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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0장 25-29절 / 영생 얻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6.10.21|조회수1,250 목록 댓글 0

영생 얻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누가복음 1025-29/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1.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함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제 3년째의 초막절 이후 수전절 사이인 어느 날 예수께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는데 한 율법사(율법학자/서기관)가 일어나 예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이 질문은 자기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알고자 하여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서 였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가 한 질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대답하는지 듣고 고소할 건을 얻고자 하였습니다(참조. 8:6). 그러니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아 공회에 고발하여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참조. 11:53-54).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에 벗어난 자, 곧 유대주의 신앙을 혼잡케 하고, 위배되는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는 거짓된 선생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율법사는 예수님이 더 이상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치지 못하게 막고 백성들에게는 예수님의 가르치는 교훈이 유대인에게 유대주의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는 감언이설의 이단적 사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예수를 좇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는 유대주의적 열심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교에서 벗어난 소리를 하면 그것을 빌미로 체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에 충성하는 것이었으며, 율법의 육체적 열심을 따르는 율법의 의였습니다.

 

2. 율법사의 질문 의도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서 한 질문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는 말이었습니다. 자기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이 시험하는 말은 이 일 후 - 5개월이 지남 - 에도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한 율법사가 본문에서 한 말은 생략하고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12:28),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12:35)라고 질문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나 그 모두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의도는 똑같습니다. 각기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질문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에서 있는  질문이지만 예수님의 베뢰아 전도 때에 있은 어떤 부자 청년 관원의 이야기(19:16-30, 10:17-31, 18:18-20)에서도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와 같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은 영생, 또는 하나님의 나라 문제를 율법 의 온전한차원에서 보았습니다. 유대인이 알고 있는 영생 얻는 방법은 율법이 요구하고 있는 바로서 가장 큰 정신대강령'사랑'이었습니다. 신명기 64-5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모든 율법 중에 첫 째 되는 것이었으며 레위기 1918절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는 계명율법또한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었습니다(22:39) 유대인은 이 율법 정신을 충실히 따르며 이행하는 것으로서 모든 율법의 계명 준수를 엄격히, 그리고 철저히 정확하게 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사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한 것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은 율법을 이해하고 있는 생각대로 임의적으로 율법을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신앙에는 영생,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서는 율법에서 나타내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정신은 없고 단지 율법을 준수하는 그 행위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기들에게 주어진 의무요 책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자기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의가 된다고 알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생각에 의한 유대인의 종교 생활은 장로들의 유전으로 정당시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의 유전을 좇는 신앙화 되어 외식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율법사는 분명 율법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그리고 그와 같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신앙에 남은 것은 단지 율법의 조항 하나하나를 지키는 것에서 하나님 앞에 가질 믿음 생활을 다하고 있다고 여겼으며, 그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의로 여겨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으로 영생을 얻을 것으로 알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은 짐짓 자기가 의롭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려고 예수님을 떠보려고 한 말이었습니다.

 

3. 율법의 본의를 좇게 하심

 

율법사의 시험하는 질문에 예수님은 바로 대답하여 주지를 않고 그 율법사에게 되물었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율법사가 율법을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율법 지식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보다는 그가 시험하는 말을 하고 있는 의도와 계획을 아시고서는 율법의 본의를 그 자신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좇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물으심으로써 율법사에게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전해 주신 율법이 말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대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율법사는 자기가 레위기 1918절과 신명기 64-58절에서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가르쳐주시고 있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와 같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사가 영생 얻는 방법을 알고 있기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의를 좇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옳게 알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알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영생을 얻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거기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영생에 이르게 하려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법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7:7-10).

 

그렇다고 하나님의 율법이 악하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죄를 알게 한 것이 율법입니다 만일 율법이 ) `탐욕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죄, 그 잠복해 있는 악한 욕망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 20:17(참조, 5:21). 그러나 죄는 이러한 욕망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내게 알게 해주면서 내 속에 숨어 있는 모든 금지된 욕망을 충동시킴으로써 이 율법을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어길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범하는 일도 없었을 게 아닙니까? 나는 율법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몰랐을 때는 마음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았을 때 나 자신이 율법을 어긴 자이며 죽음을 선고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경우에는 생명의 길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던 선한 율법이 그와 반대로 내게 죽음의 벌을 내려 준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란생명에 이르게 하는 그 계명’(한글킹제임스성경), ‘생명을 가져다주어야 할 그 계명’(공동번역),‘생명의 길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했던 선한 율법’(현대어성경) 등으로도 번역되고 있습니다.

 

4. 율법의 본의를 놓치고 있는 율법사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살아야 할 생명의 준칙을 율법을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지키는 행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하는 것, 말을 바꾸면 사람이 힘써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윗의 시에서 보는 대로 중심에 진실함을 가진 것으로서 그래서 자기들의 영혼 깊숙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 의해서, 죄에서 깨끗이 씻긴 마음 정결한 마음에서 의해서(53:5-10)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로 율법을 따르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사는 율법이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율법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맺어 가는 관계는 없이 단지 유대 종교의 규례인 율법을 지켜 갔고 그런 자기의 행함을 영생을 얻는 데는 아무런 부족이 없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니 율법사의 신앙은 자기 의를 쌓는 공적 신앙에 불과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율법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있는 그 정신에 의해서 하려고 하면 인간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 타락부패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전적 무능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어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시다는 사실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89:4, 110:4, 9:7, 37:25, 1:33). 그 분이 오심으로 해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신()을 두어서 새 마음을 갖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나게 하신 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두고 믿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정신을 올바로 알면 그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그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사는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러니 내가 영생 얻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말입니다.

 

허지만 예수님은 율법사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신앙으로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비록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없는 것을 그 자신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알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어떻게 하라고 되어 있느냐?"고 물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자 "네 대답이 옳다. 그러면 이제 네가 알고 있는 그것을 행하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네 대답이 옳다. 그러니 네가 대답한 대로 그렇게 행하라. 그래서 영생 얻는데 그 무엇도 부족하지 않게 율법을 지키는 것에 있다면 과연 영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는 말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하는 말로 대신 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사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다 지켜 왔고, 그래서 영생 얻는데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지금 예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한 율법의 본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충족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며 그 구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5.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가르침을 주고자 하심

    

예수께서 이에 대한 대답을 해 주시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그 유명한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본의를 놓치고 있는 율법사에게 그 하나님의 본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비유에서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는 의미를 알아가야 하는 것이지, 이것으로 영생 얻는 비결, 또는 그와 같이 축복 받는 비결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곡해하고 이 말씀을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신 율법에서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율법에 나타내신 뜻을 그대로 따름에 있는 것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즐거워하며 기쁨으로 그 뜻을 따르는 것에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6:40).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을 아는 지혜와 슬기에 있으므로 그분을 의지함에 있는 믿음에 들어온 그때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그와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에 있는 것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돌보지 않고 피하여 감으로써 자신의 정결을 지키고자 한 율법 준수보다 더 큰 것에 있는 것으로, 그가 그와 같이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있은 것에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에 있는 영생이 또한 그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이웃을 사랑함에 있으며 주 하나님과 이웃과 영원히 함께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아는 지혜에 있게 하여 그가 베푸시는 구속의 자비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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