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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별학습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 / 제8강 모세언약(7)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1.07.21|조회수263 목록 댓글 0

모 세 언 약

7장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에 들어와 있을 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 시내산 언약 - 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그 본의가 바르게 해석되어 제자들에게 가르쳐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드러내신 율법의 의미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복음과의 관계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본 글에서는 이것을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점을 통해서 살펴볼 것이다.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이해를 볼 수 있는 그의 글은 그가 기록한 ‘바울서신’으로 불리우는 서신들에서 확인된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에게 모세의 율법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설명했다.1)

 

1.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A.D. 57년경 예루살렘 방문을 준비할 무렵에 고린도에서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율법관을 볼 수 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교 신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모세 율법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관해 매우 자세히 다룬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을 설명하며 변론한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는 칭의를 가져올 수 없으며, 다만 죄를 의식하게 할 뿐임을 논증했다.2) 그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논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율법 아래 살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기 위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3)

 

사람들의 예상과는 대조적으로, 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윤리적 방임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다.4) 신자들은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기 위해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했다.5)

 

율법은 그 자체로는 악한 것이 아니며, 거룩하고 영적이며 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율법으로 인해 탐심을 만들어 냈고 - 인간의 마음 속 깊이에 있는 탐심을 끌어 냈고 - 인간을 더 깊은 속박으로 밀어 넣었다.6)

 

이렇게 율법은 해결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삶이며, 그분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7)

 

2.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

 

사도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그의 율법관을 볼 수 있는 두 번째 서신은 갈라디아서이다. 갈라디아서는 신약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바울서신에서 로마서 다음에 오는 순서로 되어 있지만 기록 연대는 A.D. 56년경으로 로마서보다 앞선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게 된 것은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됙 위해, 그리고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의 특정한 특면을 준수해야 함을 납득시키고자 함에 따라서 그에 대한 변론을 하는 것에서 이다. 바울은, 할례와 율법 준수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시가 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영에 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율법주의적 견해에 강력히 저항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한 모든 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 안에 포함되었다.8) 이제는 믿음의 시대가 임했으며, 더 이상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조차 율법의 훈계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고 바울은 주장했다. 그들은 어린아이였을 때는 보호자의 감독 아래 있었으나, 이제 어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보호자 아래 있을 필요가 없게 된 사람과 같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한때 율법의 훈계 아래 있었으나,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시대가 임했으므로 더 이상 율법의 훈계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어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9)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율법 아래 살아가야 할 의무가 없다면, 확실히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3. 히브리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

 

사도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그의 율법관을 볼 수 있는 세 번째 서신은 A.D. 60년경 이후에 기록된 히브리서이다.10)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견해가 갈라져 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이란 견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11) 본 글은 이런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이란 견해를 갖고서,12) 이곳에 나타난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바울의 율법관으로 다룬다.

 

히브리서는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에게 쓴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들, 특히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새언약이 지닌 탁월성을 설명하였다. 새언약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죄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13)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에게 새언약의 규정은 본질이지만, 율법은 단지 그림자였음을 보여주고자 했다.14) 율법이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희생 제사에 관한 이전의 계명들은 폐지되었다.15)

 

히브리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전에 모세 율법 아래서 효력을 갖던 제도는 종말을 맞게 되고, 새언약의 규정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힌다. 죄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새겨졌다.

 

4. 바울의 율법관에 나타난 종합적 이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이후에 시내에서 이스라엘과 공식적으로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서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표지가 아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영에 참여함으로 구별된다. 율법은 그들을 위한 교육적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삶을 규율하는 규범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실제적 요구들에 얽매이지 않으나 그 율법의 요구에 기초가 된 원칙과 가치관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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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은 Joel B. Green, Scott Mcknight and I. Howard Marshall., Dictionary of Jesus and the Cospels, 요단출판사번역위원회 옮김,『예수복음서사전』(서울: 요단출판사, 2003), 985-987쪽에 수록된 것을 발췌한 것에 일부를 보충한 것이다.

 

2) 로마서 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 로마서 7: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4) (1) 로마서 6:1-11.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2) 로마서 6:15-19.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5) 로마서 7:4-6.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6) 로마서 7:7-2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 로마서 8:2-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 갈라디아서 3:1-22.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9) 갈라디아서 3:24-4:7.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10) 히브리서가 기록된 때는 A.D. 60년경 이후 이다. 우리가 60년경 이후로 보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성전이 아직 있었는 듯 하다.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에 무너졌다. (2) 성도에게 박해가 있었는 듯 하다. 그래서 배교에 관하여 언급했던 것 같다. (3) 디모데에 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을 보면 디모데가 아직까지 살아있을 때에 쓰여진 편지이다. 그렇다면 본 서는 60년도 이전에 쓰여진 책이다.

 

11) (1)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다.

(a) 제롬(Jerom)은 "히브리서가 정경임에는 틀림없으나 바울의 저작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b) 오리겐(Origen)은 "옛 사람이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이라고 한 것은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만 아신다"(God only knows)라고 하였다.

(2) 히브리서의 저자로 등장되는 인물들에 대한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a) 터툴리안 교부는 히브리서 저자를 바나바라고 한다(행4:36, 히13:22).

(b) 루터는 아볼로라고 한다(행18:24,25).

(c)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누가가 히브리어로 된 히브리서를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고 한다.

(d)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로마의 클레멘트라고 한다. 유세비우스의 [역사 제6권]에 "히브리서는 바울의 제자인 로마의 클레멘트가 썼다"고 하였다.

(e) 혹자는 실라라고 한다.

(f) 혹자는 전도자 빌립이라고 한다.

(g) 혹자는 하르낙과 픽(Harnack, Peek)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한다.

 

12) 본 글은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의 저작으로 본다.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본서의 내증을 살펴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본서의 저자에 관한 내증 가운데 어떤 사실은 바울을 저자로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여러 사실들은 또 다음의 경우들을 생각해볼 때에 확실해진다. (1) 디모데에 대한 언급과 (13: 23) 또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 장기간의 교제에 대한 언급이며, (2) 히브리서와 기타 인정된 바울 서신간의 언어 및 사상의 유사성이며 (1:4과 빌2:9, 2:2과 갈3:19, 2:10과 롬11:36, 7:18과 롬8:3, 7:27과 엡5:2, 8:13과 고후3:11, 10:33과 고전4:9, 11:13과 엡2:19, 12:22과 갈4:25-26), (3) 기타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 중점적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4) 적어도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바울의 사상의 대부분이 그대로 쓰여져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바울 서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울 서신에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또 그의 백성들 가운데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했는가 하면 히브리서에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담당하시는 대제사장의 사역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권에 반기를 들 수는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위의 여러 가지 이론들에 대하여 우리는 바울의 저작권을 의심할 수 없는 성경 자체의 내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5) 본서에 바울이 썼다는 이름이 없는 것이 증거이다. 바울의 다른 서신에는 바울이 썼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본서에는 그런 말이 없다. 행23: 12-13에 보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유대인이 40여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바울을 미워하는 유대인이 바울이 썼다고 하면 그의 글을 보거나 읽거나 하겠는가? 히브리서는 내용을 보면 유대인에게 보낸 것이니 유대인이 가장 미워하는 바울이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이 현명한 일이다. (6) 본서의 문체나 신학적 사상이 바울이 쓴 다른 편지와 같다. 저자는 구약의 흐름을 가장 깊이 파악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사건이 그의 하늘에서의 제사장 직과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서를 통하여 보면 저자는 구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구약 성경의 용어에 익숙한 사람이며 구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저자가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이런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게다가 이 저자는 본서에 대한 논리적 전개(11: 믿음, 12: 소망, 13: 사랑)와 그 당시의 철학에 익숙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본 서 8:5에 "그림자"는 필로의 철학에도 지상 만물은 하늘의 그림자라 하였고, 11:3에 있는 말은 에피큐러스의 술어와 같고, 5:14에 "굳은 음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애용구이다. 그리이스의 문학과 철학에 익숙한 저자이면서 동시에 위에 서술한 바의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사람은 초대 교회에서 누구일까? 그 사람은 사도 바울이 틀림없을 것이다. 특별히 13장에 보면 디모데와의 관계를 말했는데 이런 형편에 해당되는 사람이 바울 외에 더 적당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7)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라는 외적인 증거도 풍부하다. 동방교회들은 본서를 바울의 저서로 믿었으며 2세기 말경의 사람인 판타에누스(Pantaenus)도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증거했으며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본서는 바울이 히브리어로 쓴 것을 어떤 사람이 헬라어로 썼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사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바울의 저작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흠정역성경(King Jame's Version)에는 "사도 바울의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Hebrew)라고 했다.

 

13) 히브리서 8:6-13.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14)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15) 히브리서 7:18-1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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