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측량의 환상 계시
요한계시록 11장 1-2절 / 1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은 지팡이처럼 생긴 갈대 하나를 주께로부터 받았다. 갈대는 문자적인 의미이며, 이것이 지니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는‘펜’을 뜻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이것이 사용된 용도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이 지팡이처럼 생긴 갈대를 받은 것은 성전을 측량하게 하는 것에서였다. 따라서 지팡이처럼 생긴 갈대의 용도는 성전을 측량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쓰이는 잣대, 곧 측량자이다. 요한이 이 측량자를 받자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졌다.“너는 가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이 있는 안뜰을 측량하고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보아라. 그러나 성전 바깥뜰은 측량할 필요가 없다. 그곳은 이방인들에게 내 준 곳이다. 그들은 마흔 두 달 동안 이 거룩한 성을 짓밟을 것이다.”
이렇게 요한이 주께로부터 받은 갈대의 용도는 성전을 측량하는데 쓰일 것이었다. 요한은 성전과 제단이 있는 안뜰을 측량할 것을 지시 받았다. 여기서 쓰이고 있는 측량이라는 단어는‘측량하다’,‘측정하다’는 뜻 외에도‘조사하다’,‘계수하다’,‘계량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본문에서는‘계수하다’는 뜻에서 사용되었다. 그래서 성전과 제단이 있는 안뜰을 측량하는데, 이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지를 세어 보게 하셨다. 즉,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자를 계수하게 하셨다. 그런데 성전 바깥뜰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이유를 알려주셨다. 그것은 이방인에게 내 준 것이며, 그들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주께서 이처럼 요한에게 성전 측량에 있게 하신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지는 이미 7장에서 알려주셨으며, 또한 14장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된다. 그 수는 144,000명이다. 그런데 이 수의 계수를 주께서 지시하신 것은 이 144,000명이 주님의 인침에 있음으로 주님의 보호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는 이어지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에서 확인된다.“그(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성전 바깥마당이 측량되지 않는 것은, 그에 따라서 그 안에 있는 자들이 계수되지 않는 것은 그들은 이방인에게 내주어 마흔 두 달, 곧 1260일 동안 짓밟힘을 당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은“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정복하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거룩한 성(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허용되었기 때문에”,“거룩한 성에 있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 이방인들에게 허용되었기 때문에”를 뜻한다. 그리고 마흔 두 달은 달리 기술하면 1260일을 말하며, 이는 또한 한 때 두 때 반 때, 곧 삼년 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바깥마당에 있는 자들은 성전 안에 있는 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 있다. 마흔 두 달의 기간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서는 어린 양의 피의 구속의 인침에 의하여 구원의 충만수로 채움에 있는 기간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으로 있지만, 하나님의 택함에 있지 않은 자들에게는 어린 양의 피의 구속의 인침을 받지 못하고 짐승의 표를 받음에 있는 수(666)에 있어 하나님의 징벌의 심판으로 쓰이는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는 기간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으로 있다.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짓밟힘을 당하는 자들은 그들이 추조한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단과 함께 어둠에 처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성전 바깥마당에 있는 자들이 이러한 형편에 있는 것에 반해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히 보존되고 있다. 이것의 확실함과 확고함은 그들에게 주님의 인침이 있는 것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의 측량은 그들에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을 의미한다. 이는 여섯 번째 인 재앙과 일곱 번 째 인 재앙 사이에 위치하는 7장 1-17절이 인침으로 인한 144,000의 보존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 사이에 위치하는 11장 1-13절의 부분인 1-2절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보호에 의한 보존에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이에 의하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는 자들은 거룩한 성에 대한 이방인들의 지배가 마흔 두 달 동안 지속되는 짐승이 권세를 행사하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종말이 도래할 때까지 생존할 그리스도인들의 보호받는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시는 위로이며 격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의에 있음으로 그 의가 배척당하며 핍박받는 교회에 주어지는 고난은 마흔 두 달이라는 엄격하게 제한된 기간에 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우리의 세월이 강건하면 70년이요 길면 80년에 한정된 것처럼 신속히 지나갈 것이니 하나님의 보호에 의하여서 참으로 짧을 것이다. 주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어느 날 자신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고난에서 벗어나 자유하여 있는 자신의 몸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를 좇음에 참음으로 있어 인내하자. 사도 바울은“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5:1-4, 8:35-39)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