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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8장 1-8절 / 불의한 재판장 비유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9.05.18|조회수657 목록 댓글 0

불의한 재판장 비유

누가복음 181-8/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어느 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얕보는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남편이 먼저 죽어 홀로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옛날에는 남편이 없이 홀로 남겨진 여인인 과부는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여자가 일하며 살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그래도 갖추어져 있어서 낫습니다만, 옛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홀로 남겨진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추수가 끝난 후에 논에 남겨진 이삭을 줍는 일 정도 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살기가 쉽지가 않고 생활해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사는 한 과부에게 어느 날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 과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재판장을 찾아가서 자신이 당한 일을 호소하며 엄정한 법 집행을 하여서 가해자를 처벌하여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재판장은 이 과부가 탄원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하였습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만, 과부의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전혀 일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부는 재판장을 찾아가서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이야기 하며 원한을 풀어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했습니다. 이렇게 한 과부의 탄원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자 재판장은 몹시 귀찮아하며 마음에 견디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동안 오랫동안 과부의 탄원을 무시해 오고 있었던 재판장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재판장은나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도 두려울 것이 없지만 이 여자가 나를 몹시 성가시게 구는 것은 견딜 수가 없구나. 그러니 이 여자에게 원한이 맺히고 있는 사건을 해결해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를 찾아와 원한을 풀어달라고 내가 견딜 수 없도록 괴롭힐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한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비유를 든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비록 불의한 재판장이라도 한 과부가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원한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는 탄원을 들어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밤낮으로 간구하는 자신의 백성의 소리를 듣고 그 일을 처리해 주시지 않겠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구하는 것에 대해 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너희는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에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몇이나 있을 수 있을 것인지 볼 수 있겠느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6)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자신이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지위에 있지만, 원한이 있는 과부인 한 여자가 하는 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한 것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알게 해 주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그것은 말이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구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불의한 재판장 비유을 들어 말씀하신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라고 아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시는 것은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를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시다는 것이며, 그들이 기도에 있는 구함은 속히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그들이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예수님을 통해 그들이 구함에 있게 하신 그 기도에 있는 것이기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구하게 하신 그 기도를 반드시 이루실 것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구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속히 응답해 주심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할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하여 알게 해 주신 것에 믿음을 가지고서 자신들이 믿는 바의 바람에 있는 성취를 구함에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것에서 구함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자들이 구하는 그것을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720-37절에서 보게 되는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 시작되는지 - 를 물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여기 있다라거나 저기 있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는 다름 아닌 그들 안에 임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시인하여로 영접하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이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심에는 자신의 나라도 함께 가지고 오셔서 그들의 나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에 의해서 임하여 있으며, 예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하는 자들을 자신의 나라에 들여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 세상에 다시 강림하십니다. 그 날이 언제 일 것인지를 예수님은속히될 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본문 앞서에서의 내용에서 보는 바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알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이 염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들의 조상 다윗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 곧 다윗 왕국을 바라보며 그 기대에 있는 것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겪었던 바벨론 포로기 이 후 로마의 통치 하에 있는 예수님 당시까지도 아직 회복에 있지 않은 다윗 왕국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에서 이를 이루실 메시야를 고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봄에 있는 생각도 이러한 관념에서 아직 벗어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이 갖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아직 지극히 유대주의적 사고 속에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메시야 활동을 할 것이며, 그러한 메시야와 힘께 하며 그분을 위해 단 하루라도 함께 하며 그분을 위해 충성하며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영광에 있고자 하며, 이를 통해서 옛적 다윗 왕국의 영화를 되찾고 그보다 더욱 영화로운 나라를 이룰 것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얻고자 함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이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를 세우듯이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은 무서운 고통을 당하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세상은 노아 시대와 같을 것이어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단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모두 평안하다고 하는 중에 홍수에 멸망을 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는 이때는 롯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 일어날 것이어서 롯의 때에 사람들이 매일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농사 짓고 집을 지었으나 롯이 소돔을 떠나던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와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예수님이 다시 올 때에도 사람들은 그때처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농사 짓고 집을 짓고 하는 일에 분주하게 지내다가 멸망을 당하지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로 믿어 따르므로 그분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하는 일에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이를 때에는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날에는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짐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고 들에 있는 사람은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롯의 아내에게 있었던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롯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생각하라며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그 설명으로 두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그날 밤에는 두 사람이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있더라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이며, 두 여자가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있더라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대 사본에는 하나의 경우가 예로 더 들고 있습니다. 36절에는(없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고대 사본의 어떤 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본에는 이 구절의 내용이 있으니, 그것은 두 남자가 함께 밭에서 일을 하더라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예수께로부터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주님, 어디서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주검<시체>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기 마련이다.”예수님의 이 대답은 마태복음 2428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인 그리스도가 광야에 (숨어)계시다라고 하거나 그리스도가 골방에 (숨어)계시다라고 하여도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는 속담을 예로 드는 것에서 말씀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독수리는 짐승들이 죽어 썩은 고기를 먹이로 먹습니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짐승의 사체가 있는 곳에 모여듭니다. 그것처럼 거짓 그리스도를 전하여 미혹하는 일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삼킬 자를 찾아 모여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시면서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인 재림이 아무도 예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되어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여 있는 것에 있는 징조로 거짓 그리스도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의 출현이 언급되고 있고 여기에 미혹당하는 자들의 배교와 배도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있게 될 일로서 노아의 때와 같이, 그리고 롯의 때와 같이 갑작스럽게 인자의 날이 임하여 한 사람이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이 버림을 당할 것인데 이런 일이 어디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질문하는 것에 대하여 대답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에서 예수님은 번개가 동쪽에서 치면 서쪽에서 번쩍이는 것을 사람들이 보듯이 인자도 그렇게 오실 것에서 있을 것인데, 이를 사체가 있는 것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것을 들어서 인자가 오셔서 하시는 일인 한 사람을 데려가시나 한 사람은 버려두심이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가운데서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그때에 과연 누가 예수님에 의해서 데려감에 있는 믿음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것으로 하신 말씀이 불의한 재판장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를 말씀해 주시는데, 이것은 어려움을 당하고 곤란한 일을 겪으며 인생의 위기에 처해지는 어느 때에서도 어느 상황에 처해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응답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시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예수님이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인자가 오시는 날에 있을 일을 인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지금 어떤 자로 있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갖는 관심은 노아의 때와 같이, 그리고 롯의 때와 같이 무엇을 먹을 것이며 무엇을 마실 것이며 무엇을 입을 것인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사고 팔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함에 있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이 주로 섬기고 따름에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주가 당하신 고난, 곧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는 것에서 고난을 당함에 있을 것이지만, 주와 그분의 나라를 품은 마음에서 밤에도 낮에도 열망하는 것은 주와 영원히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전부입니다. 해서, 밤낮 항상 하나님 나라의 구함에 있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나라로 인해 낙망함에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구함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예기하지 못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임하는 것처럼 참으로 속히 응답해 주심에 계실 것이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나라에로 데려가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인 재림의 날에 이렇게 그들의 주에 의해서 데려감에 있을 믿음에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믿음에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몇이나 볼 수 있을 것인지는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외에는 아무에게서도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만 이 믿음에 있음을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에 의해서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로 데려감을 당함에 있는 믿음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의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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