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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요한복음 6장 60-71절 /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합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6.06.19|조회수856 목록 댓글 0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합니다

 

요한복음 660-71/ 60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앞서 요한복음 622-59절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것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여 예수님이 의도하신 가르침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에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께 구할 것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닌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주실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아들에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다. (2) 이 양식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에게 구하듯이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것으로, 이 양식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3) 예수님이 그 생명의 떡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로 보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에게 나올 수 없으나 누구든지 예수님에게로 나오는 자를 예수님은 결코 외면하여 내쫓지 않는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것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자신에게 나오는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 (4) 예수님에게 나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다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양식을 먹게 하시기 때문인데, 이 양식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예수께서 주시는 예수님 자신의 살이다. (5) 예수께서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주시고 자신의 피를 생명의 음료로 주시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구속 사역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으로, 예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생명의 양식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그 사람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살과 피로 세상에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게 하시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뜻 그대로 사람들을 예수께로 나오게 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예수께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안에 있으며 아버지는 그의 아들 안에 있어 예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께로 나오게 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은 또한 그들 안에 있어 그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게 해 주실 것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니 예수님의 살과 피에 의하여 제공되어지는 생명을 얻는 자는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여 이를 표적으로 주시고 이것에 의해서 참된 생명인 영생이 주 예수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자 제자 중 여럿이 서로 말하여 수군거리기를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참으로 어려워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누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기나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말이 제자들의 마음에 걸림이 되느냐면서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마음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이말 저말로 서로 수군거리는 자들을제자들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데,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를 지칭하는 것에서가 아닌 66절에서 말해 주시고 있는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물러가고라고 하신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 많은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의 곁을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에 있는 사람들인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던 군중들입니다. 이들을 제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반적인 표현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음에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사도로 임명하신 열 두 제자의 개념에서는 아닙니다.1)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제자들로 말해지고 있는 이들과는 달리너희도 가려느냐(떠나려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단호하게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그동안 따름에 있었던 주이신 예수께 대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께 남아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 두 제자 모두는 아니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성취를 위해 마귀에게 쓰임을 받는 자로 예수님을 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예수님의 곁을 떠나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음모하는 자리에 가담하여 예수님을 단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돈에 불과한 은 삼십(30)에 팔아넘깁니다.2)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는 말씀을 인해서 이들이 서로 수군거리자 자신이 하는 말이 마음에 걸림이 되느냐면서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육이란 말에 사용된 단어는 기본적인 의미는육체’,‘육신’, ’,‘이며,‘(동물의) 고기를 뜻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말이죠.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육에서 나오는 생각, 곧 육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있는 사람입니다(8:6; 5:17).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임금 삼아서 곡식과 고기의 양식을 해결하려는 육적인 관점에 있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볼지라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한에는, 곧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람의 아들인 육으로 보는 한에는 그 육인 사람(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런 뜻에서육은 무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는 것에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예수께서 이처럼 생명의 떡이신 것은 단지 육으로서, 곧 동정녀 마리아에 의한 출생(성육신)에 따른 요셉의 아들로서의 육신을 입고 선지자의 일을 하는 자로만 있는 것에서가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서의 죽임 당함과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에 의한 구속 사역이 있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일을 하실 것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말미암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될 것에서 입니다(53-57).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온 세상에 생명의 주가 되시기 위하여 승천하여 하늘의 영광에 계시며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로 부르셔서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사람의 참된 생명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 까닭에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영적인 것이요 생명에 관한 것, 그러니까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영생 얻는 진리를 말씀해 주시지만 이것을 누가 알아듣는지요! 예수님은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영이 하는 일인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가르침을 받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믿음에 있지 못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떠납니다. 그리고 그 떠나는 무리들 중에는 열 두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도 들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비록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수행을 위해 사도로 쓰임을 받는 열 두 제자의 수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으며, 그런 그는 영적인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돈의 냄새를 맡고 돈 맛을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며 돈에 욕심을 갖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에서의믿지 않는은 현재 시제가 사용되어 동작의 계속을 나타내므로 본문에서의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들은 말입니다.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이 권위 있음을 느끼며 예수께서 행하시는 이적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영적인 생명에 대해서는 귀가 막혀 있고 눈은 감겨 있으며 마음은 완악하여 깨닫기에 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육에 관한 일이며, 이 세상에 속한 것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서 하시는 일인 예수님에게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들의 귀로는 들음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그들의 눈으로는 봄이 없으며 그 모두를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의한 감동이 그들의 마음에는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은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때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군중들은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의 곁을 떠나 마침내는 아무도 남지 않더니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 것을 아는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일을 통하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는 믿음에 더욱 힘을 받아 그들의 마음은 한결 든든히 다져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주시는 가르침은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신데, 이것이 어떻게 주어질 것인지를 십자가에서 행하실 구속과 마지막 날에 행하실 부활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영(성령)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게 하는 일(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3) 이렇게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생명의 떡이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기에 예수께서 이제 곧 겪으실 일인 다가올 십자가의 구속이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계신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행하실 부활과의 연계에 있는 종말적 관점에 있으며, 또한 성령의 강림에 의하여 있게 되는 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가게 하심으로 이 안에 불러들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게 하는 일이 온 세상에 있어가는 것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연계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실현될 현재적 관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생명을 주어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영이라는 결말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알지 않고 이스라엘이 따랐던 지도자 모세와 같은 사람으로 알고서 임금 삼아 광야에서 행하였던 표적을 행하여 주기를 바란다면,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예수님이 모세처럼 자신들이 먹어야 할 양식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면서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역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예수님은 참으로 무익합니다. 그들이 먹고자 하는 양식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데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는지요. 매일 먹는 떡에서 양식을 구하는 것이든, 영생하는 생명을 주는 떡에서 양식을 구하는 것이든, 그 모두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힘으로 하는 예수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먹는 떡도 영생하는 생명을 주는 떡도 하늘에서 내려주셔서 먹게 할 때 먹을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시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데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는 것을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것에서 보게 되는 예수께 모여든 군중들의 현상은 때로는 있는 옷 그대로, 때로는 옷을 바꿔 입고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옷만 다른 모양으로 바꿔진 것이지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란 본래는 아무런 달라짐도 없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말이죠. 사람의 모양만 아무런 달라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본성도 전혀 달라짐이 없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에도, 영적인 생명을 대하는 것에도 아무런 달라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이 마음에 갖는 생각은 예수님이 보이시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이 마음에 갖는 생각은 예수님 당시 그때에도 오늘날의 이때에도 똑같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영적인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데,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갖는 생각은 (1)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로 여겨 예수님을 따르고 붙들면 자신들이 원하며 구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가난으로 몸도 마음도 고생이 심한 사람들, 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자신들이 겪는 고생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권세와 명예와 부를 소유했어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더 소유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방편으로 예수님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그럼으로써 성공한 인생을 살고자 예수님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자신을 위해서 세상에 속한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께서 그 모두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전파하여 예수님을 그러한 분으로 알고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에서 해결의 길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2) 이는 여러 시대에서 그 형태를 달리하기도 합니다. 예전과 같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삶의 질을 누리며 경제적 안정에 있으면서 또한 수명도 예전에 비해 장수하는 때에 놓여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또는 그러지는 못해도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만족하며 또는 이를 억누르며 절제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하여도 행복해 하며 병중에서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고 감당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친구 삼아 동행하려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권세와 명예와 부에 미련을 갖지 않고 세상에 유익을 주며 보람된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해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상과 등지고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형편을 즐기며 살며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며, 이 믿음으로 사니까 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평안에 있는 것이라며 말입니다. (3) 이 중 어느 것으로 사는 삶이든지 간에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살리는 영이 되시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고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육에서는 육으로 사는 생각만 나오며, 예수님도 육의 사람으로 대할 뿐입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께로 보냄을 받은 자는 영에 속한 사람이 갖는 영의 생각을 좇아 살기에 예수님을 육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의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며 마음에 깨달아 알아가는 것은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시기에 믿음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열려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해 마음을 갖고 그분이 주시는 말씀을 알아 가며 깨달음을 갖는 것이 마음이 흐트러지고 또한 무뎌지면 이는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를 알려주는 빨간불의 경종이 울려지고 있는 것임을 알고 정신을 차려 깨어 있고자 해야 합니다. 마음의 끈을 바짝 조이며 자세를 고쳐 잡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신 사실을 알게 해 주시는 말씀에로 우리 귀와 눈을 집중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중에도 틈틈이 그러한 시간을 가져나가고자 해야 하며, 그 흐름을 놓치고 있는 때에도 순간 순간 의식을 가질 때마다 그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그는 무릇 주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며 지켜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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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역개정성경인 60절에서의 제자 중 여럿이를 다른 한글번역 성경들은 제자들 가운데서 여럿이’(새번역),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공동번역), ‘여러 제자들이’(현대인의성경), ‘제자들조차도’(현대어성경) 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주의 제자 중 많은 자들이’(한글킹제임스), ‘예수의 제자들 중 여럿이’(바른성경, 우리말성경),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여러 사람이’(쉬운성경) 라고 번역하여 이 제자들이 주 예수의 제자들인 것으로 번역하는 입장을 취한 성경들도 있어 마치 이 구절에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인 것인 양 오해할 수 있는 혼란을 갖게 한다. 그러나 주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수님의 곁을 떠나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이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 남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는 구별되는 다른 제자들 무리이다.



2) 26:1-5, 14-16. 병행구절. 14:1-2, 10-11; 22:1-2, 22:3-6; 11:45-53. 참조. 1:16-20.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기는 댓가로 받은 돈은 은 삼십(30)’이었다. 예수께서 이처럼 제자에게 배반당하여 은 삽십에 팔아 넘겨지는 것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키시는 것이었다(11:12). 예수님의 몸값으로 계산된 은 삼십은 은화 30세겔(Shekel)을 뜻하는 것으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하는 금액이다(21:32) 



3) 오병이어의 이적에 이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주께 가진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시며 그 신앙고백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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