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도행전

사도행전 20장 7-11절, 마태복음 22장 15-22절 /교회의 주일 공예배에 대하여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20.06.21|조회수324 목록 댓글 0

교회의 주일 공예배에 대하여

 

사도행전 207-11/ 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마태복음 2215-22/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6:18에서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국가를 세우셨듯이 교회는 자생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알려주심에 따라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온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창세전에 작정하신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실행하시는 것에서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하나로 모으시고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죄 사함의 구원을 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여 놓는 일을 십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기 위해서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주일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14:26, 15:26)을 보내주신 때를 시점으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믿는 자를 얻어 교회를 세워나가셨습니다(2). 그 교회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복음에 있는 성령의 권능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지역 모두에 세워져 나갔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를 이룸에 있는 성도는주의 날에 모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에 참여하며 성도를 섬기는 봉사의 연보에 있었습니다.

 

주의 날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 세 곳에서 언급해 주십니다. (1)먼저, 사도행전 20:7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2)고린도전서 16:2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에서안식 후 첫날매주일 첫날에 공적 예배의 모임을 가진 것에서 보게 되는데안식 후 첫날매주일 첫날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회집하여 함께 예배하는 공중 예배일로 자리하였습니다. (3)이 날은 요한계시록 1:10에서는주의 날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안식 후 첫날매주일 첫날로 새롭게 시작되고 있으니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을 그리스도인이 예배하는 날로 새롭게 가져간 의미 있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이 날은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는 것이기에 유대인이 조상 때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온 율법의 안식일과는 다른 날입니다. 이 날은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을 우리는주일이란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일 공예배

 

주일 공예배 : 그리스도인은 이주의 날에 교회된 특성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됨의 연합에 있는 회집을 통해공중 예배’(公衆禮拜)를 가져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이 주의 날에 갖는 이 공중예배를주일 공예배라고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주일 예배라고 합니다. 따라서주일 예배주일 공예배를 이릅니다. 이 주일 예배는 그리스도인이 공중으로 모여 다 함께 하나 된 믿음에 의해서 가져나가는 것이므로공적 예배’(公的禮拜)의 의식을 갖습니다. 그러기에주일 ()예배는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가져나가는사적 예배’(私的禮拜)와는 차이점을 갖습니다.

 

가정 예배는 주일 공예배 성격을 갖는가? : 이번 코로나19로 인해서 여느 때에 비해서 많이 말하며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종교집회를 금지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 매주일 교회로의 모임을 통해 주일 공예배를 드려오던 것을 일시 중단하고 임시로 가정 예배로 대신하자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적지 않은 교회가 주일 공예배를 가정 예배로 드렸습니다. 설사 교회가 주일 공예배를 중지하지 않고 매주일 행할지라도 코로나19의 감염 예방을 위해 주일 공예배 참여에 의한 교회로 모임을 갖지 않는 성도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정 예배로 주일 공예배를 대신한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렇게 가정 예배를 주일 공예배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초대교회에서 보게 되는 신자들의 가정에서 예배드렸던 것을 제시합니다.

 

과연 가정 예배는 주일 공예배와 동일시할 수 있는 같은 것인지요. 만일 가정 예배가 주일 공예배의 성격을 가지려면 초대교회에서 보는 신자들의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그 가정 예배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구원의 복음 전파에 의해서 유대인의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면서 이방인의 땅에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첫 교회의 모습은 아직 성전이 존재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교회 모임이 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만 예루살렘에서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이방 지역에도 교회가 널리 세워지면서 예루살렘 성전 한 곳이 아닌 점차 신자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교회 모임을 갖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떡을 떼고 주를 찬양하며 기도하기에 전혀 힘씀에 있어 나갔습니다. 이것이 사도 시대에서 보는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입니다. 초대교회는 신자들이 거주하는 그 지역에서의 집을 통해 함께 모일 수 있는 분들이 연합하여 주께 예배드림에 있는공적 집회를 가져나갔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주께 예배드림에 있었던 신자의 집은 그들에게서 곧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곳이었으며, 이곳에서 가정의 형태로 예배드렸던 모습인 가정 예배는 신자가 함께 연합하여 예배드림에 있었던교회의 공중예배’, 교회의 공예배형태였습니다. 이 교회의 공예배는 매주일 첫날에 드려왔기에주일 공예배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한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에 드리는 주일 공예배는 공중, 공적 성격을 띱니다. 초대교회에서 주일 공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교회로의 모습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주일 공예배를 가져나가는 것은 한 분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됨에 있는 것이요, 주께 가진 한 믿음으로 한 분 주님을 섬김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매주일에 공예배를 드림에 있는 공적(공중) 예배를 가져나가고 있는데, 신자들 중에서는 자신의 집에서 가정 예배로 드린다고 하며, 이것을 주일 공예배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참으로 잘못되었습니다. 설사 교회가 부득이함으로 공예배로의 회집을 할 수가 없어서 주일 공예배를 성도의 가정에서 가져나가도록 대신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성도의 가정에서 공예배(공중예배)로 가져나가는 것이 아닌 성도 자신만이거나 성도 자신만의 가족만이 가정 예배로 드려가는 것이면 이 또한 잘못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제공하는 주일 공예배의 의식 순서를 그대로 따라서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교회가 갖는 주일 공예배로 있어나가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사적 예배를 가져나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주일 공예배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다 같이 함께 예배의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의 한 몸을 공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한 자리에 함께 있든 또는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정이나 기타의 장소에 성도가 있을지라도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에 있는 한 몸입니다. 이는 교회의 보편성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도들이 자신들이 사는 거주지에 의해서 흩어져 있었지만 매주일에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있는 하나 됨의 연합에 있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는 공예배를 드림에 있는 것이기에, 그러해야 할 성도가 능히 주일에 공예배에 참여할 수 있고, 마음을 기울이고 힘쓰면 주일에 공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데, 생명의 위험이나 그 보호에 있어야 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데도 주일 공예배에의 참여에 있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홀로 또는 가족만이 가정 예배로 드리는 것으로 가져나가는 것은 교회의 공예배를 매주일에 가져나가는 것을 무시하여 주일 공예배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되니, 이는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되기에 그리스도의 몸에 해를 끼치는 악을 행하는 죄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함에 있는 교회의주일 공예배’: 그리스도인이 주일에 공예배에의 참여에 있는 것은 국가를 다스리는 정부의 권한에 의해 내려진 종교집회를 허용하는 명령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께 갖는 믿음은 땅의 통치자에게 속해 있으면서 그들이 명령하여 지시하는 대로 가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자유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따름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갖는 공경함 속에서 함께 가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주일 예배를 가져나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한 몸을 이룸에 있는 교회로 회집함에 있는 것은 주이신 그리스도의 권세에 의한 것으로 예배의 참여를 통해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함에 있습니다.

 

국가의 권한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유한주일 공예배’ : 이러한 그리스도인(교회)은 이 세상 왕의 권세로부터 자유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주일 예배를 가져나감에 자유함에 있는 마음을 국가(세상)의 권세로 억제하고 억압하는 등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권세는 이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이루고 있는 백성을 위하여 그들을 섬김에 있을 수 있는 권한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국가의 왕(정부)은 그 권한으로 국가의 백성, 곧 국민을 위하여 다스리는 통치에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왕이 그 권한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개입하여 교회에 명령함으로써 주일 ()예배에 간섭하는 것은 국가의 왕이 자신이 국민을 위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남용하여 잘못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성경의 본문으로 삼은 사도행전 207-11절에서는 드로아에 있은 바울이 매주 시작되는 그 주간의 첫날에 교회 모임을 갖고 그 다음날 떠나야하므로 밤중까지 설교를 계속한 것에 의해서 교회의 주일 공예배에 대한 이해를 가져나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본문으로 삼은 또 한군데인 마태복음 2215-22절은 이와는 상관없는 내용의 구절입니다만, 여기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하신 말씀이 의도하는 것에서 교회가 주일 공예배를 갖는 원리적인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이 구절의 내용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흠 잡아 그것으로 트집을 잡아서 올무에 걸리게 할 심사로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우리에게 말해 주십시오.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것에 대해 예수께서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그들을 책망하시며 세금 낼 돈을 예수께 보이게 하시고서는 그 동전에 새겨진 형상이 누구이며 새겨진 글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물어가이사의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하는 그들에게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려라는 것에서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게 되는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의 주일 공예배에 대하여서도 원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에서는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를 다루는 것에서 국가의 위정자는 자신들에게 허용된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1)말씀을 주관하거나 성례전을 집행해서는 안 될 것이며, (2)천국 열쇠의 권한을 취하여 사용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3)조금이라도 신앙의 문제에 간섭해서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3)왜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교회 안에 일정한 치리제도와 권징법을 제정하셨으므로, 어떤 참된 교회든지 자발적인 교회원들이 그들의 신앙고백과 신념에 따라 교회규율을 시행할 때 국가의 법률이 간섭하거나 허락 또는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국가의 권한을 이와 같이 규정하고 있는 것은 국가는 국가에 주어진 권한으로 하여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에 있어야 하며 교회는 교회에 주어진 권한으로 하여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에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서 교회는 주일 공예배가 올바르고도 제대로 되어질 수 있게 하는데 주어진 권한이 행사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화로우실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매주일에 공예배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에 있어야 할 것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한이 사용됨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교회의 권한이기에 그 권한은 하나님께로 마땅히 돌려져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