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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8장 31-34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고난의 예고를 들은 제자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9.09.21|조회수1,175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고난의 예고를 들은 제자들

 

누가복음 1831-34/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1. 예수님의 수난 예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여러 차례 예루살렘을 들르셨었으나, 이제 마지막 방문이 되는 길에 오르시면서 그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말씀으로 가르쳐 오셨는데, 이제 본문에 이르셔서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당하실 고난, 곧 수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점으로 해서 예고되기 시작하는데, 모두 네 차례에 걸쳐서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받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고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알려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1) 그 첫 번째는 마태복음 16:21입니다. (2) 그리고 두 번째 예언은 마태복음 17:22-23(9:30-32; 9:43-45)이며, (3) 세 번째 예언은 마태복음 20:17-19(10:32-34; 18:31-34)이고, (4) 마지막인 네 번째 예언은 마태복음 26:1-2입니다. 이 네 번에 걸친 예수님의 수난, 곧 죽음과 부활의 예언은 각각 하시게 된 배경이 있으며, 그 내용은 좀 더 구체적이면서 강화됩니다.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 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17:22-23)

 

(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20:17-19)

 

(4)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26: 1-2)

 

이 네 번에 걸친 예수님의 수난 예고 중에서 본문에서 보게 되는 예고는 세 번째에 해당됩니다. 이 예고에서 누가는 (1) 마태복음에서와 마가복음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곧 누가복음에서만 보게 되는 이야기를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18:31-33)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인 예수님이 당하는 수난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그렇게 예수님에게 일어날 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으로 예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게 되는 것인데, 이는 가룟인 유다의 배반을 통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사로잡혀 넘겨져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함에 따라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 당한 후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예고하여 알렸습니다.

 

 

2.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의 성격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은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에서 알 수 있듯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는 것에서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보게 되는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18:31)는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이 구약 예언의 성취로 있는 것이라는 것으로, 이곳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에서 자주 보게 되는 표현입니다(1:22, 2:5, 8:17 ). 누가가 이 사실을 기록해서 알려 주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이 예수님을 반대하여 배척하는 무리들의 세력에 의해서,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여 예수님을 배반하는 가룟 유다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넘겨받아 사형 판결을 내리는 이방인에게서 당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손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신 구약성경의 예언에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수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대로 있게 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일어나는 일입니다. 있지 않을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거나, 지나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다.

 

 

3. 예수님의 제자들도 알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 예언

 

이렇게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할 것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들인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기록된’은기록하다’,‘쓰다’,‘새기다’,‘그리다를 의미하는 동사의  완료 분사로 과거에 기록된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때까지 결과물로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메시야께서 고난을 당하실 것과 그 고난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4.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메시야의 수난 예언이 지금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임을 제자들은 예루살렘이 눈 앞에, 코 앞에 다다르게 된 것에서 더욱 절실히 인식하고 선지자의 예언이응할 것’, 이루어질 것’,‘성취될 것을 받아들이며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함에 있어 나가는 준비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놔두고 예수님을 따름에서 그리스도와 고난도 함께 함에 있는 제자여야 했습니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짐에 다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겪게 되는 것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사로잡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 당한 후 죽임을 당하는 것이기에, 그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너도 예수와 함께 있던 그의 제자가 아니냐?”는 추궁에그렇다! 나도 너희가 박해하는 예수와 함께 하는 자이다!”라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과 동일한 고난을 당할 것에 자신들도 놓여 있게 될 것을 알고서 받아들임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자기의 모두를 버리는 것은 배와 그물과 가정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기 목숨까지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이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름에서 붙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을 하실 것이란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것이요, 그에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자신들 또한 부활할 것이란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또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도 성경대로 죽은 자가 되나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시고 또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시는 자가 되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자들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벌써 세 번째 듣는 예수님에게서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예고를 들으며 이제 곧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봄에서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은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당하실 고난을 말씀하심이 그들에게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것이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고 이번까지 세 번째이지만,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32에서는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히 묻기도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은 자기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는데, 그러함에 있는 자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영생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는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이루어짐으로써 되어진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실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하실 것에 믿음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신 대로 죽음을 당하실 것이지만 영생하시는 참 하나님으로서 죽음이 그를 매어두고 가둘 수 없기 때문이며(2:24; 4:15), 또한 예수님은 생명의 주로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5:24, 11:25). 하지만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며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슨 뜻으로 하신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아직 그 뜻을 깨달아 알게 되는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의 귀는 듣기에 막혀 있고 그들의 눈은 보기에 감겨져 있고 그들의 마음은 깨닫기에 둔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5. 성령강림을 통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깨닫고 따름에 있은 제자들

 

그러한 제자들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약속하신 성령의 강림이 있어 증거 할 말을 그들의 입에 의탁하시면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한 마음 그대로, 그리고 그 마음에 가진 생각 그대로 살았습니다. 전에는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라고 하며 죽는 데까지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으나,“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같이 있었지 않느냐?”는 한 마디에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며 손사레를 치고 예수님에게서 발을 빼며 부인하였었으나, 성령의 권능에 붙잡힘에 있으면서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그 결심을 실행함에 있었으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함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소명을 따랐으며,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그 또한 거꾸로 달려 죽임을 당함으로써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짐에 충성스러웠습니다.

 

 

6.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고난에 있는 그리스도인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시며 영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는데 자기 부인이 없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삶에 그치고 더 나아가지 않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충만하니, 그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요구하는 바인, 영생을 얻고자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희생한 헌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으로 그리스도께 진실한 믿음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감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 부인에 있게 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르게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인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 벌여질 판 앞에서 우리 자신은 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해 보입니다. 늘 연약한 믿음으로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그러한 그의 마음을 성령의 생각으로 가져나가게 하고 성령의 일을 도모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이 자신에게서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때 우리 몸과 마음 전체를 사로잡힘에 의해서 하게 됩니다. 가령, 사도 바울의 경우도 보십시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고백하고 있는 대로 그는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였으며, 이를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통해 해 나가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깨달았을 때,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가 세워나가시는 교회를 위해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에서 우리에게서는 자신은 없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만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그 깨달음의 때에 이름을 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생명을 함께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의 믿음으로 사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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