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8장
세례(6:1-8:39)
1. 그리스도와의 연합(6:1-14)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바울은 5장에서 마지막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침에 있음을 말하였는데, 이제 6장에 들어서면서 그렇다면 어찌해야 되겠는지를 묻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저 죄에 있어야 하겠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의 지배를 받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말이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에 있다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 그분과 연합하여 한 몸의 관계에 있을 것을 말한다. 바울은 ‘세례’의 원리를 들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있는 것인지를 설명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이 베푸시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베푸는 세례를 받아 자신과 함께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을 때 이미 그들을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으며, 죄를 사랑하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과 함께 장사됨으로써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다시는 죄가 구속력(拘束力)을 행사하지 못하며, 따라서 죽음이 왕 노릇 하지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가 되었으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스런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생명이 새 생명으로 함께 하여 하나님에 대하여서 산 자로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몸을 죄에게 맡겨 죄의 속박을 받아 살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 - 의 - 의 종이며, 하나님의 종이 된 후에는 그 주인에게 마음이 있고 그분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하게 되고 받들어가게 된다.
2. 옛주인인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닌 새주인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6:15-7:25)
6: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7: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죄라는 옛주인에게 속한 종이었던 자가 이제는 의라는 새주인에게 속한 종의 대조를 통해서(6:15-23), 그리고 결혼의 비유(7:1-6)을 들어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여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법에 들어와 있으므로 의문의 법인 율법이나 관습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이 영의 새로운 법인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김에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여기에 있어서 율법 아래 있었을 때 죄가 지닌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죄인이 되게 함으로 파멸시킴을 설명하면서, 그 죄에 사로잡힌 사람의 육체의 욕망을 말한다. 그는 마음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나 정작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본다. 그런 자신은 참으로 비참한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노예 된 상태이다(7:7-23).
그런 자신을, 곧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나 육체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자신을 누가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바울은 묻는다. 그리고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은혜를 본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해방시켜 주신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7:24-25).
3.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의 성취(8:1-30)
3-1.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8:1-4)
1그런즉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문에서 이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어떤 형편에 놓여져 있는지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다시는 정죄 받는 일이 없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서만은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킬 육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3:20). 사람의 육체는 죄의 본성 때문에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거니와 또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연약성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며, 따라서 율법의 온전함에 결코 이를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한 계획을 정하시고 이를 실천하셨다. 자신의 아들을 사람의 몸으로 보내 우리의 죄를 없앨 희생제물로 삼음으로서 우리를 지배하는 죄의 심판을 그 육신에 행하여 선고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킴에 있게 하는 것이며, 이로써 육신의 죄에서 벗어남에 있게 하는 것이다.
3-2. 양자의 영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단번의 구속이 지닌 의미(8:5-17)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따라서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죄값인 죽음을 당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의 모든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한 자로 있게 하며 생명과 평안에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죄 때문에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으므로, 그래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용서하셨으므로 죄를 심판하여 정죄하고 죽음의 형벌에 두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구속의 피는 과거적 완료형으로 단번에 성취된 것으로써 미래적 진행형으로 나타나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든 죄에 그 효력을 영원히 미치는 것이다. 즉 영단번의 성격의 것이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평안에 있게 하실 것이다. 해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라고 말하며, 또한“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는 그 육체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죄에 그리스도의 피가 구속의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이다(8:1-17).
3-3. 구원의 첫 열매인 성령(8:18-30)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 이유로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몸의 구속, 곧 부활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첫 열매로 성령을 주셨다. 우리 안에 계신 그 성령께서 우리가 구할 기도에 있으신다.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는 성령의 구함을 알고 계신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구원의 (1) 예정 (2) 소명 (3) 칭의 (4) 영화의 서정(序程)에 있다. 이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에 신뢰를 갖게 하며 그 의존에 있게 한다.
3-4.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큰 확신의 믿음(8:31-39)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에 따라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말로 다할 수 없는 크신 은혜에 놀라움을 가지며, (1) 그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에 감히 대적할 세력이 없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주신 분으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 (3)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분이시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은 하늘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4)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으니, 환난1)이나 곤고2)나 박해3)나 기근4)이나 적신5)이나 위험6)이나 칼7)이나 그 무엇을 당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이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시 44:22)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에 있는 것에서 이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그 어떤 것을 당함에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그리스도께 가진 우리의 믿음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니 결코 우리의 믿음을 이길 수 없을 것이어서(마 16:18; 히 11:38),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마 20:28; 막 10:45; 요 13:1)를 통해 우리는 결국 큰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이다(마 24:13; 히 3:14).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하는데, 15절에서 해 주시고 있는 같은 이야기를 표현을 달리해서 말한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없고,8) 생명도 그렇게 할 수 없다.9)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곧 하늘에 있는 영적 세력자이든 또는 땅에 있는 권세자이든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또한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그렇게 못하며,10) 능력도 그렇게 못하고,11) 높음이나 깊음도 그렇게 못하니,12) 이들 모두가 합하여 떼를 지어 일시에 달려들어도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리 떼어놓을 수 없다는 큰 확신에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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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의 ‘환난’은 종종 포도를 짓밟아서 터뜨려 즙을 짜 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억압’ 이나 ‘압박’ 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는 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낱말이다.
2) ‘곤고’ 는 ‘좁은’ 을 뜻하는 단어와 ‘공간’ 을 뜻하는 단어가 합성된 낱말로 문자적 인 의미는 ‘좁은 공간’ 을 뜻한다. 이는 옥죄는 것과 같은 곤궁이나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가리킨다.
3) ‘핍박’은 ‘박해하다’, ‘몰아내다’, ‘추구하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는 ‘괴롭히다’ , ‘잔혹하게 다루다’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추적하다’ , ‘박해하다’ 라는 의미이다.
4) ‘기근’은 히브리어 ‘기아’ 를 뜻하기도 하지만 ‘지독한 굶주림’ 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어서 음식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식량 공급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당하게 되는 불안과 고통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5) ‘적신’은 단순한 ‘벌거벗음’의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환난과 고통으로 인해서 입을 것이 없는 상태, 곧 헐벗음을 가리킨다(고후 11:27).
6) ‘위험’은 신체적인 위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선원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는 것이나 행인이 강도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우를 가리킨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강도를 만나기도 했으며 풍랑을 겪기도 했다.
7) ‘칼’은 실제적인 칼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법적인 심판에 의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8) 그리스도인은 마 28:20에 의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삶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지속적으로 따르는 위험으로 ‘죽음의 해’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죽음에 매여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로 인한 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빌 1:20). 바클레이(W. Barclay)는 말하기를, “죽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신 곳에 더 가까이 하게 하는 발판이며, 그분의 존전으로 인도하는 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름에 있는 그리스도인 간의 관계에 전혀 위협적인 요소가 되지 않는다.
9) 바울이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열거함에서 “사망이나 생명이나…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하여 죽음과 함께 생명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생명’은 ‘삶’의 의미에서 쓰인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서 ‘삶의 애착’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서, 이 세상에서의 삶에 애착을 갖게 하는 시험(유혹)도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떼어 놓지 못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반즈(A. Barnes)도 같은 생각을 갖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서 생명이 언급됨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소망 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버린다는 조건으로 원수들이 생명을 보존시켜 주겠다는 제안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성도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다. 로마 황제들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며 우상에게 희생을 드린다는 조건으로 박해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한 일이 흔했는데, 바울은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생명을 언급한 것이다.”
10) 현대어성경은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라고 번역하였으며, Living Bible은 “오늘에 따르는 두려움 혹은 걱정들과 내일에 대한 염려들”(Our fears for today, our worries about tomorrow)이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현재 일’은 현재의 사건과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장래 일’은 미래의 사건과 상황을 지칭한다. 현재의 일이든 미래의 일이든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11) 여기서의 ‘능력’은 ‘굉장한 일’이나 ‘이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초자연적인 눙력(이적)이 일어나거나 자연적인 능력(재난)이 일어나는 것에 있는 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적인 현상 밖의 기이한 일을 겪고 또한 폭풍이나 지진이나 기근과 같은 천재지변의 상황을 겪는 것에서 당하는, 그 무엇으로 어떤 경우의 상황을 당하든 인간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꼼짝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당하는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사랑에 영향을 끼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헨드릭슨은 “신약성경에서 능력은 천사들의 무리에게 소속되는 것이었다”는 견해를 가졌다. 칼빈도 ‘능력’을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와 함께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이 신적 능력의 으뜸되는 도구들이기에 그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다. ‘천사들’에 이어 ‘권세자들’과 ‘능력’ 이란 말이 첨부된 것은 ‘천사들’이라는 단어가 너무 시원찮게 들리게 될 경우 더욱 강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천사들이나 아무 다른 높은 능력들이라도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는 번역이 더 좋을 듯 하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언급할 때에 말하는 방식이다” 라고 하였다.
12) ‘높음이나 깊음’은 물리적인 우주의 높음과 깊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보기도 하나, ‘높은 하늘도 깊은 바다도’ 또는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것에 의해서이거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것에 의해서이거나’ 또는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거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현대어성경)의 이해를 갖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