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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 제7강 아브라함 언약(6)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8.09.16|조회수341 목록 댓글 0
아브라함 언약 


Ⅰ. 서론 

Ⅱ.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 전의 시대적 상황 이해 

Ⅲ. 아브라함 언약 

1. 아브라함의 소명과 하나님의 약속 

2. 창세기 12장 1-3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

3. ‘땅’과 ‘후손’의 약속과 성취 

1)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들어갈 새로운 땅의 약속이 주어짐
2)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인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음.
3)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건이 갖는 ‘땅’과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4)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는 사건을 겪는 것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땅’과 ‘후손’의 약속을 재확인과 함께 받음. 
5) 아브라함의 후사 약속과 그의 후손이 차지할 땅에 대한 계시
(a)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자에 대하여 말씀하심
(b)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후사의 약속에 의하여 있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이 차지할 땅에 대하여 말씀하심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 


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은 그와 언약을 맺어 그의 후손이 심히 번성케 할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곳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은 그가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인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그가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있었다. 아브라함은 앞서에서(창15장)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자식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여전히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아들을 생산치 못하고 있다(창16:1). 

   이런 까닭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세상 사람들의 도리를 좇아 자식을 얻으려고 한다. 사라에게는 애굽 출신의 하갈이라는 몸종이 있었는데, 사라는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이유가 여호와께서 생산을 허락지 않기 때문이므로 자기를 대신할 여인으로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동침하게 하여 그 몸종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아들을 얻고자 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데려와 첩으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이때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된지가 10년쯤 된 해였다. 아브라함은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 불렀다. 그대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다. 

   그러나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난 아들인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씨가 아니었다(창17:18-19, 21:12). 하나님은 사라의 몸을 통해 아브라함을 이을 상속자가 되게 하여 그가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자녀가 되게 하실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자손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이후 13년의 세월이 지난 후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맺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내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판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17:1-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그와 맺은 ‘자손’과 ‘땅’의 약속을 통해서 나오게 될 열국과 열왕 곧,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하실 것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 그 실행으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 언약은 이제 아브라함을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할 것으로 아브라함이 이 이름으로 불리우기 전의 이름인 ‘아브람’에서 이제 ‘아브라함’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언약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 곧 ‘모든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를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이므로 하나님의 그의 후손이 수도 없이 번성하게 하여 그 후손 가운데에서 열왕이 나오고 그 후손이 열국을 이룰 것인데, 이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앞으로 오고 올 세대인 아브라함의 후손들과도 반드시 지킬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하나님에 의해서 반드시 성취될 것을 알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 자신을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의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기복신앙을 말하는 자들이 말하는 소위 ‘만사형통’의 ‘만능’의 차원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은 이제 아브라함과 맺을 언약을 이루어 가실 언약자로서 그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이 항상 어떤 자로 있어야 할 것인지와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 그러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과 관련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행하실 일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하실 것’인데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후손을 이룰 자손인 약속의 씨가 나올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는 언약인 자손을 주시는 일을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심을 아브라함이 알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또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의 의도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그의 완전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하시고 있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그 후손이 심히 번성케 하실 것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앞으로의 삶(행동)을 이끌고 가심에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뜻이 온전히 행하여지는 것으로 행동되어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행하실 일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기 위해서 아브람1)을 ‘아브라함’2)으로 삼으셨다. 이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이다. 아브라함이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시며 그의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하여 셀 수 없이 크게 불어나 여러 나라를 이루게 할 것이며 여러 왕이 나오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이름에 두심으로써 그 이름이 갖는 약속(promise)을 지키실 것을 언약(covenant)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주신 대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손’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신 것에는 그의 후손으로 올 수많은 무리가 그를 통해서 되어질 것을 의미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아들이 없는데도 이를 언약하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약속의 씨’가 아브라함의 혈통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고치셨다.3)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격을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7)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끝나지 않고 대대로 이어질 그의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아브라함이란 이름에는 그와 그의 모든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그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킬 것을, 그리고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이 언약을 굳게 지킬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시행하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니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이 그들과 맺은 언약을 대대로 영원히 지킬 것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그의 후손 사이에 맺은 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 곧 표징이 될 할례를 받을 것을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할례 언약’이라 부른다. 할례는 할례 받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지키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언약에 따르는 것에서 할례의 행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 끝에 있는 겉껍질, 그러니까 외피를 베어 잘라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의 살에 그들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있게 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언약의 표징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징이 자기들의 살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항상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생각에 있으며 그 성취를 바라보는 믿음에 있게 하셨다.

   그런데 만일에 아브라함에게 속한 남자들 가운데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져 쫓겨날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성격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할례를 명하시는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은,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그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백성으로 관계해 가실 것을 약속으로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져 쫓겨날 것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과 할례는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지켜 가시면 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그들의 살에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표징을 지니게 하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그의 후손을 심히 크게 번성하게 하실 것을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시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맺은 언약을 분명히 지키실 언약의 확실성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실 언약을 맺으시고, 이 언약을 그와 그의 후손 대대로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셨는데, 그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은 정작 아직까지도 아무런 자식 없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는 열국의 아비로 바뀌었지만 그는 그 이름으로 불리울 만한 아무런 자식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켜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 주신 것은 그 언약이 이미 작정되어진 것으로 이것을 이룰 준비를 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을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대대로 잇게 하시며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실 것을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라는 말씀으로 하셨다. 여기서 할례는 언약의 표징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언약이 할례를 받아 할례를 행한 그 살에 있다고 말씀하여 할례를 받은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고 하는 표징이 그들의 살(몸)에 남아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인 할례가 그들의 살에 있어서 할례 받은 자라고 불리우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되어 ‘내 백성’(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우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아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이 그들의 살에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 백성’(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쫓겨나 끊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과 그 언약을 받은 자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그와 언약하신 그의 후손을 심히번성케 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서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복인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민족에게 주시는 언약하신 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 할례 언약을 통해서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할례 언약에서 밝혀주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손으로 올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할례란 방식에 의해서 ‘내 백성’ 삼으시는 언약을 맺으시는데 있다. 그래서 할례 받음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국한시키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로 말씀하셨다.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17:12-13). 여기서 관심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 모든 남자, 곧 아브라함이 낳은 자손뿐만 아니라 그의 집에서 태어난 종, 그리고 이방 사람 가운데서 돈을 주고 사온 종도 할례를 받게 한 것이며, 그 할례를 ‘난지 팔 일만에’ 받게 하심으로써 할례를 받을 의지에 상관없는 갓난 어린 아기에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와 함께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종)에게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서 할례를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하고자 하나님이 언약을 맺어주시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는 자들의 의지에 의하여 수용함으로써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임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할례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삼으시는 언약의 방식으로 삼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할례란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도록 지시하심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등장한 것인가? 할례의 풍속은 이스라엘에게서 보게 되는 것인데, 이 풍속은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들 가운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어떤 족속들에게서도 할례를 보게 된다. 아브라함 당시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당시 아브라함 외의 이방 민족들에게서도 행하여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랬을 때 그들의 할례는 독자적인 풍속일 것이며 그것은 미신(迷信)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 것은 이방 민족들의 풍속인 할례 의식과 같은 것에서가 아닌 전혀 다른 것에서 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게 하신 할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삼으시는 언약을 맺은 것의 표징, 곧 ‘언약의 표징’, 그러니까 언약의 징표(표시)로서 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는 방식으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게 하신 할례이다.         

   하나님은 이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삼으시는 원리를 계시하시고 있다. 할례는 남자에게 행하게 하였다. 남자의 생식기 끝에 있는 외피인 겉껍질을 베어서 잘라 내는 것이 할례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식기 외피를 베어 잘라내는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그 외피 속에 있는 감추어져 있는 속살을 드러내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다. 

   이렇게 하는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인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것과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할례 언약을 받기 전의 아브라함의 상태는 그가 자손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손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브라함이나 하나님은 그를 ‘열국의 아비’, 곧 ‘모든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그의 이름으로 언약하셨다. 그래서 그의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여러 나라를 이룰 것이며 여러 왕이 나오게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들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인 하나로 묶으시는 일을 하신다. 그것이 할례이다.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할례에서 나타나진 것은 남자 생식기의 외피인 겉껍질을 베어서 잘라 냄으로 그 속살을 드러내시고 그 살에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표징으로 삼으셨다. 

   이것이 지니고 있는 참된 뜻은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해석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의 교회에 와서 할례가 의미하고 있는 원래의 뜻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여기에서 '할례를 받았으니‘를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라고 해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할례를 받은 것과 육적 몸을 벗는 것과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할례를 받은 것은 육적 몸을 벗는 것으로 있어왔던 것이다. 

   구약에서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날카로운 돌이나 칼이란 도구를 사용하여서 육적 몸(육신)을 벗는 것으로 행하여져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드러난 속살에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행하여져왔다. 그런데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행하여져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 행하여져 온 할례가 원래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에 의해서 행해지는 할례라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이것은 골로새서 1장 10절, 12절에서 ‘연합’으로, 또한 ‘세례’라고 말해준다. 

   한편,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를 말하면서 이것을 ‘육적 몸을 벗은 것이요’와의 연관으로, 그러니까 육적 몸을 벗는 것으로서의, 그러한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육적 몸을 벗은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그 믿음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참된 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육적 몸을 벗기시는 것으로의 남자 생식기의 외피를 베어서 잘라내게 하는 것에 하나님이 의도하고 있는 바인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드러난 속살에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하고 있는 것에 믿음이 있게 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할례를 행한 육적 조건을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후손 자격 여부로 삼아왔다. 그러기에 이방인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어 개종하여 하나님의 교회 속으로 들어와도 구원의 조건으로 자기들이 받은 할례를 그들에게 요구하는 잘못된 신앙에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겉껍데기 같은 육적 몸을 벗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오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 곧 그리스도의 할례인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산 자가 된 것에 그들의 온전함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할례를 받은 그 할례에 있은 것이 아니라 그 할례를 행하여 드러낸 속살에 있은 하나님의 언약이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오게 하시는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아들로 보내 그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오게 하실 그의 후손인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게 하실 자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고 또한 대대로 올 그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에서 나올 씨로,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씨로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을 것을 말씀하신 후에 또한 아브라함에게 그의 부인 사래를 사라라고 부를 것과 그에게 복을 주어 아브라함의 아이를 낳게 하고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함으로써 사라가 낳은 후손들 가운데서 많은 왕들이 나올 것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이스마엘이나 오래 살고 그로 하여금 상속자를 삼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이삭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면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삭을 통해서 반드시 지킬 것이며 이삭의 후손들에게도 영원토록 이어나갈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을 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를 통해서 복을 받을 그의 후손들이 나오는 것이 육적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있음을,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이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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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아브람이라는 말은 이브(&#1489;&#1488;)라는 말과 람(&#1502;&#1512;)이 결합된 것으로, 그 뜻은 ‘나의 신은 고귀하다’, ‘고귀한 아버지’ 이다.

2)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 ‘열국의 아비’ 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는 모든 민족, 곧 천하 만민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이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불리운다.  

3) 사래나 사라는 모두 히브리어 샤르(&#1512;&#64298;)에서 연유한 말로 “여왕” 혹은 “모후”라는 뜻으로 사라는 결국 열국과 열왕들의 어미가 된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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