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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 제7강 아브라함 언약(10)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08.09.16|조회수488 목록 댓글 0
아브라함 언약 


Ⅰ. 서론 

Ⅱ.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 전의 시대적 상황 이해 

Ⅲ. 아브라함 언약 

1. 아브라함의 소명과 하나님의 약속 
2. 창세기 12장 1-3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
3. ‘땅’과 ‘후손’의 약속과 성취 
1)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들어갈 새로운 땅의 약속이 주어짐
2)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인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음.
3)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건이 갖는 ‘땅’과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4)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는 사건을 겪는 것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땅’과 ‘후손’의 약속을 재확인과 함께 받음. 
5) 아브라함의 후사 약속과 그의 후손이 차지할 땅에 대한 계시
(a)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자에 대하여 말씀하심
(b)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후사의 약속에 의하여 있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이 차지할 땅에 대하여 말씀하심
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심. 
7)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사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약속하심

Ⅳ. 아브라함 언약에서의 약속의 성취인 이삭의 출생과 땅의 소유
1. 이삭의 출생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졌음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는 일을 위하여 먼저 아비멜렉의 집에 이적을 행하시는 일을 하심
2. 아브라함에게 주신 ‘후손의 약속’을 성취 할 약속된 ‘후사’인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추방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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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브엘세바의 언약에서 아브라함이 가진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창세기 21장에서의 이삭의 출생에서는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의 추방과 함께 그랄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1)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준다(22-34절).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음으로 그 땅에서 평화롭게 거하게 되었는데, 브엘세바의 이름은 항상 아브라함이 그 땅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평화롭고 번영 가운데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맺었던 언약을 상기시켜 준다.

그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블레셋인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로서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여 그 집의 닫힌 태를 다시 여는 일을 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며 또한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에 믿음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심도 깨닫는 은혜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은 아직 그곳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아브라함에게 한 사건이 있게 된다. 즉 아브라함이 여전히 블레셋인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의 사건임을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시는 것을 본 (20:3-7) 아비멜렉은 점점 창성해 가고 있는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아브라함을 찾아와 그에게 불가침의 맹세2)를 요구한다(23절). 이 요구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맹세할 것을 약속한다.

아비멜렉의 요구를 들어준 아브라함은 그와 언약을 맺으면서 과거에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비멜렉을 책망한다. 아비멜렉은 그 사실을 몰랐음을 말한다. 이에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어 언약을 세우고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어 우물에 대한 아브라함의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한다.3) 그래서 그곳 우물의 이름이 ‘브엘세바’가 되었다.4) 언약을 맺은 후 아비멜렉은 블레셋으로 돌아갔으며,5) 아브라함은 그곳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6)를 심고는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드렸다. 

브엘세바에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즉, 예사롭게 여겨 지나칠 일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아비멜렉의 청에 의해서 서로 불가침을 맹세하며 아브라함이 그랄에서 우물을 판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증표로서의 언약을 맺은 것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믿음이 있는 사건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아브라함이 가진 하나님의 인식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브엘세바의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그 땅에 속한 우물을 파고 소유하게 된 것에서 장차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강대한 나라가 되고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은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믿음에 있는 제사를 드렸다. 곧,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말하였다. 그리고 난 후 아브라함은 한동안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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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우리 말 개역성경은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과 서로 맹세를 하여 언약을 세웠다며 ‘언약’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성경에서 ‘언        약’(Covenant)의 이해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 유일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맹세로 맺은 것은 언약이 아닌 ‘조약’,     또는 ‘계약’이 더 적절하다. 그것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그가 그랄 땅에 들어와 사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대신에 자기들을 침범하여 해를 끼치지 말 것인 불가침 조약을 내세우고, 아브라함은 그러한 조건에 응하는 것으로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어 조약을 맺고, 또한 그랄 땅에 판 우물을 적합한 값을 지불하고 소유하겠다는 것으로 암양 새끼 일곱을 우물을 판 증거를 삼게 하여 계약을 맺은 것을 우리 말 개역성경은 모두 ‘언약’이란 말로 번역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말 개역성경이 ‘언약’이라는 말로 쓰고 있으므로 본 글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2) 여기서의 ‘맹세’는 본 단락에서 중요한 단어로 다음 단락에도 등장한다. 아비멜렉이 요구한 ‘맹세’는 ‘거짓되이 행치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속임으로 있을 수 있는 그의 고통을 염려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3)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그와 언약을 세우고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취하여 그에게 주어 그로부터 우물을 취하여 소유하게 된 것은 그것이 비록 가나안 땅의 일부인 부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야 아브라함이 그 땅의 진정한 상속자로서의 현실적인 입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의 약속들 중 우선 ‘땅’에 대한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정복해 나아가야 하며, 그 정복 전쟁은 다른 민족들과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4)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세우면서 암양 일곱 마리를 건네준 것은 아브라함이 이곳 우물을 판 사람이란 것을 분명히 해두는 것의 증표에서 이다. 암양 일곱 마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브엘세바’란 ‘맹세를 맺은 우물’이란 뜻이면서, 또한 ‘일곱 우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5)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후 아비멜렉이 블레셋 사람이 사는 땅으로 돌아감으로 언급된 블레셋으로 인해 비평가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증거로 제시하면서 족장 기사의 역사성을 부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사기에서 말해지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은 약 B.C. 1200년까지 팔레스타인을 침입하지 않았다고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브라함 때에 언급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은 이 시기보다 약 8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브라함 때에 블레셋 사람이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등장하는 것은 후대인 B.C. 1200년의 블레셋 사람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B.C. 1200년의 블레셋 사람들은 호전적이었던 미케네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되는 반면에, 아브라함 때의 블레셋 사람들은 아마도 평화로웠던 미노아 사람들일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비록 같은 이름인 블레셋으로 불려지기는 하지만, 아브라함 때의 블레셋 사람들은 13세기에 에게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블레셋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일 것이거나, 또는 초기의 블레셋 사람들을 기술하기 위해서 똑같은 이름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6) 에셀나무는 장수하는 상록수이다. 아브라함은 이 나무를 심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을 통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 속에 있으면서 그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에 대한 믿음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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