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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7장 11-17절 / 예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시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5.12.06|조회수1,430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시다

 

누가복음 711-17/ 11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들어가는 말

 

과거 고대시대라고 불리는 오랜 옛날 시대에서 살았던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아픈 사람을 자연 치료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식물과 약초를 사용하여 치료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이 낫지 않으면 무속인<제사장/족장>이 역할을 대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속인을 찾아가 치료를 하고자 했습니다. 무속인은 신의 힘을 빌리는 주술을 통해서 치료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치료를 받는 주술을 통해서 낫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무속인을 신뢰하였으며, 신성시 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신과 가장 가까운, 신과 접한 유일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무속인은 신접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후에는 무속인의 역할과 위치가 많이 줄어들고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 자리를 의사, 약사가 대신했습니다. 사람들은 아프면 당연히 의사와 약사를 찾습니다. 의사와 약사는 그들을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적절한 처방과 약을 내줍니다. 그럼에도 병이 낫지 않으며 여전히 아픈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나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사와 약사에 의한 치료를 넘어서는 힘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시 무속인을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점쟁이를 찾는가 하면 무당을 불러들입니다. 무속인은 사회가 발달한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줄어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곳곳에서 존재하며 또한 성행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무속인과 의사 또는 약사를 찾듯이 우리네 주변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프면 찾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것도 약국과 병원을 다 다녀보고나서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찾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고 아픈 자를 낫게 한다고 알기 때문입니다. 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받기를 구합니다. 소위 신유의 능력을 지닌 용한 분으로부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받으면 낫겠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알고 있는지요. 예수님은 병을 치료하는 능력 정도가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리는 더욱 큰 능력을 소유한 분이라고 알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711-17절에서 예수님께서 나인성에서 살고 있는 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이적을 행하신 것을 봅니다. 과연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 이적의 사건이 오늘날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프고 병들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난관의 문제에 봉착하면 그 모두를 말끔히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등장하는 것이겠는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나인성에 사는 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을 그러한 분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그러한 신앙으로 알게 해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이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바르게 알도록 해야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인성에 들러 행하신 이적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나인이라는 성에 들어가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께서 있는 곳에는 언제나 늘 그랬듯이 많은 군중이 뒤따라 모여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마침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장례 치르기 위하여 상여를 매고 나오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장례 치르는 고인은 어떤 과부의 독자, 그러니까 외아들이었으며, 그의 동네에 사는 많은 조객들이 과부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있는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서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청년아/젊은이,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예수님의 이 말씀이 있자 많은 사람들의 두 눈을 휘둥그레 만들며 크게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죽은 청년이 일어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두 눈으로 본 군중은 이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일을 인하여 모두 두려움에 싸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큰/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나셨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셨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 말은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날 예수께서 하신 이적은 입소문을 타고 유대 곳곳은 물론 국경선을 넘어 그 주변 지역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예수께서 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나타내신 의미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께서 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이적을 행하신 것을 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있는 과부를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그 아들을 살려 어머니의 품에 돌려보내는 이적을 행하신 것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슬픔을 당하고 애통하는 자를 보셨을 때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고 가엾게 여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신 것이겠는지요. 그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다는 것을 말해주신 것인가요. 그래서 한 과부와 그의 외아들이 서로 의지하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자 하시는 것인가요.

 

예수님이 나인성에 들르셨을 때 외아들을 잃고 상여 뒤에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슬피 우는 과부를 보시고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것은 말이죠. 과부의 뒤를 따르는 모든 조객들도 지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죽은 아들을 차마 놓지 못하여 상여 뒤를 따르는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저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이제, 아무개의 어머니는 어쩌나? 남편도 없이 오직 하나 있는 아들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이제까지 살아왔는데, 그 아들마저 죽어 혼자가 되었으니 이제 저 사람 불쌍해서 어떻게 해?”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아들을 인하여 슬픔에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도 그러한 것에서일까요? 예수께서 이 불쌍히 여기심에 있으신 것은 조객으로 온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있은 것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사람들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상태로 인하여 죽은 아들을 되돌려 놓을 수 없는 슬픔에 처한 과부가 겪은 상처를 보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만, 예수님은 과부가 자신의 외아들이 죽은 상처를 안고 슬픔에만 있었지, 이 일이 있기 전에 있었던 로마 군대의 장교인 한 백부장에게서 보는주님,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7:8) 하는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함께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보지 못하는(7:9) 것에서 갖는 불쌍히 여김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보지 못하는 믿음을 그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보이시는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로마 군대의 장교인 한 백부장이 예수님에게서 보는 것은 이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이요, 자신과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 복종하여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였으며, 주님이 지니신 권능은 거의 죽게 된 자신의 하인을 낫게 하실 것이며, 이는 주님이 계신 곳에서 다만 말씀만 하시면 자신들은 그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여 말씀하신 그대로 되어질 것이란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계신 곳에서 거의 죽게 된 자신의 하인에게 다만나아라라고 말씀하시면 자신의 하인은 주님이 하신 말씀에 복종하여나아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나인성의 한 과부는 이 주님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했으며, 그래서 목자 없는 양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함께 하시며 목자의 보호와 살핌을 받음에 그와 그의 아들의 생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인성의 한 과부는 외아들이 죽은 슬픔에만 있었지 다만 말씀만 하시면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서 옮겨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는 산 자가 되게 하실 주님이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서 이 주님을 의존하는 믿음에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지 외아들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는 한 과부를 보시고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러한 여인을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은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셔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여 뒤를 따르며 슬퍼하고 있는 죽은 외아들의 어머니에게울지 말라.”라고 위로하시면서 상여 가까이에 다가가 관에 손을 대시고는청년아,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과부의 외아들이 예수님이 이 말씀에 복종하여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 신비한 광경을 보고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을 다시 그의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일은 상여의 행렬을 이루었던 많은 군중을 크게 놀라게 했으며, 모두 두려움에 싸여 하나님을 찬양하여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우리에게 큰 선지자가 나타나셨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며 예수님을 범상한 분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큰 선지자가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말이죠. 구약성경 신명기 1815-18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에서 약속하신 선지자 그분이 오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라기 45-6절에서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라고 예언하신 그 선지자 엘리야가 오신 것은 아닌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사람들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약속되어진 그 선지자가 메시야적인 - 메시야의 일을 하는 - 인물로서의 선지자가 아닌 모든 선지자와 그들이 하는 말에 있는 예언에서 보게 되는 참 선지자인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리스도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로 오셔서 그들에게 필요한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나인성에 오시기까지 행하셨던 많은 일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가르치시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지닌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에서 이적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나타내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바라봄에 있게 하며 하나님이 행하실 큰 일인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시는 능력을 나타내신 것에서 많은 사람이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똑똑히 본 것은 자신들 가운데에 큰 선지자가 나타나신 것이며, 자신들은 자신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 선지자가 하는 것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린 것은 자신이 행한 것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을 돌보시는 것으로 자신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 과부와 그의 외아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나인성에 사는 자신들에게 오신 것인지를 알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임재에서 보는 믿음에 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온 유대와 그 주변 지역으로 널리 퍼져나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온 세상의 것으로 베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이적을 목격하였으면서도, 또한 그 일로 예수님을 큰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으며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그들의 눈과 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였으며, 그들의 눈은 감겨져 있고 그들의 귀는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케 하는 것을 통하여 세상에 보내주실 때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것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1:23)가 될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그대로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선지자가 보여 오는 일을 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있는 최종적인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에 의해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나타내셨던 하나님의 크신 권능,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나타내신 크신 권능을 행사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인지요! 나인성에서 행하셨던 크신 권능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또한 자기 백성들을 찾아 함께 계시며 돌보시는 것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과연 온 세상에 이 일을 실천하시는 것에서 예수의 영이시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한 과부의 슬픔이 된 외아들의 죽음을 가져온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가져온 죽음으로부터 나와 참 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잃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돌보십니다. 이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눈에서 그들의 고여 있는 눈물을 씻기실 것이며 애통해 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는구원의 위로가 되실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에 있게 하시며 위로에 있게 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 믿음에 있는 바를 그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반드시 세상에 다시 오시는 재림에 있으셔서 우리를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힘입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의 크신 권능에 있어 하나님의 돌봄에 있어 안전히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내서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마음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으며, 힘껏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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