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3장
요엘 3장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중심으로(3:14-17) 전후 두 부분으로 분류가 된다. 첫 번째 부분인 3:1-15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던 이방 원수들인 열국의 심판을 다루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인 3:18-21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회복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지는 큰 은총이 예언되어 있다.
1. 유다와 예루살렘(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킨 열국들의 최후 심판(3:1-13)
1-1. ‘그 날, 그 때’의 여호와의 날에 있을 일(1-3절)
1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여호와의 날’이 가까우자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열국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러 모은 후(3:2, 12, 14) 큰 심판을 선포한다. 3:1에서 한글개역성경에는 빠져 있으나 개정판에는 포함된 히브리 성경 원문은 “대저, 보라!(볼찌어다!)”(For behold)란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보라!는 말은 본문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중요한 일을 알리려 할 때에 먼저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저'란 말은 접속사인데, '그러므로'의 뜻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제3장의 시작이 앞에서의 2:28-32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2:32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디어 구원을 얻게 된 것을 말했는데, 그러한 구원이 어떻게 저들에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말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대저’(그러므로)이다. 그것으로 3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앞서 원수들의 심판이 선포된다. 그것은 곧 이방의 심판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강한 군대를 사용하여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으나, 이제 그 이방국가를 심판하는 것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해나가실 것이다.
3:1인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에서 “보라 그 날, 곧…그 때”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날, 그 때’를 말한다. 요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크게 번성했던 웃시야 왕 시대에 기록된 책인데,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배도의 길을 걸어갔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요엘을 보내서 곧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으로 있을 재앙 - 메뚜기 재앙/이방 국가의 군대 - 와 먼 훗날 있을 더 큰 하나님의 심판과 더 나아가서는 말세 즉 주의 날에 임할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는 그러한 바로 ‘그 날, 그 때’가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이사야가 말한 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리라”(사 9:2) 라고 한 ‘그 날, 그 때’일 것이다. 이 ‘그 날, 그 때’에는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 “흑암이 다시 없으리라”(사 9:1) 라고 한 ‘그 날, 그 때’로서 이 날에는 다윗의 위에 한 아들이 주어지는 때라고 이사야는 말했다(사 9:6, 7).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며,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렘 33:15-16) 라고 했다. ‘그 날, 그 때’에는 예루살렘에서 애통하며 회개하는 큰 역사가 있을 것이며(렘 50:4, 5), ‘그 날, 그 때’에는 또 모든 죄악이 사함을 얻되(렘 50:20), 깨끗이 사함을 받아 그 죄악을 찾아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렘 50:20; 슥 12:10-13:2). 이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심으로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다윗에게서 오는 한 의로운 가지에 의해서 그러한 일이 있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본문 1절에서는 “내가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한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꼭 그들의 포로생활에서의 역사적 해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메시야로 말미암아 얻을 참 해방인 모든 죄악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영적 해방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그 날, 그 때’를 요엘 선지자는 또 다른 말로 ‘여호와의 날’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는 ‘그 날, 그 때’는 바로 요엘 선지자가 말하는 메시지의 ‘종점’(終點)이기도 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그 날과 그 때’을 “보라!” 라고 말하면서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라고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을 “보라!” 라고 말하면서,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번영을 회복시켜 주는 그날이 오고“라고 하였으며(1절, 현대어성경), ‘그 때’가 되면 ”내가 세계 만민의 군대를 집합시켜 여호사밧 골짜기 - '여호와께서 재판<심판>하시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초기 묵시 문학에서 애용하는 암호이다 - 로 데리고 가서 내 백성이며 내 재산인 이스라엘을 해친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벌을 내리겠다. 그들이 내 백성을 세계 만민들 중에 흩어 놓고 내 땅을 나누어 차지하였기 때문이며 내 백성을 나누어 자기들의 노예로 삼고 소년을 팔아서 창녀를 사고 소녀를 팔아 포도주를 사서 실컷 마셨기 때문이다.' “(2-3절, 현대어성경)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 어떤 일을 해서 -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 오고 그때가 되면 내가 세계 모든 나라의 군대를 집합시켜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백성이며 재산인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벌을 내리는 심판을 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 나라들 가운데 뿔뿔이 흩어 놓고 쓸만한 자들을 골라서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땅을 나누어 차지 -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그들을 나누어 가져 노예로 삼은 행위는 곧 이스라엘 땅을 나누어 차지한 것이 되는 의미를 가진다 -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나누어 자기들의 노예로 삼고 소년을 팔아서 창녀를 사고 소녀를 팔아 포도주를 사서 실컷 마신 것에 대해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1-2. ‘그 날, 그 때’의 ‘여호와의 날’에 있을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지역 모든 족속의 운명(4-8절)
4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6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7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4절에서는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지역의 모든 족속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임을,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너희가 내게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너희가 내게 무슨 보복을 하거나 내게 무슨 화를 입히겠느냐?” 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보복할 일이 많다. 내가 곧 너희의 모든 행위를 너희 머리 위로 되돌려 보내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가 아무리 내게 보복하고 또 보복할지라도 너희의 보복하는 그것은 고스란히 그대로 너희 머리 위에 돌려보내겠다”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다.
그리고 5-8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의 그들이 행한 그대로 갚으실 것임을 약속하시는 것에서 그들이 어떤 악한 행위에 있었는지를 끄집어내시며, 그들이 행한 것이 그대로 그들의 머리 위로 돌아갈 것임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금은 보물들을 모조리 탈취하여 우상을 섬기는 너희의 모든 신전들 속에 갖다 두었다. 너희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그들의 조국 강산에서 멀리 쫓아내기 위하여 헬라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너희가 그들을 팔아서 보낸 그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다시 데려오고 너희가 한 모든 짓을 내가 이제 너희의 머리 위로 되돌려보내겠다. 또 내가 너희의 아들딸들을 유다 백성에게 팔아 이들이 그들을 먼 나라의 스바 사람들에게 팔도록 하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드로와 시돈, 특별히 블레셋 같은 나라는 이스라엘을 자주 침략하여 노략질해 감으로써 하나님의 은과 금을 탈취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들은 은과 금은 물론이요 그것들과 더불어 ‘진기한 보물’을 그들의 신궁 - ‘왕궁’으로 번역할 수 있기는 하나 우상의 ‘신전’으로 봄이 옳다 - 으로 가져갔다.
이들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사로잡아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다”, 즉, 노예로 팔았는데 가까운 에돔에게만 판 것이 아니라(암 1:6, 9) 멀리 헬라에게까지 팔아 넘겼다. 이들이 이처럼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사로잡아서 멀리 팔아넘긴 것은 의도적인 악행이었다. 유다의 자손들이 영원히 그들의 고향 땅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시돈과 두로는 다윗과 솔로몬 때만 해도 서로 형제라고 할만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열왕기상 9:13에 보면,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을 향하여 “나의 형이여”라고 했다. 이처럼 두로와 유다의 관계는 협력적 관계로 돈독했다(삼하 5:11; 왕상 5:1-12, 18; 7:13-45) 이러한 시돈과 두로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침략적 태도에 있지는 않았으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은 데다가 마침내 그들은 상품만이 아니라 인신매매의 중재자가 되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드디어는 ‘찌르는 가시’ 같은 원수가 되었다. 이러한 시돈과 두로는 블레셋과 같이 선지자들이 책망을 들었다(암 1:6. 9).
이러한 시돈과 두로와 블레셋을 이젠 하나님께서 그들이 팔아서 보낸 그 모든 곳에서 다시 데려와 돌아오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 모든 짓을 그들의 머리 위로 되돌려보냄으로써 그들이 아들과 딸을 유다 백성에게 팔아 이들이 그들을 다시 먼 나라의 스바 사람들에게 팔아넘기게 하겠다며, 이를 여호와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시돈과 두로와 블레셋에 대한 이러한 조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것에서 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시며, 그의 주가 되어서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할 것이라고 하셨다(창 12:30. 하나님의 이 약속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땅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서 시돈과 두로와 블레셋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저주한 데 따라 그들의 아들과 딸은 하나님의 저주에 있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 예언은 머지 않아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두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점령되었고, 또 후일에는 헬라의 알렉산더에게 점령되어 13,000명 이상이 포로로 팔려갔다. 그리고 시돈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점령되어 40,000명 이상이 불타 죽었으며, 블레셋의 운명도 그와 같아서 헬라의 알렉산더는 가사를 점령하고 10,000명 이상의 시민을 죽이고 나머지 부녀들과 어린이들을 포로로 팔아넘겼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이들에게 한 것과는 반대로 유대인에게는 크게 호의를 보여 헬라에 흩어져 있던 유다 자손들에게는 자유를 선언하였다.
본문에서는 시돈과 두로와 블레셋의 아들과 딸이 팔려갈 것에 대해서는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릴 것이다” 라고 했다. 스바는 지금의 예멘 땅을 가리키지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할 당시에는 무역의 중심지였고 은과 금이 풍부했으며(사 60:6), 멀리 인도에까지 그들의 상업거래는 활발하였다. 그런데 ‘먼 나라 스바’는 스바를 중심하여 그 밖의 먼 나라들을 포함한 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먼 나라로 시돈과 두로와 블레셋의 아들과 딸이 팔려가게 함으로써 그들이 유다에게 행한 그대로 그들의 머리 위로 되돌림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라고 하심으로 이 일이 유다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임과 그렇기 때문에 또한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1-3. ‘여호와의 (심판)날’의 부름에 있는 열국(9-13절)
9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본문의 원문은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것을 공포하라‘(개역개정-’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서 처음 먼저 언급되고 있는 주어가 되는 ’너희‘는 이후에 계속되는 ’너희‘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처음 언급되는 ’너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 요엘 자신을 포함한 여호와의 종들을 의미하는 말이나, 이후에 언급되는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과 싸우게 되는 모든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엘을 비롯한 여호와의 종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모든 민족들에게 공포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모두 명령형들로 되어 있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과 싸울)전쟁을 준비하라“, ”용사들을 (깨워)일으켜 세우라“, ”모든 무사(군사)들을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상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라“, ”저들로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올라 오게 하라“는 말들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형을 사용하여서 이처럼 공포하게 하는 것은 옛날 애굽의 바로 같이 강팍한 자를 더욱 강팍케 일어나게 하여 하나님을 상대하게 하여 그들의 힘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무기력함을 세상에 드러내심으로 그들을 웃음거리가 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된 신이심을 드높이신 것과 같은 것이다. 유다 주변에 있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준비해 왔으며 전쟁을 선포하여 전쟁을 시작하고, 이때 아무리 보습 - 밭갈이에 사용되는 농기구 - 을 쳐서 칼로 무장하고 낫을 쳐서 창을 갖추어 용사를 동원하여 올라올지라도 결국 그들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세계 만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주변에 있으면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괴롭힌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에서 이를 종말론적 심판으로 있게 될 ‘여호와의 (심판)날’과 연관시키는 것에서 13절을 말씀하시고 있다.
13절의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는 문자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너희는 낫을 던지라. 대저 곡식이 익었다.
와서 밟으라. 대저 슬픔이 가득 찼다.
포도주틀이 넘치니, 대저 그들의 악이 크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날의 마지막 심판 때를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너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게 될 하늘의 천사들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낫으로 베어라고 말씀하신다. 곡식이 익어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와서 밟으라고 말씀하신다. 포도주틀(독)에 담겨 있어야 할 포도 대신에 슬픔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틀(독)마다 넘쳐 흘러내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종말적 심판을 미리 보여주는 표적으로 삼고 계신다. 노아 홍수의 심판에서,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보여주셨던 것과 같이 이제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에서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으나 그 결과는 졸지에 황폐케 되는 것으로 결코 악인의 형통이 있지 않음을 나타내실 것이다. 이들은 ‘포도주틀이 넘침’ 같이 ‘죄악이 넘칠 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질 때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는 죄악이 관영하는 기간으로 있다. 즉,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는 그 때가 차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는 기간을 두심은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백성을 찾아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있게 하심으로써 구원의 충만수에 있게 하시는 까닭이다. 이때에 이르기까지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내가 (악인의)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합 1:2) 라고 부르짖어도 잠잠하시며,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하여도(시 73:2, 3) 하나님께서는 웃으심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포도주틀이 넘침’ 같이 ‘악이 넘칠 때’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죄의 분량)을 채우라’(마 23:32) 라고 하신 죄악의 허락이 채워졌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더 이상 지체함이 없이 즉시 시행된다. 단 하루도, 단 한 시도 더해져서 심판의 날이 늦춰지는 일이 없다.
2. ‘여호와의 심판 날’에서 ‘여호와의 시대’가 될 ‘여호와의 날’(14-17절)
14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앞서에서 죄악의 관영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지체없이 시행될 것에서 본문 요엘 3:14-15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 앉아서 그곳으로 천하 만민을 불러 올라오게 심판하실 최후 심판의 날, 즉 선지자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이 임박한 때의 그 형편이 어떠하며 또 그 날이 어떠한 날인지를 보여주신다. 그리고 3:16-17은 그 날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떤 날일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여기서 한글개역(개정)성경은 “사람이 많음이여…사람이 많음이여”이지만, 히브리 성경의 원문은 “사람이 많음이여, 사람이 많음이여”라고 반복되고 있는 말로 시작된다. '사람이 많음이여'에서의 '많은'은 말 그대로 사람의 숫자가 ‘많은’ 것이며, ‘무리’, ‘군중’을 뜻하는데 복수형으로서 사용되어서 문자적으로는 ‘군중들, 군중들’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군중을 나타내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같은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숫자가 엄청나게 많음을 극도로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 요엘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심판의 골짜기’는 2절과 12절에서는 ‘여호사밧 골짜기’(여호와께서 재판/판결하시는 골짜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인데 그 동일한 골짜기를 본문에서는 ‘심판의 골짜기’로 표현한다. 그런데 ‘심판의 골짜기’는 문자적으로는 ‘재판/판결/결정의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사용된 ‘심판’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결정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결정’, ‘확정’, ‘판결’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여호와의 심판이 단행되는 그 골짜기가 모든 심판 대상자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곳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에서 이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러 올라오게 함으로써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예언하게 하셨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에 따라서 이 심판의 골짜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옴으로써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같이 밀려들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로 밀려들어 모여들었다는 것은 이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로 밀려들어 모이는 것이 끝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이 지체없이 단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무서운 심판이 지체 없이 임하는 날인 ‘여호와의 심판 날’의 임박함에 천하 만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심판이 행해질 때의 광경이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요엘 2:31에서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에서의 하반절과 유사하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영의 부음을 받음에 있는 것에서 있게 되는 일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악한 자들을 무찌르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신현>과 관련하여서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특히 하늘의 해가 그 빛을 잃고 달이 어두워짐에 있는 것은 사흘 밤낮을 흑암 가운데 있게 하는 흑암 재앙을 내려 애굽을 심판하시는 것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상기하게 한다. 그런데 이 흑암 재앙은 종말론적 심판으로 있게 될 ‘여호와의 (심판)날’과 연관하여서 있게 될 것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때 3시간 동안 흑암이 몰려들었으며 여기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한 형벌의 고난에 있는 것에서 그들의 구원을 가져오실 것이었다.
그러므로 심판의 골짜기에서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이르고, 해가 빛을 잃고 달이 어두워질 때에, 여호와께서 시온 산 위에서 우렁차게 외치시고 예루살렘에서 목청을 높이시자 하늘과 땅이 진동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에게는 피난처가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요새가 되실 것이란 예언을 하신다. 그때에 가서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요, 나의 거룩한 산 시온산 위에 내가 산다는 것을 너희가 마침내 알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영원히 나의 도성이 될 것이다. 이방 군대들이 그 도시를 더 이상 통행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포에 따라 심판의 골짜기로 모여든 천하 만민에게 여호와의 심판이 단행되어서 멸망시킬 것과 함께 그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산에 자기의 백성을 불러 들여 그들의 생명을 안전히 보전하실 것을 예언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심판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모여들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 도성을 이룰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여호와의 시대’가 되는 ‘여호와의 날’이 된다. ‘여호와의 심판 날’은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여 멸망케 하는 저주스런 화가 임하는 날이지만, 그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들게 하시는 소리가 발할 것이며,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곳으로 나아와 안전히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을 이루고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에 있는 ‘여호와의 시대’가 시작되는 ‘여호와의 날’이 된다. 여기서는 이방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다.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을 통행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로 채워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보호하는 피난처요 굳게 지키시는 요새가 되실 것이다. 이것을 후에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묵시적 환상에서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의 예언 계시로 주어졌다(계 21장).
3. ‘여호와의 시대’가 될 ‘여호와의 날’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18-21절)
18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앞선 14-17절은 하나님께서 세계 만민에게 공포하여 그들의 군대를 불러 올라오게 하여 여호사밧 골까지 -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골짜기 -, 곧 ‘심판의 골짜기’로 세상 만민을 모여들게 하여서 그들을 심판하여 멸망케 하실 ‘여호와의 (심판)날’에서 하나님이 앉아 계신 시온 산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오게 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을 이루고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에 있게 하실 ‘여호와의 시대’인 ‘여호와의 날’이 예언되었다. 그리고 이제 본문인 3:18-21은 그 날이 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예언해 주신다.
여기서 ‘그 날에’는 어떤 날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것의 원문은 “그리고 그 날에…그것이 있을 것이다”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라고 지시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인 ‘그 날에’이므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다. 이는 산마다 새포도주가 흐르고 작은 산<언덕>들에는 젖이 넘쳐흐를 것이란 말이다. ‘그 날에’ 이러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시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 날에’는 이러한 것이 있을 것인 날이 반드시 도래할 것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여호와 시대’인 ‘여호와의 날’을 가리킨다. 이처럼 “그리고 산마다 새포도주가 넘쳐흐르고, 작은 산(언덕)들에는 젖이 넘쳐흐를 것”이 뜻하는 문맥상의 의미는 하나님이 계신 시온 산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불러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허락된 ‘새 땅’의 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 날로서 세상 만민을 하나님 앞으로 불러 모아 심판하여 멸망케 함으로 세상 나라는 끝장이 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날이 될 것이지만, 이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영원히 하나님의 도성<하나님의 나라>으로 우뚝 설 ‘여호와의 시대’로서의 ‘새 날’인 ‘여호와의 날’이 있을 것임을 말한다.
이렇게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에 따라서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 14:8에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예언하고 있고, 에스겔 47:1-12에서는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라고 말하며, 마침내 그 흘러내리는 물이 큰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라고 예언하시고 있는 것과 같은 계시이다. 그래서 선지자 요엘에게 예언하신 산마다 달콤한 새포도주가 넘쳐서 뚝뚝 떨어져 흐르고 작은 산마다 여기 저기 가득 차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이 내는 풍성한 젖이 넘쳐 흘러 온 들판을 적시는 그날이 오면 유다의 메마른 시내마다 물이 넘쳐 흐르고 여호와의 집에서 샘이 터져 나와 메마른 아카시아 골짜기에 물을 대어 줄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그 날에’는 세상 만민을 멸망시키는 ‘여호와의 (심판)날’에 ‘여호와의 시대’가 도래하는 ‘여호와의 (축복)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인데, 이방인들이 메뚜기 떼같이 달려들었던 침략으로 졸지에 폐허가 되어 황폐한 땅이 되었던 유다 - 가나안 - 가 본래의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땅으로 회복될 것이 예언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거룩한 산 시온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들이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실 세상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유다’는 ‘회복된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는 우상 숭배하는 이방인들은 전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여호와의 (축복)날’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여 주실 큰 축복으로 말미암아서 회복될 새로운 유다, 곧 새이스라엘이 예언되고 있다. 이 땅은 본래 젖과 꿀이 흐르는 유다 - 가나안 - 땅이라고 했는데, ‘여호와의 시대’가 도래하는 ‘새 날’인 ‘여호와의 날’이 하나님이 사시는 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심으로 참으로 크신 축복을 누릴 것을 예언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의 이 예언은 하나님이 요엘 2:28-32에서 약속하신 말일에 있을 일인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에 있는 모든 땅에서 나와 하나님의 나라에 물밀듯이 들어와 충만수가 되면 주님의 재림으로 성취된다. 해서,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새하늘’과 더불어 주어지는 ‘새땅’이요, ‘새예루살렘’인 것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의 19절인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는 ‘여호와 시대’로서의 ‘여호와의 (축복)날’로 말미암아 있게 될 ‘새땅’인 새로운 유다에 반하여 유다를 괴롭혔던 애굽은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들판으로 변할 것을 예언했다. 여기서 애굽과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원수들의 대표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애굽은 오랜 동안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았고, 그 어린 남아들을 죽임으로 그 종족을 전멸하려 했던 나라였다. 또 에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갈 때 도중에서 이스라엘을 몹시 괴롭게 한 나라였으며, 또한 이스라엘이 환란을 당할 때 앞장서서 기뻐했던 나라였다(옵 1:10-14; 겔 25:12-13; 35:15; 36:5).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 족속과는 조상을 같이 하는 친척 관계에 있으나 이스라엘에 대하여서는 적의를 가장 많이 품었던 나라였다. 이러한 에돔에 대해 오바댜 선지서는 전적으로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본절에서는 이 두 나라인 애굽과 에돔의 포악한 악행이 기록되고 있는데,“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애굽과 에돔이 유다 자손을 학대하여 강포를 행하며 잔인함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절에서는 이들에 대해 예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내 백성을 죽인 원수들에게 피값을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백성을 억압한 자들의 죄악을 내가 결코 씻어 주지 않겠다.” 라고 하시고 있다. 이는 유다 - 이스라엘 - 의 대적에 있는 자(나라)들은 다시는 회복이 없을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20절에서 “그러나 유다는 언제까지나 번창하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번영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또한 마지막 구절인 21절에서는 “내 집이 내 백성과 함께 시온에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에서 ‘여호와의 시대’인 ‘여호와의 날’에서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계시는 시온에 있기 때문에 누리는 복됨이 강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에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집에 있지 않은, 그래서 하나님이 사시는 시온에 있지 않은 하나님께 내버림을 당한 악인들이 겪는 불행도 함께 강력히 피력되고 있다. 이는 17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을 반복하시고 있는 것으로 재차 확증해 주시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요한계시록 21-22장은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있게 될 ‘새날’에 대하여 예언 계시해 주시고 있다. 요엘 3:21에서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거하심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의 히브리 문법은 분사형(participle)으로 되어 있어서 그 뜻은 하나님께서 시온의 보좌에 영원히 앉아 계신다는 계속적인 상존성(常存性)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시는 산 시온,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히 12:22)이요,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계21:2)에서 말씀되고 있는 것으로 하늘의 세계로서의 하나님 나라와 그 영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 계시에 의해서 그 세계를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다고 하였다(계 21:4)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까닭인데, 이는 땅에서 애굽과 에돔에게 수모를 겪었던 것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을 상기케 한다. 그것은 하늘의 나라인 새로운 도성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원수들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 또한 다시는 없는 것이다. 이는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무죄한 피를 갚아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신(욜 3:19)하신 대로 하늘의 새로운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과 함께 사심으로 있게 되는 하나님의 갚으심으로 인한 회복과 평화, 그로 인한 안연함이 사도 요한을 통해서 계시되고 있는데, 이 모두는 모든 믿는 자들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로 시작한 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를 끝내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 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