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로마서 2장은 본론이 시작된 1:18-32에서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된 인간의 실상에 이어서 유대인의 죄를 전체 문장(2:1-29)에서 언급하여 다룬다. 이러한 유대인의 죄를 다룸은 내용의 구분에 의해서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5절 /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
․6-16절 /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
․17-27절 / 율법의 특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오용하여 율법의 정죄아래 있음
․28-29절 /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임
유대인의 죄(2:1-29)
1.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2:1-5)
2:1-5 /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사도 바울은 이곳 2장에서 1-3절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말하여 유대인들이 1장에서 본 바인 이방인들과 나은 점이 결코 없는 죄인 됨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실 심판에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먼저 그들이 핑계(변명)할 수 없는 확실한 죄와 그 죄에 따르는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다. 그것으로 바울은 이방인을 대하는 유대인들의 우월감을 지적한다. 그들은 율법을 오해하여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의로운 특권으로 여기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악한 사람들이라며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겨 자신들은 그들과 같지 않음을 자랑하는데, 그 판단1)에 있는 경향은 유대인의 특징적인 기질로 남을 판단하는 대로 자신도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죄에 있으며(마 7:2)), 남의 눈에 티를 보는 자신의 눈에는 그것보다 더 큰 들보의 죄에 있는 것(마 7:3)이었다. 따라서 이방인에게서 보는 죄는 유대인인 자신들에게서는 더욱 여실히 보게 되는 동일한 죄였다. 하여,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기준이 되어 남을 판단한 그 판단으로 또한 자신도 판단을 받으며 남을 정죄한 그 정죄로 또한 자신도 정죄를 받음에 있다.
더욱이 바울은 로마서 3:1-9절에서 유대인이 이방인에 비해서 나을 것이 결코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이방인이 받지 못한 율법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또 그것을 행하게 해주신 특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결코 죄와 상관없는 자로 있지를 않았다. 즉, 율법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모든 악한 일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그러한 사람인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다. 율법으로는 다만 죄를 깨달을 뿐이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없다며,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죄인인 사실을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말한다(롬 3:10-18).
이렇게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가진 생각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것은 자신들을 이방인보다 낫다고 여기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그 생각을 먼저 헐어버리는 것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4-5절에서 바울이 말해 주고 있는 바인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참으로 오래 참고 계시다는 것을 정녕 모르며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즉각 벌하지 않고 오래 기다려 주시는 것은 죄에서 돌이킬 회개의 기회를 갖게 해 주시는 자비의 시간을 주시고 있는 것이나 이를 멸시하여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으며 마음이 강퍅해져 죄에서 돌아서기는커녕 자기가 받을 무서운 벌을 쌓아 올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재판관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형벌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말이다.
2.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2:6-16)
2:6-16 /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을 언급(2:1-5)하고 나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심판과 구원에 의한 영생의 이중적 보편성(2:6-16)을 말한다. 그는 시편 62:122)과 잠언 24:123)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을 말하였는데, 넓게 보자면 로마서 1:18-32에서 이방인의 죄를 다루고 나서 2:1-5에서 유대인 또한 이방인과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이방인과 동일한 죄에 있는 유대인의 죄를 다룸으로, 실상 이방인이나 유대인 모두 하나님께 범죄에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에 있음으로써, 이곳 2:6-16에서 모든 인류가 겪을 심판의 불가피성을 말함에 있게 된다. 이는 6절에서“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니, ‘보응하신다’에 사용된 단어는 ‘나누어주다’, ‘빚을 되돌려주다’, ‘보답하다’는 뜻을 지닌 것으로4) ‘그가 보응하실 것이다’를 뜻한다. 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라고 하는 의미에서 심판과 관련한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쓰여,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모두에게, 곧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중적 보편성의 의미로 쓰였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악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벌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것이므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릴 것 없이 슬픔과 고통을 당할 것이다.5)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이중적 보편성으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러한 사실은 7-11절에서 서로 대조되는 표현을 통하여 설명되니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며 선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에게 그들이 추구한 것에 있는 영생이 주어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6)
이에 대하여 현대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참을성 있게 실천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영광과 명예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악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것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릴 것 없이 슬픔과 고통을 당하겠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심판과 함께 영생의 이중적 보편성을 적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11절에서 밝혀 주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이것의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보고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실 때에 불공평하거나 편파적이지 않으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현대어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다루시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였으며, 공동번역, 새번역성경, 쉬운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편애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의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하시기 때문이다”라고 각각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12-16절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보이는 죄도 그리고 이방인이 보이는 죄도, 곧 어떤 죄라도 벌하신다. 하여,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율법 없이’는 ‘율법을 알지 못하고’를 의미하여 “율법을 알지 못하고 범죄한 자는 율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망한다”를 말한다.7) 이는 율법을 알았든 율법을 알지 못했든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율법은 죽음을 당하는 원인이 죄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므로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을 알지 못하고 범죄한 것에 있는 것일 뿐 율법에서 범죄한 자에게 정한 죄의 심판인 죽음의 형벌을 적용받는다. 해서, “율법 없이 범죄한 자”와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모두 율법 테두리 안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런데 바울은 율법 없이 망함에 있는 이방인에게는 과연 율법이 없는지를 말해 준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이 적용되는 것은 유대인에게 율법이 있는 것처럼 이방인에게는 본성에 의한 양심이 율법의 역할을 하여 죄에 대한 인식 기능을 하므로 범죄에 대하여 가책을 받음에 있음이 그 증거가 된다.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함”에 있는 것은 그래서 이다. 이는 이방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함에 있는 죄에 대해서도 동일함을 나타낸다. 설사 무신론을 주장하며 하나님께 범죄함에 있는 악한 죄를 애써 부인할지라도 양심에 발휘되는 정죄에 있는 죄의 법의 기능은 그들의 시인 여부와 상관없이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이,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에 의해 공히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바울은 이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아 전한 복음을 따라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대로 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판단하시는 날에 있을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에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며, 그 자리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환난과 곤고, 하나님의 영생에 의한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갈라섬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3. 율법의 특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오용하여 율법의 정죄아래 있음(2:17-27)
2:17-27 /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유대인들이 율법 없이 망함에 있는 이방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은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범죄에 있기 있기 때문인데, 17-23절에서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말해 준다.
첫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임에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자기들에게만 주셨다며 율법을 소유했다는 사실에만 안주하고 정작 율법에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이 담긴 말씀에는 의지하지 않았다(17절).
둘째,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해 조상 때부터 계속하여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그 받은 내용을 가지고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배워 그 인정에 있는 특권에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지 않았다(18절).
셋째, 유대인들은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배웠기 때문에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4중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는 맹인의 인도자, 어둠에 있는 빛, 어리석은 자의 교사(훈도), 어린아이의 선생으로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으나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이방인에게 적대적이거나 그들의 특권을 강조하고 자랑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외식에 있을 뿐이어서(19-20절), 그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도 막는 악함에 있었다(마 23:13).
넷째, 그러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특혜를 오용함에 있었으니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가르치지 않았으며,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그 자신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도둑질에 있었으며(눅 20:47),8)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그 자신은 간음에 있었으며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신전 물건을 도둑질함9)에 있었다(21-22절).
그러므로 바울은 23-24절에서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라고 크게 질책하며, 이사야 52:5을 인용하여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를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예언을 응하는 것으로 있는 일임을 말한다. 이렇게 율법을 범함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율법을 범하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을 욕되게 히는 자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거룩함과 의로 예배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점에서 유대인들이 특별한 법을 범했다고 바울이 그들을 비난한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규칙을 따라서 그들의 생활을 규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분으로 선언함으로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존엄을 거의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하였음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엄을 아주 쉽게 경멸 하였다. 오늘날에도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교훈을 자기네들의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 방식에 의하여 짓밟으면서도 그의 교훈에 대하여 격렬하게 설득 작전을 펴는 사람들이 그의 복음을 범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있다.
바울은 이처럼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범함에 있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음에 있는 유대인을 향하여 25-26절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특권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 이스라엘 – 유대인 - 이 하나님의 선민 됨의 증표로 내세우는 할례를 들어 알려 줌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25절)는 문자적으로는 “왜냐하면 참으로 할례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율법을 행할 것이라면. 그러나 만일 네가 율법의 범법자라면 너의 할례가 무할례가 되어 왔다”를 의미한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그의 후손과 대대로 언약을 맺으시며 이를 표징으로 몸에 지니게 하시는 언약의 표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출생한 지 8일 되는 아이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부모는 아이가 부모를 통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름에 있는 언약의 자손임을 고백하는 신앙에 있게 하셨다(창 17:6-14). 그러나 할례에 두신 하나님의 뜻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민 됨의 증표로 내세우는 특권의 표시로 삼고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았다. 할례가 본래의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됨으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 신앙에 있지 않은 할례는 단지 육체에 흔적을 지닌 할례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의 성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따라서 무익하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할례를 행하여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렘 4:4)고 촉구하였다. 바울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다”(25a절)라고 하였다. 이는 율법이 의도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할례를 규정한 율법을 지키면 비로소 할례가 유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할례를 규정한 율법을 습관적으로 계속하여서 행하여 어기지 않더라도10) 할례의 율법이 의도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지 않다면 그 할례는 무익하니 이는 곧 무할례에 있는 이방인과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25b절)라고 하였다. 그러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일지라도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른다면 그는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같이 인정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주려고 계획하신 모든 권리와 기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따라서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26절)라고 하였다.
바울은 또한 27절에서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는 율법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범함에 있으면 오히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일지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킴에 있는 사람에게 판단과 정죄 받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율법과 할례라는 외적 특권이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고 범하게 되면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무할례자에게 판단과 정죄를 당하는 것이 될 것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은 율법을 범한 자로서 정죄에 이르게 될 것을,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는 순종한 이방인들은 주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할 것(계 22:5)이 암시되고 있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율법이나 할례가 그들의 구원에 전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고 있다. 그에 따라서 유대인들의 상당수는 예수께서 온 세상에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신 선물에서 제외되어 이방인들에게도 베푸신 영생을 받지 못함에 있게 된다.
4.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임(2:28-29)
2:28-29 /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해 할례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아무 것도 아니며, 다만 그 할례를 규정한 율법에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믿음에 있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얻게 되나 그렇지 않고 배척하며 부인에 있는 자는 유대인은 율법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여 율법의 정죄를 받아 망함에 있고 이방인은 율법 없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율법이 정죄하고 있는 죄값을 동일하게 적용받아 망함에 있다는 것을 다룸으로써, 이제 28-29절에서 결론을 맺는 것으로 참 유대인 – 참 이스라엘 – 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준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이는 유대인 조상에게서 태어났다든가 유대인의 전통인 육신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누구도 참 유대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참 유대인은 조상의 계보와 할례를 규정한 율법 조문에 의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표면적으로 할례를 받아 몸의 일부를 잘라 낸 사람을 선민으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합하여 그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선민으로 삼으신다. 그 사람이 참 유대인으로 칭찬 받음11) – 인정 됨 – 에 있으니 이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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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서 2:1에서 ‘남을 판단하는…판단하는…판단하는…’은 ‘네가 판단하는 (모든 사람아) …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 판단하는 네가’로 번역되는, ‘비난하다’, ‘판단하다’, ‘결점을 찾다’는 뜻하는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단순히 선과 악을 판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혹심하게 비난하고 심지어는 정죄하고 벌하는 행동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분사형이 사용됨으로써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찾아 이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병폐임을 잘 보여준다.
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3)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4)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많은 경우 ‘(~의 대가로) 지불하다’, ‘계산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성경에서는 빚의 변제나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5) 현대어성경. 이 슬픔과 고통은 9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환난과 곤고에 의한 것으로,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에서 이다(마 25:41; 계 20:14)
6)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는 표현은 개역한글에서는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첫째는’은 에 해당하는 ‘프로톤’(prw'ton)은 시간적 측면에서 ‘먼저’라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기획적 측면에서도 ‘먼저’라는 의미로,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고(행 1:8; 13:46),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게 하셨다(요 4:22; 롬 3:1, 2; 9:4, 5). 그에 따라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조차도 그의 전도 여행 초기에는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행 13:5, 14; 14:1; 18:4), 또한 바울이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도 유대인들이 계속적으로 복음을 배척했던 데서 비롯되었다(행 13:45; 18:6). 이처럼 복음과 구원의 우선권이 유대인에게 먼저 주어진 만큼 그것을 배척함으로써 받는 심판의 우선권 역시 유대인에게 주어졌다(롬 2:9). 이렇게 복음과 구원, 그리고 심판은 먼저는 유대인에게로부터 시작되는 순서에 있었으며 그리고 나서 헬라인, 곧 이방인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인의 우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음의 진행의 과정(경로)에 의한 순서일 뿐으로, 이를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심에 있는 차별 없으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신다.
7) 헨드릭슨(Hendriksen)은 “율법을 알지 못하고 범죄한 자는 비록 그들이 율법을 알지 못했을지라도 멸망할 것이다”라고 보았다.
8) “과부의 가산을 삼킴”에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남편이 죽으면서 과부의 재산을 법적으로 관리하는 대리인 자격을 서기관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서기관들이 가로챔에 있었던 것을 가리키는듯하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해서 ‘돈을 좋아 하는 자’(눅 16:14)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서기관들도 율법을 연구하며 이를 가르치는 선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율법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인 과부의 재산마저 탐내는 사악한자들이었다.
9) 유대인들이 성전세를 바치지 않거나 흠 있는 제물을 바치는 행위 등을 ‘신전 물건을 훔치는 행위’ 로 간주한 표현으로 보인다(약 4:13). 이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도둑질에 있는 것과 함께 십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을 범함에 있는 것인데, 바울이 이를 언급함에 있는 것은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돈을 신처럼 받들고 있는 우상숭배에 있다는 것을 의도한다.
10)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에서 ‘행하면’에 사용된 단어는 ‘성취하다’, ‘행하다’를 뜻하는 것의 현재 가정법이다. 이처럼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할례를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11) 29절에서의 ‘그 칭찬’은 원문이 주어는 유대인으로 ‘칭찬’에 사용되는 ‘칭찬’이란 뜻 외에도 ‘인정’, 승인‘의 뜻을 지니고 있다. 개역 및 개역개정 한글성경은 ’칭찬‘으로 번역하였으나 적절치 않으며, ’인정‘, ’승인‘의 뜻으로 번역함이 문맥의 의미에서 타당하다. 본 구절에서의 ’그 칭찬‘은 ’유대인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는 “그의(유대인의) 인정이 사람들로부터가 아닌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이다”라고 번역함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