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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4장 22-30절/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받으시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5.10.04|조회수1,562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받으시다

 

누가복음 422-30/ 22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28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1. 예수께서 고향 땅 나사렛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신 것이 갖는 의미

본문에 앞서 14-21절에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돌아와서는 고향 나사렛에 머물러 있는 중에 전에 하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받아서 찾아 읽으며 인용한 곳은 이사야 611-2절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을 통해서 자신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고 출생될 때부터 시작해서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 때와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그리고 유대 땅 갈릴리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여러 동네를 다니시고 다시 갈릴리도 되돌아오는 이 모두에서 주의 영이 예수님에게 임하여 함께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하여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어 모든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시대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2. 나사렛 사람들의 완악함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 611-2절을 읽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에서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배척하는 완악함에 있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회당에 모인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읽으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주의 영이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들으면서도이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며 예수님을 요셉이 낳은 아들, 곧 사람의 아들인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는 것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아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이 나타났으며, 주의 사자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이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마리아와는 동침하지 않았기에(1:18-25) 마리아는 아직 사내를 알지 못하였을 때 예수님을 낳았으나, 나사렛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으며, 요셉이 낳은 아들인 사람이 낳은 아들로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사렛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의 영이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매우 놀라워할 뿐이지 예수님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보내신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나사렛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분명히 내게 말할 것이다.‘의원아, 너의 병이나 고치라라고 하는 속담을 내게 인증<적용>하여 우리가 들은 가버나움에서 행한 것과 같은 일 (2:1-12, 4:46-52, 11:23)을 너의 고향인 이곳 나사렛에서도 행하여 보라.”예수님은 다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해 두겠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 엘리야가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일을 생각하여 보라. 그는 당시 하늘이 36개월 동안 닫히어 비가 오지 않음으로 온 땅에 흉년이 들어 계속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가 있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나 엘리야가 보냄을 받은 것은 그들 중 어떤 누구에게가 아니라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 곧 이방인 과부에게 뿐 이었다. 또한 선지자 엘리야 때에 있은 일을 생각하여 보라. 그 때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나 엘리사는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깨끗함을 얻도록 하지 않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만 깨끗함을 얻도록 고쳐 주었다.”(4:16-27)

 

회당 안에 모여 있는 나사렛 사람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낭독하는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말씀에서 들음으로 매우 놀라지만, 그들은 이상히 여겨 저마다 예수님에 관하여 한마디씩 하였습니다.“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들이 놀라워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주의 영이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을 듣고서 자신들이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어 왔던 예수님이 과연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구원자의 일을 하는 그 그리스도이신가라는 강한 기대를 갖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하는 것에서 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렇게 서로 말들을 하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그와 같은 마음과 생각이 어떤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이어서 다시 나사렛에서 두 번째 배척을 받으실 때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다.”(13:57). 이는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선지자도 자기 고향과 집 안 사람들에게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 존경받는 일이 자기 고향과 자기 집에서는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고향과 집과 그 외의 사람들이 상태의 차이를 지적하고자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나사렛 사람이 왜 예수님의 자기 계시하시는 증거를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왜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향 사람이라고 하는 관념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는 생각하지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가 아니라, 고향 사람이요 집 안 사람에게서 보게 되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완악한 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입니다. 이는 이방인에게서 보는 믿음을 유대인에게서는 보지 못하는 것에서(8:10-12; 병행구절 눅 7:9) 선지자가 고향 사람과 자기 집 안 사람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화()요 불행(不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화요 불행에 있는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셨습니다.“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과 고향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워,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서 전에 다른 곳에서 행한 이적을 자기들에게도 행하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적을 나타내시는 것을 통해서 그가 성경에서 계시하여 주시고 있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 되심을 알고 그 믿음에 있는 데에는 관심도, 소망도 없이 단지 표적이 행해지는 놀라운 것을 보는 즐거움을 보는 것에 있고자 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확증하시기 위하여서 엘리야 때와 엘리사 때에 있은 한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일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1)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시돈 땅에 사렙다<사르밧>과부가 있었는데 엘리야가 그 과부를 도운 일입니다. 그 때는 36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있어 비가 내리지 않음으로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 때의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들 어느 누구에게도 보냄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인 사렙다 과부 한 사람에게만 보냄을 받았습니다(왕상 17:1-16) (2)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있은 일입니다. 엘리사는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고쳐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방인인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습니다. 그만이 깨끗함을 받았습니다(왕하5:1-14).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한 것인가를 그들에게 나타내 확증시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과부와 문둥병자를 든 것은 지금 회당 안에 모여 있는 나사렛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그들에게 보냄을 받지 않고 사렙다에 사는 여인으로서 과부로 있고, 수리아인으로서 문둥병자인 이들 이방인에게서 보는 한 사람에게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공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워 자랑할 뿐이지 정작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는 않는 외식에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에서 긍휼을 베풀지 않고 그들에게 베풀 긍휼히 여기심을 이방인에게 베풀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이는 장차 이스라엘과 함께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실 것을 - 접붙임의 원리에 의하여 - 정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것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실 것(10:-11:)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의도는 구약에서의 사렙다 과부와 수리아 장군 나아만에게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는 것에서 예수님이 찾으신 고향 땅, 집 안의 사람들조차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여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완악한 마음에 있는 나사렛 사람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들은 말입니다. 선지자 엘리야 때와 엘리사 때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하여 선지자의 도움이 매우 절실히 필요했습니다만 아합 왕이 선지자를 박해하는 그 박해에 이들도 함께 하여서 선지자를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였던 그 마음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던 참 선지자인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고 배척함으로써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참 선지자의 도움에 의해서 받을 하나님의 긍휼이 그들에게는 베풀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하는 이방인에게로 돌아가는 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께서 위로하여 주고자 하는 가난한 자, 곧 포로 된 자, 눈 먼 자, 억눌린 자의 주님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 신원(伸寃 ;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림)의 날이 되게 하실 것을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자 나사렛 사람들의 예수님 배척은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곧 행동화 되었습니다.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다 분이 가득하여서 일어나 예수님을 회당 밖으로 끌어내고는 동네 밖 끝 벼랑으로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심오한 하나님의 구원

 

사도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 예배<경배, 경외>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또한 그 약속을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대대로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으로 그에게 주신 약속을 잇는 자손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심을 따라 난 자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 이스라엘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난 자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를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하시고 또한 그들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자손이 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외에도 다른 아들들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이삭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이삭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자손인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야곱 외에 다른 아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한 사람인 야곱의 것이었습니다. 오직 야곱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손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한 아들은 라헬의 소생인 요셉입니다만 하나님의 약속은 레아의 소생인 유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유다에게는 엘, 오난,셀라 세 아들이 있었으나 이들 중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 유다의 세 아들 중 그 누구에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아들은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은 베레스와 세라 두 아들 중에서 베레스였습니다. 이 베레스에 의해서 있게 된 후손이 보아스에 의해서 오벳 - 이새 - 다윗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있는 약속의 씨(자손)는 다윗과 맺은 언약에 의한 약속의 씨(자손)으로 이어지는데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은 선택하심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됨의 부르심을 받음에 있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에게로 이어져, 오늘날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는 후손은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모든 자에게서 있게 됩니다. 그러한 것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구원이 약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믿음으로받아 그 약속을 잇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믿음으로약속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대로 이삭을 주시고 또한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게 야곱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대로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고 택한 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믿음으로약속의 자녀가 되는약속의 씨를 주셔서주님이야말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할 하나님의 자녀가 있게 하시는데, 이스라엘 사람이 비록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을지라도 그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데 그들에게서 주께로 돌아올 지극히 적은 수를 남겨 두심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남은 자를 온 세상에서 찾아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완악함에 있으므로 그들에게 베풀 긍휼을 이방인에게 베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을 통해서 또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여 이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의 구원의 수를 채워 충만케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배척하는 완악함에 있을 때에도 참아 오시면서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우리가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참으로 오래 참음에 있으시는 것에서 깊게 신뢰하고 계십니다. 이는 말이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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