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
누가복음 1:34-38 / 34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사자인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란 주의 소식을 전해 준지 6개월이 되었을 때 그의 친족이며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다시 나타나서는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전하면서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란 소식과 함께 그녀에게서 수태하여 낳을 아들의 이름은 예수라고 불릴 것인데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이다.”라고 예수라고 불릴 아들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러한 주의 사자가 전해주는 말에 동정녀 마리아는“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정혼한 요셉과 동침한 일이 결코 없는 순결한 여자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마리아로서는 주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는 말인“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것이 선뜻 납득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주의 사자가 전하는 말에 의아해 하며“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이는 말이죠. 6개월 전에 사가랴가 자신의 아내 엘리사벳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란 주의 사자가 전하는 말을 듣고는“나에게 이런 말씀이 주어지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내가 늙고 아내도 이미 나이가 많은데 그러한 나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아브라함 때의 경우에서도 동일합니다(창 17:17-18, 18:12).
이 모든 경우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인간의 육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에서 이해를 하고 납득하며 수용하는 것에 있으려는 것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행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있게 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이루실 일을 해나가고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마리아가 동정녀, 그러니까 순결한 처녀의 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아들을 있게 하는 잉태를 시키겠다고 하시며, 동정녀 마리아를 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복종케 하십니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의 복종을 통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해나가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이 그녀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음에 있는 것에서 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은 그렇게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될 아이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알려주었습니다.“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란 소식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그 일을 해나가실 하나님에게 복종에 있게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될 아이는 거룩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은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아들의 잉태 소식을 알려주면서 마리아도 이미 알고 있을 이 일이 반드시 있게 되는 한 징조에 대하여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친족 엘리사벳이 늙어서 아들을 수태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주의 사자가 일러준 대로 주에 앞서 아들 요한을 잉태한 지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 엘리사벳의 잉태를 말하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한 이적으로 있은 엘리사벳의 요한 잉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수태가 마리아에게 있음을 증거하는 좋은 표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이 있게 하였습니다.“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그에 따라서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신 말씀 그대로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복종에 있음을 나타내는 믿음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이 고백이 있자 천사는 마리아 곁을 떠나갔으며, 그 즉시 천사가 전한 주의 말씀은 행해져 실천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며, 성령으로 탄생하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 탄생’은 결코 부인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누군가가 이 진리를 부인하고 부정하고자 할 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이 믿음에 있은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더욱 참 진리인 빛을 드러내었고 이 진리에 선 그리스도교를 더욱 공고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사자의 말에 동정녀 마리아가 있은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져온 믿음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져온 믿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 아들을 통해서 하실 일을 알고 그 일을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며, 그러한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 됨에 있으면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것에 믿음의 하나 됨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교회를 이용해서 마음껏 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자 하는 것을 구하는 것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것으로 믿음을 가져나간다면, 이 믿음은 이방인들에게서 보는 종교적인 믿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방인들에게서나 보는 이러한 믿음에 있은 사람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지요. 아닙니다.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믿음에 있은 사람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성경에서 보는 믿음에 있은 사람은 하나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보내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온 세상의 그리스도 - 구세주 - 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 예수께서 생명의 주가 되심을 증거하는 것에서 그들에게 있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것에서 이들이 무슨 재미있고 흥미롭게 살아온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는지요. 어떤 분은 성경을 사용하여서 신자들이 성공하는 비결을 가르치며 이대로만 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성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성경에서 보는 믿음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성공이란 것은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가령, 사도 바울이 제시한 사람은 무명한 사람,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 같고 징벌을 받는 사람 같은 모습에 있었습니다(고후 6:9). 사도들 자신은 어땠는지요. 바울은 물론이거니와 베드로, 야고보, 이들 모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로 인해 위험에 처하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머지 사도들은 이들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말이죠. 모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섬겨 따라는 일로 말미암아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에 있은 자들입니다. 종은 그 주인의 운명에 참여된 자이듯이, 사도는 그들이 섬기는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에 참여된 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운명에 있습니다.
무엇이 사도와 모든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운명에 묶어두고 있을까요? 그것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 나가실 일인 구원 사역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세상에서 사는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데서 그 가치를 찾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으나 그 모두를 잃고서도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며 그분을 증거함에 있는 것을 가장 고귀히 여깁니다. 바울은 오직 이 한가지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에 있으며, 하나의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