땅이 그가 약속으로 받은 땅임을 눈으로 보게 하여 알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을 이렇게 이해하지를 못하면, 창세기 11장 31절과 충돌이 된다.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고자 한 땅은 분명히 ‘가나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장 5절에서는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라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하였으며, 아브라함 일행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자 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바로 이 땅을 내가 네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심으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라고 한 그 땅을 보게 해주시면서 그가 보는 그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이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한 약속을 실제 그 땅을 소유한 자가 되기까지 그 약속에 대한 확인을 시켜주며 그 믿음에 서 나게 하시는 일을 필요로 할 때마다 계속해서하신다. 이때 ‘땅’에 대한 약속은 이후의 글에서 보게 되듯이 독자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항상 ‘후손’에 대한 약속과 병행해서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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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닐랜즈(David L. Neilands)는 창세기 17장이 지닌 중요성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창세기 17장의 중요성은 계시사(啓示史)에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장이다”라고 말하였다.
2) 아브라함의 이름은 본래는 아브람이며,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창세기 17장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그렇지만 본 글에서는 이름 사용에 있어서의 글의 전체적인 통일을 위하여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일괄적으로 사용함을 밝힌다. 그러나 아브람으로 표기해야 할 곳에서는 아브람으로 사용할 것이다.
3)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땅’과 ‘자손’의 약속을 일반적으로는 아브라함(당시는 아브람)에게 주어진 개인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보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그 약속이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 후손 대대로 영원히 지킬 언약으로 주어진 것(창17:7)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 한 개인에 국한된 약속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이다. 이는 약속의 자녀로 오는 오직 ‘한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영원한 땅’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으로써 온전히 성취된다.
4) 바울은 할례를 세례와 연결시켜 “너희가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 될 때, 너희는 할례를 받았느니라”(when you were buried with him in baptism, you were circumcised), 혹은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됨으로 너희는 할례를 받았느니라” 라(by being buried with him in baptism you were circumcised)고 말한다. 여기서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 말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 ‘죽은 자와 합하여’로 번역하였다. 이 신약적 의미에서의 해석을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에서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자식(아들)을 생산치 못하는 ‘죽은 몸’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할 ‘생명의 몸’에 전능하신 하나님(God the Almighty)께서 있게 하실 것으로서의 할례를 언약을 세우시는 것으로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례를 “육적인 몸을 벗어버리는 데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경험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고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5) 아브라함의 소명에 데라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의미 있다. 여호수아 24:2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는 유프라데스 강 건너 편, 곧 갈대아 우르에서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런 데라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 갈대아 우르를 아브라함과 함께 떠난 것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자신만이 살아 계신 참된 신이심을 계시하여 주신 은혜가 있었을 것이며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으로 우상 숭배에서 떠나게 하신 데 따른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것은 데라에게서는 우상 숭배로부터 완전히 결별하는 것인 동시에 아브라함에게서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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