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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9장 10-17절 /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시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6.06.05|조회수1,265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시다

 

누가복음 910-17/ 10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참조. 6:1-59)

 

 

본문 첫 절에서 사도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각 고을로 보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가 지닌 능력을 나타내게 하신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낱낱이 보아 왔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가르치시는 것도,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인 하나님 나라가 지닌 능력을 나타내시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 모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 여러 동네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자신들이 직접 하였으며, 그때마다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이 지닌 권능을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이적을 나타내는 것에서 행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발휘되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제자들에게도 동일하며 동등한 권세로 나타납니다. 이는 말이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이니까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소유한 자라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을 그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참조. 9:40).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였던 것은 주와 그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알려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마음이 상한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일으켜 주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옥문을 열어 감옥에서 나가게 하여 그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다 풀어 줌으로 슬피 우는 모든 사람의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을 받아주는 시대를 시작할 것(4:18)에서 주이신 예수께서 그동안 그들을 억압해 왔던 사단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것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행하는 일을 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그 일에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1) 그러기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있게 되는 사단을 쫓아내며 죄의 권세에서 풀려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이 돌아와 자신들에게 있었던 일을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91절에서는 이들을열 두 제자라고 불렀는데, 이 제자들을 그들이 돌아온 시점에서는사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 각 동네로 보냄을 받은 사도들이 돌아왔다는 것으로사도란 말을 사용하는 것에는 관련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란 말은 보내다’,‘파송(파견)하다는  뜻과  어원이 같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지시 받은 사명을 위임 받아 보냄을 받아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할 자입니다. 열 두 제자는 그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임무를 받아서 보냄을 받았고, 또한 그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옴으로써 맡은 바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전하다라는 뜻입니다. 보냄을 받았던 사도들이 자신들이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자세하게 말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있은 일인 사단과 죄의 권세가 주 예수님의 권세에 굴복해 나간 것을 보고한 것입니다.

 

열 두 사도들에게서 보고를 받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자리를 떠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벳새다라는 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벳새다는 가버나움으로부터 약 6.4km 되는 거리입니다. 요한복음 61절에서는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라고도 알려져 있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셨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의 갈릴리 바다라고도 불리는 디베랴 바다는 사실 바다가 아니라 아주 큰 호수입니다. 호수이긴 하지만 그 크기가 바다와 같이 크고 넓다 보니까 사람들은 바다처럼 여겼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디베랴 바다를 건너 왜 벳새다라고 하는 마을에 오셨는가 하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벳새다로 오시자, 그 사실을 군중들도 알고는 그들도 디베랴 바다를 건너 예수께서 계신 곳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께서 따라온 무리를영접하였다는 것은 기꺼이 맞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처럼영접하사를 사용하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디베랴 바다를 건너 벳새다로 오신 것은 자신을 따른 많은 사람들로 번거롭고 번잡하여 귀찮으므로 그들에게서 떠나 있고자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처럼 하신 것은 그들에게서 떠나 있는 예수님을 찾아 계속해서 뒤따라오게 하실 의도에서 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온 무리들을 기쁨으로 맞아주셨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병든 사람들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이적 행하심은 여기에서만 아니라, 유대와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며 가버나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해 오신 일입니다. 그런데 벳새다 이곳에서는 여러 동네에서 온 수많은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데 온 신경과 시선이 예수님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러한 그들의 귀와 눈은 모두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빠짐없이 듣고 보았습니다. 여기에 사람들 중 그 누구의 작업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그 누구가 치료하며 낫게 하는 일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있은 것을 그들은 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심은 날이 저물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를 건너 벳새다 동네에까지 오신 의도가 무엇인지. 왜 여기에로 수많은 군중이 따라오게 하셨는지의 이유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것이 오병이어로 말해지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셔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표적으로 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표적을 보이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표적은 유월절과 관련을 갖고서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를 건너 벳새다 동네에 오신 시점을 요한복음 64절에서는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절기의 하나이며, 가장 성대하게 지키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는 시점에서 맞이하게 되는 유월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유월절입니다. 요한복음 213절과 51절에 이어 세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것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종 되어 있던 시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할 때 애굽에 속한 것이면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릴 것 없이 처음 태어난 맏아들이나 맏배는 모두 죽이는 재앙을 내리는 것이며, 또한 애굽에 있는 신이라는 신은 모두 심판하여 벌을 내리는 것으로 있는 것이었습니다(12:12). 유월절 이때에 있는 이스라엘 집에서는 유월절 양으로 불릴 어린 양을 잡아 그 양의 피로 그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이 피 뿌림을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진 양의 고기로 그 날 밤에 구워 식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월절 식사, 곧 유월절 만찬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집은 유월절 양이 희생되어 그의 피가 이스라엘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에 든든히 있음으로 애굽에 내려진 장자재앙에 있은 죽음의 재앙이 이스라엘에게는 침범해 들어오지를 못하고 넘어감에 있습니다(12:13). 유월절 식사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에 그렇게 죽음의 재앙이 결코 해할 수 없게 하신 것으로 있는 피에 있는 생명의 제공을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진 양을 불에 구워서 먹음으로 하게 됩니다. 이 식사는 누룩 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에서 하게 됩니다(12:8). 2)

 

예수님은 이러한 유월절기를 맞음에 있게 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벳새다의 넓은 빈 들로 오게 하여서 그들의 조상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겪은 만나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연계하여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생명을 주는 유월절 양으로 오신 자신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표적을 보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장정만 해도 그 수가 오천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을 먹이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표적을 보이신 오병이어의 이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벳새다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병든 자들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열 두 사도가 예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걱정되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이제 날이 저물어 저녁때가 다 돼 갑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잠잘 곳과 먹을 것이 필요한데, 여기는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외진 들판이니 이제 그만 사람들을 마을로 내려 보내서 이곳저곳 두루 다니며 저들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집을 찾게 해야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여 참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한 먹을 것을 주어야 할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장정만 그 수를 헤아려도 오천 명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광야로 말해질 수 있는 빈 들인데 이러한 곳에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요. 예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것 인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5절에서는 내용의 전개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가 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에게로 모여든 무리들을 바라보시며 빌립에게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하셨으며,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곳은 들판이라 무리들을 먹일 떡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날이 저물고 저녁때가 되니 잠잘 곳도 필요하므로 동네에로 보내 그들이 잠잘 수 있는 곳과 먹을 것을 구하게 해야겠다고 하므로 예수님은그럴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신 것이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작정하고 계셨다는 것이며, 빌립에게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것에 그가 가진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아시고 그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지시가 있기까지 빌립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은 그 모든 일이 예수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권능이 있으며 그 권능은 병든 자들을 고칩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두려워하여 크게 떨고 있자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자신들을 통하여 무리들에게 먹을 것이 주어지는 것을 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게 될 것이다라고 한 그대로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의존하는 믿음에 있으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권세 있는 크신 능력은 또한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것에서 그 능력을 나타내실 것에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들을 먹이는 크신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보다 더 큰 일을 하실 것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사람을 살리는 떡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예수께서 의도하신 시험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통상 예수께서 제자 시험하시는 것을 시험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시험에 쓰이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유혹’(temptation)이란 것에서 갖는 시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사단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이 세상의 전부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을 좇아 살게 사단은 시험(유혹)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시험’(test) 하는 것에서 하는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과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여 그 여부를 알고자 하여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속마음을 끄집어내게 하여 하나님께서 알기 위하여 하는 시험이라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 중에서 예수께서 제자들(빌립)의 믿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를 알고자 하여서 한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동안 얼마나 따랐는데, 이제 그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수님이 알려고 시험을 하셨다는 것이며, 그 시험을 통해서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믿음에 있었다는 것이 비로소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의 시험은 그러한 것에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이적을 행하시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주십니다.“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6:5-6). 여기서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자는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실 일, 곧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이미 작정하고 계셨기에 친히 그 하실 일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미 예수께서 작정하신데 따라 예수님에 의해서 행해져 일어날 계획되고 준비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자는 그동안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온 제자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께서 의도하신 믿음에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시험을 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예수님은 빌립에게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에서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사랑하는 아들인 독자 이삭을 모리아에 있는 한 산에로 데리고 가 그곳에서 제물로 바칠 것을 지시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가 있자 조금도 망설임의 주저함이 없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섰으며. 삼일 길을 걸어서야 아브라함의 눈에 저 멀리 있는 산이 들어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동행한 종들에게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며 아들 이삭과 함께 가서 예배하고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이삭만을 데리고 그 산에 가 오릅니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는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올라갑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동행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칩니다. 아브라함의 손에 든 칼이 아들 이삭을 향하여 내리치는 찰나에 하나님의 사자가 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며 그의 손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이 말씀이 얼마나 많이 오해되고 있으며, 곡해되어 가르쳐지고 있는지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을 통해서 이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하나님이 아셨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있기까지에는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 왔는지,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확인하고 싶어 하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기는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알아보고자 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하는 시험을 하셨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하는 지시를 내리시기까지에 있어온 그의 믿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며 그와 언약을 맺어 여기에 그의 믿음이 있게 하시면서 그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시고 의문을 가지시며 확인해 보고자 하여 아브라함의 속내가 어떤지를 떠보는 시험을 하신 것이겠는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셨다는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온 자라고 하는 사실을 오히려 드러내십니다. 그러면서 말이죠.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를 알게 해 주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한 것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6-:18)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굳게 있는 믿음에 있어온 아브라함에게 이 시점에 이르러서 이제 그에게 장차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더욱 복을 주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 그들의 진행을 가로막는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차지할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세상의 뭇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받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요,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름에 있는 믿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시험의 성격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에 있는 믿음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것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신 것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셨다는 것은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지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빌립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며, 이를 통해서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곧 믿음이 좋은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그래서 믿음이 있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믿음이 없는 것인지 하는 따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지시에 빌립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곧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은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하는 빌립의 대답을 이끌어 내시며, 그리고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쭙기를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함에 있게 하십니다. 빌립과 안드레의 이야기에서 보게 되는 노동자가 200일은 일해야 손에 쥐게 되는 큰 돈인 이백 데나리온은 있어야만 먹일 수 있고,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지나지 않은 것 작은 음식 가지고서는 엄두 낼 수 없는 것 가지고서 말이죠. 예수님은 온 유대와 갈릴리를 다니시며 전파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를 알게 하여 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가 먹는 음식의 작은 분량인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도 남게 하여 열 두 광주리에 채우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을 그들에게 표적으로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써 그들의 눈으로 보는 것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능력이 과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날마다 주시는 만나를 통해서 겪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신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받들어 따름에 있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서 행하신 이적인 것을 알게 하시는 깨달음에 있게 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622-59절에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그 이틑날에 있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벳새다를 떠나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와 계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없어진 사실을 안 무리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어떻게든 모시고 가서 왕으로 세우고서는 더 많은 표적을 행하실 것을 요구하여 조상들이 광야에 있던 때처럼 날마다 필요한 음식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바라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너희에게 내려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준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이니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그런 떡이 아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떡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는 내 살이다. 누구든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 속에 생명이 없다. 그러나 너희에게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너희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능력으로 내가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내 능력으로 살 것이요,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마지막 날에 아들인 내가 그들을 살리는 일, 이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일이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이처럼 생명의 떡, 생명의 음료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지만, 누가 이 가르침을 따름에 있는지요. 예수께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으나, 예수님은내가 전에도 말한 대로 너희가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반드시 내게 올 것이고 나는 단 한 사람도 그들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이끄심에 있은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또한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세워져 나간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참된 떡을 먹음에 있고 참된 음료를 마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유월절 양의 희생으로 드렸으며, 자신의 피로 죄 사함을 얻는 구원의 언약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몸으로 참된 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림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는 또한 그분의 피의 구속에 있는 은혜에 의하여서 이 생명이 침해 받지 않고 보호되고 있으며 보존되어 갑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께 더욱 굳게 믿음을 뿌리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는 것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교회는 설교하여 전하게 하십니다. 이 가르침에서 주님의 권면을 들으며 주께서 아버지의 능력으로 사신 것 같이 또한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면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인 그리스도가 참된 생명에 있는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을 열망하며 그 기다림에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눈이 바라보는 하늘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높디 높은 그 하늘 너머 보이지 않는 참으로 높은 곳에 계신 주께서 기다림에 있는 우리에게로 오실 것이니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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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과 바벨론 포로 생활에 있은 이스라엘이 배경적 상황 설명이 되고 있다.


 2)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예표하고 있는 바인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되는 제물의 마지막이 되시는 것에서 자신의 몸을 친히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제물로 바치셨다. 이 마지막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 전에는 예수께서 아직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림에 있지 않은 까닭에 유월절을 통해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에 의한 피에 의해서 먹게 되는 떡을 제공하시는 것에서 사람에게 영생하는 참된 생명이 되는 떡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실 때는 떡과 함께 마시는 음료(포두주)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떡을 떼어 주는 것이라며 이것을 먹을 때마다 그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생각할 것에서 나를 기념하라라고 하셨으며,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몸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있는 피 뿌림이 그들을 덮고 있는 까닭에 그들의 죄를 사하심으로 죽음이 침입할 수 없는 생명을 얻은 구원에 있게 하시는 새언약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리셨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워진 교회는 떡을 먹고 음료를 마실 때마다 교회를 위하여 주신 예수님의 몸이 있었고 또한 그 교회를 죄 사함을 얻게 하신 예수님의 피의 구속에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음으로 다시는 사망의 해를 입지 않고 생명의 활동에 있음을 인식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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